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세바스찬은 뚱한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어린아이를 올려다보았다.
머리에서 흐르는 피 때문에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지만, 세키나를 보자마자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재밌는 거.’
씨익, 그의 입꼬리가 곡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세바스찬 도르자.
그는 중급 마족이다.
본래라면 그 역시 마왕성에 들어가 군단에 편입되었어야 함이 맞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러기 싫었다. 왜 그딴 재미없고 칙칙하고 삭막한 곳에 가 마생을 낭비한단 말인가?
그렇지 않아도 마계에서는 제 능력을 맘껏 펼칠 수 없어 지겨운 참이었는데, 차라리 잘 됐다. 인간이나 가지고 놀아야지.
그래서 그는 마계에서 그나마 알고 지냈던 하급 마족을 자신 대신 성에 들여보내고 자신은 성 밖으로 빠져나왔다. 정말 좋았다. 성 밖의 인간들과 함께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거였으니까. 그로부터 수십 년. 그는 이 기회를 마음껏 이용하고 있던 참이었다.
흑마법, 마도술.
흑마법의 일종인 마도술은 간단히 말해 마정석을 이용해 도구를 만드는 술법이다.
물론 마정석으로 만드는 마법 물품은 인간계에도 마계에도 많다. 실용적인 아티팩트나 스크롤뿐 아니라 다분히 재력을 과시하기 위한 관상용 장식품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엄청난 양의 마정석을 소모하는 데다가, 고위급 인간 마법사의 마력이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가격도 가격이거니와 희소성이 짙었다.
하지만 세바스찬이 만든 것은 조금 다르다.
마정석은 눈곱만큼. 마력도 아주 조금.
그렇지만 성능만큼은 끝내준다. 일 년 내내 팔다리를 움직이는 인형만 봐도 알지 않겠는가.
이는 어디까지나 그가 흑마법을 이용했기 때문이었다. 흑마법을 이용해 만든 마법 물품은 작은 인형이라 할지라도 매우 훌륭했다.
하지만 흑마법이 괜히 금지된 마법이 아닌 터.
흑마법으로 만든 마법 물품은 위험하다. 이는 해당 물건을 가지고 있는 사용자의 마력을 빼앗아 그걸 원동력으로 삼는다. 다시 말해, 소유자를 죽인다는 뜻이다.
왜 그런 걸 만드냐고?
‘재미있으니까.’
생전 처음 보는 물건이라며 눈을 휘둥그레 뜨는 인간 놈들이 참으로 우스웠다. 제 피를 탐할 물건인 줄도 모르고 소중히 여기는 꼴이 제법 같잖았다.
그래서 그는 더욱더 많은 것을 만들어냈다. 인간들을 좌절시키기 위해서, 농락하기 위해서.
그 결과, 이렇게 들켜 버렸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너무 불안해하지 않고 있었다.
‘죽진 않을 거야.’
고작 이 정도의 일로 사형을 시킨다거나 하지 않는 걸 알고 있으니까.
‘흑마법을 들킨 거면 몰라도, 이 정도는 괜찮아.’
만약 흑마법을 들켰다면 보좌관, 리아트가 자신을 이곳까지 끌고 오는 게 아니고 그 자리에서 바로 죽였을 거다.
제아무리 리아트가 유능하다 한들 천 년 전에 사장된 흑마법을 한눈에 알아챌 방도는 없다.
흑마법을 들켰다면 사형이 아니라…… 지옥을 맛봤겠지. 세바스찬은 과거 마계 감옥에서 겪었던 고문의 나날들을 떠올리며 어깨를 바르르 떨었다.
하지만 괜찮다. 흑마법은 마왕이 보지 않는 이상 아무도 모를 테니까. 제아무리 상급 마족이니 뭐니 해도 모두 다 어중이떠중이일 뿐이다. 그러니 저는 감옥에서 몇 년 보내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아쉽게 됐어.’
감옥에 처박히는 게 아쉬운 건 아니다.
그저 아쉬운 건 눈앞의 이 꼬맹이가 보여줄 ‘재미있는 것’을 함께하지 못한다는 것뿐.
세바스찬의 진녹색 눈동자에 씁쓸함이 서렸다.
이때였다.
“야야. 초록 머리.”
어느새 다가온 꼬맹이가 말을 건넸다.
“너…….”
꼬맹이는 아직도 차를 마시고 있는 리아트에게 들리지 않을 만큼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흑마법 썼냐?”
“…….”
어.
이게 아닌데.
***
난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는 세바스찬을 내려다보며 작게 한숨을 뱉었다.
이 새끼, 이거. 안 들킬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네.
슬쩍 눈을 돌려 리아트를 쳐다보았다.
리아트의 표정이 여유로운 걸 보니 그 역시도 이놈이 흑마법에 손을 댔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았다.
만약 리아트가 알았다면 내게 끌고 오는 게 아니고 그 자리에서 즉결처분을 당했겠지.
‘이렇게 쥐어팬 건 이상한 물건을 만들어서 배포한 것 때문에 열 받아서 그런 거 같고.’
