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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님이 만드는 파멸엔딩 (14)화 (15/149)

14화

“…….”

도르륵, 도르륵.

모두의 눈동자가 굴러가는 것만 보인다.

나는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모두의 눈치를 살폈다.

그 누구도 내게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저들 모두가 나를 경계하고 있다는 걸.

‘아니, 왜?’

애초에 소환술은 마족이나 마물을 부르는 거 아니었나? 마왕도 마물을 죽이기 위해 소환술을 쓰지 않는가. 그런데 왜 이렇게 놀라는 거지?

내가 생각보다 일찍 소환술을 익혀서? 아니면…….

꿰에엑―!

마물의 크기가 커서?

‘이쪽이겠네.’

이게 어떻게 하급 마물이냐. 뭔가 오류가 생긴 게 분명했다.

시스템도 때론 오류를 낼 때가 있는 거라고. 그렇게 중얼거리며 난 불안함이 이는 마음을 애써 억눌렀다.

“아기.”

이때 문가에 서 있던 마르틴이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크르릉―

마물이 그를 보며 송곳니를 드러냈지만, 마르틴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소환수는 소환사의 의지대로 움직인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놈이 덤벼도 자신이 이길 거라고 확신하기 때문일까. 뭐가 됐든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너, 충분히 재능 있다.”

앞에 선 마르틴이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마물보다도 더 험상궂게 생긴 그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이곳에서 마물은 부르면 안 된다.”

촤악!

순식간이었다.

그가 검을 빼든 것도, 내가 소환한 마물이 반으로 갈라진 것도.

“만약 한 번 더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아기, 죽는다.”

마물의 푸른 피가 후드득 떨어졌다.

“내 손에 의해.”

“…….”

난 얼굴을 적시는 마물의 피를 맞으며 입을 반쯤 벌렸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갑자기 벌어진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온몸을 뒤덮는 엄청난 살기에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허억, 헉, 난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숙였다.

“세키나 님!”

이때 아서가 뛰어왔다.

“군단장님. 아무리 그래도 이러실 건 없지 않습니까! 세키나 님이 놀라셨어요!”

그는 나를 안으며 마르틴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마르틴의 검은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났다.

“마물, 통제 불가능하다. 어쩌다 소환에 성공해도 다루지 못한다. 위험하다.”

“하지만!”

“모두의 안전을 위해, 해야 할 일이다.”

“…….”

아서는 더 할 말이 없는 듯 침음을 흘리며 입을 다물었다.

그제야 나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마왕의 힘이 봉인된 이후, 마왕에게 지배를 받던 마물들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마족이 죽거나 다쳤고, 마계의 절반 넘는 땅을 마물에게 빼앗겼다. 마왕은 그런 마물들을 다시 한번 지배하고자 했으나 불가했다. 마물이 진화를 했고, 또한 강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왕은 마물을 길들이는 것을 포기하고 그들을 죽이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소환진도 그저 ‘소환’만 할 뿐, 그들을 다루는 게 아니란 말이다.

‘그래서…….’

이놈들도 내가 그저 소환만 한 거라고 판단했나 보네.

마물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감히 생각하지 못한 거다. 자기네들 대장인 마왕조차도 지배를 포기했으니까.

‘하지만 이딴 식으로 구는 건 아니지 않나?’

아무리 마물이라 해도, 내 첫 소환수다.

말 한 마디 제대로 안 나눠 봤지만 눈이 마주쳤단 말이다! 마치 주인 잃은 강아지처럼 반들반들했던 검은 눈동자가 생생한데! 내 마음속에서 이미 쿠키 1호라고 이름까지 지었는데!

“뱌아아악!(누구 마음대로 죽여!)”

난 마르틴을 향해 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고 곧바로 마나를 손끝에 흘려보냈다. 그 즉시 소환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세키나 님!”

“아, 안 되는데!”

쿠구구궁!

소환진 한가운데가 부풀어 올랐다. 방금 전 소환했던 쿠키 1호보다 더 새까만 색의 마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기, 이번에는 의도적이다.”

마르틴의 얼굴이 구겨졌다.

“마물과 아기, 둘 다 처리한다.”

그의 검이 번쩍 들어 올려졌다. 하지만 마르틴보다 내 명령이 더 빨랐다.

“뱌악!(움직여!)”

꿰에엑―!

완전히 소환된 마물은 휙 날아올랐다. 방 안에서 소환된지라 높게 날지는 못했지만 마르틴의 공격은 피할 수 있을 터. 간신히 목숨을 구한 마물은 다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고, 나는 마물을 향해 손을 뻗었다.

“먀먁!(이리 와!)”

쿠에엑―!

내 말에 따라 얌전히 바닥에 내려온 마물은 성큼성큼 걸어 내 앞으로 다가왔다.

“뱌악!(앉아!)”

쿠엑―!

“뱍!(손!)”

퀙―!

그리고 내 명령에 따라 앉기도 하고, 손도 내밀었다.

자, 이제 누가 마물을 못 다룬다고?

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마르틴과 기사들을 돌아보았다.

