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남은 하터들 중 전투가 가능한 건 약 300.
하터들의 공격이 도날드 쪽에게로 집중됐고, 강우 일행의 숨통도 제법 트여있었다.
하터로 변한 이태민이 헬러에게 달려들었다. 또다시 헬러의 주먹과 이태민의 발이 맞부딪치며 굉음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도날드와 존슨은 대부분의 하터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알리사와 쿠라마의 실력은 말 그대로 박빙, 승부가 쉽사리 나지 않았다.
미츠하시와 안나, 린첸, 제임스는 넷이서 하터들을 막아내는데 여념이 없었다.
강우에게 달려드는 하터들은 거의 없었다. 마츠모토는 여유를 잃지 않은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강우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대가리를 자른다.’
강우가 마츠모토를 향해 튀어나갔다. 마츠모토 역시 곧바로 강우의 낌새를 차리고, 전신에서 무지갯빛을 뿜어냈다.
강우는 마츠모토에게서 10m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오른손을 펼친 채 뻗었다.
지옥 아귀 뱀.
조금의 시간도 들이지 않고 곧바로 뻗어낸 만큼 팔뚝 굵기 정도로 가느다란 검은 뱀이 마츠모토를 향해 뻗어나갔다. 크기는 작았지만, 해당하는 범위는 완벽하게 지워버렸다. 즉, 크기가 작다고 공격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 목표인 마츠모토, 한 명의 인간을 해치우기에는 적절한 크기.
검은 뱀이 입을 쩍 벌린 채 마츠모토를 향했다. 마츠모토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오른손을 까딱였다.
쿠오오오오오오-! 펑!
무지갯빛 회오리가 뻗어오는 검은 뱀 아래로 솟아났다. 구름까지 닿을 회오리에 검은 뱀이 휘감겼고, 이내 작은 파열음과 함께 사라졌다.
마츠모토는 강우를 보며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너 같은 놈이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강우는 주먹을 꽉 쥐며 나지막이 말했다.
“공격 한 번 막아냈다고 입 좀 털지 마라.”
마츠모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넌 이제 나한테 공격할 수 없어.”
“뭐?”
마츠모토의 전신에서 무지갯빛이 휘몰아치다가 점점 모여들었다. 무지갯빛은 마츠모토의 양손 사이에서 둥그런 구슬처럼 응축돼있었다. 마츠모토의 양쪽 입꼬리가 길게 올라갔다. 그 순간 모여든 무지갯빛 구슬은 강렬한 초록빛으로 변하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파아아아아아아앙-!
초록빛은 에스카 기지 내를 전부 꽉 채웠다.
치이이이이이이잉-!
초록빛들은 이내 주저앉거나 쓰러진 하터들에게로 모여들었다. 강우는 물론, 모든 사람들은 주변을 둘러봤다.
텅, 터텅, 쿵, 쿠쿠쿵, 쿵, 텅!
하터들이 뛰어내리거나 발돋움을 하는 소리였다. 최소 수천의 하터들이.
하얀 늑대의 하얀빛이나, 알리사의 분홍빛, 예전 몬스터보호협회 진진의 회색빛, 강우의 검은색 등. 지금 세상에서 초록빛은 그만큼 희귀한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초록빛은 치유의 능력을 가진다. 하지만 대개 자신의 재생력이 높아지는 게 전부다. 전 십성급 예거이자 몬스터보호협회장이었던 이정우의 경우 세계 최고의 재생력을 가지고 있었다.
마츠모토는 이정우 만큼의 회복력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다른 생물을 회복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능력의 발동, 부상을 입었던 하터들이 싸우기 전처럼 다시 완벽한 컨디션으로 일어섰다.
절망적이었다. 비기를 사용해 힘겹게 줄인 하터들이 대부분 다시 일어섰다. 강우 일행과 도날드 일행 모두 사기가 꺾였다.
강우는 조금 달랐다.
‘역시 저 새끼부터 조졌어야 됐는데.’
강우는 두 눈을 번뜩였다.
‘죽인다.’
강우의 양발 주변으로 검은색 힘이 아지랑이를 피웠다. 강우가 마츠모토에게 튀어나가기 직전이었다.
퍼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굉음과 함께 중심부 아래 바다가 치솟았다. 물보라는 중심부 건물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풍덩.
중심부 건물은 멀리 날아가 에스카 시설 밖으로 완전히 튕겨져 나가 바다에 빠졌다. 거대한 물보라가 걷힌 뒤, 무언가가 바닥에 쿵, 쿵, 떨어졌다. 수십의 하터들이었다.
