182화
강우가 말하는 더 큰 문제라는 것은 바로 ‘하터’였다. 강우의 예상은 하터 또한 몬스터나 헝거와 마찬가지로 몬스터의 심장을 먹어도 아무런 부작용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었다.
“아마 거의 확실해. 그리고 하터는 인간일 때의 의식을 가지고 있지. 단순히 몬스터의 심장을 노리기만 하는 헝거와는 다르다. 이미 어떠한 목적을 갖고 몬스터의 심장을 먹고 있는 놈이 있을지도 몰라.”
알리사가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떡하지?”
강우가 헝거의 시체를 발로 뻥 차버린 뒤 말했다.
“우선 원래 계획대로 버블 존으로 간다.”
강우 일행은 걸음을 옮겼다.
몬스터의 심장을 뿌린 것은 에스카였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강우 역시 에스카가 무언가를 꾸미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강우의 가설은 이랬다.
1. 에스카는 종말론자들의 모임, 그들 스스로가 세상의 종말을 몰고 오는 것.
2. 다수의 헝거 혹은 하터를 만들어내는 것이 목적. 여기서 전제로 붙는 것은 이미 에스카에 속한 하터들의 숫자가 많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몬스터의 심장들로 생겨난 헝거나 하터들의 심장을 취하려는 것이 이들의 목적.
강우 일행은 전세기를 이용해 괌으로 향했다. 이미 공항 쪽에서는 오로치를 발견했었다. 단지 오로치를 처리할 인물들이 없었을 뿐.
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예거 파티였으나, 무슨 일에서인지 연락이 되지 않았다. 따로 연락을 취할 클랜 또한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오로치를 죽일 수 있는 클랜이 없었다.
공항 측에서는 강우 일행이 오로치를 죽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덕분에 강우 일행은 전세기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강우 일행은 모두 휴식을 취했다. 특히 미츠하시는 부상을 치료하고, 링거까지 맞았다. 다행히 능력자 특유의 회복력이 빛을 발했다. 특히 미츠하시는 방어력이 뛰어난지라 금세 회복할 수 있었다.
강우 일행 전부가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였다.
강우 역시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양손을 베개 삼아 누워있었다. 좀처럼 잠은 오지 않았지만, 눈을 감고 편히 쉬는 것만으로도 제법 피로가 풀렸다. 그때 누군가가 걸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 걸음은 강우의 옆에서 멈췄다.
강우는 천천히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렸다. 옆에는 알리사가 서있었다. 알리사가 조심스레 물었다.
“옆에 같이 있어도 돼?”
“그래.”
알리사는 천천히 강우의 옆에 누웠다. 알리사는 천천히 강우에게 바짝 다가왔다. 자연스레 알리사가 강우의 팔을 베개 삼았다. 알리사는 강우의 팔을 벤 채 말했다.
“고마워.”
강우는 뭐가 또 고맙냐고 물으려다가 말았다. 돌아오는 대답은 결국 전부 고맙다느니, 그런 말일 테니까.
둘은 자연스레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만큼 얼굴이 가까워졌다. 부드러운 입술이 맞닿고, 옷을 하나하나 벗기 시작했다. 강우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검은색 힘이 스멀스멀 내려갔다. 알리사는 강우와 두 눈을 마주쳤다.
강우는 얼굴을 드러낸 것이 얼마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알리사는 강우의 원래 얼굴을 알고 있던 터라 조금도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의 주변으로만 공기가 따뜻해졌다. 강우는 알리사의 위에서 천천히 움직였다. 알리사가 “사랑해.”라고 하며 강우와 눈을 마주칠 때였다.
강우의 눈에는 알리사가 순간적으로 쿠라마와 겹쳐보였다. 쿠라마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느낀 건 아니었다. 단지 쿠라마가 떠올랐다.
‘왜 이럴 때…….’
무리도 아니었다. 강우가 쿠라마를 사랑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강우는 쿠라마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것을 알고 있었고, 쿠라마의 대신으로 들어온 것이 알리사니까.
강우는 아무런 티도 내지 않고 알리사와 일을 마쳤다. 알리사에게는 생애 최고로 로맨틱한 순간이었다. 강우에게도 그렇지는 않았지만.
