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06. 삼쫀!
이번 생에서, 나는 무려 3년 동안이나 마왕성에 처박혀 있었다.
매일매일 같은 건물을 보고 같은 풍경을 보고 같은 놈들을 마주쳤단 말이다.
그래서 성 바깥으로 나가는 나날을 고대했었다.
세 살.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어느 정도 발언권을 가진 나이가 된 나는 당장 바깥으로 나갈 계획부터 세웠다.
그래. 계획을 세우고 있었단 말이다.
“마차에서 내리도록.”
이렇게 막무가내로 끌려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여기부터가 거주 지구다. 저쪽이 광장이고, 그 뒤로 넘어가면 상업 지구지.”
그리고 맞닥뜨린 광경이 이렇게 거지 같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
마왕성의 영지.
그러니까 다이몬 백작가의 영지는 조금 특이하다.
북쪽 빙벽을 뒤로하고 세워진 성을 꼭짓점으로 두고 부채꼴 모양의 평지가 펼쳐져 있는 형태다.
평지가 있으니 나름대로 농경도 하고 살 수 있지 않냐고 하겠지만, 북부의 추운 날씨를 무시하면 안 된다. 여기는 사시사철 추웠고, 일 년 중 눈이 안 내리는 날을 찾기 어려웠다.
‘빙벽 안에 있는 드래곤 시체 때문이지만.’
이 세계에 사는 이들이라면 모두 다 알고 있는 전설이다.
사악한 드래곤이 죽기 직전 한 마지막 발악.
‘내 존재가 지워질 때까지 저주가 이어지리라!’
그 저주가 바로 지금과 같은 날씨다.
훗날 신관들은 드래곤의 시체를 없애려 했지만, 이 두꺼운 빙벽을 도저히 깰 수가 없어 거듭 실패했다.
‘그 드래곤이 사실은 마물이었네, 뭐네 하는 건 게임 후반에 나오는 거니까 나랑은 상관없지.’
어차피 나는 게임 초반. 용사가 각성하기 위해 사용되는 패일 뿐이었으니 그런 뒷이야기는 너무 마음에 안 담아 둬도 된다.
어쨌거나 이런 혹독한 날씨 때문에 거주하기에 상당히 무리가 있는 이곳은 당연히 사는 사람들이 적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만 있었다. 전과자, 탈옥범, 노예 등등…… 사회에 제대로 섞이지 못하는 놈들만 모여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에 마족도 섞였다. 인간이라고는 끔찍하게 혐오하고, 기본적인 이해도도 아예 없는 마족들이.
인간 사회를 아예 모르는 마족들.
인간 사회를 박차고 나온 인간들.
이 두 집단이 합쳐진 곳이 바로 다이몬 백작령이다.
그럼 무슨 꼴일까?
“개판…….”
난 길거리에 가득한 쓰레기와 그 쓰레기만큼 널브러져 있는 부랑자들을 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내 좁은 시야에 잡히는 놈들만 다섯이다.
개중 셋은 마족이고, 둘은 인간이다. 그뿐이랴? 강풍이 쌩쌩 불고 있는데도 술 냄새가 느껴졌다. 이 추운 날씨에 술 처먹고 길바닥에서 처자고 있는 놈들이란 말이다.
“아으으…….”
“머리 아파…… 우욱…….”
당연히 아프겠지. 나뒹굴고 있는 술병만 열 개가 넘었으니까.
‘정상적인 영지라면 저런 놈들은 골목길에나 있었을 거야.’
하지만 여기는?
정상적이지 않죠?
그러니까 길 한복판에서 쓰레기를 베개 삼아 누워 있죠?
“누군가 했더니, 2군단의 윌리엄이군.”
이때 어느새 쓰러져 있는 마족에게 다가간 리아트가 지팡이 끝으로 마족을 툭툭 치며 인상을 찌푸렸다.
“네놈. 여기서 대체 왜 이러고 있는 건가? 제정신인가?”
불행 중 다행이다.
리아트는 적어도 이게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기는 하구나. 그래. 그럼 리아트를 설득하면 어떻게든 이 쓰레기들을 처리할 수 있…….
“이불을 덮고 자야지! 입 돌아가면 어떡하려고!”
……지 않네.
난 마족의 얼굴에 살포시 덮이는 극세사 담요를 허망하게 쳐다보았다.
***
리아트는 술병이 나서 널브러져 있는 마족에게 두었던 시선을 거리로 돌렸다.
신관 놈들의 방문을 알린 탓일까. 거리는 평소보다 쾌적했다.
원래라면 길거리에 발 디딜 틈도 없이 쓰러져 있는 놈들이 가득할 텐데, 오늘은 고작 다섯밖에 안 됐다.
