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쿠구궁!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별관 전체가 흔들렸다. 쩌저적 소리가 나며 벽면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뭐야, 뭐야!”
심신 안정에 좋은 아로마 오일을 인중에 묻히고 안대까지 쓴 채 아주 다디단 잠에 빠져있던 아서가 벌떡 일어났다. 그는 황급히 전등을 켠 후,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러자마자 사방으로 흔들리고 있는 별관이 바로 보였다. 호문쿨루스들이 있는, 바로 그 별관 말이다.
“부단장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일어나십쇼!”
깨어난 마족들의 고함이 들려왔다. 아서는 빠르게 외투를 걸친 뒤 문을 박차고 나섰다.
“별채에는 군단장님이 있다! 군단장님의 폭주일 수 있으니 다들 조심하도록!”
아서는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중급 마족 이상은 때때로 ‘폭주’라는 것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는 가재가 탈피하고 더 큰 껍질을 만들어 몸을 키우는 것처럼, 마력이 보다 더 성장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하지만 군단장님의 폭주는 수십 년 전에 있었는데? 간격이 너무 밭아.’
만약 폭주가 아니라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호문쿨루스가 여섯이나 있는 별관.
각기 중급 마족에 비견할 만큼 성장한 아이들이기 때문에 쉽사리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세키나 님.’
개중 세키나가 가장 어렸으므로 걱정이 컸다.
그 순간, 왜인지는 몰라도 며칠 전 니샤가 세키나에게 날을 세우던 모습이 떠올랐다. 머릿속으로 그때의 일이 스쳐 지나감과 동시에 식은땀이 삐질 흘러나왔다.
만약 지금 이 현상이 니샤와 세키나가 싸우고 있기 때문이라면?
중급 정령을 부릴 수 있는 니샤가 세키나를 공격하고 있는 거라면?
세키나는……!
‘젠장맞을.’
아서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서둘러!”
아서를 주축으로 한 일곱 명의 기사들이 별관에 당도했다.
별관은 가까이에서 보니 더더욱 가관이었다.
마치 안에서 거대한 폭발이라도 일어난 듯, 금방이라도 건물이 무너질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부단장님! 마물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아서 역시 느꼈다.
믿기지 않았다. 마물이라니? 이곳에서?
이곳은 마왕의 지배를 받고 있는, 다시 말해 마왕의 힘으로 보호가 되고 있는 마왕성이다.
삿된 마물은 감히 침입할 수 없다. 마왕의 힘에 짓눌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단 말이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마물이 이곳에 있단 말인가?
설마, 그놈들이 마왕님의 힘을 뚫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만큼 진화를 했다고?
아서는 입술을 까득 깨물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마족의 상황은 지금보다 더 악화될 터.
“서둘러! 기운이 나오는 곳으로 향한다!”
“예!”
아서와 기사들은 기운을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한층, 두 층, 세 층…… 그리고 세키나의 방과 니샤의 방이 있는 층에 다다랐을 때 그들은 몸을 뒤덮는 엄청난 마기에 그만 뒷걸음질을 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이 정도의 마기는 마계에서나 접할 수 있는 농도다. 인간계에서, 하물며 마왕성에서 이 정도의 마기라니.
정말 마물이 침입한 것일까.
이 정도의 마기를 내는 마물의 등장이라면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니다. 마족 모두를 모아 대책 회의를 해야 할 판이었다. 일단 호문쿨루스를 먼저 구하고 군단을 불러와야 하나? 아서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이렇게 모두가 우왕좌왕하고 있는 때였다.
복도 한쪽에서 불쑥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군단장님?”
그는 다름 아닌 마르틴이었다!
“군단장님! 계셨군요!”
기사들은 그가 구원의 동아줄이라도 된다는 듯이 기쁜 목소리로 소리치며 마르틴에게 뛰어갔다.
아서 역시 그에게 다가갔다.
“군단장님. 느끼셨겠지만, 마물이 이곳에 나타났습니다. 마기의 농도를 보아하니 상급 마물인 것 같은데, 군단을 부를지 저희끼리 처리할지 결정해 주십시오.”
