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아서는 세키나를 아꼈다.
처음에는 단순히 마족에게 도움이 될 호문쿨루스니 잘 챙겨 주어야지, 그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 어느 순간 진심으로 애정을 다 하게 되었다.
그가 두 아이의 아빠인 까닭일까?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아서는 세키나의 행복을 바랐고 세키나가 아프지 않기만을 바라게 되었다.
생일 파티나 케이크 역시 이러한 감정에서 비롯되어 챙기게 된 것들이다.
그런데…….
‘나도 슬슬 화가 나는군.’
아서는 푹 고개를 숙이고 있는 세키나를 바라보며 손가락을 말아 쥐었다.
“이건 제가 주도한 파티입니다. 세키나 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요. 프라이 님, 지금 저를 욕보이시는 겁니까?”
아서의 말에 프라이는 살짝 멈칫했다. 뮐러를 힐끗 쳐다보던 그는, 이내 씨익 웃으며 손바닥을 활짝 펼쳤다.
“알았어. 그럼 케이크 망쳐서 미안하니 새로 해 줄게!”
우우웅, 그의 손바닥에서 마력이 피어올랐다.
대체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아서는 방어막을 폈지만 프라이가 조금 빨랐다.
촤아악!
식탁에 널브러져 있던 케이크 크림이 한데 모이더니, 세키나의 얼굴을 향해 돌진했다. 기껏 클린 마법으로 깨끗해졌던 세키나의 얼굴에서 핑크색 크림이 뚝뚝 떨어졌다.
“푸하하하! 아, 꼴좋다. 어때? 좋지?”
“프라이 님! 이게 무슨 짓입니까!”
아서는 욕설을 짓씹으며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몸을 기울였다. 하지만 움직이지 못했다. 뮐러 바지새기가 그런 아서를 보며 눈을 번뜩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짓이냐니? 호문쿨루스들 사이에 서열을 바로잡는 것 아닌가? 고작 이런 일에 자네가 끼어들 건 아니지 않나?”
“하지만!”
“고작 부단장 주제에 내게 반기를 드는 것인가?”
“…….”
뮐러의 말이 맞다.
마족은 철저한 서열 사회.
고작 1군단의 부단장인 아서는 5장로 뮐러를 상대할 수 없다. 혹 여기서 덤비기라도 했다간 바로 재판에 회부되리라.
아니, 근데 저 새끼가 먼저.
아서는 으드득 이를 갈며 주먹을 바르쥐었다.
“야, 쥐새끼.”
이때 프라이가 세키나를 향해 성큼 다가갔다.
“너는 그 해괴한 능력 아니면 진즉 폐기될 거였어. 그러니까 허튼짓거리하면서 깝치지 말고 그냥 죽은 듯이 살아. 처기어 나오지 말고.”
뮐러를 뒤에 업고 있는 프라이는 어깨를 당당하게 펴며 비죽였다.
세키나의 능력은 유물 귀속과 마물 소환.
유물 귀속은 실생활에서 별다른 쓸모가 없고, 마물 소환은 못 하게 된 지 오래됐으니 별 볼 일 없다.
3서클의 마법을 익힌 자신이 훨씬 더 강할 터.
그래서 프라이는 세키나에게 기세등등한 것이었다.
“하아…….”
세키나는 제 시야에 프라이의 발끝이 들어올 때가 되자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나 지짜 조용히 살고 시펏는데 왜들 이러는 그지.”
중얼거리던 세키나는 힐끗 눈을 돌렸다.
“말틴. 검에서 손 떼.”
“…….”
그 말에, 검을 반쯤 뽑았던 마르틴이 머쓱하게 손을 내렸다.
“프라이인가 나발인가, 너.”
“나발? 나보고 한 말이야?”
“어어. 너.”
세키나의 보랏빛 눈동자가 번뜩였다.
“입 크게 벌료. 어금니 나가게.”
프라이를 포함한 식당 내 그 누구도 세키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할 틈이 없었다. 생각해 보기도 전에 세키나의 주먹이 먼저 나갔으니까.
“말보다 빠룬 건 주먹이다, 이 새키야.”
