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드디어 세키나와 같이 교육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파르데스는 눈에 띄게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우욱! 리아트 경은 뭔데 세키나를 데리고 가!”
그의 말을 받아친 메르데스는 엉망으로 뻗친 머리카락을 마구잡이로 헝클이며 소리쳤다.
둘 다 퍽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세키나의 이름을 지어 준 게 누군가?
입력이 안 된 세키나를 시험장에 데리고 가 준 게 누군가?
바로 이 둘이었다. 파르데스, 메르데스.
본디 마족이란 서로에게 관여하지 않고 각자도생을 하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친히 세키나에게 손을 뻗은 그들. 그 이유는 단 하나였다.
세키나를 좋아하니까.
물론 이 좋아한다는 감정이 인간들이 말하는 사랑에 미치는 건 아니었다.
파르데스는 세키나를 좋아해 세키나와 함께 연구를 해 보고 싶었고, 메르데스는 세키나를 좋아해 세키나와 대련을 해 보고 싶었다. 딱 그 정도의 호기심과 호감.
하지만 이런 정도의 감정도 다른 이들에게 느껴 본 적 없던 쌍둥이였기에 세키나가 더욱 간절했다.
“후우웅. 안 본 사이에 더 귀여워졌던데.”
메르데스는 의자에 등을 쭉 기대며 두 발을 파닥거렸다.
“귀여운 건 됐어. 그보다 얼마만큼 더 똑똑해졌는지가 중요해. 한번 연구실에 데리고 가고 싶었는데…….”
파르데스는 쯧 혀를 차며 펜을 움켜쥐었다.
연금술사를 지망하는 파르데스와 검사를 지망하는 메르데스.
그들은 똑같은 재료를 넣어 똑같이 찍어 낸 쌍둥이 호문쿨루스였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확연히 다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누가 더 뛰어나느냐 하는 질문은 던질 수 없다.
파르데스는 두뇌파였고 메르데스는 격투파였으니까.
그래서 그들은 서로와 별로 친하지 않았다. 필요한 대화만 나누는 딱 그 정도의 사이.
얼굴을 빼고 본다면 그 누구도 이들을 쌍둥이 형제라고 생각지 못하리라.
“나도 성 밖으로 나가 보면 안 되나? 궁금한데!”
메르데스는 다시금 발을 구르며 말했다. 파르데스가 고개를 저었다.
“되겠냐? 앉아. 리아트 경의 허락이 있어야 돼.”
“하지만 다른 마족들은 다 나가던데?”
“우리는 마족이 아니잖…….”
단호히 대답하려던 파르데스의 말끝이 흐려졌다.
우리는 마족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간도 아니다.
만들어진 인간, 호문쿨루스일 뿐.
그래서 인간의 행동 양식을 배우고 있고, 마족의 힘을 얻고자 발버둥 치고 있다.
하지만…… 이게 맞는 걸까? 제3의 존재인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상념을 이어 가던 파르데스는 혀를 쯧 차며 쓰고 있던 동그란 안경을 추켜올렸다.
“어쨌거나 지금은 안 돼. 그러니까 허튼 생각하지 말고 교육이나 잘 받아.”
“예, 예. 알겠습니다아.”
메르데스는 꿍얼거리긴 했지만 그래도 얌전히 펜을 쥐었다.
그런 그들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가 있었다.
바로 니샤였다.
‘파르데스도 의문을 품고 있는 건가.’
니샤는 살짝 침울한 표정을 하고 있는 파르데스를 관찰하며 입가를 매만졌다.
그녀는 마족들에게 깊은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고, 호문쿨루스라는 제3의 정체성을 깨뜨리고 싶어 하는 이였다. 그래서 자신과 뜻이 맞는 호문쿨루스가 있을까 싶어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완전한 바보는 아닌 것 같네.’
연금술에 재능을 보인다는 게 괜한 말은 아닌 모양이다. 그 정도로 머리를 쓰는 놈이면 더 깊이 사고할 터.
‘하지만 옆에 동생 놈은 안 돼.’
쟤는 더한 멍청이라 사고 칠 놈이다.
‘저놈은 빼고…….’
나머지 호문쿨루스 중에서 자신과 비슷한 뜻을 가질 놈이 더 있을까?
‘……있긴 하지.’
세키나 다이몬.
그 이름을 읊은 니샤는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세키나는 갓난아기 때부터 두각을 보인 이였다. 유물 귀속 능력에, 소환술까지.
그렇기 때문에 위험한 존재이기도 했다. 자신이 도망칠 만큼 힘을 기르기도 전에 마왕의 봉인이 풀리게 될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세키나는 그 이후로 소환술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아주 기초적인 소환술을 조금 드러내며 시험에 겨우겨우 통과할 뿐.
‘전에 봤을 땐 결코 그만큼의 힘이 아니었는데.’
자신의 말을 알아들은 걸까?
세키나 역시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힘을 보탤 수 있지 않을까.
니샤의 눈이 반짝이는 바로 그때였다.
“뭐야. 왜 이것밖에 없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짧은 음성에서도 느껴지는 특유의 비열함과 재수 없음. 니샤는 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아주 잘 알 수 있었다.
