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에스카는 경계가 삼엄하기는커녕, 특별한 보초조차 없었다. 입구에서만 출입증을 확인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일행들은 이에 의문을 표했고, 강우는 눈은 웃지 않은 채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그만큼 자신들의 세력이 가장 강력하다는 거겠지. 올 테면 와봐라…. 그런 거야.”
강우 일행은 아래로 내려가 걸음을 옮겼다. 린첸이 봤던 도날드 일행과 남자는 이미 자리를 뜬 후였다.
버블 존에 지어진 에스카의 본부는 항구를 연상케 했다. 컨테이너 박스 같은 건물들이 불규칙적으로 지어져있었고, 몇몇 사람들 외에는 돌아다니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미츠하시가 말했다.
“이제 어디로 가야 되지?”
린첸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일단 도날드와 존슨, 헬러가 있는 곳을 찾는 게 먼저일 거 같아. 그 조합은 대체…….”
강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딱 봐도 저기밖에 없겠는데?”
강우의 시선이 머무른 곳은 에스카의 본부 가운데, 바닷물이 넘실거리는 곳, 버블 존 바로 위에 지어진 유난히 커다란 건물이었다.
강우 일행은 에스카 본부의 중심부를 향해 이동했다. 중심부는 기둥이 지지대가 되어 건물이 공중에 떠있는 모양새였다. 그 아래로는 바다표면에서 빛을 머금은 거품들이 올라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강우 일행은 한 건물의 벽에 바짝 붙어 중심부를 보고 있었다. 중심부 주변 역시 특별히 경계를 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안나가 눈썹을 찡그린 채 말했다.
“이거 그냥 가도 되는 거 맞아? 경계가 너무 허술하니까 이상해.”
강우는 에스카 본부의 중심부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강우는 알 수 없는 심장의 두근거림을 느끼고 있었다. 중심부 건물에서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다.
‘뭐지? 이 느낌은?’
제임스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봐, 어떻게 할 건가?”
강우는 그제야 일행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우선 돌입한다.”
린첸이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아무 대책도 없이 그냥 들어가자고?”
안나가 말했다.
“좀 더 생각해봐야 될 거 같지 않아? 딱히 다른 방법이 떠오를 것 같지도 않지만…….”
강우는 중심부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차라리 내가 혼자 다녀오는 게 나을지도…….’
위이이잉, 철커덩.
중심부 가운데 입구가 열리고, 문이 지상에 이어져 계단이 됐다. 곧이어 여러 명의 남자들이 계단을 내려오고, 도날드의 성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미친놈들! 감히 내게 이런 제안을 해?”
존슨은 심난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헬러는 그저 이 상황이 재밌다는 듯이 히죽거렸다.
“세상 오래 살고 볼일이야. 이거 참 놀라워. 안 따라오면 큰일날 뻔 했어.”
도날드 일행을 맞이했던 남자가 뒤따라 나왔다. 남자의 얼굴에는 미소가 잔뜩 머금어져있었다.
“정말 이대로 가실 건가요? 후회하실 텐데…….”
도날드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나를 협박하는 건가?”
남자는 생긋 웃으며 양손을 내저었다.
“그럴 리가요. 저는 그저 다시 한 번 물어보는 것뿐입니다.”
도날드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소리를 치려는 찰나였다. 존슨이 미간을 찡그린 채 말했다.
“우리는 예거 파티다. 하터를 다른 능력자들처럼 대하라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강우 일행은 존슨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남자는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말했다.
“근래 몬스터들의 숫자도 늘고, 헝거까지 설치는 바람에 난리 아닙니까? 진짜 종말이 다가온다고 말도 많고요. 우리 같은 능력자들이 아무리 열심히 다녀도 그 숫자들을 전부 처리할 수는 없습니다. 10성급 이상의 몬스터들, 헝거들을 상대할 수 있는 능력자들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습니까? 하터들은 그걸 막을 수 있습니다.”
도날드가 목소리를 높였다.
“애초에 네놈들이 몬스터의 심장을 뿌린 것 때문에 헝거들이 늘어난 게 아닌가?”
남자는 생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저희 쪽에서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뭔가 소문이 와전된 것입니다. 저희 측에서는 하터가 되지 못한 자들, 몬스터의 심장을 먹고 목숨을 잃거나 헝거가 됐을 시 곧바로 죽임을 당하는 것에 동의서를 받고 있습니다. 그 과정은 철저히 이곳에서만 이뤄지고 있고요.”