다시 말해 이놈이 흑마법을 썼다는 건 이놈과 나, 둘만 알고 있다는 것.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그, 그걸 어떻…….”
“내가 어떠케 아는지 궁금해? 나눈 니가 어떠케 디질지가 더 궁금한데.”
“아, 아니……!”
“말하까, 마까?”
그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파리해졌다.
“대답이 업따? 삼ㅉ…….”
“잠깐만요!”
하지만 내 말보다 세바스찬의 외침이 더 빨랐다.
“저, 저.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그는 무릎을 꿇은 채로 내게 엉금엉금 기어 왔다.
“정말! 뭐든지! 시키시는 거 다 해내겠습니다! 아니, 아니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하겠습니다! 제가 눈치 하나는 진짜 빠르거든요? 눈치껏 알아서 잘! 잘하겠습니다! 노예라고 생각하세요!”
그는 입술이 찢어질 정도로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딱 봐도 이거 한 바퀴 돌아있는데. 옆에 두면 안 될 거 같은데.
아, 어떡하지.
팔짱을 낀 채 고민에 빠졌다.
그런 내 고민을 깨뜨린 건 세바스찬의 이어진 말이었다.
“주종계약을 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난 그만 굳을 수밖에 없었다.
“당신은 제 주인님! 저는 노예! 똑똑한 노예! 뭐든지 다 해내는 유능한 노예!”
주종계약은 말 그대로 종이 된 자가 주인 된 자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는 계약 마법을 뜻한다. 하지만 거의, 아니, 아예 쓰이지 않는 계약 마법이다. 왜냐고?
‘이 오만하고 방만한 마족이 누구 밑으로 들어간다는 게 말이 안 되니까.’
그런데 나를 주인으로 섬기겠다고?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원래라면 나도 흑마법을 이용해 이놈의 입을 묶어 버리려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내게도 부담이 컸는데.
‘주종계약은 쓸만한데?’
흑마법에 관한 걸 입 다물게 만들 수 있고, 또 그걸 이용해 내게 도움이 되게끔 둘 수 있다.
난 히죽 입꼬리를 올렸다.
“삼쫀.”
그래서 리아트를 향해 말했다.
“얘 쫌 이상해여.”
“그래?”
탁, 하고 찻잔을 내려놓은 리아트는 가볍게 손을 들었다. 그러자마자 세바스찬의 몸이 허공에 부웅 떠올랐다.
“아악! 잠깐만요! 컥, 컥!”
세바스찬의 목이 졸리는 게 보였다. 금방이라도 숨이 꼴딱 넘어갈 것 같다.
“근데여. 쓸모는 이쓸 거 가타여.”
난 일부러 여유로운 태도를 한 채 리아트를 향해 말했다.
“일딴 며칠만 옆에 둘래여. 신관이 돌아가구 나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보면 안대까여?”
이렇게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리아트에게 예쁨을 받고 있다는 걸 세바스찬에게 주지시키기 위해.
딴생각하면 넌 그대로 죽는다는 걸 일러주기 위해.
지금 이 몸은 약하기 그지없지만, 뭐. 리아트를 이용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 나는 세바스찬을 향해 생긋 웃어주었다.
“쿨럭! 네, 네! 며칠 동안 시키는 대로 다 잘하겠습니다! 저는 할 수 있습니다!”
리아트는 나와 세바스찬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이내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렇게 하거라.”
털썩!
세바스찬의 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쿨럭! 켁!”
꽤 높은 곳에서 떨어진 거라 나름 아플 텐데도 세바스찬의 얼굴에는 미소가 잔뜩 지어져 있었다. 마치 지금 상황을 황홀하게 느끼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많이 이상하네.’
정말 괜찮은 걸까. 이제라도 결정을 바꿀까 잠깐 고민했다.
“그럼 저놈과 알아서 해 보거라. 신관은 나흘 뒤에 오니 그때까지 완성하면 되겠군.”
“넹. 아라쪄여.”
하지만 당장 할 일이 있긴 했으니 며칠 정도는 두고 봐야겠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그래서 난 고개를 끄덕였고, 리아트는 그런 나를 보고 슬쩍 웃다가… 갑자기 정색했다. 뭐야. 왜 저래.
“난 바쁜 몸이다.”
안 물어봤는데… 라고 하면 화내겠지? 그래서 난 애써 웃으며 턱을 당겼다.
“넹. 조씸히 가세여.”
그러다 아차, 하며 말을 덧붙였다.
“그리구 요리싸 고마어여. 오늘 완전 마싯게 머거써요.”
자리를 떠나려던 리아트의 시선이 내게 확 돌려졌다. 그는 굳은 얼굴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쭈욱 손을 뻗어 내 뺨을 와락 꼬집었다.
“우잉?”
조물조물.
내 뺨을 슬라임처럼 만지작거리던 그는 이내 만족스럽다는 듯이 미소를 짓고는 자리를 떠났다.
“……?”
난 쟤가 무슨 생각인지 진짜 모르겠어.
[SYSTEM]
‘리아트 노오에이’가 당신을 ‘그럭저럭 괜찮은 호문쿨루스’로 생각합니다. 장족의 발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