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힘을 숨기라고?
왜?
이해가 되지 않아 살짝 미간을 좁혔다.
“쌍둥이 놈들이랑 같이 있어서 그런가. 영 멍청하네.”
“…….”
그 쌍둥이들과 같은 취급을 하다니. 열받네.
난 눈을 샐쭉하게 뜨며 니샤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니샤는 이런 내 시선을 가뿐히 무시했다. 정확히 말하면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오직 자기가 할 말에만 집중하는 태도였다.
“야. 우리가 왜 만들어졌을 거 같냐?”
우리가 아니라 너희겠지. 난 인간이고 너희는 호문쿨루스니까.
여기까지 당연히 알지 못할 니샤는 팔짱을 낀 채 말을 이었다.
“인간계에서 제대로 힘을 못 쓰는 마족을 대신해서 궂은일 하라고 만들어진 거잖아. 대신 마왕의 힘을 찾으려고.”
알고 있다.
쌍둥이가 말해 준 것도 있거니와, 마족들의 태도에서도 이를 느꼈으니까.
호문쿨루스는 인간계에서 백 퍼센트 힘을 낼 수 없는 마족을 대신해 활동하도록 만들어진 존재다.
반은 마족이니 당연히 강하고, 반은 인간이니 인간계에서도 섞여드는 데 무리가 없으니 말이다.
‘그만큼 공들여 만든 존재라 마왕에 대한 충성심을 입력시켜 놓았고.’
하지만 니샤는 그 입력을 깨뜨리고 충성심을 버려 버렸지.
“뭐, 여기까진 너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니샤는 폴짝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에 쪼그려 앉아 나와 눈을 마주했다.
“그렇게 해서 마왕 힘 되찾으면, 우리가 어떻게 될 거 같아? 생각해 본 적 있어?”
모르지, 나야.
일단 나는 퀘스트 깨려고 아등바등하고 있는데.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자, 니샤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우린 죽을 거야. 모두 다.”
“……뱌?(뭐라고?)”
“아마 마르틴도 알고 있을 걸? 그래서 너한테 화낸 거고. 그러니까 이 멍청아. 거기서 가만있지 왜 힘을 뽐내 가지곤. 쯧.”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고 싶었지만, 내 머릿속에서 퍼즐이 맞춰지는 것처럼 모든 게 다 짜 맞춰졌다.
-모두의 안전을 위해, 해야 할 일이다.
대뜸 마물을 죽이며 안전 운운했던 마르틴.
-더 크면 모든 걸 알게 되실 테니까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안아 주던 아서.
그리고 마왕에 대한 충성을 저버린 니샤까지.
그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마족이 인간계에서 떠나는 날, 호문쿨루스는 모두 다 죽으리란 사실을.
“표정 보니 충격받은 모양이네.”
그래. 충격받았다.
여섯 번을 용사 때문에 죽고, 겨우 살길 찾았더니……. 인간인 거 들키면 죽을 거 같아서 되지도 않는 시스템 놈 말 들어 가며 소환술까지 익혔는데…….
‘다 끝나면 또 죽는다고?’
이게 말이 되냐?
아, 뒷골. 아, 혈압.
나는 가빠지는 숨을 몰아쉬며 잇몸을 꽉 깨물었다.
니샤는 이런 나를 보며 쯧쯧 혀를 차더니 이내 몸을 일으켰다.
“하루라도 더 오래 살고 싶으면 몸 사려. 잘해도 못하는 척하고.”
니샤가 방을 나가는 순간까지,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
주먹을 꽉 쥐며 목청을 틔웠다.
“뱌먀아아아악!(이 XX한 XXX의 시스템 새끼야!)”
***
휘이이잉!
매서운 바람이 대지를 할퀴고 있다. 하얗디하얀 눈송이가 얼음처럼 굳어 버려 세상을 갈라놓는다.
한 걸음 발을 내디디면 그 발자국에 눈이 쌓이고, 또 발을 내디디면 직전의 발자국에 눈이 쌓인다. 가만히 있다간 내리는 눈에 파묻힐 것만 같다.
간신히 서 있기도 힘든 날씨.
하지만 이런 겨울의 날씨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이가 있었다.
그의 새까만 머리칼과 투명하리만큼 새하얀 피부는 눈이 쨍할 만큼 대비돼 더욱더 싸늘한 인상을 주고, 자수정보다 더 깊고 또렷한 보랏빛 눈동자는 요동치는 마기를 품고 있다.
산을 베어 버릴 듯 어마어마한 대검을 들고 있었지만, 그 검의 크기에 조금도 밀리지 않는 크고 장대한 몸은 그가 이고 있는 왕관의 가치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마왕 르카이츠 다이몬.
