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오. 쟤는 쌍둥이 호문쿨루스 아니냐?”
내 뒤로 와 창문을 내다 본 노딜이 말했다.
“우웅. 쌍둥이 둘째.”
“그런데 저기서 뭐 하고 있는 거냐?”
“구건 나도 몰라. 별로 알고 싶찌도 안코.”
그렇게 대답한 나는 창가에서 멀어져 원래 앉아있던 소파에 앉았다.
“무시할 거냐?”
“웅.”
창가에 반쯤 몸을 걸친 노딜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저 노인네, 또 뭔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 무시해도 되겠지.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경비대가 올 테고, 경비대 놈들은 꽤나 사나운 인간들이니 저놈을 가만두지 않겠지. 저놈도 보아하니 성격이 만만찮아 보이고…….”
노딜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싸우다 죽거나, 싸우다 들키거나. 둘 중 하나겠군.”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아니, 메르데스 저 새끼는 무서워서 마왕성 밖으로 못 나온다면서 왜 기어 나온 거래?
그리고 나왔으면 얌전히 있지 뭔 사고를 치고 있어!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왔다.
“나보구 나가서 정리하라구 하는 거야?”
“그렇지.”
“너가 나가면 대자나? 왜 하필 나지?”
“아이고, 나이가 드니 무릎이 아프고 허리가 아파서 통 움직일 수가 없구나.”
지랄한다, 진짜.
너 십 년 뒤에도 정정하거든?
난 이마를 짚었다.
“아! 나가기 실타고! 저기 휘말려따가 또 어케 댈 줄 알고!”
노딜은 빙그레 웃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괴, 괴물이다! 살려 줘!”
“꺄아악!”
그런 와중에 사람들의 비명 소리는 계속해 들려오고 있었다.
메르데스 진짜 뭐 하고 있는 거냐고…….
난 재차 한숨을 푹푹 쉬며 몸을 일으켰다.
“내가 쟤 데꼬 가면 마왕성에 오 꺼야?”
“그래. 신관 놈들이 돌아가면 가도록 하지.”
쯧. 난 혀를 찬 후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알써. 안 오기만 해 바. 안 오면 아까 봐떤 인간 넘…….”
“죽일 것이냐?”
“……인간 넘 협박한다 하려 했눈데. 왜케 상상이 잔인해?”
어우, 마족들 뇌 구조가 궁금하네.
난 뭐가 좋은지 킬킬거리며 웃는 노딜을 무시하고 탁자 위에 있던 유리병을 집었다.
“이거 가져간당. 마중은 대써.”
그리고 서둘러 방을 빠져나왔다.
“참 웃기는 놈이 들어왔어.”
중얼거리는 노딜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뻗으며 말이다.
***
“아아! 돌겠네, 진짜!”
메르데스는 발을 동동 굴렀다.
내 계획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난 분명 조용히 내려와서 조용히 둘러보다가 조용히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왜?
왜 이렇게 된 거지?
“꺄아아악!”
“괴물!”
메르데스는 고개를 푹 숙였다.
영지에 내려오자마자 상업지구를 맞닥뜨린 메르데스는 신기해하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처음 보는 가게들, 처음 보는 분수, 처음 보는 거리…… 모든 게 다 새로웠다.
그러다 어떤 가게 앞에 당도했을 때 인간 무리를 마주쳤다.
-어, 웬 어린애가 이렇게 나와 있어?
-옷도 얇게 입고 있네. 아가야, 도와줄까? 아빠 어딨니?
메르데스는 인간을 하찮게 생각했다.
그들은 아무 능력이 없는, 태초의 신에게 버림받은 종족이니까.
하다못해 짐승에게도 죽임을 당하는 허약한 놈들이라서 집단으로 모여 살고 있으니까.
분명 그랬는데…….
-뭐, 뭐야? 왜 이렇게 몸이 커?
맞닥뜨린 인간들은 하나같이 커다랬다.
물론 이런 척박한 북부 영지에 사는 인간들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사는 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인간들보다 훨씬 더 강하긴 했지만 거기까지는 메르데스가 알지 못하는 것.
메르데스는 처음 마주하는 인간에게서 느껴지는 마력과 힘을 느끼고 겁을 먹었다.
-꺼져! 나한테 오지 마! 이 하등한 것들 같으니라고!
메르데스는 마치 궁지에 몰린 생쥐처럼 찍찍 소리쳤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도망치지는 않았는데, 이는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었다.
그 때문일까?
차라리 도망쳤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메르데스는 자신도 모르게 가게의 유리창에 손을 얹었고, 바깥이 잘 보이는 선반에 있던 장식품들은 유리창을 통해 메르데스의 불안정한 마기를 전달받게 되었다.
그러자마자,
-콰과광!
눈 깜짝할 새에 건물이 무너지고 새까만 기운이 폭주하며 솟구쳤다.
‘환수가 있을 줄이야.’
유리 가까운 곳에 있던 장식품들은 마계의 정령이라 불리는 환수였고, 그들은 얌전히 물건에 의태해 바깥 구경을 하고 있었지만 메르데스의 마기를 받아 그만 폭주하고 만 것이다.
“사, 살려 주세요! 살려 줘!”
“아악!”
환수들은 반쪽 마족인 메르데스를 건드리는 대신 인간들에게 달려갔다.
“마물을 상대하는 것처럼 하면 된다! 검에 오러를 실어!”
“아, 아! 안 돼요! 여기 지금 기운이 엄청 이상해져서!”
“젠장!”
