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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님이 만드는 파멸엔딩 (48)화 (49/149)

48화

“물건을 만두는 게 능력이라니 특이하넹.”

세바스찬과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가 한 말이다.

“그쵸? 그래서 별로 인정은 못 받았어요.”

세바스찬은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어, 어쩐지 심각한 말 같은데. 괜히 난감해져서 눈치를 살폈다.

“전장에 나갈 수 없으니까 별 쓸모가 없는 능력이죠. 아, 물론 전 중급 마족입니다. 어디 가서 빠질 놈은 아니에요.”

그는 씨익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덕분에 분위기가 처지지 않아서, 난 안도의 숨을 내쉬며 슬쩍 질문했다.

“구래서 성에 안 드러온 거야?”

“그것 때문만은 아니고요. 그냥, 밖에 있는 게 더 재미있을 거 같았어요. 인간이랑 노는 게 재밌거든요.”

“아하. 인간이랑 노눈 게 재밌…… 머라고?”

난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귀를 후볐다.

“이, 인간이랑 노눈 게 재밌따구?”

“네. 재밌어요.”

하지만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세바스찬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밖에 있는 애들은 대부분 다 저처럼 생각해요. 인간은 보고 있다 보면 웃기거든요. 괴롭히는 맛도 나고.”

어쩐지 내가 생각하는 재미와 이놈이 생각하는 재미는 다른 결인 것 같다. 살짝 미간을 좁혔다.

“인간을 괴롭히는 게 재미써?”

“네. 웃기잖아요.”

“그러다 들키면 어칼라고?”

“뭐, 죽겠죠?”

세바스찬은 으쓱 어깨를 올리며 대꾸했다.

“딱히 죽는 건 안 무서워서요. 그냥 재미있으면 되는 거니까.”

모르겠다.

목숨을 내던질 만큼 재미있는 게 있나……?

“난 너네가 재밌따고 하는 게 먼지 몰게써.”

“재미가 그냥 재미죠. 별로 어려운 거 없어요.”

세바스찬은 내 방문을 열었고, 난 방 안으로 들어가며 말을 덧붙였다.

“인간들은 안 구러거든. 재미있따고 해서 무작정 뛰어들지 않는단 말이야. 군데 너히는 재밌따고 생각이 들면 앞뒤 안 가리구 덤벼들자나. 참 신기해.”

방문을 닫은 세바스찬은 흐음, 소리를 내며 팔짱을 꼈다.

“저도 그 부분에 대해서 심도 깊게 고민해 봤었거든요.”

“구래서?”

“저희는 딱히 지킬 게 없어서 그래요. 죽으면 그냥 끝이니까.”

이게 뭔 말이야. 이해가 안 돼서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니까, 인간들은 자기가 지켜야 할 것들이 있잖아요? 부모라거나, 자식이라거나, 연인이라거나, 그런 거요. 그리고 인간들은 죽으면 슬퍼해 줄 주변 인간들이 있기도 하고요.”

“머…… 그건 그러치?”

“그런데 저희는 없어요. 딱히 지킬 것도 없고, 그러다 죽어도 슬퍼해 줄 존재도 없고요. 그러니까 그냥 사는 거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즐기고.”

다시 말해서, 소중한 게 없기 때문에 목숨 자체가 소중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마족들이 개인주의가 강하고 이기적이고 어딘가 나사 빠진 놈들이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래도 제 목숨까지 이렇게 내팽개치는 줄은 몰랐다.

‘뇌 구조가 다른 건가.’

뺨을 긁적거리며 생각하던 나는 문득 아서를 떠올렸다.

-제가 이래 보여도 두 아이 아빠입니다. 애 다루는 건 아주 익숙하죠.

분명 처음 만났을 때 그런 말을 했었다.

자식을 사랑하는 것처럼 느껴졌단 말이다.

뭐가 다른 건가? 

“하지만 아써는 자식이 이따고 했는데. 보고 싶따고도 해써.”

“그래요?”

세바스찬은 눈을 느리게 깜빡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건 그분이 특이한 거예요. 대부분의 마족들은 가족이라는 게 없거든요. 자식이 생기면 교육기관에 맡기고, 끝. 남남이죠.”

“오…….”

진짜 이상한 종족이네.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를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서 경이라 하면 그분 자식들은…….”

세바스찬은 짐짓 심각을 표정을 한 채 중얼거렸다.

“머? 먼데?”

“어, 음. 아니에요. 어쨌든 마족들은 그렇다, 이거죠. 인간이랑은 기본적인 것 자체가 달라요.”

문득, 내가 판단하는 어긋난 가치관이 이들에게는 올바른 가치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그리고 내 기준 비도덕적인 행위라 할지라도 비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에게는 도덕이라는 것 자체가 없으니까.

‘어렵네.’

물론 이놈들과 오래 지내진 않을 거니까 오래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그럼 만들어 볼까요? 일단 간단한 스크롤부터 만들어 볼게요. 라이트 마법을 쓸 수 있는 걸로.”

“넘 간단한디.”

“오랜만에 하는 거라 저도 감을 잡아야 해서 그래요.”

“알써.”

“네, 해 볼게요.”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은 세바스찬은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종이를 꺼내고, 그걸 쥔 채 마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파앗-! 하고 빛이 일었다.

“자. 끝입니다!”

“……벌써?”

대단한데?