그는 제 앞에 쓰러져 있는 마물 수십의 시체를 밟으며 앞으로, 또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마왕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미 힘을 봉인당한 뒤 마계에서 쫓겨나듯 내려온 그에게 의무라고 할 것이 있겠느냐만, 그는 자신을 의지하고 지지하는 마족들에게 한 점 부끄러움이 없고자 끊임없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마물을 소환하고, 베고.
소환하고, 베고…….
본래라면 마물 역시 마왕인 그의 소유였으나, 힘을 잃은 이후 마물들은 제멋대로 날뛰고 있었다. 이성도 감정도 없어진 채 그저 살육하기만 하는 기계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는 마물을 죽이고, 죽이고, 또 죽여 왔다.
이 설산에서 지낸 것이 벌써 몇 년째인지 알지 못했으나 그런 것쯤이야 하등 상관없었다.
마왕으로서의 위엄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또다시 소환된 마물의 몸통을 반으로 갈랐다.
그때였다.
-마…… 마왕…… 마왕님!…… 통…… 통신을…….
안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통신구가 울렸다.
르카이츠는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급한 일이 아니라면 연락하지 말라고 말을 해 놨건만.
혹 마왕성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그는 빠르게 통신구를 꺼냈다.
“말하라.”
-아!…… 마왕님!
이제야 제대로 연결이 된 통신구 속, 눈을 반짝이고 있는 리아트가 보였다.
웃고 있는 얼굴을 보아하니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지는 않다. 르카이츠는 고개를 까딱였다.
-두 가지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리아트는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외쳤다.
-하나는 유물을 귀속시킬 수 있는 호문쿨루스가 나타났다는 것이고요!
호오.
르카이츠는 눈썹을 들어 올렸다.
유물을 귀속시킬 수 있다면 자신의 힘을 찾아내기에 유용할 터다.
이건 듣던 중 기분 좋은 소식이었다.
-또 하나는!
두 번째 이야기하는 것은 앞선 것보다 더 기쁜 소식이어야만 할 텐데, 유물의 귀속보다 더 좋은 일이 있다고?
르카이츠의 눈이 가늘어졌지만, 그건 찰나였다.
-마물! 마물을 길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곧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리게 되었으니까.
이는 수십 년 만에 짓게 된 기분 좋은 미소였다.
***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나는 니샤가 떠난 이후에 몇 시간 내내 시스템에게 쌍욕을 퍼부었다.
하지만 시스템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건 둘 중 하나였다. 날 개무시하는 것 혹은 내게 할 말이 없는 것.
‘둘 다일 수도 있고.’
난 하아 숨을 토하며 바닥에 발라당 드러누웠다.
능력을 입증하지 못하면 죽는다.
하지만 내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죽을 날짜가 더 빠르게 다가온다.
‘용사 때문에 죽는 게 아니라 이번엔 마왕 때문에 죽게 생겼네.’
파멸엔딩만이 내 생존에 능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아무리 파멸엔딩이 목표라고 해도, 그 이후에 목숨을 저버릴 생각은 추호에도 없다. 제대로 살아 보는 삶을 한 번이라도 겪어 봐야지 않겠는가.
‘그럼 파멸엔딩 이후에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봐야 하는데.’
답은 금방 나왔다.
일단 나에게는 15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다. 항상 열다섯 살 생일이 되면 죽었으므로, 그전까지는 게임에 의해 죽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니샤의 말처럼 ‘적당히’ 힘을 보여 주며 기회를 엿봐야 했다.
마왕의 힘을 되찾게 만들어 주는 바로 그 순간.
나도 이 마족 놈들에게서 떠나야 한다는 뜻이다.
‘적당히 열네 살쯤이면 되겠네.’
그때까지 열심히 능력을 길러 둔 후, 마왕의 봉인을 풀어 주고, 용사를 죽인 후에…….
‘튀자.’
그럼 살 수 있을 거다.
더군다나 난 인간이 아닌가. 호문쿨루스가 아니니 마족들이 추적도 불가할 터.
그렇게만 된다면, 게임에 구애받지 않고 목숨의 위협도 받지 않게 되는 삶을 얻게 될 거다.
“아우웅!”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그래.
언제 내 인생이 쉬웠나.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다.
다디단 미래를 위해서 지금 고생하면 되는 일.
“뱌아악!”
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쳤다.
‘일단 빨리 크자.’
띠링!
때마침 알림음이 울렸다.
[SYSTEM]
당신은 게임의 ‘프롤로그’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요약 1. 캐릭터 파악 (완료)
2. 직업 선택 (완료)
3. 상황 파악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