존슨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말했다.
“마츠모토, 예전 동료로서 묻는다. 몬스터의 심장을 뿌린 것과 너는 관련이 없다는 건가?”
강우 일행이 이야기를 엿듣고 있던 중이었다. 린첸은 마츠모토란 이름을 듣자 놀란 듯이 두 눈을 크게 떴다.
미츠하시가 물었다.
“왜 그래?”
린첸은 마츠모토에게 시선이 고정돼있었다. 마츠모토는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혼혈이고 자란 곳은 유럽이었다. 그리고 그의 정체는 과거 예거 파티 소속, 후에 잠적을 감췄던 10성급 능력자였다.
강우가 나지막이 말했다.
“우선 녀석들의 얘기에 집중해.”
강우 일행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은 채 귀를 기울였다.
마츠모토는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우고, 매서운 눈으로 존슨과 눈을 마주쳤다.
“진짜라니까. 아무 관련도 없다.”
도날드가 말했다.
“오늘은 이만 물러가지. 하지만 분명히 말해두겠어. 우린 절대 하터와 함께 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이미 인간이 아니야. 그리고 하터가 인간에게 피해를 끼치는 순간, 전력을 다해 놈들을 잡을 것이다. 몬스터와 마찬가지로 말이야.”
마츠모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현재 몬스터들을 가장 많이 사냥하고 있는 것은 우리 에스카입니다. 몬스터의 심장을 위해서라도 많이 죽이고 있죠. 특히 구성급이 넘어가는 몬스터들은 대부분 우리가 사냥하고 있습니다.”
헬러가 물었다.
“하나 묻지. 너희는 대체 왜 상위 등급의 몬스터들을 사냥하지?”
“숨길 것도 없죠. 우선 등급이 높은 몬스터의 심장일수록 죽거나 헝거가 될 확률이 현저히 낮았습니다. 또한 하터가 될 확률도 낮고, 능력만 증폭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헬러는 무언가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헬러는 흥미롭다는 듯이 물었다.
“죽지도 않고, 헝거나 하터가 되지도 않으면서, 힘만 더 키울 수 있었다고? 그 확률이 얼마나 되는데?”
“일반적으로 70퍼센트 이상입니다. 하지만 이런 통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죠. 몬스터의 심장을 단 한 번 먹었는데 죽은 사람도 있고, 열 개 이상을 먹고도 멀쩡한 사람도 있으니까요.”
존슨이 물었다.
“중요한 건 아직도 대답하지 않았어. 대체 버블 존에는 왜 본부를 설치한 거지? 버블 존을 어떻게 하려는 거야?”
퍼엉-!
중심지 버블 존에서 물이 솟구쳤다.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옮겨졌다. 물속에서 튀어나온 것은 한 남자였다. 180중반의 큰 키, 하얀 머리카락에 하얀 눈썹, 창백한 피부에 붉은 두 눈동자까지, 알비노인 남자였다. 남자의 정체는 하얀 늑대였다.
“그건 내가 대답하지.”
도날드의 인상이 더욱 구겨졌다.
“키워줬더니……. 나간 이유가 고작 이런 곳에서 종말이나 외치려던 것이냐? 그 힘을 갖고.”
하얀 늑대는 무표정하게 말했다.
“고작 그런 얘기나 하려고 이곳에 온 건가?”
도날드는 인상을 구긴 채 하얀 늑대를 노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대체 뭘 하려는 작정이냐? 버블 존을 파괴하게 놔두지는 않겠다. 지금 당장은 절대 안 돼. 몬스터들이 골치긴 하지만, 갑자기 사라지면 사회 기반이 무너질 거다. 몬스터가 없어지면, 그로 인한 경제적 손실만 따져도…….”
하얀 늑대가 도날드의 말허리를 잘랐다.
“나도 지금 저곳을 파괴할 생각은 없다.”
“뭐?”
“말 그대로다. 이런 시설을 설치한 이유는 단지 에스카에서 가장 먼저 발견한 곳이고, 탐사를 위해서다.”