퍼어억!
프라이는 주먹 한 방에 그대로 나자빠졌다.
어. 잠깐만. 프라이는 다섯 살이고 세키나는 세 살인데?
어린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크듯이 그들의 체격 차이가 엄청났건만, 세키나는 정말 보란 듯이 프라이를 쓰러뜨렸다.
“내가 쌈을 쫌 잘해.”
세키나는 손목을 빙그르르 돌리며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아써가 만드러 준 케이크, 존나 마싯거든.”
“이익……!”
프라이는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세키나가 더 빨랐다.
“너도 머거 바.”
세키나는 제 몸에 들이부어졌던 케이크 크림을 한 뭉텅이 집어 프라이의 얼굴에 내던졌다. 그의 입과 코의 구멍을 다 막아 버릴 만큼 두껍게.
“컥! 커억!”
“마싯지? 개마싯어서 주글 거 가찌?”
세키나는 히죽히죽 웃으며 발에 더 힘을 주어 프라이의 몸부림을 짓눌렀다.
“더 처머거.”
“커허헉!”
크림은 줄줄 흘러 그의 얼굴 전체를 다 뒤덮을 지경이 되었다.
그 꼴을 보니 세키나는 이제야 좀 속이 풀렸다.
오늘에서야 빨리 감기가 끝났으니 당분간은 눈에 띄는 짓은 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케이크를 뒤집어쓴 것 때문에도 열받았지만, 그보다 더 화가 났던 건…….
힐끗, 세키나는 놀란 얼굴을 하고 있는 아서를 쳐다보았다.
아서가 무시당하는 걸 본 순간 꼭지가 돌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화가 치미는 느낌.
그래서 앞뒤 안 보고 달려든 거였다.
‘뭐…… 아서는 나만 무시할 수 있으니까.’
다른 놈들에게 무시당하면 면이 안 살잖아.
그래서 나선 거다. 절대 아서를 위해서가 아니다.
“세키나!”
이때 세키나의 몸이 붕 떴다. 뮐러가 세키나를 밀친 것이다. 하지만 마르틴이 세키나를 잡아 주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 감히 내 앞에서 프라이를 욕보이다니!”
뮐러는 한껏 달아오른 얼굴로 세키나를 향해 소리 질렀다.
목소리에는 마력이 듬뿍 담겨 있다. 고막이 터질 정도로 강한 마력이 느껴진다.
이 정도의 기운이라면 어린아이인 세키나 역시 몸이 떨릴 터. 마르틴은 세키나를 걱정하며 꼬옥 안아 주었다.
하지만…….
“머라는겨. 너도 마르틴 앞에서 나룰 욕보여쓰면서.”
세키나는 귀를 후비적거리며 대꾸했다.
뮐러가 일부러 마력을 담아서 소리치고 있다는 걸 진즉 눈치챈 세키나였다. 그래서 피했다. 이 정도의 공격은 눈 감고도 피할 수 있을 만큼 쉬운 일이었으니까.
‘그래도 전생에서 내가 대마법사였는데, 이것도 못 하겠냐?’
쯧쯧. 하등한 것들. 세키나는 혀를 찼다.
“네 이놈! 고작 군단장과 나를 비교하는 것이냐!”
뮐러는 일갈하며 눈을 부라렸다. 마르틴의 품에 안겨 있는 세키나는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꼬우면 둘이 싸우등가. 이기는 넘이 장로 해.”
“이놈!”
“머. 어쩌라고.”
세키나의 반박에 뮐러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장로다. 마왕의 측근을 맡고 있는 5장로!
고작 저런 어린아이에게 밀릴 만한 군번이 아니란 뜻이다!
하지만…….
뮐러는 세키나를 안고 있는 마르틴을 쳐다보았다.
‘저놈은 강하다.’
비어 있는 6장로 자리를 제안받았음에도 거절한 놈.
그런고로 권력의 무게는 자신과 비등비등했다.
‘여기서 싸움이 난다면 복잡해지겠지.’
뮐러는 으득 이를 갈며 세키나를 노려보았다.
‘건방진 것 같으니라고.’
