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마족의 시선으로는 인간을 파악할 수 없다.
즉, 인간들이 실제로 이상함을 느끼고 있는지 아닌지는 직접 들어 보지 않는 이상 모른다는 것.
이 간단한 사실을 이제야 알아챈 듯한 리아트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여기 사는 싸람들에게 무러바야지 안을까여?”
리아트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는 세키나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이 어린 호문쿨루스가 한 말은 엄청나게 천재적이거나, 감탄할 만큼 번뜩이는 생각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부끄러웠다.
들으면 납득할 법한 의문을 이제껏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는 게.
마계의 꽃, 마계의 독, 마계의 물건…… 이것들은 오랜 시간 마계에서 지낸 마족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상 중 하나였기에 그들은 이상하다는 것 자체를 못 느끼고 있었다.
‘만약 이놈이 일러 주지 않았다면 한바탕 뒤집혔을 수도.’
리아트는 입 안의 살을 지그시 깨물며 눈을 가늘게 떴다.
‘어쩌면…….’
어쩌면 이곳에 사는 인간들이 눈치를 채고 있을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죽여야 한다.’
말이 새어 나가지 않게, 아무도 모르게.
그리 생각한 리아트는 턱을 들어 올리며 품속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8시.
시계를 다시 넣은 그는 아직도 자신의 소매를 잡고 있는 세키나를 향해 말했다.
“저녁을 먹겠나?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들어 보는 것이 수월할 것 같은데.”
세키나의 눈이 절로 돌아갔다. 밥? 인간들이 먹는 밥? 내가 먹었던 그 밥?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지!
“전 꼬기 조아해여. 엄청 조아해여.”
“그래.”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리아트는 이내 세키나를 끌고 근처 식당으로 들어갔다.
상업 지구에서 그나마 큰 부지를 차지하고 있는 곳이었는데, 들어와 보니 식당과 여관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손님이 꽤 많았다. 빈 테이블이 한두 개만 남아 있는 정도였다.
“어서 오십쇼! 두 분이십니까?”
으, 인간.
싫어.
리아트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지만, 제 정체를 감춰야 한다는 생각이 전보다 강해진 상태였으므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 종업원은 리아트와 세키나를 창가 자리로 안내해 주었다.
“여기 메뉴입니다. 오늘은 칠리소스를 입힌 칠면조가 참 맛있게 됐어요!”
리아트는 무심한 시선으로 메뉴를 훑었다.
어차피 하찮은 인간 놈들이 만드는 요리니 굳이 고를 필요는 없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줄줄줄.
리아트는 세키나의 잇새로 흐르고 있는 침을 발견했다.
“나 그고! 그고 머글래! 꼬기! 꼬기이익!”
……얘 평소에 굶나? 마르틴이 잘 안 먹이나? 아서가 신경을 안 쓰나?
리아트는 정말 오랜만에 당황한 채로 외알 안경을 벗고 손바닥으로 눈썹 부근 뼈를 지그시 눌렀다.
“침이나 닦고 말해라.”
“넹.”
세키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티슈로 입가를 벅벅 닦았고, 리아트는 그런 세키나를 향해 혀를 차다가 이내 칠면조를 주문했다.
“네. 주문 받았습니다!”
받았으면 빨리 꺼져.
리아트는 살벌한 시선으로 인간 종업원을 쳐다보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인간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지나칠 수 없어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그냥 지나쳐. 꺼져.
“따님이 참 귀여우시네요.”
……뭔님?
“아버님은 따님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겠어요!”
아버님?
리아트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반쯤 벌리고 인간 종업원을 쳐다보았다.
그러다 시선을 내려 세키나를, 다시 시선을 돌려 인간 종업원을 보았다.
이 하찮은 인간 놈이 위대한 나를 호문쿨루스에 빗대다니!
죽여 버릴……!
“아악! 아니에여!”
당장 마기를 폭발시켜 눈앞의 인간을 녹여 버리려고 하던 리아트를 말린 건 세키나의 울음 섞인 목소리였다.
“압빠 아니에여! 이 싸람 내 압빠 아냐! 절때 아니야!”
그래.
나는 호문쿨루스의 아비가 아니지.
위대한 마족이다.
‘……그런데.’
기분이 묘했다.
음. 뭐지?
***
‘이게 다 죽이고 자기도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무식한 사람이 용감하다던 옛말이 딱 맞다.
나는 방금까지도 거세게 피어올랐던 리아트의 살기를 더듬어 보며 숨을 삼켰다.
