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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님이 만드는 파멸엔딩 (24)화 (25/149)

24화

나는 테이블에 가라앉아 있는 묘한 긴장감을 느끼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차라리 음식이라도 나오면 먹는 거에 집중할 텐데, 종업원은 칠면조 구이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기다리라는 말만 했다.

‘딴 거 시킬 걸.’

히유.

난 식탁 아래에 둔 손을 꽈악 움켜쥐며 눈치를 살폈다.

“너.”

“넹?”

그러다 리아트의 부름에 빠르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마르틴과는 좀 어떠냐?”

“말틴 경이여?”

마르틴과 사이가 어떠냐고 묻는 거지?

잠깐 고개를 갸웃했던 나는 바로 대답했다.

“조은데여.”

리아트의 눈이 가늘어졌다.

“2년 전 마물을 소환했을 때 너까지 죽이려 했다던데.”

“아. 구랬져.”

마물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소환했던 때.

나의 쿠키 1호가 마르틴의 손에 죽었다. 나 역시 죽을 뻔했고 말이다.

표면적으로는 마르틴이 마물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내게 검을 겨눈 것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유가 있었을 거 같단 말이지.’

난 니샤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렇게 해서 마왕 힘 되찾으면, 우리가 어떻게 될 거 같아?

-우린 죽을 거야. 모두 다.

-아마 마르틴도 알고 있을 걸? 그래서 너한테 화낸 거고.

내가 마물을 제대로 다스릴 수 있게 되면, 마왕의 봉인을 더 빨리 풀 수 있다.

즉 호문쿨루스의 죽음이 빨라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마르틴이 일부러 날 공격한 거라고?’

어쩌면 날 죽이기까지는 안 했을 수 있다. 적당히 부상을 입혀서 소환술을 못 쓰게 만들었을 수는 있어도.

어쨌거나 그런 행동은 모두 다 호문쿨루스가 죽지 않게 하려고 한 거다.

‘왜?’

쌍둥이나 니샤는 그렇다 쳐도, 자신은 마르틴과 알게 된 지 고작 한 달 정도밖에 안 됐던 시점이었다.

‘그런데 왜? 굳이? 날?’

흐으으음.

잘 이해가 안 됐다.

어쩌면 니샤가 한 추측이 다 틀린 게 아닐까…… 싶었지만, 나 혼자 고민해 봤자 답이 나올 건 아니었으므로 지금껏 묻어 두었다.

“근데 갠차나여. 머, 이유가 있었자나여. 그런 걸루 멀어지면 안 대져.”

그래. 어쨌거나 지금의 나는 마르틴의 손을 꽉 잡고 있지 않은가.

이건 애정이나 우정과 같은 감정이 아니다.

‘그 좋은 봉을 왜 놓쳐?’

마르틴이 내게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마르틴이 있어야 아서가 있고 아서가 있어야 1군단이 있으며 그들이 있어야 마력 공급을 받을 수 있다.

그들의 마력을 양분 삼아 쑥쑥 크고 있는 나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 마르틴을 꽉 붙잡아 둬야 했다.

‘뭐, 그때 미안해서 지금 내게 더 잘하는 거기도 하고.’

내 말 한마디면 죽는시늉을 할 정도지 않은가.

이렇게 장점만 가득한 마르틴과 멀어질 이유는 없다.

‘나중에 소환술을 쓰게 될 때는 마르틴 몰래 하면 되지.’

그렇게 생각한 난 리아트를 보며 환히 웃었다.

“흐음.”

리아트는 턱을 매만지며 미심쩍다는 눈빛을 내보였다.

“희한하군. 일반적인 마… 아니, 놈들은 제게 칼을 겨눈 자를 반드시 죽이려 하는데.”

중얼거리던 그는 나를 비스듬하게 쳐다보았다.

“용서하는 것인가?”

용서고 나발이고 할 게 없는데요.

그냥 나는 마르틴이 옆에 있으면 이득이 돼서 그런 건…….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주문하신 칠면조 구이 나왔습니다!”

리아트의 말에 대답하기도 전에 종업원이 테이블 가운데에 커다란 칠면조를 내려놓았다.

군침이 도는 음식을 보니 내가 뭔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뭔 말을 하려 했는지 모두 다 잊게 되었다.

음식이다.

인간 음식.

맛있는 거!

슬금슬금 손을 올려 포크와 나이프를 꽉 움켜쥐었다.

“아, 이 레모네이드는 서비스입니다. 아까 전에 우리 꼬마 손님이 당황한 것 같아서요.”

종업원은 한쪽 눈을 찡긋하더니 에이드까지 놓고 자리를 떠났다.

레모네이드.

좋다.

오늘도 진짜 토할 것 같은 맛없는 녹즙만 마지못해 마셨으니까.

달고 상큼한 레모네이드를 거절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안 먹을 것이다.

왜?

‘고기 먹을 때 탄산 먹으면 헛배 차.’

고기는 고기만.

음료는 나중에.

뭐가 더 중요한지 명확하지 않은가.

“삼쫀 드세여.”

그래서 난 레모네이드를 리아트에게 쭉 민 후 야무지게 포크를 들었다.

“하?”

리아트의 콧방귀 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시했다.

일단 먹는 게 제일 중요했으니까.

***

마족은 음식을 섭취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호문쿨루스는 다르다. 반은 인간인 그들이었으므로 음식을 섭취해야 했다.