감히 호문쿨루스 주제에 나를 욕보이다니! 죽이리라. 반드시 죽여 버리리라! 뮐러는 휙 고개를 돌렸다.
“프라이! 일어나라. 돌아간다.”
“하, 하지만……!”
“일어나!”
프라이를 억지로 일으킨 뮐러는 세키나를 찢어 죽일 듯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 일은 내 반드시 기억하겠다.”
“하등가 말등가. 그런 넘치고 대단한 넘 하나 업떠라.”
“네놈!”
“놈이 아니라 세키나.”
하지만 세키나는 조금도 주눅 들지 않았다.
세키나는 오동통한 손가락을 쭉 내밀어 뮐러와 프라이를 번갈아 가리켰다.
“내 이름 잊찌마. 너네 죽일 놈의 이름이니까.”
“이 망할 것이 감히!”
뮐러는 경기를 일으키듯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이내 숨을 꽉 참으며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주어 말했다.
“두고 보겠다.”
“나, 나도!”
그리고 그들은 식당을 떠났다.
세키나는 비장한 태도를 한 채 나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제껏 나한테 두고 보자고 했던 놈들, 다 뒤졌는데.
***
방으로 돌아온 나는 하암 하품을 뱉으며 침대에 드러누웠다.
아까 프라이인지 뭔지 하는 놈을 패느라 힘을 써서 그런지 몸이 영 피곤했다.
“아써. 나 졸려.”
“아, 네!”
아서가 서둘러 내게 이불을 덮어 주고 베개도 가져다주었다. 난 포근한 솜을 느끼며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감았다. 아니, 감으려 했다.
“세키나 님. 죄송합니다.”
아서의 이상한 말에 슬쩍 눈을 올려 떴다.
“세키나 님이 치욕을 겪었는데 저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제가 약해서…… 젠장.”
“먼 소리야. 장로한테 개기면 너도 죽는디. 거기서 멀 더해?”
사실 그렇지 않은가.
마족은 철저한 서열 사회다.
오늘 아서의 개김은 감히 있을 수 없는 일.
아서 나름대로 큰 용기를 낸 것이다. 그런데 왜 미안해한단 말인가?
“담부터는 이러디 마. 너 주그면 안 대.”
아서가 죽으면 날 지켜 줄 이가 없어지는 거 아닌가.
난 눈물이 그렁그렁한 아서의 얼굴을 못 보고 마르틴을 쳐다보았다.
“말틴. 너도 잘 참아써. 아무리 그래두 장로랑 싸우면 안 대지.”
“…….”
마르틴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눈썹을 찌푸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르틴은 생긴 것과 달리 침착한 놈이었으니 별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그래서 나는 다시 아서에게 시선을 돌렸다.
“장로들끼리 호문쿨루스 가지고 내기하구 이따 해찌?”
“아…… 네. 맞습니다.”
빌어먹을 장로들은 각자 호문쿨루스 한 명씩 찍어서 그들을 밀어 주고 있었다.
당연히도 나는 지지해 주는 장로가 없었다. 가장 어리기도 했거니와 지금까지 ‘시험’에서 두각을 보이지 않았으니까.
“5장로는 오늘 본 프라이를 찍은 거구. 다른 넘들은?”
잠시 생각하던 아서가 대답했다.
“2장로는 율리안 님을, 3장로는 쌍둥이를, 4장로는 니샤 님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1장로눈?”
“그분은 마왕성에 안 계십니다.”
“구럼?”
“영지에 가 계십니다. 마왕님께서 영지 관리를 맡기셔서요.”
마족이, 인간들이 살고 있는 영지 관리를 한다고?
음. 보지 않아도 그려진다. 개판이 되어있을 영지가.
하지만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엉망인 상태일수록 내가 나설 자리가 충분할 테니까.
“조만간 나두 나가 바야게써.”
난 다시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천천히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젤 쎈 넘이랑 손잡으면 딴 놈들이 더 개기지 몬할 테니까.”
그래서 보지 못했다.
마르틴이 창밖에 보이는 본관을 향해 ‘장로…….’하고 중얼거리는 것과 아서가 검을 내려다보며 주먹을 바르쥐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