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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님이 만드는 파멸엔딩 (17)화 (18/149)

17화

‘천재는 무슨. 할 수밖에 없으니까 했던 거지.’

머리를 슥슥 빗으며 읊조렸다.

세 번째 삶이었던가.

그때도 나는 가족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구박받는 아이였다. 그때 아마 빗질을 배웠지. 아무도 내 곁에 오지 않았으니까.

시녀 다섯이 붙어서 치장해 주는 동생과는 달리, 나는 동생이 버린 드레스를 입고 빛바랜 핀을 머리에 꽂았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겨우겨우 단장을 했던 것이었지만, 그때 나의 부모님은 나를 업신여겼다.

‘백작가 맏딸이 고작 이것밖에 못 하냐며 때렸었지.’

X바, 그럼 시녀를 붙여 주든가.

어쨌거나 난 참 더럽게도 많이 맞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원망하거나 하진 않는다.

왜냐고?

내 여섯 번의 삶 모두가 그랬으니까.

여섯 번 모두 부모가 개차반이었고 가족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 흔한 친구조차 내겐 생기지 않았다. 그저 혼자, 혼자, 혼자. 난 언제나 혼자였다.

‘용사의 연인’ 캐릭터는 용사를 제외하면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이후 나는 더 이상의 발악을 멈췄다.

그전에는 그래도 부모라고, 그래도 언니, 동생이라고 그들에게 사랑을 받고자, 사랑을 주고자 노력했지만…….

‘사랑받지 못하게 설정된 이상 그들을 바꿀 수 없었지.’

그래서 난 원망하지 않는 거였다.

그들 역시 이 게임에 휘둘리는 피해자 중 하나였을 테니까.

‘그런 것치곤 많이 얻어맞긴 했지만. 뭐, 어쩌겠어.’

난 살짝 한숨을 뱉었다.

‘이런 자잘한 기억은 안 묶어놔서 문제라니까.’

쯧. 혀를 찬 뒤에 눈을 들어 올려 아서와 마르틴을 쳐다보았다.

‘이놈들이 나한테 잘해 주는 이유가 뭘까?’

어디까지나 내게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유물을 귀속할 수 있는 능력, 마물을 다룰 수 있는 능력.

이 때문에 내게 잘해 주는 것이리라. 이들은 하루라도 빨리 마계로 돌아가고 싶어 하니까.

‘게임이 달라져도 <용사 키우기>의 하위호환이야.’

괜한 기대하지 말자.

이들의 호감은 내 쓸모에 의한 것뿐.

난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소모용 캐릭터다.

“세키나 님?”

“아, 웅. 나 다 해써.”

아서의 부름에 정신을 차리고 생긋 웃었다.

“오늘도 정말 귀여우십니다. 하, 이 완벽한 모습을 동네방네 자랑해야 하는데! 아니, 그렇게 했다간 미친놈들이 또 달려들겠지. 그러니까 제 두 눈에만 담아서 고이고이 간직하겠습니다.”

“아기, 귀엽다.”

오늘따라 아서의 지랄과 마르틴의 칭찬이 귀에 박힌다.

이럴 때마다 마음속에서 살그머니 기대감이 올라와 자리를 잡으려 했지만…….

‘설정값 자체가 난 사랑받지 못해.’

난 차갑게 생각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건 다 내가 쓸모 있어서 이러는 것뿐야.’

이리 생각하니 조금 씁쓸했지만, 나 역시 이놈들을 두고 튈 생각이었으니 쌤쌤으로 치고자 한다.

“가댜. 케이꾸 머그러.”

그래서 난 그들을 지나쳐 방을 나갔다.

참 거지 같은 게임 세상이라고 생각하면서.

***

식당은 예상했던 대로 한산했다.

별관에 들어오고 싶다고 생떼 부리고 있는 마족들의 고함이 간헐적으로 들려오긴 했지만, 어쨌거나 별문제는 없었다.

아니, 문제가 있긴 하다.

“…….”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려져 있는 음식들의 수준이…….

“아써. 이건 머야. 숯불을 통째로 접시에 담은 거야?”

“칠면조입니다만.”

“이건 머야. 썩은 식물을 식초에 절인 거야?”

“샐러드입니다만.”

개떡 같았기 때문이다.

마계에서만 평생을 살아온 마족 놈들이 인간이 먹는 음식을 잘 구현해 낼 리가 있나. 요리책을 보며 나름대로 노력은 한 것 같았지만, 말 그대로 노력이었다.

‘다른 놈들은 이런 걸 잘 먹고 있지.’

다른 호문쿨루스들은 별 불만 없이 이걸 먹고 있다고 한다. 그놈들은 인간이었던 적이 없으니 맛의 차이를 잘 모르고 주는 대로 먹는 거겠지.

‘하지만 나는 인간으로 60년을 넘게 살았다고!’

식초에 절인 야채나 딱딱한 칠면조 고기를 주식으로 먹을 수 없단 말이다.

“세키나 님, 음식이 입에 안 맞으시나요?”

아서가 물었다. 주저하다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쪼꼼.”

“흐음. 왜 그러지? 다른 분들은 다 잘 드시던데.”

“……아냐. 머글게.”

아서의 의아하다는 반응을 뒤로하고 음식을 겨우겨우 입에 집어넣었다. 여기서 더 빼다간 인간인 걸 들킬 수도 있으니까.

‘조만간 나가서 요리사라도 구해 와야겠어.’

그래야 이 식사 시간이 지옥 같지 않을 테지. 마지막 남은 식초 야채를 먹은 나는 탁 포크를 내려놓았다.