리아트가 비록 난쟁이처럼 작지만, 남들 가슴에 머리가 닿는 정도의 수준으로 작지만! 그래도 고위급 마족이란 말이다!
저놈이 여기서 마기를 일으켜?
그럼 싹 다 죽는 거다.
너도?
나도!
‘그런데 왜 자극하고 앉았어!’
간신히 야금야금 설득해 내 말을 듣도록 만들고 있었건만!
난 주먹 쥔 손을 부르르 떨며 종업원을 노려보았다. 종업원은 멋쩍어하며 뺨을 긁적였다.
“하, 하하……. 아버지가 아니시구나. 그럼 어떤 관계인지 여쭤도 될까요?”
아니, 또 왜요. 방금 님 삼도천 건너려다 돌아왔는데.
난 리아트의 회색 눈동자에 담겨 있는 분노의 불꽃을 볼 수 있었다.
“시간이 시간이고 지역이 지역인지라, 낯선 방문자들의 신원을 기록해 놓아야 하거든요. 가족 관계라면 상관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경비대에 보고를 올려야 하고, 또 그럼 심문을 하셔야 하는데…….”
“가족 마자여!”
리아트의 잇새에서 고함이 튀어나오기 전에 내가 먼저 소리쳤다.
이곳, 북부의 경비대는 마족이 아닌 인간들로 이루어져 있는 곳이었으니까.
아까 말했지 않은가. 북부에 사는 놈들에는 전과자가 다수 있다고. 그 전과자들이 검을 들고 모인 게 바로 경비대였다.
‘그놈들 포악한 건 게임에서도 유명했으니까 엮이지 말자.’
마족과 비등할 정도로 정신머리 나간 놈들이었으니 말이다.
“가족! 가족이에여! 그쳐? 우리 가튼 곳에서 살고 이쓰니까 가족 마쪄?”
내 말에 리아트의 눈썹이 마구잡이로 찌푸려졌다. 하지만 난 말을 멈출 수 없었다.
“그, 그럼 관계가…….”
“삼쫀!”
그래서 눈을 꽉 감고 소리쳤다.
“제 삼쫀이에여!”
이 정도는 이해하겠지? 이 정도는 받아들이겠지? 가슴이 마구잡이로 뛰었다.
“흐음.”
리아트의 눈동자에 서린 살기가 조금 잦아든 것처럼 느껴진다면 내 착각일까?
“호문쿨루스가 내 조카라…….”
제발 그딴 말 입 밖으로 꺼내지 마.
들킬까 봐 무서우니까.
“삼쫀. 우리가 지굼 여기 있는 이유 알고 있져?”
(=너 마족인 거 들키면 X댐. 퇴마당하기 싫으면 말 맞추셈.)
내 속뜻을 알아챘는지, 리아트의 굳었던 표정이 조금씩 풀렸다.
“그래……. 이 아이는 내 조카다.”
“아!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음식을 바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종업원은 다시금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떠났다.
성인인 리아트가 아니라 내가 먼저 가족이네 삼촌이네 해서 납득한 것 같았다.
“히유…….”
그제야 긴장을 푼 나는 어깨에 주었던 힘을 쭉 풀며 식탁에 고개를 박았다.
“리아투 경. 미아내여. 하디만 인간에게 의심을 살 쑨 업쓰니까여. 인간들은 쪼금만 이상해두 눈치를 채니까.”
그리고 빠르게 사과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했다지만 리아트는 고위 마족. 나 같은 애와 가족으로 엮였다는 게 혐오스러울 수도 있었으니까.
“화나써여, 리아투 경?”
대답이 들려오지 않아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
리아트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꿀꺽. 난 마른침을 삼키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인간들 앞에서도 리아트 경이라 부를 건가?”
마주한 리아트의 얼굴은 내 예상보다 나름 점잖았다.
화가 난 것처럼 보이진 않았고…… 뭐랄까. 묘하게 기뻐 보인달까?
왜 저래?
의아했지만 지금 고민할 건 아닌 터. 그래서 빠르게 대답했다.
“움. 인간들 앞에서눈 삼쫀이라 해야겠져?”
“그럼 지금부터 그렇게 불러라.”
“넹?”
“둘이 있을 때도 그렇게 부르란 말이다.”
왜.
굳이.
싫은데.
거절이 앞니까지 튀어나왔지만 차마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말이었다.
난 아직까지 무력하고 어린 아이였을 뿐이니까.
“넹, 삼쫀.”
그래서 난 그렇게 대답하고 물컵에 코를 박았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리아트를 미처 보지 못한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