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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님이 만드는 파멸엔딩 (37)화 (38/149)

37화

“우, 우는 그야? 왜?”

너무 당황해서 벌떡 몸을 일으킨 나는 차마 아서에게 손도 대지 못하고 식은땀을 흘렸다.

일어나자마자 보는 게 바로 이런 모습이라니. 굉장히 난감하네.

“크흠! 누가 울었다고 그러십니까? 저 안 울었습니다!”

아서는 손등으로 눈가를 벅벅 비비며 외쳤다.

아니, 부정하기에는 방금 전에 뚝뚝 흐르는 눈물을 봤는데.

민망해져서 옆에 있는 마르틴을 쳐다보았다. 한데 마르틴의 표정도 조금 오묘했다. 평소처럼 험상궂은 인상이 아니라, 뭐랄까…….

“……웃고 있는 그야?”

희미하지만 웃고 있었다.

다들 왜 이래.

어디 아픈가 봐.

“누어 있써야 하는 거 내가 아니고 너네 아니야? 왜 그래, 지짜?”

“크흠!”

내 당황을 느낀 모양인지 아서가 잔기침을 하고 정신을 차렸다.

“세키나 님.”

그리고 내 손을 감쌌다.

“걱정했습니다.”

그 순간, 나는 손끝에서부터 느껴지는 따사로운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굳이 아서의 얼굴을 보거나, 그의 진심을 파악해 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됐다.

그가 날 걱정하는 진실된 마음은 충분하게 느껴졌으니까.

이게…… 얼마 만이지?

아니, ‘얼마 만’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이런 순수한 감정, 마음을 다해 상대를 헤아리는 이러한 감정을 내가 느껴본 적이 있긴 하던가?

게임에 빙의하기 전에도 사랑 한 톨 받아 본 적 없었던 나였다. 그때에도 가족은 나를 가족이라 여겨주지 않았고,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존재는 없었으니까.

그런고로 지금 이와 같은 따뜻함은,

‘처음…….’

처음이었다.

어쩐지 나도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괜히 부끄러워져 고개를 푹 숙였다.

“참고로 저 진짜 안 울었습니다. 마족은 울지 않습니다. 눈물 같은 건 저희에게 존재하지 않아요.”

“거짓말. 나, 봤다. 우는 거.”

“안 울었다고요!”

마르틴의 놀림에 아서는 빽 소리쳤다. 그러다 다시 표정을 정돈하곤 날 잡은 손에 조금 힘을 주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일찍 일어나셨습니다. 다행이에요. 어디 불편한 데는 없으세요?”

“아기, 의원을 부를까? 검사를?”

또다시 걱정 어린 말에 난 작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냐. 나 갠차나. 하나두 안 아파.”

이제야 마음이 놓인 것일까?

아서의 얼굴이 보다 환해졌다.

“세키나 님은 참 대단하시네요. 그 마왕님을 바로 앞에서 만났는데도 이렇게 멀쩡하시고.”

“아기, 최고다.”

뭐, 그건 그렇다.

아무리 마왕의 힘이 봉인돼 있다 한들 ‘마왕’이었으니까. 온전한 마족도 아닌 3살짜리 아이가 마왕의 마기를 맞닥뜨리고 멀쩡히 살아있는 게 용한 일이긴 하다.

‘나도 위험하긴 했어.’

만약 그때 리아트가 안 왔다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마왕은 콕 집어 나만 노려 마기를 방출하고 있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리아트에게 감사 인사를 해야 하는데……. 아서와 마르틴의 눈치를 살폈다.

“리아트는? 리아트는 화 안 내써?”

“어, 으음.”

“…….”

“나중에 만나면 아시게 되지 않을까요? 하하. 지금 굳이 그쪽을 생각하지는 않아도 될 거 같은데!”

“그렇다. 괴로운 일은 미뤄두는 거다.”