“…하암.”
급박한 아서의 목소리에도 마르틴은 눈을 끔뻑끔뻑하며 길게 하품을 했다.
“군단장님. 잠에서 좀 깨시죠? 지금 위험한 상황……!”
“위험하지 않다.”
“예?”
“여기, 안전하다.”
마르틴이 느릿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나, 살기 잘 느낀다. 하지만 지금 살기 느껴지지 않는다.”
말을 듣자마자 아서는 빠르게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도 그럴 게, 마르틴의 살기 감지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났으니까.
누군가가 좋지 않은 마음을 먹고 쳐다보기만 해도 바로 알아채지 않는가.
그런 마르틴이 하는 말이니 믿어도 됐다.
요동치던 심장이 가라앉았다. 후우, 그는 숨을 몰아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럼 지금 무슨 일입니까? 아시는 거 있습니까?”
“그건…….”
마르틴은 입을 열었다가, 이내 다물었다.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모든 상황을 파악한 그였지만……. 이걸 하나씩 설명하기에는 귀찮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저가 처리해야 할 일이었으니 굳이 말로 할 필요는 없겠지.
“따라와라.”
마르틴은 아서와 기사들을 이끌고 니샤의 방으로 갔다.
그렇게 니샤의 방문 앞에 다다랐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보고 있는 장면을 믿을 수가 없어 몇 번이고 눈을 비볐다. 하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니샤의 넓은 방을 한가득 채우고 있는 마물이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단 말이다.
꿰에에엑―!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큰 소리였다. 그들은 빠르게 검을 뽑았다.
“전원 대열 맞춰! 마물을 처리하라!”
“니샤 님을 찾아! 보호해!”
마물이 대체 어떻게 여기 있는지는 몰라도 놓칠 수 없다. 일단 죽인 뒤 상황을 파악하면 되리라.
“이야압!”
“죽어!”
그들은 주변을 둘러볼 겨를이 없었다.
니샤를 구해야 했고, 눈앞의 마물을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마물의 앞에 작디작은 갓난아기가 앉아 있고, 마물의 발등에 손을 턱 올리고 있는 것을 미처 보지 못했다.
꿰에엑―!
자신을 공격하려는 걸 눈치챈 마물의 입이 벌어졌다. 마물은 날카로운 손톱을 길게 뽑고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기사들과 마주했다.
일촉즉발의 상황!
바로 그때였다.
“멈춰!”
니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멈추라고?
기기긱! 기사들은 마물의 몸에 올라타려던 것을 멈추고 어리둥절한 채로 니샤를 쳐다보았다.
자세히 보니 니샤는 전혀 겁을 먹은 표정이 아니었다. 되레 화가 난 표정 같다고 할까?
기사들은 다소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니샤를 쳐다보았고, 니샤는 그런 그들을 보며 쯧 혀를 찼다.
“야. 니들 눈은 고장 났어? 쟤 안 보여?”
기사들은 니샤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세키나 님?”
마물의 발등에 손을 턱 올려놓은 세키나가 보였다.
“먀아!”
이게 뭐지?
***
니샤에게 침입을 들킨 나는 어떻게 하면 도망칠 수 있을까 머리를 빠릿빠릿하게 굴리고 있었다.
하지만 니샤는 나를 죽이려고 했다. “잘됐다.”라는 말까지 하면서.
“뱌아아악!(야! 내가 너 변절한 거 안 들키게 해 준 거야!)”
있는 힘껏 소리쳤지만, 니샤는 전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죽어.”
“와아아먀!(안 돼!)”
니샤가 바람의 정령을 소환한 것을 알게 된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마음속으로 외쳤다.
‘시스템! 나 구해!’
사실 별 기대 없이 내지른 말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펼쳐졌다.
띠링!
서브 미션 <소환술을 익히자!> 완료!
니샤 다이몬에게 서려 있는 마왕의 힘을 모두 흡수했군요!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참 다행이에요!
보상 : 자동화 시스템(획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