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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님이 만드는 파멸엔딩 (29)화 (30/149)

29화

세바스찬과 방으로 함께 돌아온 나는 자고 있던 마르틴을 질질 끌어 내보내고 소파에 앉았다.

“야. 이제 도청 방지 마법 거러.”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 상처투성이인 손목을 이리저리 매만지고 있던 세바스찬은 고개를 갸웃했다.

“예. 뭐, 걸 건데…….”

그는 가볍게 손가락을 튕긴 후 말했다.

“혹시 마법 못 쓰십니까?”

결계가 한 꺼풀 씐 게 느껴졌다. 뭐, 마르틴 같은 놈들이 마음먹고 파훼하려면 모르겠지만 그러진 않을 테니 안심해도 될 거다.

“엉. 몬해.”

“……왜요?”

세바스찬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아니, 흑마법도 알고 계시면서 왜 일반 마법을 못 쓰십니까? 듣기로는 만들어질 때 입력이 잘못됐다고 하던데 그게 진짜입니까? 그래서 마법을 못 쓰나?”

아직 못 쓰는 거다, 새끼야.

3년 가까이를 스킵했는데 언제 마법을 익히고 앉아있냐?

‘그래도 그동안 마력은 꾸준히 축적해 놨으니까 금방 마법을 익힐 거야.’

그래서 마음을 놓고 있는 거기도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난 팔짱을 끼고 턱을 보란 듯이 들어 올렸다.

“야. 초록 대가리.”

“세바스찬입니다만.”

세바스찬의 얼굴이 구겨졌지만 난 신경 쓰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이놈은 내게 약점이 잡혀 있는 상태.

그리고 주종계약까지 하기로 했으니,

‘내 봉이다.’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니가 나한테 질문할 권리가 이따고 생각하냐? 이게 어디서 맞먹을라구 해. 디질래?”

“쳇.”

혀를 찬 세바스찬은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가 머리를 굴리면 뭔가 캐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어쨌거나 나는 ‘만들어진’ 호문쿨루스고, 고작 3년밖에 안 산 몸뚱이였으니까.

하지만 난 인간이다. 그리고 90년을 넘게 살았다.

그런데 이깟 미친 마족에게 말려 넘어가겠는가?

“넌 앞으로 나하테 질문하지 마. 궁금해? 참아. 니가 궁금해하면 할쑤록 살날이 줄어들 테니까.”

“그렇게 안 봤는데 무서운 분이셨네요.”

“진짜 무서운 걸 보여조?”

“아뇨. 잘못했습니다.”

세바스찬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난 놈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너 흑마법은 누구하테서 배웠냐?”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인형에서 흑마법의 기운을 느꼈을 때.

가장 먼저 궁금했던 건, 대체 어디서 흑마법을 배웠냐는 거였다.

흑마법은 천 년 전에 사라진 마법이었으니까.

눈을 가늘게 떴다.

“하, 저도 마음 같아서는 다 대답해 드리고 싶거든요? 그런데 그럴 수가 없어요. 왜냐? 죽거든요.”

“금언 마법을 거러써?”

“오. 그것도 알고 계시네요. 정말 뭐 하는 분이지? 아, 궁금해하지 말라고 했지. 네. 안 궁금해할게요.”

한 대 때리고 싶게끔 능글맞게 대답하는 그를 뒤로하고 나는 천장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흑마법의 일종, 금언 마법.

이 마법에 걸리면 해당하는 내용을 절대 발설할 수 없게 된다. 입을 열려는 순간 혀가 잘리고 목이 막히고 머리가 터져 버린다.

이걸 파훼하는 방법은…….

‘내가 더 높은 수준의 흑마법을 익히는 건데.’

여기서 어떤 쪽을 선택해야 할지 잘 감이 안 왔으므로, 조금 더 생각해 봐야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구럼 말할 쑤 있는 것만 말해 바.”

“으음.”

세바스찬은 턱을 매만지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

“아. 어디서 배웠는지는 말씀드릴 수 있어요.”

난 대답 대신 눈썹을 으쓱였다. 그러자 그는 생긋 웃으며 손가락으로 바로 아래를 가리켰다.

“여기서 배웠어요.”

“…머라고?”

“제2의 마계였던, 이곳에서.”

“…….”

“궁금하면 빙벽을 찾아가 보세요. 답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아, 이 이상은 말 못한다! 나 죽는다!”

지랄발광을 하는 세바스찬을 뒤로하고 난 고개를 젖혀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리아트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이곳, 다이몬 공작령은 과거 제2의 마계라 불리는 곳이었다.

-이곳은 마물들의 안식처이자, 쉼터였다. 하지만 한 마물의 폭주로 인해 망가졌다. 모든 것이 다 얼어 버렸지. 그래서 마물들은 원래의 마계로 돌아왔고, 이곳은 폐쇄되었다.

내가 모르던 게임의 비하인드 스토리.

‘어쩌면…….’

내가 모르던 그 내용에 답이 있을 수도 있겠네.

‘그러고 보니 전에 설정집인가 뭔가를 줬었지?’

이렇다 할 뭔가가 있진 않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부일 뿐.

‘전체를 얻으면 뭔가 알 수 있을지 몰라.’

