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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님이 만드는 파멸엔딩 (5)화 (6/149)

5화

‘시험 본다며.’

근데 왜 재판실이야.

유능하면 무죄, 무능하면 유죄 뭐, 이런 건가?

원형으로 설치된 배심원석에 쌍둥이와 함께 앉은 나는 슬쩍 고개를 들어 재판실 중앙을 쳐다보았다.

피고인석으로 추정되는 자리가 있었는데, 한 명씩 저기로 나가서 시험받는 것 같았다.

무대 공포증이라도 있었으면 어쩔 뻔했어. 50석 가까이 되는 배심원석이 빼곡하게 차 있는 걸 보며 생각했다.

‘저놈들이 다 마족이란 말이지.’

한 명, 한 명씩 살피고 있는데, 개중 몇몇의 얼굴이 익숙했다. 전생에서 꽤 유명했던 얼굴들.

‘별로 좋은 일로 유명한 건 아니었어.’

더러운 성질로 유명했던 이들이다. 잔인하고 극악무도하다는 평가가 꼬리표처럼 달라붙던 이들.

‘그땐 뭣도 모르고 인간 새끼가 아니라고 욕했는데, 진짜 인간 새끼가 아니었네.’

그치. 아무래도 마족이니까…….

어쨌거나 저들 눈에는 안 띄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인간인 걸 들키면 안 되니까.

쌍둥이들이야 아직 어리니까 적당히 속여 넘길 수 있다 해도, 다 큰 마족들은 속이기 어려울 테다. 완전히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최대한 피해 다녀야 했다.

“세키나. 떨려?”

이때 파르데스가 말을 걸었다. 하나도 안 떨리는데 왜 떨리냐고 묻지? 의아해서 그를 쳐다보니 아하, 그가 떨고 있었다. 파들파들파들. 저러다 쓰러지겠네.

“다들 떨고 이쓸 거야. 갠차나. 여기서 안 떨면 더 이상한 그니까.”

“후우! 후!”

둘러보니 파르데스뿐 아니라 메르데스도 파들파들 떨고 있었다. 주변에 있는 다른 어린애들도 마찬가지고.

하긴. 떨리는 게 당연하다. 여기서 까딱하면 그대로 죽는 거니까.

‘나도 만약 퀘스트를 못 받았다면 이렇게 덜덜 떨고 있었겠지.’

하지만 그런 가정은 할 필요 없다. 난 최강의 패를 쥐고 있으니까!

“먀아아!(다 뒤졌다, 새끼들아!)”

그렇게 키득거리며 소리를 지르던 때였다.

쿵! 쿠웅!

앉아 있는 자리와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지? 마물이라도 나타난 건가? 이렇게 마족들이 모여 있는 장소에?

난 눈을 휘둥그레 뜨며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그 누구도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내 옆에 있는 파르데스가 벌떡 일어나 탄성을 내지르며 눈을 반짝이는 것 빼고.

“리아트 겨어엉!”

파르데스는 열린 문을 향해 폴짝폴짝 뛰어갔다. 덕분에 나도 자연스럽게 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엄청난 거구의 사내가 있었다. 마물인지 마족인지 잘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크고 험악한 인상의 소유자.

‘저 주먹에 한 대 맞으면 죽겠는데.’

난 오한을 느끼며 눈을 가늘게 떴다. 거구의 사내 어깨에 뭔가가 얹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사내의 어깨에 있던 뭔가가 가볍게 점프해 내려왔다.

백발을 높게 묶고 외알 안경을 쓴 채 연미복을 차려입은 남자. 한껏 서늘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키가 너무 작아서 별로 무섭지는 않다.

“리아트 경! 언제 온 거예요! 와쓰면 내가 마중 나가쓸 텐데!”

작은 사내를 향해 파르데스가 두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어젯밤 파르데스가 한 말로 미루어 보아 저 작은 마족이 ‘리아트 경’이겠지.

