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졸졸.
나는 내 뒤에 딱 달라붙어 쫓아다니는 거구를 느낄 수 있었다.
졸졸졸.
어딜 가든 쫓아오는 놈.
졸졸졸졸.
그런 주제에 덩치는 큰 놈.
“히유.”
한숨을 길게 뱉은 나는 그대로 멈춘 후 뒤를 돌았다. 그러자 다소 놀란 듯 눈을 크게 뜬 마르틴이 보였다.
만족스러운 아침을 먹고 난 후, 식당에서 나온 나에게 마르틴이 붙었다. 꼬리처럼 계속 나를 따라온다.
처음에는 내버려 뒀다.
쟤 이상한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일이 분도 아니고 몇 시간 내내, 내가 어디에 있든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게 아주 거슬렸다.
이상하려면 혼자 이상해지지, 왜 나한테 와서 이러는지.
난 살짝 눈을 가늘게 떴다.
“밥팅. 너 왜 이러는그야. 이러다 나 화장실까지 쫓아오게써.”
팔짱을 끼고 턱을 들어 올렸다.
“머. 이유를 말해 바. 왜.”
물론 이렇게 기세를 등등하게 보인다 해도 마르틴에 비하면 발톱 때만도 못하다. 애초에 지금도 뒷목이 파르르 떨리지 않는가. 햄스터가 사자를 올려다보는 형국이다.
“……아기.”
마르틴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내가 지킨다. 위험해지지 않도록 옆에 있는다. 계속 있는다.”
그러면서 발을 동동 구르는데 그때마다 땅이 흔들려 몸이 비틀거렸다.
이거 뭐지. 얘 왜 이러는 거지.
나를 애착 담요 취급하는 느낌이 드는데.
‘착각이겠지?’
크흠. 잔기침을 뱉었다.
“너는 전부터 나 지켜 줘짜나. 새삼스럽게 먼 또 그런 말을 해. 대써.”
“……!”
마르틴의 얼굴에 뭔가가 떠올랐지만, 난 무시하고 그를 향해 두 팔을 뻗었다.
“나 훈련장 나갈 그야. 가티 가등가.”
“좋다.”
마르틴은 씨익 웃으며 나를 안아 들었다.
‘뭐…… 그래. 마르틴이라는 전력이 생기는 건 좋은 일이니까.’
난 그렇게 생각하며 높은 하늘만 쳐다보았고, 그래서 마르틴과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지나치는 마족들을 보지 못했다.
***
“어! 세키나 님!”
“이야, 오랜만입니다!”
훈련장에 가자마자 눈에 익은 마족들이 뛰어왔다.
“어째 얼굴이 좋아졌어요? 응? 우리 빼고 밖에 나가서 놀다 오니까 엄청 좋았나 봐? 응?”
“그러게요. 누구는 이렇게 성에 처박혀서 한 달에 한 번밖에 못 나가는데! 와, 이거 억울해서 살겠나! 나 억울해서 죽네! 죽어억!”
“응, 난 안 억울하죠? 어제 윌리엄 따라서 나갔다 왔죠? 술 왕창 먹고 왔죠?”
예나 지금이나 시끄럽기 짝이 없는 놈들.
고작 셋밖에 안 되는데 접시 백 개는 깨질 만큼의 데시벨을 내고 있다.
그래도 그냥 내버려 두고 있다.
왜냐고?
‘내 마력 공급원이니까.’
빨리 감기 장면에서 이놈들이 특히나 더 내게 마력을 많이 줬다. 전에 호감도 퀘스트에서도 제일 먼저 넘어왔던 놈들이기도 했고.
‘마나 서클 생길 때까지는 적당히 계속 받아먹어야 해.’
낯붉힐 관계로 두면 안 됐으므로, 유난히 내성적인 나지만 힘내는 중이다.
“나 3년 만에 밖에 나가따 온 거거든? 양씸 어디 가써?”
“마계 갔죠.”
“자랑이야?”
“히히.”
뒷머리를 긁적거리는 놈을 향해 난 가지고 왔던 물건을 쭉 내밀었다.
“이거나 머거.”
“어?”
눈이 동그래지는 놈의 곁으로 다른 놈들이 모였다.
“뭐야. 뭐예요? 케이크?”
“왜 갑자기 케이크?”
난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쩐에 내 생일 때 케이크 먹꼬 싶어 해따면서. 그래서 사 와써. 같은 건 아니디만.”
“…….”
별관 출입을 금지당했으니 억울해할 거라 생각이 들어서 나간 김에 사 온 거다.
잘 먹어서 마력을 키운 뒤 내게 잘 돌려주라는 의미에서.
그런데…….
“흐어어엉! 세키나 님!”
“우리의 빛! 우리의 귀염둥이!”
“이잉, 세키나 님은 우리밖에 모르신다니까!”
주지 말걸.
아. 귀찮아.
“징그러, 미친넘드라!”
난 양팔을 휘저으며 그들의 포옹을 뿌리치려 했다.
