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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님이 만드는 파멸엔딩 (16)화 (17/149)

16화

04. 말보다 빠른 것은 주먹이다

“후후후.”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거울 안에 담긴 나는 더 이상 조막만 한 갓난아기가 아닌, 양팔, 양다리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어엿한 세 살이었으니까!

거기다가,

“하…… 말을 할 쑤 이써.”

‘먀’나 ‘뱌’를 외치며 의사를 표현하던 지난날, 안녕. 지금의 나는 모든 걸 제대로 말할 수 있다. 발음이 거지 같긴 했지만.

난 씨익 웃은 후 거울에 두었던 시선을 거두고 허공을 바라보았다.

프롤로그 완료 보상으로 받은 빨리 감기.

이 보상을 획득하자마자 나는 마치 유체이탈을 하는 것처럼 몸에서부터 정신이 멀어졌다. 제삼자가 되어 나를 내려다보는 느낌이 되었다.

그 상태로 시간이 휙휙 지나갔다.

지나는 시간 중 이렇다 하게 집중해야 하는 사건은 없었다. 끽 해봤자 ‘시험’ 정도였는데, ‘시험’에서의 나는 아주 아무렇지 않게 소환술을 선보였다.

하지만 마물을 소환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작은 물건부터 시작해 살아있는 동물 정도까지만 소환을 했다.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분명 마물이 두 번이나 소환됐다고 했지?

-그때는 생명력을 갈아 넣은 모양이군. 일단 마력을 키우는 데에 집중시켜야겠어. 마물을 다룰 수 있는 술사는 우리에게 이득이니까.

마족들이 알아서 납득을 해 줬기에 넘어갈 수 있었다.

‘나쁘지 않아.’

그래. 나쁘지 않았다.

나 역시 앞으로의 시험에서 몸을 사리려 했었으니까.

‘시스템상에서도 똑같이 진행됐다는 건 내 판단이 맞았다는 거야.’

난 팔짱을 끼며 살짝 비음을 뱉었다.

‘3살에서 빨리 감기가 멈춘 건 여기서부터 이제 사건이 등장한다는 건데.’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겠다. 살아남으려면, 그리고 이 X같은 게임 세상 엿먹이려면.

‘다 뒤졌다, 진짜.’

낄낄낄. 어린아이답지 않은 사악한 미소가 내 입가에 떠올랐다.

그때였다.

“아기, 또 이상한 웃음 짓는다.”

어느새 잠에서 깨어난 마르틴이 내 정수리에 손을 턱 올리며 말했다.

“아기, 오늘 파티에서 누굴 죽일 건가?”

다 뒤엎어 버릴 생각 하고 있는 걸 어떻게 알았지.

이 눈치 빠른 놈.

난 들키지 않게 가슴을 쓸어내리며 여상히 대꾸했다.

“먼 소리야. 내가 누굴 주겨.”

“딱 그런 표정이었다. 나는 안다.”

“알긴 멀 알아. 마르틴 아무거또 몰라.”

일부러 토라진 표정을 하며 돌아앉자 마르틴의 낯이 창백해졌다. 불곰처럼 큰 덩치로 난감해하고 있는 게 꽤 웃겼다.

‘느낌이 좀 이상하네.’

내 입장에서는 눈 한 번 깜빡이니 2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난 거지만, 이놈들은 그 시간 동안 내 곁에 있었으니까.

곁에 있는 시간 동안 나를 보며 이상함을 못 느꼈을까?

그 2년 반의 나는 진짜 내가 아닐 텐데.

이리 생각하니 괜히 씁쓸해졌다.

‘정신 차리자.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야.’

고개를 두어 번 젓고 머리를 굴렸다.

빨리 감기 장면에서 마르틴은 꽤 비중이 있었다.

내가 소환한 마물을 죽인 마르틴은 이후 내게 말을 잘 걸지 않고 주변만 빙빙 맴돌았다.

그러다 다시 말을 붙이게 된 건 두 번째 시험이 있던 때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는 언제 나를 피했냐는 듯 내 뒤를 졸졸 쫓아다녔다. 빨리 감기 속 장면에서 나는 그를 상대도 하지 않았지만 그는 그 좋아하는 잠도 마다하며 내 수발을 들었다.

‘무슨 생각이지?’

니샤는 호문쿨루스가 다 죽게 될 거라는 걸 마르틴이 알고 있다고 했는데…….

‘그거랑 연관이 있는 건가?’

흠.

뭐, 내가 마르틴이 아닌 이상 이놈의 속내를 알 방법은 없다.

그래서 난 마르틴의 생각을 추론하는 걸 깔끔하게 포기했다.

가뜩이나 신경 쓸 것도 많은데 굳이? 싶거니와 마르틴의 호의는 내게 득이면 득이었지 해가 되지는 않을 테니까.

“아써는? 어디가써?”

“부단장은 식당에 가 있다. 파티 준비를 하고 올라온다고 했다.”

“준비는 무쓴. 짜피 우리끼리 밥 묵고 케이크에 초 부는 건디.”

으쓱 어깨를 올리며 대답했다.

빨리 감기 내용에서 한 번의 생일파티가 있었다.

그때는 나, 아서, 마르틴, 그리고 1군단 마족들이 있었다.

하지만 1군단 마족들은 파티가 시작하기도 전에 쫓겨났다. 내 뺨따귀를 슬라임처럼 만지작거리다가 아서에게 들켜서.