그래서 마왕성에서 그들에게 식당을 제공했고, 요리를 해 준 것이다.

‘한데…….’

얘 며칠 굶었니?

우걱우걱.

리아트는 마치 흡입하는 것처럼 음식을 쏟아 넣고 있는 세키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아까 전에도 고기를 원하던데.’

마왕성에서는 밥을 안 주나? 고기도 안 줘? 풀때기만 먹이나?

리아트는 묘한 짜증을 느끼며 제 앞에 놓인 레모네이드를 힐끗 쳐다보았다.

양보는 처음이었다.

삼백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말이다.

마족은 그 어떤 존재보다 고귀한 종족.

그렇기에 그들은 자기 자신이 가장 소중하고, 중요하며, 그 어떤 것도 자신을 해할 수 없으리라 확신한다.

혹자는 그런 그들이 이기적이고 탐욕스럽다고 하지만, 목전에서 그런 말을 한 놈들은 다 죽여 버렸으니 된 일이다.

그런 마족을 하나로 통합한 게 바로 마왕이었다.

그는 압도적인 마기로 마물을, 마족을, 마계를 굴복시켰다.

그래서 마족들은 생각을 바꿨다. 마왕이 가장 소중하고, 중요하며, 지켜야 하는 존재라고.

하지만 그 외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배신하고 때리며 자기 안위를 우선한다는 거다. 그들에게 이타적인 감정이란 티끌만큼도 존재하지 않았다.

-삼쫀 드세여.

고작 음료 한 잔이다.

툭 치면 엎어질 만큼 적은 양의 음료.

그런데 왜일까?

왜 이 잔의 깊이가 바다보다도 깊게 느껴지는 것일까.

리아트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실소를 흘리며 음료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때였다.

“그래서? 이게 오늘 자네 딸내미 줄 선물이여?”

“그렇다니까. 내가 이거 사려고 한 달 내내 뼈 빠지게 일하고……! 어휴, 딸이 아니라 웬수여, 웬수.”

“아이고. 내 딴에는 가족이 있는 게 부럽기만 하고만. 팔자 좋은 소리 하고 앉았네.”

“고 가족 놈이 매일 밤마다 아부지 술 그만 먹어요, 하는데?”

“그럼 술 좀 그만 먹어! 그 예쁜 딸내미 두고 뭐 하는 거여?”

“하하, 개가 똥을 끊지.”

옆 테이블에 앉아 있는 인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에 온 이유는 영지에 사는 인간들이 혹 자신들의 존재에 대해 기이함을 느끼지 않을까 하여 정탐하러 온 것이었으니, 리아트는 떠다니던 상념을 정리하고 귀를 기울였다.

“됐고, 그 선물 좀 봅세. 어떻게 생겨 먹은 거길래 금화 한 개씩이나 하는지.”

“궁금허냐?”

“그려. 빨리 펴 봐.”

팔뚝만 한 선물 상자를 들고 있던 인간이 씨익 웃으며 상자의 뚜껑을 잡았다.

“자, 보시라. 우리 상점 대표 인형 가게에서 만든 회심의 역작!”

……인형?

리아트는 살짝 오싹함을 느꼈다.

아까 전 분명 세키나가 ‘이거 그대로 내놓으면 분명 들킨다.’라고 하지 않았나?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물건을 관리해야 하나 머리를 굴려 보려 했는데 이렇게 빨리?

“잠ㄲ…….”

“짜잔!”

리아트보다 인간이 상자를 여는 게 더 빨랐다.

“…….”

상자 안에는 인간형 인형이 있었다.

하지만 팔이 여섯 개였다. 양쪽에 각 세 개씩.

다리는 다행히도 두 개였지만 도저히 인간의 다리라고 부를 수 없는 모양새였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모양을 하고 있었으니까.

‘악마종 모형.’

리아트는 자신도 모르게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저거 만든 놈 죽인다.’

리아트 역시 세키나가 지적하기 전까지는 뭐가 잘못됐는지 몰랐지만, 지금은 잘 알겠다.

누가 봐도 마계에서나 볼 법한 모양새 아닌가.

인간 얼굴만 달아 놓는다고 다 인간 인형인가?

딱 봐도 악마종, 마물인데?

리아트는 여기서 기억 제거 마법을 써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그때였다.

“요게 말이야. 저어기 귀족 나리들 사는 데에 가면 금화 열 개를 주고도 못 산다는 물건이거든? 이거 봐 봐. 아무것도 안 했는데 눈이 막 도르르 굴러간다니까? 팔도 지 혼자 움직이고!”

“웜매. 다리로 무 썰어도 되겄어.”

인간들은 그 흉측한 모양새에도 별로 놀라지 않고 낄낄거리며 저들끼리 대화를 나누었다.

뭐지?

무슨 일이지?

리아트는 순간 당황해 시선을 거두고 세키나를 쳐다보았다.

어쩐지 우걱우걱 먹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했더니. 세키나 역시도 입을 쩍 벌린 채 인간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게…….”

세키나는 입 안에 남았던 고기를 꿀꺽 삼켰다.

마계라거나, 마족이라거나, 마물이라거나 하는 말은 나오지 마라. 제발. 제발!

세키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인간의 입에서 튀어나온 건.

“마법 인형이라는 말이지?”

생전 처음 들어 보는 말이었다.

뭔 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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