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기님이 만드는 파멸엔딩 (46)화 (47/149)

46화

느지막이 일어난 나는 아서의 부축을 받아 식당으로 왔다.

그리고 한 상 가득 차려진 식사를 먹고 있는 중이다.

“세키나 님. 맛있으세요?”

내 입가를 닦아 주며 아서가 물었다.

당연히 맛있다. 마족이 만든 괴상망측한 요리가 아니었으니까.

“웅. 마싯서.”

“인간을 어디다 쓸 수 있을까 했었는데 세키나 님의 기쁨을 위해 쓰게 되네요. 참 다행이에요.”

참 저렇게 순하게 생긴 얼굴로 무서운 말을 한다니까. 더 듣고 싶지 않아서 스테이크 한 조각을 포크로 콕 찍어 들어 올렸다.

“아써. 너도 머거.”

아서는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네? 아니에요. 저는 안 먹어도 돼요.”

“그래도 머거 바. 마싯는 건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기도 하니까.”

“흐음…… 그럼 한 입만.”

“웅.”

아서는 조심스럽게 내가 준 스테이크를 받아먹었다.

“오. 생각보단 맛있네요!”

“구치? 더 머글래?”

“아니요. 저는 괜찮아요. 세키나 님 다 드세요.”

맛있다고 하면서도 안 먹는다니. 살짝 서운해지려 한다.

“하도 음식을 안 먹다 보니 어색해서요. 나중에 더 연습한 다음에 먹을게요.”

“먹는 거에도 연씁이 피료하다니. 신기하네.”

가니쉬를 입 안에 욱여넣으며 물었다.

“구럼 마족은 밥 안 먹꼬 머 먹어?”

내가 괴상한 요리를 먹었던 이유. 마왕성에 이렇다 할 요리사가 없었던 이유.

이는 마족이 음식을 섭취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얘네는 대체 뭘 먹고 사는 걸까?

이런 건 알아두어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으므로 난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아서는 희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희는 마기를 먹어요. 정확히 말하면 먹는 게 아니고, 마기에 노출돼 있기만 해도 흡수가 되는 거지만요.”

“인간계에눈 마기가 업짜나."

“네, 맞아요. 그래서 저희는 항상 배고픈 상태랍니다.”

어쩐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두 시간도 아니고 매 순간 배가 고픈 상태라니. 배고프면 짜증 나는데.

‘어쩌면…….’

어제 내가 만들었던 ‘마계 연결 통로’를 이용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뭐, 지금 당장은 어떻게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괜찮아요. 적어도 오십 년은 아무것도 안 먹고 살 수 있으니까요. 엄청 약해지긴 하겠지만, 그 안에 마계로 돌아가기만 하면 되니까!”

“호옹. 구래. 고생이 마나.”

나도 너희와 같은 목표를 하고 있단다. 너희의 성공이 곧 내 성공이니 말이지.

‘그럼 일단 어제 시스템이 말한 대로 흑마법에 대해 알아봐야 하나.’

정말 귀찮지만, 번거롭지만, 어쩔 수 없다. 메인 퀘스트만 깨면 난 자유인으로 살 수 있는 거니까!

“세바스찬인가 먼가 걔는 어디써?”

그래서 일단 흑마법을 쓸 수 있는 세바스찬에게 빙벽에 대해 좀 더 물어보고자 한다. 금언 마법이 걸려있긴 하지만, 뭐. 에둘러서라도 대답해 줄 수 있겠지.

“으음……. 그놈이요.”

그런데 어째 아서의 반응이 이상했다.

뭔가 난처한 기색을 보인달까.

고개를 갸웃했다.

“왜? 걔 어딧눈데?”

“으음…….”

아서는 슬쩍 내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감옥……에 있죠?”

뭐, 어디? 감옥?

난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도 그럴 게 세바스찬을 데리고 온 건 바로 나였으니까. 그놈이 잘못하면 나까지 싸잡힐 수 있다는 뜻이다. 심장이 방방 뛰었다.

“걔 머 잘못 해써? 머 사고 쳐써? 머가 문젠데?”

“아. 아니요. 그건 아니에요. 괜찮아요, 세키나 님.”

아서는 그런 나를 토닥거리며 환히 웃었다.

“그냥 짜증 나서 가둬놨어요.”

“…….”

“문제는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

다시 말하지만, 아서는 정말 마족답지 않게 생겼다. 마치 지나가는 마을인1처럼 생겼달까. 가느다란 눈매와 하얀 피부, 항상 웃고 있는 얼굴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풀게 만든다. 한 마디로 무해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아서가 이렇게 내 상식에서 벗어난 말을 할 때마다 난 놀란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놈도 마족이었지…… 하고.

난 아서의 방긋방긋 웃는 얼굴을 애써 무시하며 접시로 시선을 돌렸다.

“식사 다하시고 나면 불러올게요. 어서 드세요.”

“우웅…….”

샐러드를 뒤적거리며 슬쩍 물었다.

“군데 혹씨나 해서 묻는 건데, 걔 때리지눈 안아찌?”

아서는 대답 대신 환하게 웃기만 했다.

뭐야. 왜 웃어. 무섭게.

“당근도 드세요. 편식하면 안 되지요.”

그리고 왜 대답을 제대로 안 해.

나 무서워…….