그러자마자 식탁을 채우고 있던 그릇들이 부웅 들어 올려지더니, 중앙에 있던 핑크색 3단 케이크가 주우욱 끌려와 내 앞에 멈췄다.

“자! 이제 초를 끄셔야죠!”

핑크색 3단 케이크 위에 초 세 개를 꽂은 아서가 환히 웃으며 말했다. 마르틴도 살짝 눈썹을 들어 올리는 게, 나름대로 축하를 해 주려는 듯싶었다.

“구래. 아라써.”

그래서 난 순순히 의자를 밟고 일어나 케이크 앞에 섰다.

음. 그런데 생각보다 촛불이 컸다.

생일 초라 하면 가느다랗고 긴 초인데, 여기에 붙은 불이라면 응당 손톱 반만 해야 한다. 그런데 어째…….

“이고 화형식이야?”

내 머리통만 한 불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이 정도면 촛불이 아니라 횃불이라 해야 하는 거 아닌지. 절로 땀이 났다.

“세키나 님을 위한 제 마음의 크기를 표현해 봤습니다!”

“두 번 표현해따간 나 불타 디지겠네. 좀 쭐이지?”

“힝.”

“어른쓰럽게 말해야디, 아써.”

“힝입니다.”

아서는 입술을 비죽이긴 했지만 내 말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불이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얌전히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모름지기 생일 초를 끌 때는 소원을 빌어야 하니까.

‘내가 개짱이 되게 해 주세요. 개짱이 돼서 다 패 버릴 수 있게 해 주세요.’

다 패 버리고 혼자 유유히 살 수 있게 해 주세요.

이렇게 소원을 다 빈 나는 번쩍 눈을 올려 떴다. 그리고 입에 빵빵하게 공기를 넣어 초를 끌려고 할 때였다.

쨍그랑―!

느닷없이 창문을 깨고 나타난 공이 식당의 벽을 쾅쾅 치며 사방으로 튀었다.

……핀볼?

오른쪽, 왼쪽, 위쪽, 아래쪽. 그렇게 마구잡이로 튕기고 있는 공을 나는 멍하니 쳐다보았다.

“세키나 님!”

“아기!”

그러다 촤악!

공이 케이크를 뭉갰다.

핑크색 크림이 폭발하듯 튀어 내 몸을 덮었다.

***

3단 케이크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와르르 무너졌다. 덕분에 케이크와 가장 가까이 있던 세키나의 몸은 엉망이 되었다. 머리부터 몸통까지 핑크색 크림이 범벅된 상태.

“세상에! 괜찮으십니까? 안 다치셨어요?”

“…….”

아서는 빠르게 마법을 써 세키나의 몸을 깨끗하게 해 주었고, 마르틴은 더욱더 험상궂게 인상을 쓰며 공이 날아온 방향을 쳐다보았다. 그의 손이 자연스레 검집에 닿았다.

“이런.”

이때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이 이곳으로 튀었군.”

목소리의 주인을 보자마자 아서는 긴 한숨을 내뱉었다.

“미안하네, 아서 경. 우리 프라이가 그만 힘 조절을 못 했지 뭔가.”

“뮐러 바지새기 님.”

마계의 6장로 중 5장로 뮐러 바지새기.

박쥐처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편 가르기를 좋아하고, 얍삽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놈인 데다가 성질머리도 고약해서 웬만하면 마주치는 걸 피하는 마족 중 하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서는 뮐러뿐 아니라 모든 장로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호문쿨루스를 두고 내기나 하고 있는 놈들이니까.’

그들은 어떤 호문쿨루스가 가장 두각을 보일지에 대해 내기를 하고 있었다.

자신이 선택한 호문쿨루스가 마왕의 봉인을 푸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면 그의 승리. 그러지 못하면 그의 패배.

그래서 장로들은 각각의 호문쿨루스를 대놓고 지지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말이다.

아서는 재차 한숨을 뱉으며 이마를 짚었다.

“이건 세키나 님의 생일 케이크였습니다. 망가뜨리셨으니 새로 구해 오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생일?”

뮐러의 쭉 찢어진 눈매에 이채가 돌았다. 바로 그때, 프라이 다이몬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밖에 날리고 있는 풍선이 이것 때문이었구나? 마왕성에서 감히 파티를 여는 멍청한 놈이 누군가 했더니!”

“……프라이 님.”

“생일은 무슨! 우린 위대한 마족이야! 저급한 인간 놈들이 만든 기념일을 챙겨야 할 이유가 있어?”

아서는 다시 이마를 짚었다.

호문쿨루스는 마족이 아니다. 그렇다고 인간도 아니다. 그저 마족의 편의에 의해 사용되고 버려지는…… 물건일 뿐.

장로들이 고약하다는 게 바로 이 지점이다.

호문쿨루스에게 ‘너희는 뛰어난 마족’이라는 내용을 주입하며 그들이 서로를 견제하게 만들고, 나아가 자부심을 갖게 한다.

후에 호문쿨루스를 소멸시킬 때 그들의 얼굴에 담긴 절망이 깊어지길 바라면서.

‘끔찍한 놈들.’

아서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마르틴과 세키나를 쳐다보았다.

딱 봐도 마르틴은 빡돌기 일보 직전이었고, 세키나는…….

‘왜 가만있지?’

고개를 푹 숙이고만 있었다.

충격이 큰 건가?

아서는 세 살이 되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세키나를 떠올리며 으득 어금니를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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