비행기는 괌을 향했다.
괌에 도착한 강우 일행은 비행기에서 내려 걸음을 옮겼다. 강우가 앞장섰고, 일행들은 뒤를 따랐다.
안나가 물었다.
“버블 존으로는 어떻게 가?”
강우는 헛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에스카에서 어이없는 걸 만들어놨어.”
에스카의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일반인들도 볼 수 있게끔 기사를 퍼트리고 있었다. 당연히 그 기사는 예거 커뮤니티 사이트, 블랙마켓 사이트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뒤덮고 있었다.
에스카에서 선수를 쳤다. 버블 존 주위로 육각형 모양으로 길을 만들었다. 바다 위에 거대한 기지를 건설한 것이다. 육각형 안쪽으로는 육각별 모양으로 또 다른 길이 이어졌다. 그 위로는 각종 건물들이 들어서있었다. 모두 에스카의 사무본부 및 숙식장소였다.
단기간에 이러한 시설을 만들 수 있던 것은 에스카가 보유한 능력자들이 직접 움직여 건물을 지어 올렸기 때문이었다.
린첸이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힘의 근원인가…….
제임스가 물었다.
“그럼 어디로 어떻게 잠입할 생각이지? 바다 위에 떠있는 곳이면…….”
강우가 말했다.
“육지부터 거기까지 길 하나가 이어져있어. 다리처럼 말이지.”
“그러니까 더 힘든 거 아닌가? 배로 접근하기도 힘들 거고, 헬리콥터를 이용하는 것도 무리다. 전부 눈에 띄니까.”
린첸이 말했다.
“바다 위를 뛰는 건 어떨까? 아마 다들 가능할 거 같은데…….”
강우가 말했다.
“그냥 들어가면 되잖아?”
알리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건 아닌 거 같아.”
미츠하시가 말했다.
“난 형님 생각에 동의해. 어차피 부딪쳐야 된다면 처음부터 정면으로…….”
일행들은 저마다 의견을 나눴다. 의견은 점차 잠입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강우는 에스카의 힘을 두려워한다거나 자신이 질 것 같아서 양보한 것은 아니었다. 자기 자신은 문제가 없지만, 핫도그와 클랜원들은 위험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잠입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던 중,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듣고만 있던 안나가 입을 열었다.
“그거라면 내가 해결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안나의 능력은 빙결.
아무것도 없는 공기 중에도 얼음을 만들어낼 수 있었고, 바닷물을 얼리는 것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다.
강우 일행은 에스카의 해상본부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부터 바다 위를 걷기 시작했다. 안나가 앞장서서 수면을 얼려 길을 만들었다.
안나가 바다를 얼리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고요한 바다 위를 걸으며 일행들은 저마다 생각에 잠겼다.
강우 일행은 측면으로 돌입할 생각을 했다.
바다 위의 에스카 본부는 길을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커다란 장벽을 세운 것이나 다름없었다. 절벽에 가까운 길을 오르는 것, 강우 일행에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올라간 곳에 누군가 있다면, 들킨다면 돌아온 것이 의미가 없었다. 오히려 무단으로 침입하려 했기에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었다.
린첸이 말했다.
“우선 내가 살펴보고 올게.”
린첸은 거의 소리를 내지 않은 채 벽을 차고 오르기 시작했다. 수십 미터에 달하는 벽을 오른 뒤, 린첸은 오른손의 검지만 끝에 걸친 채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린첸은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약 10m 아래가 바닥이었다. 린첸은 담벼락에 몸을 걸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약 5m 떨어진 곳에 건물의 옥상이 보였다. 지상에는 여기저기 사람이 걸어 다니고 있었다. 린첸의 두 눈이 커졌다.
도날드가 수십 명의 사람들을 이끌며 걷고 있었다. 도날드 옆에는 두 남자가 걷고 있었다. 하나는 존슨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흑인 남자 하나가 있었다. 코와 턱, 뺨은 짧은 수염이 덮고 있었고, 구불구불한 머리는 10mm 정도로 짧았다. 키는 190cm 정도에 푸른색 셔츠와 남색 면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옷 위로드 근육질임을 알 수 있었다.