이상하리만큼 서로 눈치를 살피면서 대답하는데, 난감한 표정을 보아하니 안 물어봐도 대충 상황이 그려졌다.

‘개빡쳐 있겠군.’

얼마나 혼날까……. 벌써부터 무서워졌다.

이마를 짚었다.

“구럼 메르데스는 어케 대써? 걔 안 죽었지?”

“안 죽었다. 살아있다. 멀쩡히는 아니지만.”

“어쩌면 우리 세키나 님은 마음도 이렇게 따뜻하실까. 다른 호문쿨루스를 걱정하시다니요.”

“머…… 안 주거따니 다행이네. 글구 나 걔 걱쩡하는 거 아냐.”

“네? 그럼요?”

“걘 나한테 주거야 대. 나오지 말라 했는데 기어코 나와서 이꼴로 만드러짜나.”

“아하. 직접 조지시겠다.”

“글치.”

“응원합니다!”

아서의 해맑고도 뇌 맑은 말을 뒤로 하고 난 창가 너머로 시선을 옮겼다.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시각.

쓰러지고 난 뒤 얼마나 지났을까? 아서를 돌아봤다.

“나 얼마 만에 일어난 고야?”

“사흘만이에요.”

“……사흘이라구?”

내 예상으로는 이틀이었는데, 사흘이나 지났다고?

당황스러웠다. 생각보다 길게 쓰러져 있는 것도 그랬지만 신관이 방문할 날짜가 하루나 지나있었으니까! 

“어, 어. 신관은? 어케 대써? 걔네 잘 와따 가써?”

“아…… 신관이요.”

내 다급한 질문에, 아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 빌어 처먹을 XX한 X의 새끼들은 아직 영지에 있습니다.”

내가 잘못 들었나.

“X놈의 XX들. 지들이 뭐라도 되는 줄 알고 여기까지 와서 개XX 하면서 뻗대는데, 후. 세키나 님을 걸고 맹세하겠습니다. 마왕님의 힘을 되찾는 순간 그 XX새끼들을 다 죽여 버리겠다고요.”

잘못 들은 게 아니구나.

맨날 아서의 순둥순둥한 얼굴만 보고 까먹는다니까. 이놈의 입은 욕쟁이 할머니보다 더 험하다는 걸.

“신관들, 저녁에 밥 같이 먹는다. 아기, 원하면 나와 간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다. 난 눈을 반짝이다가, 이내 방문한 놈들의 이름을 떠올리고 쯧 혀를 찼다.

“아냐. 난 안 갈래. 구냥 쉴래.”

“그래도 되겠나?”

“웅. 먼일 이쓰면 리아트가 말하게찌.”

마음만 같아서는 나도 같이 밥을 먹으면서 신관 놈들을 살피고 싶었지만, 그래선 안 됐다. 왜냐고?

‘용사가 있으니까.’

드한. 그놈이 섞여 있을 거다.

‘아직 종자일 텐데 왜 여기까지 같이 왔대?’

하여간 도움이 안 되는 놈 같으니라고.

난 에휴 한숨을 뱉었다.

“구럼 걔네는 머하고 있는데? 영지를 다 보고도 남을 시간이어쓸 텐데.”

“음…….”

내 질문에 아서는 답을 찾겠다는 듯 비음을 길게 내뱉다가, 한 마디로 일축했다.

“싸우고 있던데요.”

뭘 한다고?

***

“신관님! 여기 있었어요?”

사제, 안나는 간신히 찾은 유리엘의 신관복 소매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아침부터 대체 어디 갔었어요? 그리고 이런 데에 왜 있는 건데요?”

말대로, 유리엘은 다이몬 백작령의 상업지구 중에서도 골목길에 숨어 있었다. 안나가 이 골목길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았다면 유리엘을 찾지 못했으리라.

“어…… 조사할 게 좀 있어서.”

유리엘은 길게 늘어뜨린 백금발 머리칼을 한쪽으로 넘기며 대답했다.

