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기님이 만드는 파멸엔딩 (1)화 (2/149)

01. 용사를 죽였는데요, 그래서……

“으아아앙!”

우렁찬 울음소리를 뱉으며 몸을 꼼지락거렸다. 손발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걸 보니 역시나 갓난아기로 환생한 모양이다.

히든 캐릭터라고 해서 조금은 다를 줄 알았는데 말이야.

‘불순 세력이라고 했지?’

용사를 죽여서 날 ‘나쁜 놈’이라고 산정한 모양이다.

아니, 그러면 날 소멸시켜 버리든지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왜 또 환생을 시킨 거람. 지긋지긋하게.

“으아앙!”

어쨌든, 나는 한 번 더 울었다.

보통 이렇게 울면 주변에 있는 누군가가 달려와 나를 달래 주기 마련이었으니까.

누가 오는지 보면 대충 내가 어느 인물로 환생했는지 알게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한참을 기다렸는데…….

‘뭐야. 왜 아무도 안 와.’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슬그머니 불안함이 고개를 들었다.

혹시 나, 뭐, 잘못 태어난 아이, 그런 건가? 그래서 가족들이 날 버리고…… 뭐, 그런 뻔한 전개는 아니겠지?

물론 지난 환생 시절의 가족은 하나같이 다 거지 같았다. 학대하는 부모, 무시하는 형제들. 몇 번을 다시 태어나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내 역할이 ‘용사의 연인’으로 고정돼 있기 때문이었다. 드한을 제외하고 그 누구도 날 사랑하지 않았다. 시스템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진 거다.

이 사실을 깨달은 이후부터 나는 모든 걸 포기했다. 더군다나 어차피 열다섯 살이면 죽는다는 걸 알아서 가족들이 무슨 짓을 하건 그러려니 하며 넘어가곤 했다.

‘그래도 이렇게 아기일 때 방치된 적은 없었다고!’

그래서 다시 한번 으아앙 하고 울었다. 하지만 아무리 울고 또 울어도 굳게 닫혀 있는 문은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 언제부터 내 인생이 뜻대로 풀렸다고.’

몸을 뒤틀었다.

일단 여기가 어디인지부터 알아야 할 것 같았으니까.

뒤집기를 시도했다.

“으뱌!”

성공했다.

기어가기를 시도했다.

“으뱌뱌!”

성공했다.

역시 나는 불세출의 천재다. 이렇게 어린데도 벌써 뒤집기와 기어가기를 성공하다니.

흐뭇하게 웃으며 창가 쪽으로 다가가 바깥을 내다보았다.

깎아지른 듯 높은 첨탑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새까만 외벽을 자랑하는 첨탑은 기괴하리만큼 날카롭게 뻗어 있었고, 그 뒤로 얼음 방벽이 있었다. 마치 폭포가 그대로 얼어붙은 것 같은 모양새다.

보기만 해도 등골이 시려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가 잠깐.

‘……어?’

가물가물한 기억을 끄집어냈다.

그러니까 이 풍경, 어디서 많이 봤는데…….

번쩍!

뭔가가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러자마자 나는 욕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으먀…….(시발…….)”

이곳은 바로,

용사의 적, 게임의 최종 보스, 극악무도한 빌런.

마왕의 거처였으니까.

[SYSTEM]

히든 캐릭터로 환생한 것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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