프라이 다이몬.
5장로 뮐러 바지새기의 지지를 받고 있는 놈.
능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멍청하고 오만하지.
딱 싫어하는 부류였다.
니샤는 에휴 한숨을 뱉으며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야! 무시하냐? 왜 너네밖에 없냐고 묻고 있잖아!”
쿵쿵 발을 구르며 다가온 프라이는 목청을 높이며 소리쳤다.
“그 꼬맹이는 어디 갔냐고! 설마 도망간 거야? 내가 무서워서?”
니샤와 마찬가지로 프라이의 등장을 모른 체하고 있던 쌍둥이는 흠칫 어깨를 들어 올렸다.
“꼬맹이?”
“너보다 어린 호문쿨루스는 세키나밖에 없을 텐데.”
겨우 대답을 들은 프라이는 환호했다.
“그래! 걔! 난 걔 때문에 이틀 동안 교육에 못 나온 거야! 내가 방심한 틈을 타서 공격했어! 비겁하고 못됐어!”
메르데스의 검은 눈동자에 이채가 돌았다.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뭐가 그래서야? 당연히 때려 줘야지! 그때는 내가 방심했지만 지금은 아니니까! 그러니까 빨리 데리고 와! 어디 있어?”
방방 뛰며 소리치는 프라이를 뒤로하고, 메르데스는 파르데스를 쳐다보았다. 파르데스 역시 그를 쳐다보았고, 그들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닿았다.
“아! 너희도 같이 봤으면 재밌었을 텐데. 생일 축하랍시고 가져다 둔 싸구려 케이크를 홀딱 뒤집어썼었거든. 더럽고 냄새 나는 게 딱 걔한테 어울렸어.”
음.
그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몸을 일으켰다.
“형아.”
“그래, 동생아.”
메르데스의 입술이 씨익 올라갔다.
“간만에 몸 좀 풀까.”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소리를 하네.”
그들은 천천히 프라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고, 비열하게 웃고 있던 프라이는 그 순간 뭔가가 잘못됐다는 직감을 받을 수 있었다.
“어, 어…… 야! 야아! 자, 잠깐만!”
하암.
니샤는 하품을 하며 팔에 옆머리를 대고 누웠다.
세키나는 지금쯤 뭘 하고 있으려나.
“아악! 그만 때려! 제발!”
돌아오면 프라이가 없을 텐데.
***
“히유.”
퀘스트를 받고 리아트와 일시 동맹을 결성한 나는 그와 함께 거주 지구, 광장, 상업 지구 모두를 둘러보았다.
몇 시간에 걸쳐 영지를 다 둘러본 결과, 나는 한 가지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망했다.’
그냥 망한 정도가 아니다. 아주 대차게 말아 먹은 정도다.
거주 지구에 피어 있던 마계의 꽃?
그건 양반이었음을 절절하게 깨달았다.
일단 광장.
광장 한복판에 있는 분수대 안에는 물이 없었다.
대신 시커멓고 걸쭉한 액체가 가득했다. 이게 뭔지 모르겠지만 손을 대면 안 될 것 같아서 뒤로 물러섰는데…….
-흠. 독이군.
독이 왜 분수대 안에 있냐고.
-마계에서나 보던 특식인데, 여기서도 볼 수 있을 줄 몰랐군.
그니까 그 특식이 왜 인간계에 있냐고!
뒷목을 잡고 쓰러질 뻔했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상업 지구에는 당연히 상가가 많았다.
날이 추워서 노점상은 없었지만 그래도 유리창 너머로 물건들이 꽤 많이 보였다. 그래. 그 물건들이 문제였다.
진열돼 있는 인형은 대다수가 흉측했고, 그나마 봐 줄 만한 인간 모양의 인형은 새빨간 눈알이 상하좌우 왔다 갔다 움직이고 팔다리의 관절을 기괴하게 꺾고 있었다. 저런 인형을 누가 사. 미친 거 아냐?
-저 장식장은 반려 마물로 쓸 수 있다. 마물 중에서도 유일하게 공격성이 없는 놈이라.
저거 미믹이잖아……. 상자인 척 의태하고 있다가 누가 지나가면 잡아먹는……. 저게 왜 공격성이 없어……. 아니, 그리고 왜 저딴 걸 인간 가게에서 팔아…….
암담한 현실에 눈앞이 깜깜해졌다.
‘신관 놈들이 의심만 했다고?’
그놈들의 눈치가 저세상 간 거다. 이건 의심이 아니라 확신을 해야 했다.
‘이대로 보였다간 백 퍼센트 들킨다.’
그럼 퀘스트고 나발이고 모가지 댕강이다.
난 빠르게 머릿속을 정리한 뒤, 리아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리아투 경. 여기 사는 싸람들은 마족 존재를 아예 모르져?”
“그래. 감쪽같이 속이고 있지.”
“지짜여?”
“그래. 진짜.”
“구건 누가 말한 건데여?”
“음?”
리아트의 눈이 가늘어진 틈을 타 재빨리 말을 이었다.
“누가 감쪽가티 속아 넘어가따구 말했냐구여.”
“그야 마족들이…….”
리아트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그 역시도 문제를 깨달은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