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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님이 만드는 파멸엔딩 (34)화 (35/149)

34화

‘노딜은 확실히 인간을 죽였어.’

과거 정령사 다섯을 단번에 죽였던 노딜.

물론 지금은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이미 그 참상을 경험했던 세키나로서는 노딜이 인간을 좋아한다는 말을 부정했다.

“거짓말 하디 마. 마족은 인간을 시러해.”

“마족은 인간을 싫어해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 같구나.”

노딜은 빙그레 웃으며 찻잔 너머로 세키나를 응시했다.

세키나는 방금 전 상황을 맞닥뜨리고도 태연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그래서 노딜은 궁금해졌다. 이 꼬맹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자신의 말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세계에는 참으로 많은 종족이 있지.”

그래서 그는 입을 열어보기로 했다.

만약 자신이 원하는 반응이 나오지 않는다면 죽여 버리면 그만이니까.

탁. 그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그러자 새까만 연기를 뿜는 작은 구체가 떠올랐다.

“자신들이 세계의 주인인 줄 알고 나불대다 멸망한 천족도 있고, 건방진 엘프족도 있고, 멍청하지만 빠릿빠릿한 드워프족도 있고, 게으른 용족 놈들도 있지.”

그에게서 종족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구체는 각자 종족에 맞는 모양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걸 멍하니 지켜보던 세키나는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인어족두 이써!”

“그래. 반쪽짜리 마물.”

인어족까지 다 만든 노딜은 팔걸이에 팔을 얹고 비스듬하게 몸을 기울였다.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그놈들은 강하다. 스스로를 지킬 힘이 있고, 으스댈 자격이 있다.”

물론 마족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노딜이 말한 종족은 하나같이 강하다. 마계가 아닌 인간계에서 싸운다면 마족들도 승패를 장담할 수 없을 만큼 말이다.

“하지만.”

노딜은 만들어낸 종족들과 떨어진 반대편에 다른 구체를 띄웠다.

“인간은 어떠하냐?”

인간 모양으로 변한 구체는 모여있는 다른 종족에게 달려갔고,

“인간이 강하다고 생각하느냐? 스스로를 지킬 힘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쥐어 터졌다.

흐릿해지는 인간 모형.

노딜은 피식 웃으며 검지로 원을 그렸다.

그러자 인간을 제외한 다른 종족들이 하나로 뭉쳐 사라지더니 이내 인간 모형이 여러 개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욕망에 충실하지.”

인간 모형이 움직였다.

“약한 주제에 욕망을 품어. 나아지고 싶다는 욕망, 올라가고 싶다는 욕망, 가지고 싶어 하는 욕망…….”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기도 하고, 제 몸을 떼어 어린 모형을 만들기도 하고, 서로를 뜯으며 싸우기도 했다.

“참으로 귀엽지 않느냐.”

“……오.”

취향 뭐야.

세키나는 으윽, 눈썹을 찌푸렸다.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거지? 귀엽다는 관점은 각자 다른 것인데.”

노딜은 재차 비웃음을 흘렸다.

“내게 있어 인간은 인간이 키우는 가축 정도다.”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검은 연기가 강아지를 만들어 냈다. 왈왈 허공을 뛰어다니는 작은 강아지는 노딜의 손가락을 핥으며 애교를 부렸다.

“가축이 배가 고프다 하여 짜증이 나겠느냐? 가축이 놀아달라 하여 화가 나겠느냐? 모두가 다 하나같이 귀여울 뿐이지.”

“와…….”

세키나는 제게도 달려드는 강아지 모형을 흩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너눈 내가 지금껏 본 마족 중에 가장 마족 가타.”

“칭찬이로군.”

칭찬 아닌데.

불만이 있긴 했지만, 세키나는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저리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는 마족 놈에게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너 그래놓고 나중에 인간 죽일 거지?’라는 말 따위는 꺼낼 수 없었다. 귀엽다니 내버려 두자, 정도일 뿐.

세키나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구래서? 앞으로도 이러케 지낼 꺼야?”

노딜의 눈썹이 으쓱였다.

“내가 성으로 돌아갔으면 하느냐?”

“웅.”

“왜?”

“날 지지해 조.”

세키나는 씨익 웃었다.

“장로들이 호문쿨루스를 두고 내기하고 이따는 건 알고 이쓸 거야. 군데 나는 아무도 날 지지해 주지 않코 이꺼든.”

“마르틴이 있지 않느냐?”

“걔눈 맨날 자. 글구 걔는 장로가 아니잔아.”

“그렇겠군.”

노딜은 순순히 납득했다.

“그래서, 나라는 뒷배를 가지고 싶다?”

“웅.”

그 대답에 노딜은 잠시 머뭇거렸다.

정말 기가 찬다.

다이몬의 힘에 겁을 먹지 않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리도 당당하게 제힘을 원하는 호문쿨루스라니.

이 당돌한 꼬맹이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노딜은 점점 더 궁금해졌다.

“그럼 내게 대가로 뭘 내 줄 수 있지?”

세키나는 이 질문이 나올 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전생의 기억이 해금되자마자 곧바로 계획해 놓은 패를 꺼내 들었다.

“블랙 스피넬 광산이 어디 있눈지 나 알고 이써.”

블랙 스피넬.

인간들에게는 보석으로 가공하는 광물로 알려져 있지만, 마족에게는 아니다.

