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신은 유리엘에게 소심한 성격을 주었으나 그 대가로 엄청난 힘을 주었다.
그의 신성력은 대신관을 넘어설 정도였고, 그릇된 기운을 간파하는 능력은 추기경에 필적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신관들이 알아채지 못한 사악한 기운을 감지했다.
바로 이 어린아이에게서 말이다.
“미약한 기운이긴 하나 확실하게 느껴집니다. 이 아이에게서 어긋난 힘이 느껴집니다.”
유리엘은 만들어낸 빛의 창끝을 세키나에게 겨눴다.
틀림없다. 이건 사악한 기운이다.
죽여야 하나?
유리엘은 이를 으득 갈았다.
“유리엘! 지금 이 무슨 불경한 행동이란 말이냐!”
“일단 창을 내려놓고 말하거라. 아이 앞에서 그렇게 행동하면 안 돼!”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신관들은 질색을 하며 유리엘을 말렸다.
그 와중, 목 끝에 창이 들어와 있는 세키나는 의외로 침착해 보였다.
‘……유리엘?’
긴가민가했는데, 이름을 들으니 확실히 알 거 같다.
게임 후반부에 용사의 동료가 되는 놈?
네가 왜 여기서 나와……?
‘드한이 북부성 신전으로 와서 벌써 이놈과 만난 건가?’
하. 마족 놈들. 그러니까 왜 서부를 쳐들어가선 일을 다 꼬이게 만들어!
‘아니, 그리고 어이가 없네.’
옆에 버젓이 마왕이 있고 고위 마족이 있는데 왜 인간인 나한테 이러세요?
‘설마.’
아까 전에 파르데스에게 마왕의 힘을 넘겨받아서?
-가만 있어 바. 손 좀 잡고 있짜.
아! 가만 있으래두! 너한테 해 대는 거 아니야!
그렇게 억지로 힘을 강탈해 와서 내게 마왕의 흔적이 느껴지는 건가?
‘오. 큰일 났는데.’
세키나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물론 지금 당장 세키나의 몸에 신성력을 쏟아부어도 멀쩡할 거다. 왜냐고? 인간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하면 세키나가 호문쿨루스가 아니라는 걸 들킬 가능성이 있었다.
어떡하지?
세키나의 얼굴에 초조함이 서렸다.
“지금,”
이때, 내내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르카이츠가 반걸음 앞으로 나섰다.
“이게 무슨 짓인지 내가 납득할 수 있게끔 설명해야 할 것이다.”
그가 입을 엶과 동시에 주변 공기가 무거워졌고, 솜털이 쭈뼛 설 만큼 분위기가 날카로워졌다. 유리엘 뿐 아니라 다른 신관들 역시 숨을 콱 들이켰다.
“이 이상의 무례는 허락하지 않겠다.”
세키나의 등 뒤에 선 르카이츠는 그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꿀꺽. 누군가가 찐득한 침을 삼키며 뒷걸음질을 쳤다.
“아, 안 됩니다. 저, 저대로 두었다간 마기에 침식될 수도 있습니다!”
“유리엘! 그만!”
“하, 하지만……!”
창을 든 유리엘은 갈팡질팡하며 눈치를 살폈다.
아니, 분명 사악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여기서 물러서면 안 되는데! 눈 딱 감고 찌를까? 그럼 되지 않을까? 유리엘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저 멀쩡한데여.”
그런 유리엘에게 세키나가 성큼 다가왔다. 세키나는 머리에 쓰고 있던 티아라를 빼서 쭉 내밀었다.
“요거 때문 아닐까여? 요거 아까 보쓰가 선물해 준 건데, 보쓰가 어떤 지하 동굴에서 발견해따고 해꺼든여. 거기가 먼 문제 이썼던 거 아닐까여?”
세키나는 정말 태연한 얼굴로 말했지만, 사실 가슴은 마구잡이로 방방 뛰고 있었다.
이 구라가 먹힐지 확신이 안 섰으니까.
하지만 어떻게든 먹히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먹히지 않으면 여기서 다툼이 벌어질 테고, 그럼 또다시 시나리오가 꼬이게 될 테니까.
그래서 세키나는 다시 한번 환히 웃으며 말했다.
“요기에 축복을 내려 주쎄여. 구럼 이상한 게 사라질 꺼 가타여.”
유리엘은 세키나가 내민 티아라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여기서 기운이 느껴지는 거 같기도 하고……? 축복을 내려달라 말하는 걸 보니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티아라와 세키나를 번갈아 쳐다보던 유리엘의 뺨이 붉어졌다.
이렇게 작고 귀여운 아이를 의심했다니!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어졌다.
“죄송…… 죄송합니다. 제가 그것도 모르고 실례를…… 죄송합니다……. 축복은 후에 정식으로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며 중얼거렸다. 만들어낸 빛의 창은 사라진 지 오래다.
“세키나. 넌 그만 들어가 보거라.”
민망해진 분위기에서 리아트가 세키나를 향해 말했다. 티아라를 쥐고 있던 세키나의 손이 살짝 떨렸지만, 세키나는 모르는 척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넹. 다들 안뇽.”
세키나는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고, 저 뒤에 서 있는 드한을 향해서도 손을 흔든 후 자리를 떠났다.
아우, 안 들켜서 다행이다.
그리 생각하며.
***
“암도 업찌?”
방으로 돌아온 나는 방 안을 샅샅이 살피며 혼자 있는 걸 확인했다.
“으아아…….”
그리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지짜 별별 일이 다 있네.”
오늘은 참 많은 일이 일어났다. 마왕과 던전을 가게 됐고, 드한을 만났으며 파르데스의 변심을 확인하고 신관에게 위협을 당하기까지 했다. 며칠 평화롭다 했더니 이렇게 몰아칠 줄이야.
“죽겄네, 죽거써. 이대로 살다간 내 명에 몬살디.”
뻐근한 목을 돌리던 나는 허공을 향해 시선을 두었다.
“야, 시스템.”
일그러지는 공간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이제 신관 갔자나. 퀘스트 보상 내나.”
퀘스트를 잊지 않고 있었다고.
이 퀘스트를 성공시키려고 발바닥에 땀 나도록 영지 나가고 했던 건데, 받을 건 받아야지 않겠나?
띠링! 알림음이 울려 퍼졌다.
메인 퀘스트 <신전의 눈을 속여라!> 완료!
아슬아슬하긴 하지만 일단은 속여 넘겼군요!
여기서 끝이기를 바라 보세요. 물론 아니겠지만!
보상 1. 리아트의 완전한 지지(획득)
2. 마왕의 빠른 귀성 (획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