1군단 마족들은 그 뒤로 별관 출입을 금지당했다.

“대충하고 올라오라 해. 나눈 혼자 옷 못 입는단 마랴.”

“내가 해 주겠다.”

“시러. 너가 쩐에 해 줘따가 나 등에 상처 나짜나. 자꾸도 제대로 몬 올려.”

“…….”

손을 뻗었던 마르틴이 쓱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귀를 툭툭 치면서 입술을 달싹였다. 전음 마법이다.

얼마 가지 않아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세키나 님! 기다리셨습니까?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정신이 없어 가지고.”

생글생글 웃고 있는 아서의 얼굴은 변함이 없었다. 난 아서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살짝 웃었다.

“아무리 정신이 업써도 글치, 옷도 안 갈아입혀 주면 어캐. 나 잠옷 한 장으로 추어 디지는 줄 알아써.”

“아아이고! 죄송합니다아! 제가 감히 세키나 님을 이 추운 날에 춥게 두었군요오!”

“구래. 알면 대써.”

난 흥, 콧방귀를 뀌었다.

“……아기, 내가 발열 마법 걸어 줬다.”

“시꺼, 밥팅아.”

마르틴의 속삭임을 가뿐히 무시한 나는 아서에게 얌전히 몸을 맡겼다. 그는 푸른색 드레스의 뒤쪽 지퍼를 단단히 여민 뒤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았다.

“세키나 님은 갈수록 귀여워지시네요. 정말 마족…… 아니, 아니. 어여쁘세요.”

정말 마족같이 생긴 것 같다고 말하려 한 거겠지. 그러다 마족과 호문쿨루스의 차이를 두는 것 같아 말끝을 흐린 걸 테고.

‘뭐, 난 인간이라 상관없지만.’

내 얼굴은 인간치고 나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인간인데도 마족 싸대기를 석 대쯤 때릴 만큼 귀여웠다.

은가루를 뿌린 것처럼 결마다 반짝거리는 연보라색 머리카락과 분홍 혈색이 도는 하얀 피부, 고양이처럼 끝이 올라갔지만 커다랗고 짙은 쌍꺼풀이 진 눈매, 그 안에 무지갯빛을 담고 있는 하늘색 눈동자까지.

이대로만 크면 성자 후릴 법한 미인 소리를 들을 게 분명했다.

‘난 그냥 인간인데 이렇게 예쁘다는 게 신기하네.’

뭐, 이것도 시스템의 안배겠지.

“웅. 난 기여어. 세상 체고 기엽디.”

미소가 짙어지는 아서를 뒤로 하고, 난 몸의 기운에 살짝 주의를 기울였다.

2년 반이라는 시간을 건너뛴 거나 다름없는 몸.

그 빨리 감기의 시간 동안 나는 이렇다 할 마법 수련 같은 걸 하지 않았다. 1군단 마족들에게 마력을 공급받긴 했지만 단지 그뿐.

‘소환술사를 선택했으니 딱히 마법교육을 안 시키기도 했어.’

그런 결과로, 이 몸은,

‘서클이 없네.’

마력만 넘칠 뿐 서클이 형성되지 않았다.

서클이 없다는 건 마법을 쓰지 못한다는 것.

‘곤란한데.’

소환술은 눈치 보여서 제대로 쓰지 못한다. 그런데 마법까지 못 쓰면…….

‘까딱하다간 죽을 수도 있겠는데?’

당장 오늘부터라도 수련에 들어가야 했다.

‘서클 생기기 전까지는 마르틴이랑 아서 옆에 붙어 있자.’

그렇게 생각한 나는 아서를 향해 다시금 웃어 주었다. 아서의 콧잔등이 찌푸려진다.

“오늘따라 더 귀여운 세키나 님의 머리를 다르게 묶어 드리고 싶은데.”

아서는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빗을 쥐었다.

“특별히 더 신경을 써 보겠습니다.”

그리고 내 머리를 빗기기 시작했다.

“…….”

잠시 동안 거울을 보고 있던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아써. 내 머리로 둥지 만들라구 이러는 그야? 리아트 까마귀 넣을라구?”

“아, 아니요! 아니, 이게 왜 내 마음대로 안 되지…….”

“오. 아써. 내 머리 벼락 맞은 오박싸처럼 대써.”

“그게 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거든요……?”

“아써 손은 똥손.”

“……죄송합니다.”

뭘 어떻게 건드리면 내 부드러운 머리칼이 이딴 식으로 변형되는지 모르겠다. 나는 쯧쯧 혀를 차며 그에게서 빗을 뺏었다.

“내나. 내가 하깨.”

그리고 차분히 머리를 빗고 묶었다. 그런 나를 보는 아서의 눈이 커졌다.

“오. 세키나 님은 빗질이 굉장히 능숙하시네요?”

“웅. 전에 마니 해 봐…….”

앗, 실수.

난 빠르게 입을 다물었다.

“네?”

“전에 연습해 봐따고.”

“아아! 세키나 님은 정말 천재이신 것 같습니다. 아직 다 크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머리를 빗고 묶기까지 하시고……!”

감탄하는 아서를 뒤로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하마터면 전생에서 아무도 나를 돌봐 주지 않아 혼자 머리를 만지는 게 익숙했다고 말할 뻔했다.

‘……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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