-마왕님의 엄청난 마력과 내가 세상에서 쩨일 존경하는 리아트 경이 와아안전 대단한 천재적인 지식을 발휘해서 우리를 만들어 낸 고야!

호문쿨루스(인조인간)를 만든 마족.

저놈을 가장 경계해야 했다. 인조인간을 만든 놈이니, 내가 진짜 인간이라는 걸 알아챌 확률이 높으니까.

‘그리고…….’

저 큰 놈.

어디서 많이 봤는데.

기억해 보고자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파르데스의 손을 잡은 리아트가 내 앞으로 훅 다가왔기 때문이다.

“파르데스 님이 말씀한 신기한 불량품이 이것입니까?”

“으먁!(시벌, 깜짝이야.)”

리아트는 회색 눈동자를 번뜩거리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불량품? 신기? 난 입을 반쯤 벌린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네. 마자요. 근데 불량품인지는 몰겠써요. 아닐 거 같아요. 입력은 안 댄 거 가튼데, 벌써부터 마나를 다루고 이쓰니까요. 저희 뭉뭉이를 쓰러뜨려써요.”

왜인지 모르겠지만 파르데스는 살짝 나를 두둔하며 동시에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기들 개를 때렸는데 왜 자랑스러워하는지 모르겠다.

“입력된 정보값이 없는 상황에서 제대로 자아를 유지하고 힘까지 쓴다라…….”

리아트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재미있군요.”

그는 외알 안경을 벗어 주머니에 넣은 후, 내게 두었던 시선을 거두었다.

“심판대에서 무엇을 보여 줄지 기대하겠습니다.”

촉이 온다, 촉이 와.

여기서 제대로 못 하면 ‘정보값이 입력되지 않은 불량품’ 취급을 받아 그대로 폐기되고, 잘하면 ‘신기한 연구대상’이 되어 저놈에게 불려 다닐 미래가.

‘흐으으음.’

내 계획이 실패할 리는 없으니 아마도 후자가 될 텐데.

난 힐끔 고개를 돌려 문가에 앉아 있는 거구의 사내를 쳐다보았다. 그러자마자 좋은 생각이 났다.

‘뛰는 마족 위에 나는 고인물 있다.’

자랑스러운 나 자신.

난 스스로를 칭찬하며 앞으로의 일을 하나씩 점검해 보았다.

“형아는 리아트 경 아페서 대게 잘 있눈다……. 난 무셔서 한 마디도 몬 하겟눈데.”

“그야 리아트 경은 내가 세상에서 쩨일 존경하는 분이니까! 나두 커서 리아트 경 가티 무시무시한 마족이 댈 거야!”

쌍둥이는 서로 키득거리다가, 이내 나를 보며 엄지를 척 치켜올렸다.

“세키나. 잘해야 대.”

“웅! 세키나, 잘해!”

오냐. 말 안 해도 잘할 거다.

***

“폐기해라.”

“폐기해.”

“폐기…… 그냥 다 갖다 버려. 쓸모가 없네, 쓸모가.”

재판석에 앉은 리아트는 짜증이 난다는 듯 머리를 헝클이며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까지 피고인석에 선 호문쿨루스는 총 여덟. 개중 시험에 통과한 이는 아무도 없다. 모두 다 폐기처리가 된 것이다.

‘젠장. 대체 뭐가 문제지?’

날 때부터 걸출한 능력을 보여 주었던 율리안과 초반에는 부진했지만 해가 지나며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여 준 니샤. 그리고 쌍둥이 파르데스와 메르데스를 제외하면 썩 괜찮은 놈들이 없었다. 뭐 몇이 더 살고 있긴 했지만 딱히 주목할 바는 아니다.

분명 제대로 된 ‘입력’을 했고 제대로 된 ‘생성’을 했는데도 말이다.

‘원인을 알아야 해결을 할 텐데, 원인을 알 수가 없으니…….’

리아트가 호문쿨루스를 만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마왕의 힘이 인간계에 봉인된 지금. 마계의 최정예 전사 오십이 인간계로 내려와 있다.