그렇게 생각한 나는 천장에 두었던 시선을 내려 턱을 당겼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만나 뵈어서 즐거웠고요. 또 부르시면 오겠…….”

“머래. 어디 가냐?”

어영부영 자리를 떠나려는 세바스찬을 향해 손을 까딱였다.

“주종계약. 하구 가야디.”

“캬. 기가 막히게 눈치가 빠르시네.”

“한 번만 더 대가리 굴리면 디진다.”

“넵.”

또 무릎을 꿇고 얌전히 머리를 박은 세바스찬은 긴 손톱을 이용해 살갗을 찢었다.

계약진에 뚝, 뚝, 떨어지는 새빨간 핏방울을 잠시 바라보던 나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아, 그리구 내가 말하는 것 쫌 만드러라. 낼까지.”

“뭔데요?”

“별 건 아니구, 신전에 둘 장식품인뎅. 영상공유가 대쓰면 조케꺼든.”

“……네?”

“아. 글구 거따가 각인두 해놔쓰면 조케써.”

피를 떨어뜨리던 세바스찬의 고개가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그러니까, 신전을 염탐할 마도구를 만들고 거기다가 제 존재를 각인해 두란 말이죠?”

“웅웅.”

“혹시 들키면 마왕성이 아니라 바로 저를 찾아올 수 있게?”

“웅웅.”

“…….”

세바스찬의 입이 쩍하니 벌어졌지만, 바로 그 순간 계약이 완료되었기에 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딱 한 마디만 했다.

“몬 만들면 너 사형.”

***

세바스찬을 내보낸 뒤, 나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아, 세키나 님 오셨습니까?”

빨리 감기 장면에서 많이 보였던 빨간 머리 마족이 인사를 건넸다. 사서 역할을 하고 있는 놈이다.

“웅. 오랜만이야.”

아무렇지 않게 인사하며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오랜만이라니요? 저번 주에도 오셨었는데요?”

“…….”

데헷. 이렇게 시간개념이 없다니까.

난 일부러 환하게 웃으며 마족을 쳐다보았다.

“우웅.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나한테는 참 길어찌 모야.”

“제가 보고 싶어서요?!”

“어…… 그, 안에 아무도 업찌?”

“제가 보고 싶었던 거죠? 진짜요? 저 얼마나 보고 싶으셨어요?!”

“안에 아무도 업냐구 무러봤는데.”

“저도 세키나 님 보고 싶었어요!”

빨리 감기가 다 좋은데 이런 단점이 있다.

나도 모르는 새에 친분이 생겨 버린 것.

제삼자 입장에서 지켜볼 때에는 ‘말을 섞네?’ 정도인데, 까놓고 보니 이런 꼴이다. 왜 이렇게들 야단법석인 건지.

“구래, 구래. 건 그렇고 대답 쫌 해줄래? 안에 아무도 업냐니까?”

“네. 오늘은 아무도 안 계세요. 저와 세키나 님 단둘밖에 없는데!”

“나 구럼 드러간다. 안뇽.”

“나오실 때에는 저랑 놀아줄 거죠? 그쵸?”

소리치는 마족 놈을 뒤로하고 빠르게 도망쳤다.

휴, 내성적인 나는 이럴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니까.

탁, 탁.

안으로 들어온 나는 책장을 꼼꼼하게 살피며 걸었다.

원래는 도서관 내에는 탐지마법이 걸려있어 뭘 찾고 싶은지 마나를 내보이며 생각만 하면 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하면 안 됐다.

‘흑마법에 대해 찾을 거니까.’

혹시라도 기록을 누가 살핀다면 큰일 날 터.

그래서 난 열심히 몸으로 때우고 있는 중이었다.

오늘 하루로 끝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한다. 수십 만권이 잠들어있는 도서관이기도 했고, 흑마법이라는 것 자체가 기록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다리 아푸네.”

어린아이의 두 다리는 오래 걷지 못한다.

그래서 난 그대로 벌러덩 드러누웠다. 조금 더 쉰 다음에 도서관을 돌아다녀 볼 생각으로.

‘흑마법…….’

제2의 마계, 빙벽, 마물, 소환술…….

뭔가가 이어질 것 같으면서도 이어지지 않는다.

힌트가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아. 기억 꺼내기 시른데.”

기억을 안 꺼내오려고 지난 시간 그렇게 개고생하며 구른 게 아니었나.

인제 와서 꺼내기에는 그 고생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나.’

에휴. 한숨을 뱉으며 말랑말랑한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

눈꺼풀을 닫았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또 하나의 눈꺼풀을 닫았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심연으로 들어갔다.

내가 묶어두었던 기억을 향해서.

떠올리기 싫었던 그 기억을 향해서.

***

난 이 게임에서만 90년을 살았다.

전혀 행복하지 않은, 행복이라는 것 자체를 느껴 본 적이 없던 90년을.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고, 발버둥 쳐도 살 수 없고, 작게나마 품었던 희망이 언제나 깨지던 그런 삶.

제아무리 멘탈이 단단하다 자부하는 사람이라도 내가 살아 온 90년을 경험했다면 미쳤을 거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어느 순간 나도 미쳐 버렸다.

모두를 죽였다.

부모도, 형제도, 친구도, 마을 사람들도. 모두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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