물속에서 튀어올라 바닥에 떨어진 하터들은 몸이 비틀어지거나, 몸 여기저기가 사라져있는 등 처참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모두 숨이 끊어져있었다.
모두의 시선은 중심부에 집중돼있었다.
터턱.
하얀 늑대가 물에 흠뻑 젖은 채 지면으로 올라와 주위를 둘러봤다. 하얀 늑대의 시선은 마츠모토에게 머물다가 도날드 일행에게로 옮겨졌다. 하얀 늑대는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마츠모토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건지 대충 알겠다.”
마츠모토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하얀 늑대를 노려보다가 소리쳤다.
“저 새끼부터 죽여-!”
몇몇을 제외하고 수천의 하터들이 일제히 하얀 늑대에게 달려들었다. 하얀 늑대는 무표정하게 전신에서 하얀빛을 뿜어냈다. 결코 강렬한 빛이 아니었다. 하얀빛은 몸 주변으로 은은하게 퍼지고 있었다.
치잉.
스컥.
투툭, 투두두둑, 터텅, 턱.
순식간이었다. 하얀 늑대는 하나의 검이 되어 하터들을 베고 지나갔다. 단 한 번의 움직임으로 수백의 하터들이 사선으로 잘렸다.
다른 하터들은 잠시 멈칫거렸지만, 이내 다시 하얀 늑대에게로 달려들었다. 하얀 늑대가 양 주먹을 꽉 쥐었다.
하얀 늑대의 비기, 아니, 비기가 아니었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빠르게 주먹을 휘둘러 풍압을 날리며 그것에 자신의 하얀빛을 얹었을 뿐, 하얀 늑대 자신에게 특별한 기술이랄 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 위력은 절대적이었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하얀 늑대에게 달려들던 하터들의 몸 여기저기가 문자 그대로 지워져버리며 튕겨져 나갔다. 그 주먹질에 전투불가 및 목숨을 잃은 하터들이 또 수백이었다.
하얀 늑대는 하터들을 둘러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아직도 많이 남았네…….”
하얀 늑대가 오른팔을 옆으로 뻗었다. 손끝을 세웠고, 하얀빛이 일렁이는 검처럼 보였다.
“끝내주마.”
하터들이 하얀 늑대에게 접근하기도 전이었다. 하얀 늑대는 자신의 팔을 사방으로 빠르게 휘둘렀다.
쉬쉬쉬쉬쉬쉬쉬쉬쉬쉬쉬슁.
하얀 늑대가 팔을 휘두른 뒤였다. 하터들이 뛰어드는 동선 혹은 하터들의 몸을 가로지르며 수십 미터에 달하는 초승달 모양의 하얀빛이 생겨났다.
스컹.
하얀빛의 초승달에 닿은 부분들은 사라졌다.
칭, 칭, 칭, 칭, 칭, 칭, 칭!
하얀 늑대가 팔을 휘둘렀던 궤도로 하얀빛의 초승달이 십수 개가 생겨났다. 그것들은 대부분의 하터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하터들의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남은 하터들은 고작 수십에 불과했다. 하터들은 쉽사리 달려들지 못했다. 하얀 늑대는 마츠모토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나지막이 말했다.
“이 정도로 잘라놓으면 너라도 다시 싸우게 할 수는 없겠지.”
하터들은 전부 마츠모토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헬러와 싸우고 있던 이태민도, 알리사와 싸우고 있던 쿠라마도, 그 외 모든 하터들이 마츠모토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마츠모토는 하얀 늑대를 향해 소리쳤다.
“이 녀석들은 네가 방금 쓰러트린 것들과는 격이 다르다. 아까 죽지 않고 살아남은 건 좀 놀랐지만, 이번엔 확실히 죽여주지.”
“어리석어……. 고작 그런 걸로 내가 죽을 거라 생각했단 것도……. 신세계에서 선택받은, 새로운 종으로서 살아가는 걸 포기하다니.”
마츠모토는 눈을 번뜩이며 무지갯빛을 뿜어냈다.
“너야말로 아직도 그런 미친 소리나 지껄이고 있다니.”
하얀 늑대는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하얀 늑대와 눈이 마주친 강우는 미간을 잔뜩 찡그렸다. 하얀 늑대는 다시 마츠모토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조건은 갖춰졌다. 내가 말한 일이 실행되는 건 시간문제다.”
마츠모토는 악에 바친 듯 소리쳤다.
“개소리하지 마! 그딴 일이 일어날 리가 없잖아!”
터엉!
하얀 늑대는 순식간에 하터들의 위를 뛰어넘어 마츠모토의 코앞에 다가섰다.
“그건 지켜보면 알 일이지.”