헬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결정적인 건 말을 하지 않고 있잖아. 너희는 그냥 종말론자 아니었어? 저기서 뭐가 튀어나오던 무슨 상관이지? 오히려 세상이 종말을 맞이하도록 놔둬야 되는 거 아닌가?”
하얀 늑대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으며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내가 말해도 너희들은 모른다. 때가 가까워져 오는 거 같긴 하지만…….”
존슨은 무언가 말해보라는 듯한 눈빛을 마츠모토에게 보냈다. 마츠모토는 자신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양손을 들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무렵,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강우도 오른손을 가슴에 가져다 대고 있었다. 왠지 모를 심장의 요동침 때문이었다.
도날드는 팔짱을 낀 채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도날드는 “지금 당장 이럴 생각은 없었는데…….”라고 중얼거렸다. 하얀 늑대는 무표정하게 도날드를 쳐다보고 있었다. 도날드는 한쪽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너는 현재 에스카의 서열 1위지?”
“그렇다. 내가 에스카를 이끌고 있다.”
“그리고 너는 세상이 종말을 맞이할 거라 생각하는 거지?”
하얀 늑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뒤 말했다.
“아니, 그렇지 않다.”
“무슨 뜻이지?”
“처음 능력자들이 생기고, 몬스터들이 생겨났을 때부터 세상은 변해간 것이다. 그리고 이제 곧 또 다른 변혁을 맞이하려 하는 것이다.”
도날드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빙빙 돌리지 않고 얘기해줬으면 좋겠네만…….”
하얀 늑대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능력이 없는 인간들은 멸종할 것이다. 능력자들과 하터들은 진화한 새로운 종이다. 그렇게 세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이다. 새로운 먹이사슬과 생태계가 이뤄지는 것이지. 발달된 과학 따위는 다시 퇴보할 거다. 그런 것 따위는 생물의 생존에 있어 크게 의미가 없다. 아니, 나약한 보통 인간들에게나 필요한 거다. 당신도 예거 파티의 서열 1위이니 이런 걸 잘 알고 있겠지. 게다가 몬스터의 심장을 먹어서 강해진 것이니, 더욱 잘 알 거야. 우린 보통 인간들과는 다르다. 이제 변화를 맞이할 때다.”
도날드는 오른손을 턱에 가져다 댄 채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구만…….”
도날드의 전신에서 푸른빛과 노란빛이 뿜어져 나왔다.
뇌전.
도날드가 하얀 늑대를 향해 양손을 뻗었다. 푸른빛의 번개와 노란빛의 번개가 하얀 늑대를 덮쳤다. 하얀 늑대는 다가오는 번개를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하얀 빛이 번쩍이며 도날드가 쏜 번개와 함께 사라졌다. 하얀 늑대는 여전히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물었다.
“무슨 짓이지?”
도날드는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런 위험한 사상을 가진 놈을 그냥 놔둘 수 있나? 여기서 없애겠다.”
“그게 가능할 거라고 보는가? 여기는 우리 본부다. 내가 한마디만 하면 너희 숫자의 수십 배가 넘는…….”
하얀 늑대가 말을 마치기 전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붉은빛과 주황빛, 노란빛이 뒤섞인 에너지파가 하얀 늑대의 등 뒤에서 폭발했다. 하얀 늑대는 눈으로 뒤를 쳐다봤다. 마츠모토가 양손을 뻗은 채 씩 웃고 있었다.
하얀 늑대는 그대로 몸이 앞으로 튕겨져 나갔다. 도날드는 왼손에 노란빛을, 오른손에 푸른빛을 모으고 있었다.
도날드의 비기, 주피터의 쌍창.
도날드가 양손을 치켜들었다. 양손에는 푸른빛의 전기창과 노란빛의 전기창이 들려있었다. 도날드가 하얀 늑대를 향해 두 창을 던졌고, 그대로 직격했다.
치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직-!
두 창은 하얀 늑대의 몸을 관통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대로 하얀 늑대를 몰아붙이며 날려버렸다.
콰아아아아앙-! 터엉-! 풍덩.
하얀 늑대는 그대로 뒤로 날아가 중심지에 부딪친 뒤, 버블 존인 바다로 가라앉았다.
============================ 작품 후기 ============================
마츠모토는 세 개의 빛?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 부탁드립니다.
늦어서 죄송하고,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항상 감사드릴 뿐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