스크롤이란 마법을 약식화 해 놓은 종이이다. 종이를 찢으면 마법이 발동된다.

보통 이런 건 엄청난 마력이 들고, 또 고도화된 마법 수식이 필요해서 높은 등급의 마법사들만 만들 수 있다. 나도 전생에서 몇 번 만들어 봤지만 영 재능이 없어 몇 개 안 만들고 포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만들어내다니.

‘타고난 능력이라더니, 엄청나네.’

세바스찬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려주었다.

“구럼 담은 공격 마법해 조.”

“네,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위력은 그렇게 크지 않을 거예요. 제 원래 실력의 절반도 못 내고 있으니까요.”

세바스찬은 다시 종이를 꺼내 붙잡았다. 살짝 푸른 빛이 그의 손바닥에서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난 그 옆에 앉아 턱을 괴었다.

“군데, 세바스찬.”

그리고 일부러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너가 주그면 내가 슬퍼해 주께.”

촤아악!

종이를 뚫고 찐득한 액체가 솟구쳐 나왔다. 그 액체는 내게 쏟아졌고, 덕분에 난 머리부터 발끝까지 홀딱 젖게 되었다.

“시르면 실타고 해. 이딴 식으로 복쑤하지 말고.”

“아니, 아니! 아니요!”

세바스찬은 발을 동동 구르며 손사래를 쳤다.

“죄, 죄, 죄송해요. 아니, 순간 너무 당황해 가지고, 이게 이러면 안 되는데.”

그는 재킷을 벗어 내 얼굴을 닦아주며 덜덜 떨었다.

“제, 제가 워터볼을 만들려고 했던 거거든요. 그래서 물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순간 집중력이 깨져 가지고.”

이게 물이라고?

그런 것 치고는 냄새가 이상한데.

하수구 물 아니고?

“아아악! 잘못했습니다! 저 감옥 다시 가기 싫어요! 용서해 주세요!”

세바스찬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싹싹 빌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오면 내가 화를 낼 수 없…….

“몇 대만 맞짜.”

……지 않다.

좋은 말을 해 주고도 오물을 뒤집어쓴 지금 상황이 굉장히 억울했으니까.

“어금니 깍 깨물어라.”

“으으으!”

세바스찬은 눈을 질끈 감았고, 나는 주먹을 꽉 쥐고 몸을 회전시키고자 준비했다.

하지만,

“어어? 세키나? 그리고 이상한 마족? 둘이 뭐 하는 거야?”

느닷없이 나타난 메르데스 때문에 그대로 철퍼덕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겨우 닦았던 이상한 액체가 또 얼굴에 묻었다.

“아…… 오늘 일찐 왜 이러지.”

둘 다 때리고 싶다…….

난 눈을 질끈 감으며 중얼거렸다.

***

-나 씻꼬 나온다. 그때까지 대가리 박고 이써.

세키나가 욕실에 들어갈 때까지 사이좋게 머리를 박고 있던 세바스찬과 메르데스는 물소리가 나는 것을 들음과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세키나는 리아트 경한테 이상한 것만 배웠어. 머리 박으라는 거 리아트 경이 시키는 거거든.”

“예…… 저도 두 시간 동안 머리 박아 본 적 있어서 압니다…….”

세바스찬은 아픈 정수리를 살짝 문지르며 대꾸했다.

그러다 아차 하며 메르데스를 향해 꾸벅 인사했다.

“세바스찬이라고 합니다. 메르데스 님이시죠?”

“뭐야. 나 알고 있어?”

“마왕성의 쌍둥이는 유명하니까요.”

케르베로스를 데리고 다니면서 마족들 엉덩이를 조져놨던 일화가 유명하지. 성질 더러운 미친놈들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고.

개기지 말자.

세바스찬은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런데 세키나랑 뭐 하고 있던 거야?”

“아! 마법 스크롤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스크롤? 그건 왜?”

“세키나 님이 자기 몸을 지키고 싶다고 하셨거든요.”

메르데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지켜 주면 되는데 왜 그런 걸 굳이?”

그의 중얼거림에 세바스찬은 살짝 당황했다.

지킨다고?

마족이 마족을?

아무리 이들이 호문쿨루스라고 해도 이건 이상하지 않나?

세바스찬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메르데스 님은 세키나 님을 지키고 싶으신가요?”

“응. 그렇지!”

“왜요?”

메르데스는 세바스찬을 바라본 채 커다란 눈을 여러 번 깜빡였다.

“아마 세키나가 다치면 화가 날 거 같아서……?”

세바스찬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반쯤 벌렸다.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른 이가 다치는데 왜 내가 화가 난단 말인가? 호문쿨루스라 이러는 건가? 그래서 보다 인간 같은 건가? 의문이 이어지던 중, 문득 아까 전 세키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너가 주그면 내가 슬퍼해 주께.

그 말에 너무 놀라서 그만 사고를 쳤지.

“으으음.”

놀란 이유는 그런 말을 들어 볼 거라 상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고, 또…….

‘……기쁜가?’

마음이 울렁거렸기 때문이다.

세바스찬은 살짝 붉어진 뺨을 긁적이며 낮게 웃었다.

“저도 조금 화가 날까요?”

잘 모르겠지만, 어쩐지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을 거 같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이상한 놈이네.”

이 싸가지 없는 쌍둥이는 죽어도 화가 안 날 거 같다.

확실히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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