“아앗! 안 돼요! 세키나 님은 우리를 벗어날 수 없어!”
“간만에 보는 건데 어딜 도망치려 하죠? 계속 같이 있어야 하죠?”
“세키나 님 가 버리면 나 죽는다. 죽어요. 나 살리려면 같이 있어.”
돌은 자들.
으. 역시 내성적인 나랑은 안 맞는다니까.
하지만 이들이 그냥 날 껴안는 게 아니라 마력을 주입시켜 주고 있는 걸 알고 있기에 난 얌전히 몸에 힘을 풀었다.
그래. 5분 귀찮음에 마력 공급이라니.
이 정도면 수지타산이 맞지.
그리 생각하며 킁 코를 들이마실 때였다.
“다들 거기서 뭘 하는 거지?”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힐끗 고개만 뒤로 젖히니 거꾸로 서 있는 리아트가 보였다.
“보좌관님 오셨습니까!”
“저희 세키나 님과 놀고 있었습니다!”
놈들이 야무지게 대답했다.
“놀고 있었다고?”
리아트는 한쪽 눈을 살짝 찡그린 채로 다가왔다.
“흐음.”
그리고 특유의 비음을 내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가 무섭지 않았다.
왜냐고?
요리사를 보내 준 놈이었으니까.
리아트는 나와 한 몸이라 이거다.
그래서 난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안냐세여, 리아트 경! 오랜만이네여. 저 또 나가나여?”
“…….”
나를 보자마자 살짝 올라갔던 리아트의 입술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마치 화가 난 듯 굳게 닫힌 입술.
난 깜짝 놀라 자세를 바로 했고, 다른 놈들도 긴장했다.
뭐야. 왜 이래.
꼴깍 마른침을 삼키며 눈동자를 굴리던 나는, 혹시 몰라 조심스럽게 입을 다시 열었다.
“……삼쫀?”
그러자마자 리아트는 언제 정색했냐는 듯 다시 입가에 미소를 걸었다.
“그래. 삼촌 왔다.”
아. 이 새끼도 이상해.
***
힐끔.
다른 마족들을 다 돌려보낸 나는 티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있는 리아트를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갈하게 묶은 머리칼, 주름 없는 연미복, 깔끔한 하얀 장갑과 투명한 외알 안경까지.
모두 다 전과 다를 게 없었다.
그런데…….
“먹어라. 인간 놈들이 즐겨 먹는 과자라는 거라더군. 물론 나는 입에도 안 댔다. 하찮은 인간 놈들이 만든 건 저급하니까. 하지만 너에게는 다르겠지.”
왜이래.
어디 아픈가?
죽을병?
난 발열 마법을 뚫고 느껴지는 한기에 어깨를 말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 삼쫀.”
“그래.”
“오늘 저 데꼬 나갈라구 오신 거 아니에여? 이케 시간 보내두 대여?”
탁.
리아트는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너는 내일 나와 함께 나간다.”
“넹?”
“내일이면 다 정리가 됐을 테니.”
정리라 하면 영지 관리를 말하는 걸 테다.
가게 물건뿐 아니라 다른 것들도 다 이야기를 해 놓은 상태였으니 알아서 잘……했겠지?
‘내일 나가서 마무리 점검을 해 봐야겠어.’
그렇게 생각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오늘은 만날 놈이 있다.”
“넹? 누구여?”
“일단 이걸 다 마시고 데리고 오지.”
리아트는 다시 차를 마셨다.
그래서 난 어쩔 수 없이 오물오물 과자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다.
탁.
비로소 다시 찻잔을 내려놓은 리아트.
그는 툭툭 손을 털고는 허공을 향해 가볍게 휘저었다.
“나와라.”
그러자마자 허공이 갈라지더니 뭔가가 툭 튀어나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빨개서 나는 뭔 물건인가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으윽! 헉, 헉…… 안녕하세요, 보좌관님! 그리고 세키나 님! 저는 상점가의 인형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마족입니다!”
음. 마족이었다.
빨간 건 피였고.
그는 등 뒤로 손목이 묶인 채 데구루루 잔디밭을 굴렀다.
“그, 삼쫀. 이 마족 금방이라도 주글 거 가튼데여.”
“그래. 내가 그렇게 만들었으니.”
“죽기 전에 구해 조야 하는 거 아닐까여?”
“왜? 죽을 짓을 했는데.”
“하하하! 괜찮습니다! 전 죽어도 싼 마족이니까요! 보좌관님의 손에 의해 죽게 된다면 그것도 또 영광이겠죠!”
이마를 짚었다.
이 빌어먹을 마족 놈들은 아침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날 내버려 두질 않아.
다 제정신이 아니야.
씁씁, 후후. 심호흡을 한 후 가슴을 가라앉힌 나는 일전에 리아트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신관들 돌아가눈 길에 선물하며는 딱 조을 인형이여. 그거 만드는 거자나여. 그쳐?
나는 리아트와 마주했던 그 눈빛을 떠올리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쓰러져 있는 마족을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