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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님이 만드는 파멸엔딩 (39)화 (40/149)

39화

세키나의 얼굴이 파리해졌다.

그럴 수밖에.

방금 전까지 죽다 살아난 아이에게 넌 또 죽을 거라는 선고를 내린 것과 다름없으니까.

‘골치 아프군.’

리아트는 뒷머리를 헝클며 얼마 전 마왕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성능이 꽤 좋아 보이더군.

-세키나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그 보라색 머리.

마왕은 그리 대꾸하며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마기를 맞고도 멀쩡한 호문쿨루스라.

그 표정을 보자마자 리아트는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지 궁금하군.

가슴이 쿵! 하고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뭐지?

리아트는 제 가슴이 마구잡이로 뛰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피가 솟구치는 것도, 뒷목이 뜨거워지는 것도 모두 알아챘다.

이게 어떤 감정에서 비롯된 신체 변화인지는 알지 못했다. 다만 확신할 수 있는 건 마왕에게서 세키나를…….

‘어쩌려고?’

세키나는 호문쿨루스다.

최근 조금 가까워지긴 했다만, 단지 그뿐이다. 자신은 마족이고, 세키나는 저가 만들어낸 호문쿨루스다.

마왕님의 봉인이 풀리면 그들은 폐기될 것이다. 죽을 것이다.

어차피 죽게 될 것, 마왕님의 흥미를 위해 소비되다 죽는 것도 괜찮지 않은가? 마왕님을 위해 죽는 것이라면 기쁘게 죽어도 되는 것 아닌가?

이제껏 나는 그렇게 생각해 오지 않았었나?

혼란스러웠다.

왜 세키나에게만 이렇게 답답한 느낌이 드는 건지.

그리고 왜 마왕님을 막아서고 싶은 건지.

이해가 안 됐고,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쩌면 인간계에서 오래 있어 생긴 부작용일 수도 있었다. 인간계는 마계에 비해 경박했으니까. 그 물이 들은 것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일단은 지켜보자 생각했건만.’

왜 세키나의 창백한 얼굴을 보니 또다시 가슴이 아픈 것인가?

리아트는 스스로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구니까, 마왕님이 나를 데리구 시험을 할 꺼다?”

“……아마 그러겠지. 너의 능력을 높이 보신 것 같으니.”

“오…….”

세키나는 뒷짐 진 손을 꼭 붙잡았다.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이건 기회였다.

몰래 마왕성을 빠져나간 것을 상쇄시킬 수 있을 만큼의 좋은 기회.

세키나는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너는 지금 소환술을 쓰지 못하고 있지.”

아, 맞다. 그런 설정이었지.

지난 2년간 소환을 제대로 하지 않았던 세키나였다.

그래서 리아트도 세키나가 소환술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였다.

“네가 해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은 해 놨지만, 마왕님께서 어떻게 받아들이실지는 모른다. 네가 소환하지 못한다면…….”

리아트는 말끝을 흐리다가, 이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소환진에 놓이는 것이 마물이 아닌 네 몸이 되겠지.”

“오……. 구런 잔인한 말을 어린 애 앞에서 해도 대여?”

“이게 잔인한가?”

“히유. 마족이란.”

기본적인 도덕관념이 인간과 다른 종족 같으니라고.

고개를 두어 번 젓던 세키나는 이내 리아트의 책상에 팔을 대고 손바닥에 턱을 괴며 생긋 웃었다.

“삼쫀. 걱정 마라여. 나 할 쑤 이써여.”

“……걱정?”

“웅. 걱정 마라여. 난 살 꺼거든. 여기서 주글 수는 업꺼든.”

빵실빵실 웃는 세키나를 보며 리아트는 잠시 넋을 놓았다.

방금까지 그는 자신의 가슴이 왜 이렇게도 무거운지, 왜 이렇게도 기분이 좋지 않은지에 대해 궁금해했다.

그런데 답이 나왔다.

“아아.”

정말 어처구니없게도,

“내가, 걱정하고 있는 것이었구나.”

세키나를 걱정하고 있는 거였다.

위대한 마족인 내가, 고귀하고 고결한 마족인 내가, 고작 실험체일 뿐인 호문쿨루스를 걱정하고 있는 거였다.

“하, 하하…… 하하하!”

말도 안 되는 일.

하지만 그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세키나를 걱정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자마자 가슴의 고동이 가라앉지 않았는가.

정말 우스운 일.

그렇기 때문에…….

‘대단한 일.’

리아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세키나는,

‘왜 저래.’

뒷걸음질을 쳤다.

아니, 마족 놈들의 ‘걱정’이라는 단어는 뜻이 다른가?

왜 걱정한다는 말만 하면 저렇게 웃고 우는 거야?

으, 소름.

세키나는 팔뚝을 쓱쓱 쓸며 진저리를 쳤다.

“아마 소환술은 지금 당장 시험해 보지 않을 것이다.”

어느새 웃음을 멈춘 리아트가 말했다.

“신관들이 있으니, 혹시나 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 하시겠지.”

하긴.

내가 소환하는 건 마계의 마물이니까.

신관이 영지 내에 있는 상태에서 마물을 소환하면…… 어떻게 될지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그려졌다.

아직 제대로 힘을 갖추지 않은 지금은 그런 참상을 피하고 싶다.

“그럼 네가 할 것은 유물 귀속뿐이다. 그건 잘 할 수 있지 않느냐?”

“웅. 나 그건 잘해여.”

“그래. 하면 오늘은 살겠군.”

내일도 살 거거든.

“넌 죽지 않을 것이다.”

알아. 나 안 죽어.

“……그렇게 만들겠다.”

그래 주면 더 고맙고.

