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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님이 만드는 파멸엔딩 (15)화 (16/149)

15화

힘을 숨기라고?

왜?

이해가 되지 않아 살짝 미간을 좁혔다.

“쌍둥이 놈들이랑 같이 있어서 그런가. 영 멍청하네.”

“…….”

그 쌍둥이들과 같은 취급을 하다니. 열받네.

난 눈을 샐쭉하게 뜨며 니샤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니샤는 이런 내 시선을 가뿐히 무시했다. 정확히 말하면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오직 자기가 할 말에만 집중하는 태도였다.

“야. 우리가 왜 만들어졌을 거 같냐?”

우리가 아니라 너희겠지. 난 인간이고 너희는 호문쿨루스니까.

여기까지 당연히 알지 못할 니샤는 팔짱을 낀 채 말을 이었다.

“인간계에서 제대로 힘을 못 쓰는 마족을 대신해서 궂은일 하라고 만들어진 거잖아. 대신 마왕의 힘을 찾으려고.”

알고 있다.

쌍둥이가 말해 준 것도 있거니와, 마족들의 태도에서도 이를 느꼈으니까.

호문쿨루스는 인간계에서 백 퍼센트 힘을 낼 수 없는 마족을 대신해 활동하도록 만들어진 존재다.

반은 마족이니 당연히 강하고, 반은 인간이니 인간계에서도 섞여드는 데 무리가 없으니 말이다.

‘그만큼 공들여 만든 존재라 마왕에 대한 충성심을 입력시켜 놓았고.’

하지만 니샤는 그 입력을 깨뜨리고 충성심을 버려 버렸지.

“뭐, 여기까진 너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니샤는 폴짝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에 쪼그려 앉아 나와 눈을 마주했다.

“그렇게 해서 마왕 힘 되찾으면, 우리가 어떻게 될 거 같아? 생각해 본 적 있어?”

모르지, 나야.

일단 나는 퀘스트 깨려고 아등바등하고 있는데.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자, 니샤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우린 죽을 거야. 모두 다.”

“……뱌?(뭐라고?)”

“아마 마르틴도 알고 있을 걸? 그래서 너한테 화낸 거고. 그러니까 이 멍청아. 거기서 가만있지 왜 힘을 뽐내 가지곤. 쯧.”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고 싶었지만, 내 머릿속에서 퍼즐이 맞춰지는 것처럼 모든 게 다 짜 맞춰졌다.

-모두의 안전을 위해, 해야 할 일이다.

대뜸 마물을 죽이며 안전 운운했던 마르틴.

-더 크면 모든 걸 알게 되실 테니까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안아 주던 아서.

그리고 마왕에 대한 충성을 저버린 니샤까지.

그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마족이 인간계에서 떠나는 날, 호문쿨루스는 모두 다 죽으리란 사실을.

“표정 보니 충격받은 모양이네.”

그래. 충격받았다.

여섯 번을 용사 때문에 죽고, 겨우 살길 찾았더니……. 인간인 거 들키면 죽을 거 같아서 되지도 않는 시스템 놈 말 들어 가며 소환술까지 익혔는데…….

‘다 끝나면 또 죽는다고?’

이게 말이 되냐?

아, 뒷골. 아, 혈압.

나는 가빠지는 숨을 몰아쉬며 잇몸을 꽉 깨물었다.

니샤는 이런 나를 보며 쯧쯧 혀를 차더니 이내 몸을 일으켰다.

“하루라도 더 오래 살고 싶으면 몸 사려. 잘해도 못하는 척하고.”

니샤가 방을 나가는 순간까지,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

주먹을 꽉 쥐며 목청을 틔웠다.

“뱌먀아아아악!(이 XX한 XXX의 시스템 새끼야!)”

***

휘이이잉!

매서운 바람이 대지를 할퀴고 있다. 하얗디하얀 눈송이가 얼음처럼 굳어 버려 세상을 갈라놓는다.

한 걸음 발을 내디디면 그 발자국에 눈이 쌓이고, 또 발을 내디디면 직전의 발자국에 눈이 쌓인다. 가만히 있다간 내리는 눈에 파묻힐 것만 같다.

간신히 서 있기도 힘든 날씨.

하지만 이런 겨울의 날씨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이가 있었다.

그의 새까만 머리칼과 투명하리만큼 새하얀 피부는 눈이 쨍할 만큼 대비돼 더욱더 싸늘한 인상을 주고, 자수정보다 더 깊고 또렷한 보랏빛 눈동자는 요동치는 마기를 품고 있다.

산을 베어 버릴 듯 어마어마한 대검을 들고 있었지만, 그 검의 크기에 조금도 밀리지 않는 크고 장대한 몸은 그가 이고 있는 왕관의 가치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마왕 르카이츠 다이몬.