“조사요? 뭐요? 여기 뭐 있어요?”

“아니……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의심이 된달까.”

“의심이요? 뭐요? 뭔데요?”

안나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녀는 신전에 들어온 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사제다.

하지만 특유의 친화력과 해맑음으로 신전의 여러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고 있었는데, 고위 신관 유리엘 역시 마찬가지였다.

유리엘은 소심하고 유약해 다른 신관들과 친해지지 못하고 있었는데, 마치 지반을 뚫어 버리는 것처럼 달려드는 안나의 친근함에 끌려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별건 아니야……. 그냥 조사만 하려는 거야…….”

“문제가 있는 거예요? 그럼 다른 신관님들께도 말씀드릴까요?”

“아니, 아니! 그것까지는 아닌 거 같고…….”

유리엘은 우물쭈물하면서 힐끗힐끗 바닥을 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내가 한번 알아보고 말해 줄게……. 아직은 뭘 말할 게 없는 거 같아서…….”

“흐음. 그래요?”

안나는 팔짱을 낀 채 심드렁하게 반문했다.

사실, 사제 신분인 안나가 고위 신관인 유리엘에게 이렇게 친근하게 구는 건 예법상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유리엘이 받아들이고 있고, 또 유리엘은 어딜 가나 입김이 큰 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용납이 되는 거였다.

‘나한테 화를 낼 만큼의 기개도 없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속으로 유리엘을 낮잡아 본 안나가 피식 웃었다.

‘신성력을 쓰는 것도 많이 못 봤어. 분명 과대평가 된 걸 거야.’

고위 신관은 대신관이 되지 못한 만년 2등이 겨우 차지할 수 있는 자리일 뿐.

자신이 신관만 된다면 유리엘 따위 금세 뛰어넘을 수 있다고 자부하는 안나는 더더욱 입가에 비소를 지었다.

“그럼 저 먼저 가요?”

“으응……. 만찬 때까지는 갈게…….”

“뭐, 그러세요. 그래도 대신관님께는 혼자 있었다고 말씀하시면 안 돼요! 선배 곁에 있으라는 명령 받았단 말이에요.”

“으응, 알았어…….”

“사실 여긴 제가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어야 할 만큼 조심할 것도 없잖아요. 생각보다 영지가 꽤 쾌적하니까요. 의심했던 게 미안해질 만큼.”

안나의 말에 유리엘은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래도 조심은 하세요. 아셨죠?”

“알았어…….”

“그럼 저 먼저 갈게요! 늦지 않게 오세요!”

안나는 그대로 골목길을 빠져나갔고, 유리엘은 그제야 몸에 주었던 긴장을 풀며 벽을 짚었다.

그리고 힐끗 시선을 내려 바닥을 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땅바닥에 남아있는 ‘마법’의 흔적을.

-마족? 그런 허무맹랑한 말을 믿고 있는 건가?

-마족이 발견되지 않은 지 벌써 이백 년이 지났네. 이쯤 되면 그들이 멸족됐다고도 볼 수 있지 않겠나?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잔 말일세. 다이몬 백작가는 황실의 신임을 받고 있는 곳이니.

유리엘은 눈썹을 찌푸리며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북부성 신전의 신관들은 수없이 마물을 맞닥뜨렸음에도 불구하고 마족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었다. 마족을 긍정하는 것은 중앙성 신전의 교황, 추기경, 그리고 몇몇의 대신관들밖에 없다.

-유리엘. 네가 알아보거라.

너무나도 과중한 업무다.

부담이 크다.

유리엘은 까득 어금니를 깨물었지만, 이내 체념하며 천천히 무릎을 굽혀 바닥에 앉았다.

“의심하라…… 그리하면…….”

유리엘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리하면 악을 섬멸할 수 있느니. 싸워라. 그리하면 혼돈은 끝끝내 물러가고, 질서가 세상에 자리하리다.”

어?

유리엘은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마자 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가득 찼다.

“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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