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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님이 만드는 파멸엔딩 (49)화 (50/149)

49화

내가 씻고 나오자 세바스찬은 혼자 집중해서 만드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말을 하고 가 버렸다.

아마도 계속 있으면 머리를 박은 상태로 마법을 써야 하지 않을까 추측하고 튄 것 같다.

‘눈치는 빨라 가지곤.’

아쉽게 됐다는 생각을 하며 머리를 박고 있는 메르데스를 쳐다보았다.

“이제 인나도 대.”

“응!”

메르데스는 재빨리 자세를 바로 하고 앉았다. 무릎은 꿇은 상태였다.

“너 내 방 온 거눈 처음 아냐?”

시간을 스킵했을 때, 쌍둥이는 내 방에 온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서와 마르틴을 제외한 그 어떤 마족도 내 방에 온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놈이 대체 왜 여기에 온 건지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 살짝 불안하다. 이놈은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놈이니까.

“맞아! 처음이야!”

“왜 온 건데? 빤니 말해. 나 피곤하니까.”

“세키나는 냉정해…….”

메르데스는 우는 척을 하며 내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내가 무표정하게 있자 우는 척을 그만두고 입을 열었다.

“나, 그때 만났던 인간들 있잖아.”

“인간들?”

“응! 우리 같이 영지 나갔을 때! 나랑 있던 인간들! 걔네가 환수 봐서 너가 기억 지우고 그랬잖아!”

그런 놈들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메르데스에게 너무 빡쳐 있던 것밖에 기억이 잘 안 난다.

“말은 똑바로 해야디. 같이 나간 게 아니구 니가 몰래 나온 거잔아.”

“그게 그거지. 아니, 그게 아니고! 어쨌든, 나 계속 신경이 쓰였거든. 그 인간들 말이야.”

요즘 마족은 인간에게 관심을 주는 게 유행인가……? 세바스찬도 그렇고, 얘도 그렇고, 다들 왜 이러지? 뺨을 긁적였다.

“걔네가…… 음…….”

메르데스는 두 손을 꼼지락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날 지키려고 했거든?”

난 그의 붉어진 귓불을 보며 다음 말을 들었다.

“자기네들이 더 약한데, 환수를 엄청 무서워하면서도 날 지키려 했단 말이야. 나보고 막 도망가라고도 하고. 아기라고 부르기도 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거든. 너는 이유를 알 것 같아서 물어보려고 온 거야.”

이전의 ‘교육’에서 내가 인간에 대해 설명했던 걸 떠올린 모양이다.

이 경우에는 어떻게 대답을 해줘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난 일단 입을 다물었다. 허튼 말을 했다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 말이다.

“아! 물론 나도 생각은 해봤거든?”

다행히도 메르데스가 먼저 말했다.

“그 인간들은 내가 여기 사는 걸 아는 거 아닐까? 그래서 날 구해 준 다음에 뭔가 대가를 받으려고! 아니면 날 살리고 납치한 다음에 돈을 요구하려고?”

“오. 너 상상력 주긴다…….”

5살 주제에 세상을 아네.

뭐,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내가 기억해 내는 그때 인간들은 경비대원 옷을 입고 있었다. 경비대에 소속된 놈이 그런 헛짓거리는 하지 않겠지.

물론 그들이 경비대원이었다는 건 말하지 않을 생각이다. 말하면 너는 어떻게 그런 걸 아냐, 조사를 따로 한 거냐 등등 물을 게 뻔했으니까.

그리고…….

‘인간에게 호감을 가지는 건 좋은 일이지.’

그래야 나중에 혹시라도 내가 인간인 게 밝혀져도 날 안 죽일 테니 말이다. 그래서 난 이름도 모르는 그 인간들을 살짝 옹호해 주고자 결심했다.

“너가 넘 어려서 그런 거 가튼데. 원래 인간들은 어린애한테 약하거든. 어린애가 주글 거 같으니까 구해주려 한 거겠찌. 나쁜 뜻은 업섯을 거야.”

메르데스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하지만…… 인간들은 어린애들을 팔아넘기잖아? 3장로님이 그랬어, 인간들은 어린애를 노예로 팔아넘기는 경우가 많다고.”

“애한테 별거를 다 가르쳤네…….”

“응?”

“아냐. 그냥 3장로가 미친넘이라는 생각을 한 것 뿐야.”

하여간 장로 중에 도움 되는 놈이 없다니까. 입을 비죽였다.

“머. 그넘 말대로 그런 경우도 있끼는 하지. 요 영지에서 살고 있눈 인간들 중에 노예 출신도 많구.”

“그럼 역시 그 인간들은 나를 팔아넘기기 위해 구하려 했던 걸까?! 역시 그때 내가 그놈들을 죽였어야 했나?!”

“…….”

이 빡대가리 새끼를 어떻게 하면 좋지.

아니, 아니다.

이놈은 인간이 아니다.

사회화가 덜 된 짐승 새끼다.

태어나면서부터 인간혐오를 들으며 자라왔으니 이러는 게 당연하지.

그러니 어른인 내가 참자. 흥분하지 말자.

난 어떻게 하면 이 빡대가리 메르데스에게 쉽게 설명을 해 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

“너, 리아트 경이랑 말틴이랑 같은 마족이라구 생각해?”

“절대 아니. 둘은 아예 다른 종족 같아. 애초에 크기가 두 배 차이 나지 않나?”

“성격 말이야. 밥팅아.”

“아하.”

메르데스는 헤실헤실 웃은 뒤 눈을 굴렸다.