속마음을 숨긴 세키나는 생글생글 웃으며 리아트를 쳐다보았다.

그때였다.

우우웅, 하고 공기가 진동했다. 눈이 마주친 리아트와 세키나는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마왕.’

리아트는 마왕의 보좌관이었기에 마기가 익숙하고, 세키나 역시 얼마 전 맞닥뜨려봤기에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서둘러 자세를 바로 했다. 그리고 문을 투과해 들어오는 마왕을 바라보았다.

“함께 있었군.”

마왕은 리아트와 세키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리아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왕의 붉은 입가에 시린 비소가 맺혔다.

“리아트 경. 자네가 꽤 저것을 아끼나 봐.”

저것.

마왕은 턱 끝으로 세키나를 가리켰다. 리아트의 어깨가 살짝 떨린다.

들킨 건가?

내 속내를 들킨 건가?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생각에 잠겼던 리아트는, 이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리고 마왕의 두 눈을 똑바로 직시했다.

“예. 저는 이 호문쿨루스를 아끼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는 마왕의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다. 마왕은 마치 ‘원래 그러한 것’을 들은 것처럼 여상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리아트의 등골에 식은땀이 고였다.

“아끼는 이유는 저것이 그만큼의 능력이 있다는 뜻이겠지?”

“……네.”

마왕의 입꼬리가 비죽 올라갔다.

“너.”

그리고 세키나를 가리켰다.

“내게 뭘 보여줄 수 있느냐?”

그때까지 세키나는 살짝 넋을 놓고 있었다.

마기가 강하기 때문이 아니다. 마왕의 말이 짜증 나기 때문도 아니다.

그저,

‘아낀다고? 날?’

미친 거 아니야?

너무 당황했을 뿐이다.

마족이면 마족답게 굴어야지, 왜 그런 말을 해서 소름 돋게 만들어. 세키나는 으으, 진저리를 쳤다.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세키나는 숨을 가다듬고, 아직도 저를 바라보며 이죽이고 있는 마왕을 주시했다.

가까이서 본 마왕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젊었고, 훨씬 더 흉흉했다. 정말 까딱하다간 목이 잘릴 것처럼 공포심이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괜찮아.’

뭘 보여줄 수 있냐고 했으니,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 것.

세키나는 쓰러지기 전 대화했던 노딜을 떠올렸다.

-유물을 귀속시킬 수 있다지?

-너의 그 능력을 보고 판단해 보도록 하지. 곧 마왕님이 올 테니 말이다.

그렇게 말한 걸 보면, 마왕에게 새로운 유물이 있다는 거다.

그 유물을 귀속시키는 것부터 보여주면 될 테다.

여기까지 생각한 세키나는 생긋 웃으며 마왕과 눈을 마주했다.

“저눈 유물을 제걸로 만들 쑤 이써여. 유물이 이따면 보여드릴 수 있어여.”

그 말이 정답인 듯, 마왕의 웃음이 짙어지며 분위기가 다소 정제되었다.

“너의 시험 결과를 들은 후에 구해 온 것이 있지.”

쨍그랑!

세키나의 발치에 무언가가 떨어졌다.

“어디 한번 귀속시켜 보아라.”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티아라였다.

한눈에 봐도 값비싸 보이는 것뿐 아니라, 함부로 손을 대기에는 어려움이 느껴질 만큼 고귀한 느낌이 드는 왕관이었다.

리아트는 세키나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나 세키나가 겁을 먹었으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에.

하지만 세키나는 전혀 겁먹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겁보다는…….

“마왕님. 그. 이거. 혹시 서쪽에서 가져오신 건가여? 맞져? 진짜? 언제? 정확히 위치가 어디에서?”

조금 신나 보이는데.

왜 저러지?

리아트는 의아해했고, 이는 마왕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왕은 살짝 불쾌해진 표정으로 세키나를 쳐다보았지만 세키나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왜냐고?

이 티아라는 다름 아닌 ‘던전’에 있는 거였으니까!

‘와 씨, 게임에 딱 4개밖에 없는 던전을 어떻게 찾았대.’

보너스 게임식으로 넣어둔 건데 거길 찾았다니, 운빨 지린다.

그리 생각한 세키나는 마음속으로 엄지를 들어준 뒤 다시 마왕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동굴에 이거 말구 암것도 업써써요?”

“……없었는데.”

“엥? 아닐 걸여?”

세키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써쓸 거예여. 먼가가. 마왕님이 발견 몬 한 거야.”

“내가…… 못 찾은 것이 있다고?”

“넹. 거기 숨겨져 있거든여.”

마왕의 얼굴이 완전히 굳었다.

그러니까 이 건방진 호문쿨루스의 말에 따르면 그 동굴에는 뭔가가 숨겨져 있는데 마왕인 자신이 숨겨진 것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말도 안 되는……!

마왕의 노기가 튀어나오기 전에 리아트가 나섰다.

“세, 세키나. 그만하거라. 입조심해.”

“아녀! 저도 제 목쑴 소중한데, 요건 그럴 쑤가 업써서 그래여. 마왕님!”

마왕은 갑자기 당당해진 세키나의 기세에 살짝 질려 하며 눈썹을 찡그렸다.

“저 믿으세여?”

“……아니. 안 믿으려 한다.”

“믿으셔야 해여.”

“왜?”

마왕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내가 왜 널 믿어야 하지?”

잠깐 이 꼬맹이에게 말리긴 했지만 단지 그뿐이다.

건방진 호문쿨루스.

유물의 귀속이고 무엇이고 당장 목을 찢어 고통을 맛보게 해 주리……!

“마왕님의 보구 찾고 싶찌 안으세여?”

마왕의 두 눈이 커졌다.

“저랑 같이 가실래여, 보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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