마츠모토는 황급히 무지갯빛을 강렬하게 일으켰다.
폭발의 토네이도.
붉은빛의 토네이도가 마츠모토의 주변으로 휘몰아쳤다. 그 안에 주황빛과 노란빛 폭발이 일어났고, 남색 빛과 보랏빛이 주변을 빨아들였다.
하터들은 회오리에서 물러났고, 하얀 늑대는 무표정하게 서있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치잉-!
하얀빛이 번쩍였고, 마츠모토의 토네이도가 사라졌다. 마츠모토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하얀 늑대와 눈을 마주쳤다. 하얀 늑대가 나지막이 말했다.
“우선 방해요소는 처리해야겠지.”
하얀 늑대가 하얀빛을 머금은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터엉-!
하터들이 하얀 늑대에게로 달려들었다.
헬러는 상황을 지켜보며 말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 거지?”
존슨이 말했다.
“일단 지켜보면 될 것 같은데. 어쨌든 하얀 늑대가 하터들 대부분을 처리해주고 있으니까. 아마 이대로면 마츠모토까지…….”
도날드가 말했다.
“우린 때를 기다린다. 마지막에 남은 녀석들만 전부 처리하면 돼.”
도날드는 강우를 힐끔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남은 놈들 전부.”
강우 일행 역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알리사는 여전히 데스사이드를 양손에 꽉 쥔 채 말했다.
“어떻게 되는 걸까?”
미츠하시 역시 데빌맨 모드를 해제하지 않고 있었다.
“엄청나. 괴물이다. 그 잠깐 사이에 하터들 대부분을…….”
제임스가 나지막이 말했다.
“우리……. 계속 여기 있을 필요 있나?”
린첸이 마른침을 삼킨 뒤 말했다.
“하얀 늑대가 타고난 천재인 것도 알고 있고, 강한 줄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이건 너무……. 만약 녀석이 우리를 노린다면…….”
안나는 그저 상황을 지켜보며 가만히 서있었다.
일행들은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강우는 일행들에게 뒤로 물러서있으라 한 뒤, 하얀 늑대와 마츠모토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하터들이 하얀 늑대의 뒤를 덮쳤다.
파파파파파파팡-!
하얀 늑대는 뒤로 돌아 하터들을 모두 쳐냈다. 하터들의 몸이 공중에 붕 떴고, 하얀 늑대가 오른손을 뻗어 하얀빛을 뿜었다.
퍼어어어엉-!
공중에 뜬 하터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른 하터들이 하얀 늑대를 향해 손을 뻗어 각양각색의 에너지파를 뿜어냈다. 하얀 늑대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에너지파를 향해 뛰어들었다.
콰아아아아아아-!
하얀 늑대는 에너지파를 가르며 하터들의 중심으로 향했다.
텅, 터텅, 터터터텅, 텅, 슈칵-!
하터들의 머리가 바닥에 후드득 떨어졌다. 떨어진 머리의 일부분이 사라져있었다. 하얀 늑대가 버블 존에서 나온 뒤로 5분도 지나지 않아 수천의 하터들 중 남은 숫자는 셋밖에 되지 않았다.
이태민과 쿠라마, 또 다른 하터였다.
이태민이 전신에서 주황빛을 뿜어냈다. 이태민의 전신 주변의 주황빛이 형태를 이뤄 마치 용의 머리처럼 보였다.
하얀 늑대는 이태민을 보며 중얼거렸다.
“인간이길 포기한 자……. 너희 또한 신세계에 속하는 종이지.”
이태민이 하얀 늑대를 향해 튀어나갔다. 이태민의 뒤로는 주황빛 용의 몸과 꼬리가 길게 이어졌다.
주황빛 용이 하얀 늑대를 덮치는 모양새였다. 하얀 늑대는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이태민을 향해 양손을 뻗었다.
하울링.
둥그렇고 납작한 하얀빛이 음파 진동처럼 여러 겹으로 이태민을 향해 날아갔다.
콰, 콰, 콰, 콰, 콰, 콰, 콰, 콰아아아앙-!
하얀 늑대에게 날아드는 이태민의 속도가 현저히 줄었다. 이태민이 “으아아아아-!”하고 소리를 질렀다. 주황빛 용의 두 눈이 붉게 빛나고, 몸 군데군데서 구름과 같은 붉은빛이 흘러나왔다.
파아아아앙-!
이태민은 하얀빛을 꿰뚫으며 하얀 늑대에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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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늑대... 그 강함의 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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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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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의 끝자락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3월 중으로는 확실히 끝이 날 것 같습니다.
3부에 대한 것은 2부가 끝난 뒤, 공지를 통해 알려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