끔찍한 마기를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광물.

블랙 스피넬을 이용하면 마계의 마기를 보관할 수 있고, 전투 시 마족이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인간계에서 빌빌거리고 있는 마족에게 큰 힘이 될 터.

‘어차피 나중에 얻게 되는 거니까 지금 말해도 되겠지.’

세키나는 생글생글 웃으며 노딜을 바라보았다.

“그런 광산 따위야 내가 찾을 수 있거늘. 나라는 뒷배를 두기에는 부족한 대가가 아니더냐?”

“아니. 충분할껄?”

“충분하다고?”

“웅. 내가 알고 있눈 광산은 저어어얼때 못 찾을 테니까.”

어디 더 말해 보라는 노딜의 표정을 읽은 세키나가 말을 이었다.

“바다에 이써. 그것또 인어족 사는 곳에.”

노딜의 눈이 커졌다.

“공간이동 마법진만 만들어 조. 그럼 인어족 몰래 광산 가지구 오깨.”

“네가 직접?”

“웅. 내가 직쩝.”

마족이 들어가면 인어들이 난리를 칠 테니, 인간인 자신이 들어가는 게 들키지 않을 터였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가겠다고 하는 건데……. 어쩐지 노딜의 표정이 오묘했다.

“……호문쿨루스 주제에 마족을 위하는군.”

음.

그건 아닌데.

스피넬을 이용해서 나도 할 게 있기 때문인데.

말을 덧붙일까, 하다가 세키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런 오해는 해 주는 게 좋았기 때문이다.

“웅. 난 마족을 위하구 이써. 마왕님의 힘을 되차자야지!”

노딜은 그런 세키나를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마족은 이기적이다.

같은 종족이라 한들, 단지 그뿐이다. 제 옆에서 마족이 죽어 나가도 그들은 분개하지 않는다. 그저 약하니 죽었군, 생각할 뿐.

한데…….

‘위한다라.’

아무리 마왕님의 힘이 들어갔다고 해도 인간 껍데기를 하고 있다 이건가?

어쩐지 재미있는 냄새가 났다.

노딜은 자신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세키나를 내려다보았다.

“너는 유물을 귀속시킬 수 있다지?”

“웅. 들어꾸나.”

“네가 차고 있는 그 팔찌 말고 다른 유물은 본 적 있나?”

“업써. 마왕님이 와야 다른 유물들도 줄 쑤 이따고 해서.”

세키나는 일전 첫 번째 시험 때 귀속시켰던 팔찌를 흔들며 대답했다.

“하면 너의 그 능력을 보고 판단해 보도록 하지. 곧 마왕님이 올 테니 말이다.”

곧?

마왕이 곧 온다고?

세키나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바로 그때였다.

-콰과광!

고막이 찢어질 듯한 폭음이 들려왔다.

“꺄아아악!”

“사, 살려 주세요!”

그리고 인간들의 비명 소리까지.

무슨 일이지?

노딜보다도 더 빨리 창가로 뛰어간 세키나는 창문을 활짝 열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그리고, 아아주 익숙한 누군가를 보았다.

“……멜데스?”

메르데스였다.

***

세키나가 마왕성 별관의 뒷길로 빠져나간 그때.

메르데스는 그 앞에 서서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도 나가고 싶은데…….”

파르데스를 다시 졸라 볼까?

아니. 파르데스는 지금 연구실에 들어가 있어서 건드리면 엄청 화낼 거다. 뭉뭉이 시켜서 저를 쫓아내겠지.

그럼 니샤?

……파르데스보다 더 무서운 이가 니샤다.

그렇다고 해서 프라이나 디디에와 같이 나갈 수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프라이는 얼마 전 자신과 파르데스에게 얻어맞은 탓에 다리가 부러졌고, 디디에는…….

‘걔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니까.’

메르데스는 후우 긴 숨을 뱉었다.

혼자 나가는 건 무섭다.

인간에 대해 배우긴 했어도 만나본 적은 없으니까.

물론 인간들이 하찮은 종족이라는 걸 알고 있긴 하지만, 하찮은 놈들이 더 하찮은 놈을 데리고 와서 하찮은 무리를 만들면? 그럼 그 무리는 더 이상 하찮은 게 아니게 된다. 위대한 자신조차도 위험해질 수 있다.

인간은 아주 음흉하고 사악하고 못됐다고 했으니까 방심하면 안 된다.

그래서 메르데스는 그동안 바깥에 나가보고 싶은 걸 꾹꾹 참고 있었던 거였다.

“근데 세키나는 겁도 없단 말이지.”

고작 3살밖에 안 된 세키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바깥에 나갔다.

조금도 겁먹지 않았단 말이다.

“내가 세키나보다…… 겁이 많은 거야?”

내가 2살이나 많은데?

“그건 싫어!”

메르데스는 주먹을 꽉 쥐었다.

“조용히 둘러보기만 하면 될 거야! 하찮은 놈들이랑 안 마주치고, 그냥 놀러만 다녀오면…… 아무 일 없지 않을까?”

그의 눈이 반짝거렸다.

“나도…… 나도 나갈 거야!”

5살 인생에서 가장 큰 결정을 내린 그는 당당히 수풀을 헤치며 발을 뻗었다.

그리고, 영지에 내려오자마자 크나큰 사고를 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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