린첸은 흑인 남자 또한 알고 있었다. 그는 전 세계 예거 클랜 협회장 헬러였다.
‘저 남자가 왜 도날드와 함께?’
헬러는 예거 파티와 클랜의 사이에서 조율자의 역할을 맡는, 붉은 빛의 십성급 예거였다. 조율자라는 타이틀을 안고 있지만, 단지 귀찮은 마찰이 생길 것 같을 때 문제를 처리하는 해결사와 같은 남자였다.
헬러는 예거 클랜 협회장이지만, 사실상 클랜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거친 성격에 갈구하는 것은 오직 힘으로, 무언가를 운영하는 것과는 맞지 않았다. 하지만 최강의 위치에 서있는 것은 좋아했다.
헬러가 예거 클랜 협회장이 된 이유는 단순했다. 강하기 때문이었다. 헬러가 어떠한 결정을 내리거나, 어떠한 문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을 때, 그에게 반항할 수 있는 예거 클랜은 없었다.
헬러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을 좋아하는 타입이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 현재 도날드와 함께 있는 것은 무언가 이상했다. 그것도 에스카의 본부에 있는 것은 더더욱.
도날드와 헬러, 존슨의 맞은편으로 한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걸어왔다. 린첸은 남자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단지 혼자서 도날드, 헬러, 존슨을 맞이하고, 여유 있는 미소로 보아 보통 인물은 아닌 것으로 생각됐다.
‘현재 에스카는 하얀 늑대가 총괄하고 있어. 그럼 저 녀석은 뭐지? 에스카의 간부쯤 되는 녀석인가?’
헬러는 남자와 악수를 하며 반갑다는 듯이 미소를 머금었다. 그 광경을 보며 린첸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는 녀석인가? 헬러가 에스카에 아는 사람도 있나? 일이 대체 어떻게 굴러가는 거지?’
린첸은 남자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그나저나 저 녀석……. 왠지 낯이 익는데? 어디서 봤더라?’
헬러는 남자와 인사를 나누다가 시선을 느끼곤 린첸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린첸은 황급히 절벽에서 손을 놓고 추락했다. 강우가 떨어지는 린첸의 발밑으로 손을 펼쳤다. 린첸은 한 발로 강우의 손바닥에 착지했다.
강우가 린첸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왜 그렇게 서둘러서 내려와? 들킨 거야?”
“그런 것 같지는 않아. 그런데 뭔가 이상해.”
린첸은 자신이 본 것들을 설명했다. 린첸과 마찬가지로 강우 일행은 어떠한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강우가 말했다.
“뭐, 방법 있나? 가보자고.”
강우는 안나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최대로 강력하게 얼리면 얼마나 버텨?”
“그게 무슨 말이야?”
“얼마나 오랫동안 녹지 않고 버틸 수 있냐고.”
안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지금 이 날씨라면 하루 종일도 가능하지.”
“핫도그가 그 위에 있어도?”
안나는 핫도그를 한 번 쳐다본 뒤,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바다 위라서 얼음이 금방 녹을 거야. 이 벽 옆으로 얼음을 붙이면서 만들어도 핫도그의 무게 때문에 금방 떨어질 테고. 벽과 바다를 함께 얼리면……. 길어야 네 시간?”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좀 해줘.”
안나는 강우 일행이 서있는 곳 옆으로 벽과 바다를 얼려 난간처럼 공간을 만들었다. 핫도그는 강우의 의도를 이미 알고 있는지 그 위로 걸음을 옮겼다.
강우가 핫도그를 보며 말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내가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오고. 네가 와야 된다고 생각이 될 때도 괜찮아. 알았지?”
핫도그는 헥헥거리며 꼬리를 흔들었다. 미츠하시는 핫도그를 보다가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괜찮을까? 얼음이 다 녹아버리면…….”
강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핫도그는 수영 잘해. 바다 위를 달릴 수도 있고. 그냥 조금이라도 기다리기 편하게 하려는 거야. 발은 좀 시리겠지만.”
강우가 벽에 발을 디딘 채 말했다.
“그럼 가자. 최대한 소리는 내지 말고.”
강우 일행은 발소리를 죽이며 빠르게 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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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의 근원지에 다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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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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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남지 않은 하루 마무리 잘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