그는 제 앞에 쓰러져 있는 마물 수십의 시체를 밟으며 앞으로, 또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마왕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미 힘을 봉인당한 뒤 마계에서 쫓겨나듯 내려온 그에게 의무라고 할 것이 있겠느냐만, 그는 자신을 의지하고 지지하는 마족들에게 한 점 부끄러움이 없고자 끊임없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마물을 소환하고, 베고.

소환하고, 베고…….

본래라면 마물 역시 마왕인 그의 소유였으나, 힘을 잃은 이후 마물들은 제멋대로 날뛰고 있었다. 이성도 감정도 없어진 채 그저 살육하기만 하는 기계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는 마물을 죽이고, 죽이고, 또 죽여 왔다.

이 설산에서 지낸 것이 벌써 몇 년째인지 알지 못했으나 그런 것쯤이야 하등 상관없었다.

마왕으로서의 위엄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또다시 소환된 마물의 몸통을 반으로 갈랐다.

그때였다.

-마…… 마왕…… 마왕님!…… 통…… 통신을…….

안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통신구가 울렸다.

르카이츠는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급한 일이 아니라면 연락하지 말라고 말을 해 놨건만.

혹 마왕성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그는 빠르게 통신구를 꺼냈다.

“말하라.”

-아!…… 마왕님!

이제야 제대로 연결이 된 통신구 속, 눈을 반짝이고 있는 리아트가 보였다.

웃고 있는 얼굴을 보아하니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지는 않다. 르카이츠는 고개를 까딱였다.

-두 가지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리아트는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외쳤다.

-하나는 유물을 귀속시킬 수 있는 호문쿨루스가 나타났다는 것이고요!

호오.

르카이츠는 눈썹을 들어 올렸다.

유물을 귀속시킬 수 있다면 자신의 힘을 찾아내기에 유용할 터다.

이건 듣던 중 기분 좋은 소식이었다.

-또 하나는!

두 번째 이야기하는 것은 앞선 것보다 더 기쁜 소식이어야만 할 텐데, 유물의 귀속보다 더 좋은 일이 있다고?

르카이츠의 눈이 가늘어졌지만, 그건 찰나였다.

-마물! 마물을 길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곧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리게 되었으니까.

이는 수십 년 만에 짓게 된 기분 좋은 미소였다.

***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나는 니샤가 떠난 이후에 몇 시간 내내 시스템에게 쌍욕을 퍼부었다.

하지만 시스템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건 둘 중 하나였다. 날 개무시하는 것 혹은 내게 할 말이 없는 것.

‘둘 다일 수도 있고.’

난 하아 숨을 토하며 바닥에 발라당 드러누웠다.

능력을 입증하지 못하면 죽는다.

하지만 내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죽을 날짜가 더 빠르게 다가온다.

‘용사 때문에 죽는 게 아니라 이번엔 마왕 때문에 죽게 생겼네.’

파멸엔딩만이 내 생존에 능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아무리 파멸엔딩이 목표라고 해도, 그 이후에 목숨을 저버릴 생각은 추호에도 없다. 제대로 살아 보는 삶을 한 번이라도 겪어 봐야지 않겠는가.

‘그럼 파멸엔딩 이후에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봐야 하는데.’

답은 금방 나왔다.

일단 나에게는 15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다. 항상 열다섯 살 생일이 되면 죽었으므로, 그전까지는 게임에 의해 죽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니샤의 말처럼 ‘적당히’ 힘을 보여 주며 기회를 엿봐야 했다.

마왕의 힘을 되찾게 만들어 주는 바로 그 순간.

나도 이 마족 놈들에게서 떠나야 한다는 뜻이다.

‘적당히 열네 살쯤이면 되겠네.’

그때까지 열심히 능력을 길러 둔 후, 마왕의 봉인을 풀어 주고, 용사를 죽인 후에…….

‘튀자.’

그럼 살 수 있을 거다.

더군다나 난 인간이 아닌가. 호문쿨루스가 아니니 마족들이 추적도 불가할 터.

그렇게만 된다면, 게임에 구애받지 않고 목숨의 위협도 받지 않게 되는 삶을 얻게 될 거다.

“아우웅!”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그래.

언제 내 인생이 쉬웠나.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다.

다디단 미래를 위해서 지금 고생하면 되는 일.

“뱌아악!”

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쳤다.

‘일단 빨리 크자.’

띠링!

때마침 알림음이 울렸다.

[SYSTEM]

당신은 게임의 ‘프롤로그’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요약 1. 캐릭터 파악 (완료)

2. 직업 선택 (완료)

3. 상황 파악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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