하지만 아서에게 개길 수는 없는 노릇.

“우웅……. 다 머글게…….”

난 얌전히 당근을 먹었다.

역시 실눈캐는 무섭다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

아침 식사를 마친 나는 소화시킬 겸, 바람을 쐴 겸 훈련장으로 나갔다.

세바스찬도 이곳으로 불러달라 했으니 여기서 기다리면 될 거다.

“헛둘! 헛둘!”

“야야, 뒤에 뒤처진다! 속도 내라!”

훈련장에는 1군단 마족들이 뛰고 있었다.

원래라면 내가 아침 식사를 할 시간쯤에 뜀박질을 끝낼 텐데, 아직까지 뛰고 있다고?

무슨 일 있나, 살짝 의문이 생길 때쯤 나는 그 이유를 바로 발견할 수 있었다.

“말틴……?”

맨 앞에서 힘차게 뛰고 있는 마르틴이 보였다.

아니, 쟤가 왜 저기 있어?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에도 안 보였지.’

원래라면 방 한구석에서 자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머…… 마왕이 와서 훈련하구 있눈 건가.”

이렇게 생각하니 저놈이 3년 만에 훈련장에서 뛰고 있는 게 이해가 됐다.

“머. 상사한테눈 잘 보이는 게 체고니까.”

난 중얼거리며 근처 벤치에 앉았다.

여전히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쳐 지나간다. 하늘이 칙칙한 걸 보니 오늘도 또 눈이 올 것 같았다.

발열 마법을 두르고 있기에 춥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시사철 이렇게 칙칙한 하늘만 보는 건 지겨웠다. 좀 봄꽃도 피고, 하늘도 맑았으면 좋겠는데.

‘빙벽 속에 마물을 없애면 날씨도 좋아지려나?’

물론 지금 내 힘으로 없앨 수는 없지만!

‘마법 연습해야 하는데.’

마나써클을 만들어 보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잘되지 않았다. 마력은 충분하고, 지식도 완벽한데 왜 안 되는지 잘 모르겠다.

뭐가 문제지.

그렇게 고민을 이어 나가고 있는 때였다.

“어! 세키나 님!”

뜀박질을 끝낸 1군단 마족들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와. 마왕 놈 보다가 저놈들 보니까 마음이 좀 편해진다.

쟤네는 그래도 내게 호의적이고, 또 멍청해서 다루기 쉬웠으니까.

그래. 내 오늘은 너희와 친히 놀아 주겠…….

“와아! 몰래 성 빠져나갔다가 마왕님한테 들켜서 기절하고 실려 온 세키나 님 오셨다!”

……거 말이 좀 심하십니다.

“세키나 님! 저는 세키나 님 안 죽는다에 돈 걸었었어요! 쟤는 죽는다에 걸었고요!”

돌은 자들. 미친 자들.

방금 전까지 저들을 좋게 봐주려 했던 나 자신을 퍽퍽 치며 어깨를 떨었다.

“걱쩡해도 모자랄 판에 내기를 해? 양심 어디가써?”

“저희는 양심이 없지요!”

“졸라 당당하게 말한다…….”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때에 이상한 말투를 쓰는 핑크 머리 마족이 내게 다가와 털썩 옆자리에 앉았다.

“그래도 세키나 님 걱정했죠? 걱정하느라 나 잠도 못 잤죠?”

“나 걱정해써?”

“많이 했죠? 이렇게 다크써클이 생길 만큼? 내 완벽한 외모에 흠이 가게 생겼죠? 책임져야 하죠?”

그 이상한 말투만 안 쓰면 좀 더 고마워질 텐데, 말의 내용과는 달리 그가 너무 얄미웠다.

“지금 니 입으로 완벽한 외모라고 했냐? 양심이라는 게 없냐? 지금 너 개못생겼는데.”

“응, 452번 차인 놈이 시끄럽죠? 난 적어도 너보단 낫죠?”

“야이씨!”

“그렇게 많이 차였어? 신기하네. 난 한 번도 차여본 적이 없는데.”

싸우는 그들을 뒤로하고 난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얌. 나 너네한테 무러볼 거 있눈데.”

3명의 마족이 모두 나를 쳐다보았다.

“너네 마법은 어케 배워써?”

이놈들이 아무리 또라이 같고 미쳐있는 것 같아도, 1군단의 정예 마족들이다. 내 의문을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우웅. 나 지굼 갱장히 마력도 넘치구 그러는데 마나써클이 안 생기거둔. 머가 문제인지 몰게써서. 좀 도와줄래?”

마족들은 나를 쳐다보다가, 이내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족은 마나써클 안 만들죠? 우리는 타고난 마법을 쓰죠? 가문 별로 쓸 수 있는 마법이 따로 있죠?”

“호문쿨루스도 마찬가지예요. 태어나면서부터 쓸 수 있는 마법이 따로 있거든요. 니샤 님의 정령술, 파르데스 님의 연금술, 메르데스 님의 검기처럼 말이에요.”

“세키나 님은 소환술 아니에요?”

그러니까, 마족은 ‘정해진 마법’밖에 쓰지 못하고, 마왕의 힘으로 만들어진 호문쿨루스도 ‘정해진 마법’밖에 쓰지 못한다는 거였다.

그럼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나…….’

인간인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