이 정도면 나름 나쁘지 않은데?
물론 리아트의 눈에는 거리 가득한 쓰레기가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그 부분을 신경 쓰지 않고 있던 그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는 조금 당당해진 얼굴을 한 채 뒤에 서 있는 세키나를 쳐다보았다.
“자. 어떠냐? 네가 봤을 때 문제가 될 만한 것이 있느냐?”
“…….”
세키나는 답이 없었다.
하긴, 그러겠지. 이 정도면 매우 양호한 편이니까.
“이곳은 거주 지구니 별문제가 되지 않겠지. 상업 지구로 가 보는 것이 좋겠다. 따라오도록.”
그래서 리아트는 아무 고민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하지만 이상했다.
세키나가 따라오지 않고 있는 게 아닌가.
왜 그러지? 리아트는 고개를 기울였다.
“할 말이라도 있느냐?”
그러자 세키나의 고개가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포니테일로 묶은 연보라색 머리카락이 찰랑거리며 흔들린다. 차가운 바람에 빨갛게 달아오른 빵빵한 뺨이 씰룩이고, 마치 보석 아쿠아마린을 뽑아다 박은 것처럼 반짝거리고 투명한 눈동자에 이채가 돈다.
왜 1군단 마족 놈들이 환장하며 찬양하는지 대충은 알 것 같다고, 리아트는 외알 안경을 손바닥으로 올리며 생각했다.
“할 말이 있으면 하거라. 내 친히 들어 줄 테니.”
“지짜여?”
“그래.”
“화 안 내구?”
“안 낸다.”
“때리지도 안코?”
“말하래도.”
“히유…….”
세키나는 숨을 크게 들이키다가, 반걸음 앞으로 나와 리아트 앞에 섰다.
“리아투 경.”
“음?”
“여기써 가장 큰 문제가 먼지 아라여?”
“이곳에 문제가 있다고? 아니, 내가 보았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다. 이 정도면 충분히 인간답지.”
그는 쓰레기장을 그대로 옮겨 온 듯한 거리와, 고작 다섯 명 쓰러져 있는 길바닥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마계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는 풍경이었으니까. 아니, 마계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는다.
“인간 놈들은 다 이러고 살지 않느냐?”
세키나의 눈동자가 차게 식었다.
“일케 안 사는데여. 이건 구냥 돼지우리인데여. 아니, 돼지우리가 더 깨끗할 고 가튼데여.”
“뭐, 뭐?”
“리아투 경. 경두 인간계에 대한 책 가튼 고 안 바쪄? 알아보지두 안쿠?”
세키나의 날카로운 질문에 리아트는 크흠 잔기침을 했다.
그렇다.
리아트가 아무리 연구원이고 뭐고 간에, 그 역시도 마족이었다.
마족은 인간을 모른다.
이해하고자 하지도 않는다.
인간이 개미의 삶을 헤아리는가? 개미의 생애에 관심을 가지는가? 아니다.
마족 역시 그렇다. 마족에게 있어 인간은 그저 개미 새끼일 뿐. 아주 잠깐의 호기심은 있겠지만 그 이상의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한데 왜일까?
이 작은 호문쿨루스의 눈빛에, 말에 주눅이 드는 이유가 뭘까?
리아트는 세키나의 시선을 슬그머니 피하며 대답했다.
“크흠. 굳이 하찮은 인간의 서적을 찾아볼 필요 없이도 우리는 충분하니…….”
“그쳐. 충분하져. 신관하테 퇴마당하기에 아주 충분해여. 거리 쓰레기들이랑 가티 태워지면 대겟네.”
“크흠!”
어우, 목이 막히네.
리아트는 살짝 긴장하며 세키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일딴 여기서 가장 큰 문제눈여.”
세키나는 바닥에 뒹구는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그를 향해 뻗었다.
“이 모둔 게 문제인데 문제라구 생각도 몬하고 있눈 리아투 경이에여.”
***
나는 내 말에 얼빠져 있는 리아트를 뒤로 하고 다시금 퀘스트를 떠올렸다.
메인 퀘스트 <신전의 눈을 속여라!>
그간 잘 지내셨나요? 운 좋게 리아트의 눈에 들어 성 바깥으로 나갈 수 있게 된 당신! 리아트에게 쓸모를 입증해야겠죠?
영지를 둘러보며 ‘인간적이지 않아 문제가 될 법한 것’들을 고쳐 봅시다.
내용 : 백작령을 방문하는 신관들의 의심 피하기
제한 시간 : 360시간
보상 : 1. 리아트의 완전한 지지
2. 마왕의 빠른 귀성
실패 시 : 1년간 마왕 대면 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