“으음…… 다르지? 리아트 경은 좀 냉정하고, 마르틴 경은… 말은 안 섞어봤지만 널 예뻐하는 게 느껴졌었어. 생긴 거랑은 다르게 친절한 거 같기도 했고.”

“우웅. 그치.”

고개를 끄덕였다.

“마족이라고 싸잡아두 그 안에서 여러모로 다르지? 인간두 똑가태. 노예상을 하는 인간들도 있겠찌. 멍청하고 나쁜 넘들도 이써. 하지만 반대로 멍청하지만 착한 넘들도 이써. 다 다른 그야.”

메르데스의 입이 벌어졌다.

“그럼…… 그 인간들은?”

“널 구냥 구한 거지.”

메르데스의 표정이 또 오묘해졌다. 그는 고개를 까딱까딱거리며 입술을 비죽거렸는데, 자신의 기준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린이는 스스로 생각하게끔 두어야 했으므로 나는 더 말을 하지 않았다.

“신기하다…….”

그는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읊조리듯 말했다.

“그냥이라는 게 신기해. 우린 그런 게 없잖아. 그냥 구한다고? 그냥…… 흐으으음…….”

그러다 번쩍 고개를 들어 올렸다.

“나 구해 줬던 인간들 다시 만나보고 싶어!”

“엥?”

“그러니까 같이 나가자!”

뭐라는 거야. 귀찮게.

난 질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몰래 나가따가 걸려서 디지게 혼난 건 기억 몬하나 보네.”

“안 들키면 되지 않을까?”

“지금 성에 마왕님이 있눈데 어케 안 들켜. 멍청이냐?”

“그럼 들킬 걸 각오하고 나가는 건?”

“그러다 세상 떠나고 시프면 그러케 해. 근데 난 안 해.”

하여간 마족들이란. 재미있는 거에 사족을 못 쓰지.

난 그러지 않는다. 나는 이성적이고 냉철한 인간이므로 계획한 대로 행동할 거다. 애초에 난 인티제라고.

“아아! 나 나가고 싶단 말이야! 근데 혼자는 진짜 못 나가겠어! 또 사고 칠까 봐!”

“구럼 안 나가면 대잔아.”

“나가고 싶다고어어어!”

“구냥 내 방에서 나가기나 해라.”

“아아! 세키나아아아!”

시끄러워…….

때릴까? 바르쥔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그때였다.

“어.”

덜컥, 하고 문이 열리더니 마르틴이 들어왔다. 그는 드러누워 생떼를 부리고 있는 메르데스와 그 앞에 앉아 한숨을 쉬고 있는 나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기, 또 아기. 놀고 있나? 나 방해되나?”

“마르틴 경! 아니! 방해 안 돼!”

메르데스는 마르틴을 보자마자 눈을 반짝이며 튕겨 일어났다.

쟤 마르틴이랑 별로 안 친했던 거 같은데.

왜 저러…….

“우리, 나가고 싶어! 데리고 가줘! 세키나! 마르틴 경이랑 같이 나가는 거면 괜찮을 테니까 나가자!”

……목적이 있는 친분이었구나.

진짜 싫다.

***

“나, 리아트에게 허락받았다. 아기와 아기, 나와 같이 나간다.”

“네! 좋아!”

“약속한다, 절대 안 떨어지기로.”

“네! 네!”

나가기 싫다고 열 번은 말했는데,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은 모양이다. 어쩐지 격양돼 있는 마르틴과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고 있는 메르데스를 보며 나는 길게 한숨을 뱉었다.

“아기, 대답?”

“예에…….”

귀찮아 죽겠네, 진짜.

하지만 이미 함께 나가기로 했으니 무를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난 마르틴의 소매를 쭉 잡아당기며 말했다.

“말틴. 나 업어 조.”

걷는 걸 마르틴에게 시키면 덜 귀찮아지겠지, 생각하며.

“나, 아기 안는 거 좋아한다.”

“웅. 아니까 업어달라는 거야.”

마르틴은 희미하게 웃으며 나를 덥석 안아 들었다. 그러고는 힐끗 메르데스를 쳐다보았다.

“다른 아기, 너도 업히는 건 어떤가?”

“어, 어? 나, 나도?”

메르데스는 잠깐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마르틴을 향해 두 팔을 활짝 펼쳤다.

“재미있을 거 같아! 마르틴 경은 크니까!”

그래서 마르틴은 왼손에 나, 오른손에 메르데스를 안고 걷기 시작했다.

쿵, 쿵.

그가 걸을 때마다 지면이 울렸지만 그래도 뭐, 승차감은 나쁘지 않았다.

이대로 영지를 돌아다니다가 오면 되겠지. 하품을 크게 하며 읊조렸다.

“근데 있잖아. 나 궁금한 거 있어.”

“말하디 마. 넌 말하면 열받으니까.”

“세키나는 리아트 경한테 삼촌이라고 부르고 있잖아. 그치?”

“오… 내 말은 무시하는디.”

내가 꿍얼거렸지만 메르데스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럼 세키나한테 마르틴 경도 삼촌이야?”

움찔. 마르틴의 걸음이 살짝 어색해졌다.

“머. 글치? 리아트나 말틴이나 나한테눈 똑같으니까.”

또다시 움찔거리는 게 느껴져서 난 마르틴의 팔을 더 꽉 붙잡았다.

“그렇구나…….”

메르데스는 흐음 비음을 내며 눈을 도로록 굴리다가, 이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나는 세키나의 오빠니까 마르틴 경도 내 삼촌이네!”

마르틴의 목을 그러안은 메르데스는 베시시 미소지었다.

“우리 가족같다! 그치?”

……뭐야.

왜 이렇게 불쌍하게 말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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