하지만 마족이란 본디 마계의 기운을 받고 살아야 하는 터. 인간계에 오래 있을 순 없었다.

인간계를 누빌 수 있는 인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위대한 마족은 하찮은 인간과 밤을 함께할 수 없었다. 본능적으로 혐오감이 일기 때문에.

그래서 리아트는 감히 마왕의 힘을 빌려 인조인간을 제작하게 된 것이었다.

인간과 구조가 같아 인간계에서 버틸 수 있으면서도, 마족의 힘을 가지고 있는 존재.

물론 반항할 때를 대비해 마왕에 대한 충성과 기본적인 지식을 ‘입력’시켜 놓았다.

그래서 호문쿨루스들은 처음 눈을 뜰 때부터 한낱 인간 아기들과는 달리 더욱더 총명하게 행동했다.

‘그래서 꽤나 전력이 될 것이라 생각했거늘.’

마력이 약하거나, 지능이 떨어지거나, 아예 인간의 몸 자체를 조종하지 못하는 실패작들이 계속 나왔다.

열을 만들면 아홉을 폐기하는 상황.

‘쯧.’

리아트는 혀를 차며 뒷목을 매만졌다. 그래도 다행히 다음 타자로는 두 번째로 기대하고 있는 니샤가 나왔다.

“오, 오오!”

“중급 정령이다!”

니샤는 피고인석에 서자마자 자신의 피를 이용해 정령진을 만들었고, 곧바로 중급 정령 샐러맨더가 소환됐다.

“마족이 상극이라는 정령을 다루다니. 대단한 일 아닌가?”

“온전한 마족이라 할 순 없으니 가능한 일인 것 같군. 저대로 키우면 인간계가 뒤집어지겠어.”

리아트는 다른 마족들의 평가에 동의했다. 아직 여섯 살밖에 안 된 니샤는 전성기의 인간 정령술사들보다 훨씬 더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으니까.

“통과.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니샤는 리아트에게 짧게 고개를 숙인 후 그대로 재판실을 빠져나갔다.

그다음은 쌍둥이였는데, 파르데스는 연금술을, 메르데스는 검술을 보여 주었다.

연금술은 나쁘지 않았고 검에는 검기가 희미하게 담겨 있었으므로 통과시키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감사합니다, 리아트 경! 더더 열씨미 해서 리아트 경에게 도움이 댈 수 있게 할게요!”

“감삽니다.”

그들은 꾸벅꾸벅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퍽 흐뭇한 광경이었지만, 리아트는 똥 씹은 표정으로 시선을 피했다.

‘어차피 마왕님의 힘만 찾으면 폐기될 놈들이거늘.’

반쪽짜리 마족을 어떻게 마계로 들일 수 있단 말인가? 

리아트는 호문쿨루스의 이용 가치만 인정하고, 존속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뭐, 사는 동안에는 꼬박꼬박 마왕님 자식 취급은 하고 있으니.’

위대한 마왕의 자식이라 불리는 것. 그것만으로도 사는 이유가 충분할 터.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놈들이니.’

리아트는 살짝 올라오려는 묘한 감정을 누르곤 마지막 남은 한 자리를 응시했다.

아까 전 보았던 갓난아기.

케르베로스를 쓰러뜨린, 어쩌면 불량품일 수도 있는 특이한 호문쿨루스.

바로 세키나 다이몬이었다.

“먀아악!”

세키나는 엉금엉금 기어 피고인석으로 다가왔다.

‘제대로 입력이 안 됐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사리분별은 할 줄 아는군.’

하지만 그뿐이다.

특이한 놈이라고 해도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폐기다.

‘보여 줘 봐라.’

리아트는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외알 안경을 낀 후 세키나를 응시했다.

피고인석에 다다른 세키나는 엉덩이를 몇 번 들어 제대로 앉은 후,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먁! 먁!(봐라, 이 새끼들아!)”

“아, 아니! 저걸 왜?”

“어떻게 하려고?”

작디작은 손에 들려 있는 저것은……!

리아트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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