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00. 히로인 킬 더 히어로
나는 오늘 용사를 죽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놈 때문에 다섯 번이나 죽고, 여섯 번이나 환생했으니까.
“여, 영애…… 대체 왜…….”
용사 드한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얼굴로 날 원망스럽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한때는 열렬하게 사랑했던 연인이었으니 죽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플 거라 생각했건만.
“오. 아무렇지 않은데.”
내 말에 드한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하지만 난 개의치 않았다. 이놈이 죽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용사 키우기>
이 유치한 제목이 바로 내가 빙의한 게임이다.
처음에는 내가 게임에 빙의한 줄 몰랐다.
운 나쁘게 죽은 다음에 환생한 줄로만 알았으니까. 그것도 내가 평소 동경하던 중세 판타지 세계로.
그래서 나는 적절하게 어린아이 행세를 해 가며 야무지게 어린 시절을 보냈다. 물론 새로 만난 가족이 하나같이 거지 같았지만 전생보다는 낫다고 여기며 나쁘지 않게 보냈다. 행복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엄청나게 불행하지도 않은, 그야말로 내가 꿈꾸던 삶이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갈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내가 열다섯 살이 될 때까지만 말이다.
독살이었다, 그것도 느닷없는.
죽을 때까지도 이유를 알지 못했다.
내가 왜? 왜 죽어야 하지?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그런데 그때, 어떤 놈이 난데없이 나타나 나를 끌어안으며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뭐라 했더라.
-영애, 지금이라도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사실 저는 당신을 좋아합니다. 당신은 모르겠지만 무도회에서 첫눈에 반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치 벼락을 맞은 듯한 충격과 함께, 이곳이 게임 속 세상이라는 깨달음과 동시에 모든 내용이 떠올랐다.
<용사 키우기>
게임은 무척 간단하다.
용사가 돼서 퀘스트를 진행하며 최종 보스인 마왕을 물리치는 스토리다.
여기서 드한은 이 게임의 하나뿐인 용사다.
그럼 내 역할은 뭐냐고?
‘용사가 각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연인.’
왜, 그런 내용 많지 않은가.
사랑했던 연인의 죽음으로 각성하며 진정한 힘을 얻는 용사의 스토리.
나는 그러한 스토리에서 장렬히 죽음을 맞이하는 연인 캐릭터에 빙의한 거였다.
쌍팔년도도 아니고 냉장고 속 여자가 되다니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요?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치기 직전.
내 앞에 투명한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SYSTEM]
<환생 회귀> 능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용하시겠습니까? Y/N (사용 가능 횟수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