환수가 내뿜는 마기에 주변 기운이 흐트러진 것이리라.
이를 가라앉힐 수 있는 건 마족밖에 없다.
메르데스밖에 없다는 뜻이다.
어떡하지?
나 때문인데, 어떻게 해야 하지?
덜덜 떨던 메르데스는, 문득 생각했다.
‘뭘 어떡해. 도망치면 되는 거 아닌가?’
저놈들은 어차피 인간이다.
위대한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존재.
저대로 죽어도 상관없지 않나?
내가 여기서 환수와 맞서면 내 존재를 들킬 테고, 몰래 마왕성을 빠져나온 걸 들킬 텐데.
그냥 도망을…….
“아가! 너는 빨리 가! 우리가 어떻게든 막아볼 테니까!”
“빨리! 뛰어!”
메르데스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인간 둘의 등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도망쳐도…… 되나?
그래도 되는 건가?
그 순간, 세키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가 주그면 넌 어떨 거 가튼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세키나가 죽으면 화가 날 것 같다.
그리고 또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앞을 막아서고 있는 이 인간 둘이 죽으면 화가 날 것 같다.
그러니까,
‘도망 안 쳐.’
메르데스는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아까는 상상치 못한 인간들의 기세에 다소 놀라 겁을 먹긴 했지만, 메르데스는 위대한 검사.
이깟 환수들에게 당할 리 없다.
“인간! 꺼져! 내가 간다!”
“뭐라고? 아가, 네가 나설 자리가……!”
“꺼지라고!”
타다닷!
메르데스는 인간의 등을 발로 찬 뒤 그 반동을 이용해 공중에 떴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 있는 환수의 정중앙을 검으로 그었다.
촤아악-!
반으로 갈리는 환수를 뒤로하고 메르데스는 다시 날아올랐다.
환수는 총 셋.
하나를 쓰러뜨렸으니 나머지 둘만 잡으면 되리라. 메르데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바로 그때였다.
“얼씨구?”
앳된 느낌이 나는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목소리의 주인을 메르데스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소리가 들려온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세, 세키나?”
“구래. 나다.”
세키나는 손 안의 병을 빙빙 돌리며 메르데스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무셔서 안 나온다는 넘 어디 가써? 네가 왜 여기찌? 글고 이게 먼 지랄이지?”
“어, 어…… 그게…….”
“내가 개고쌩을 해서 여기 인간 사는 영지처럼 만드러 놔떠니, 이러케 개판을 만드러 놔? 디질래?”
세키나는 금방이라도 메르데스를 또 때릴 것처럼 으르렁거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아니,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메르데스는 세키나를 향해 달려드는 환수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어! 환수! 환수 조심해!”
“머?”
세키나는 환수가 달려오는 방향을 향해 눈을 휙 돌렸다. 그리고…….
“디질래?”
한 손으로 환수를 낚아챘다.
……저렇게 환수를 잡을 수도 있는 거였나? 진짜? 저거 정령인데?
“얻다 대고 덤벼. 소멸대고 싶냐?”
-케에엑!
환수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어쩐지 환수는 쫄아서 눈을 깐 것처럼 보였다. 메르데스는 자신도 모르게 꼴깍 마른침을 삼켰다.
“이, 이게 무슨…….”
“내가 지금 헛걸 보나?”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인간 두 명이 입을 쩍 벌린 채 중얼거렸다.
아차. 메르데스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인간에게는 들키면 안 된다고 수도 없이 들었는데, 이렇게 들켜 버리다니!
어떡하지?
이러다 폐기가 되면 나는……!
“어어. 니들 헛거 보는 거 마자.”
이때, 세키나가 나섰다.
세키나는 움켜쥐었던 환수를 바닥에 패대기치고, 가지고 왔던 유리병의 마개를 열었다.
뽕!
소리를 내며 유리병이 열렸고, 열린 입구를 통해 보라색 연기가 풀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30분 기억 지어주는 약이야. 이거 뿌려쓰니까 저넘들 기억 몬할 꺼야.”
말대로 연기를 맡은 인간들은 풀썩풀썩 쓰러졌다.
이곳이 번화가에서 거리가 있는 골목길 상점인 게 천만다행이었다. 인간은 고작해야 다섯밖에 없었으니까.
“하아…….”
이제야 긴장이 풀린 메르데스는 철퍼덕 주저앉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고마워, 세키나. 정말 고마워.”
세키나는 그런 메르데스를 내려다보며 눈을 찡그렸다.
하지만 표정이 마냥 안 좋은 건 아니었다. 세키나의 머릿속은 팽팽 돌아가고 있었다.
‘방금 전에 인간을 도우려 했지?’
흐음.
왜 도우려 했을까?
뭔가 느낀 걸까?
어쩌면 이놈에게서도 니킬처럼 힘을 뽑아낼 수 있지 않을까?
세키나의 입술이 비죽 열렸다.
“고마우면 니가 정리해. 전이랑 또가티 만들면 대. 글구 이따 나랑 얘기 쫌…….”
하지만 말은 끝마쳐지지 못했다.
아니,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숨이 턱턱 막혀오는 찐득한 기운이 세키나의 목을 옭아맸기 때문이다.
“컥, 커헉…….”
이 더럽고 짜증 나고 음습한 기운은 대체 뭐지?
세키나는 움직이지 않는 몸 대신 눈동자만 데구루루 굴려 옆을 쳐다보았다.
메르데스의 경악한 얼굴이 보인다.
그는 주저앉은 그대로, 세키나의 뒤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마, 마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