마르틴은 검을 든 그대로 서 있었고, 기사들은 입을 쩍 벌린 채 굳어 있었다.

‘시스템에서 준 소환진이라서 마물을 다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도박한 건데.’

잭팟을 터뜨렸다. 이 정도면 강원랜드 안 부럽죠.

난 마물의 손을 툭툭 쳤다. 그러자 그르렁거리던 마물이 천천히 희미해졌다. 소환이 해제된 것이다.

“……하.”

기사 중 누군가가 탄식을 터뜨렸다.

“마물을…….”

“다룰 수 있다고?”

“마왕님처럼?”

더듬더듬 말을 하던 그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상황을 파악하다가, 이내 함박웃음을 지으며 소리를 질렀다.

“마왕님께 보고해! 지금 당장!”

“와아아악! 세키나 님! 최고!”

“우리 복덩이! 구세주!”

서로 부둥켜안고 난리가 났다.

그럴 수밖에.

마물에 의해 터전을 빼앗긴 그들이었는데, 그런 마물을 다스릴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난 거니까.

그리고 그 존재가 바로 나죠.

‘오늘도 대단하다, 나 자신.’

난 씨익 웃으며 스스로를 토닥였다.

“세키나 님.”

이때 나를 안고 있던 아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난 그를 향해 눈을 돌렸다.

그런데 어째…… 아서의 표정이 오묘했다.

다른 마족들처럼 기뻐하는 것 같기도 하면서, 멀뚱히 서 있는 마르틴처럼 씁쓸해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난 의아해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아닙니다. 오늘은 고생하셨으니 푹 쉬세요.”

고개를 두어 번 저은 그는 원래 내가 알던 미소를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왜 너와 마르틴은 그따위 표정을 짓고 있는 건지 궁금해 묻고 싶었지만 어차피 묻지도 못 하고 대답도 못 들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얌전히 아서의 품에서 눈을 감았다.

아무리 내가 대단하다고 해도, 갓난아기의 몸으로 하루에 두 번이나 소환술을 쓴 건 무리가 되는 일이었으니까.

“더 크면 모든 걸 알게 되실 테니까요.”

***

“……뱌아.”

난 하품을 하며 무거운 눈꺼풀을 서서히 들어 올렸다.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를 만큼 깊게 잠들었다. 마지막 기억으로 되짚어 보건대 소환을 해제하고 까무룩 기절하듯 잠든 듯했다.

일단 바깥은 어두컴컴했다. 내가 고작 두어 시간 자고 깨어난 건 아닐 테니, 꼬박 하루가 지난 것이리라.

‘이 몸으로는 하루 두 번이 한계인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앞으로는 상태를 잘 봐 가면서 소환술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휙휙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원래라면 마르틴이 있어야 했지만, 어딜 갔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면 그냥 가 버린 건가?’

마르틴은 내가 마물을 제대로 다루지 못할 거라 멋대로 판단해서 내 소환수를 죽였다.

그래서 열받은 내가 또 마물을 소환해 제대로 다룰 수 있다는 걸 증명해 주었고.

‘자존심이 상했을 수도 있지.’

군단장이나 되는 놈이 판단을 잘못한 거니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시종인 놈이 방에 없다고?’

흥이다, 이놈아.

나도 너보단 아서가 더 좋았어.

난 아직도 피부에 느껴지는 쿠키 1호의 온도를 더듬으며 콧방귀를 뀌었다.

‘하루가 지났으면 슬슬 마왕에게도 연락이 갔을 텐데.’

여기서 내 능력을 되짚어 보자.

유물을 귀속시켜 마왕의 힘이 봉인된 장소를 찾을 수 있고, 마계의 골칫덩이인 마물을 다룰 수 있다.

마족 모두가 골머리를 앓고 있던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 줄 수 있는 구세주란 말이다.

‘앞으로 어지간하면 안 죽겠군.’

내 능력, 아주 칭찬해.

난 스스로를 토닥거리며 씨익 웃었다.

‘그럼 일단은…….’

난 작은 손바닥을 꼼지락거리며 눈을 깜빡였다.

‘내가 소환한 마물이 오류인지, 아니면 진짜인지 확인해 봐야겠네.’

일전에 시스템을 협박해 얻어 냈던 <마계 연결 통로>를 쓸 때가 된 것이다.

난 고개를 빳빳하게 들어 올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소환술을 발동해 소비했던 마나는 다 채워졌다. 여기서 힘을 빼도 크게 무리가 없으리라.

‘마계 연결 통로 소환.’

파앗!

그러자마자 엄청난 어둠이 나를 덮쳤다.

“먀아악!(뭐여, 이거!)”

나는 뒤로 내동댕이쳐지며 데굴데굴 바닥을 굴렀다. 그러나 한번 생성된 어둠은 사라지지 않았다. 날카로운 바람과 섞인 어둠이 내 뺨을 스쳤다.

이게 대체 무슨…….

어안이 벙벙한 찰나에, 갑자기 새빨간 시스템창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SYSTEM]

경고!

사용자의 마력이 부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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