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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님이 만드는 파멸엔딩 (50)화 (51/149)

50화

“…….”

마르틴은 메르데스의 환히 웃는 얼굴을 보며 침음을 흘렸다. 그리고 대답을 하지 않았는데, 무어라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족이라니?

물론 세키나에게 삼촌 소리를 듣는 건 좋지만, 그리고 지금처럼 함께 외출하는 것도 좋지만, 가족이라니. 그런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이건 세키나를 덜 위하고 하는 게 아니고, 마르틴을 비롯한 마족들에게는 가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희미하기 때문이었다.

메르데스도 온전한 마족이 아니기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건가?

그렇다면 세키나도?

마르틴은 대답 없는 세키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세키나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

마르틴은 마족 중에서도 다소 특이한 놈이었다. 그는 마족 외의 다른 생명체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이건 어떤 방대한 뜻이 있어서가 아니고 그저 마족에게조차 환영받지 못하는 마르틴이기에 자신을 반기기만 한다면 종족이 상관없어지는 것이었다.

마르틴뿐 아니라 아서도, 아니, 1군단 마족들 모두 다 마르틴과 비슷했다.

정예부대인 놈들이지만 하나같이 어딘가 결여되어 있는 놈이라, 자신에게 호감을 표하기만 하면 좋다고 방방 뛰는 게 일상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마족이지만 모두를 흐뭇하게 보는’ 정도일 뿐이라서 방금 메르데스가 이야기한 ‘가족’이라는 것에는 쉽사리 공감할 수가 없었다.

가족을 이야기하려면 자신이 아니라 아서가 나서야지 않을까. 아서는 마족 중에서도 특이하게 가족 군집을 만든 놈이었으니까.

“왜 둘 다 말이 없어? 나 지금 좀 민망해지는데…….”

메르데스는 살짝 눈치를 살피며 마르틴과 세키나를 쳐다보았다. 어째 비 맞은 짐승처럼 귀가 축 처져 있는 것 같다. 마르틴은 그런 메르데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나, 가족이 뭔지 잘 모른다.”

마르틴은 나름대로 부드러운 태도를 취하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기가 뭘 말하는지는 알겠다.”

“어, 진짜?”

“아기가 원한다면 나, 가족처럼 행동해 줄 수 있다.”

메르데스의 눈이 반짝였다.

사실 별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다. 세키나는 다른 마족들에게 예쁨을 받고 있는데, 자신은 그러지 않으니까. 그래서 호칭이라도 달리하면서 거리감을 좁히고 싶었던 것뿐이다.

그런데 가족처럼 행동해 줄 수 있다니. 예상외의 수확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가족처럼 행동해 주는 게 뭐야?”

메르데스 역시도 가족이 뭔지 잘 모른다는 거다.

세키나라면 알 수 있지 않을까?

메르데스는 세키나에게 눈을 돌렸다.

“세키나. 가족이 정확히 뭐야? 뭘 해야 하는 거야?”

세키나는 그제야 푹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리고 메르데스를 쳐다보았다.

“그것또 모르면서 불쌍한 말을 막 하냐?”

“아니, 그냥 나는 세키나가 부러워서…….”

“내가 부럽따고?”

세키나는 헛웃음을 뱉었다.

내가 부럽다고? 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부럽다고?

“나도 가족이 먼지 몰라. 가져본 적또 업는데 그런 걸 어케 알아.”

세키나는 쯧 혀를 찼다.

“그리고 어짜피 우리는 말틴이랑 다른 종족 아니야? 군데 먼 가족이야. 가족 놀이 하고 시픈 거면 딴 넘 찾아 바.”

다소 날이 서 있는 말투였다. 그래서 메르데스뿐 아니라 마르틴도 놀랐다.

“세키나……?”

“아, 짱 나네.”

세키나는 머리를 헝클고는 마르틴의 팔을 툭툭 쳤다.

“나 내려 조. 안 나갈래.”

“……아기?”

“내려달라니까!”

마르틴은 세키나의 강경한 주장에 어쩔 수 없이 세키나를 바닥에 내려주었다.

“둘이 나가따 와.”

“어, 어…… 하지만…….”

“나가서 인간들 붙짭고 가족이 머냐 물어바 바. 그럼 대겠찌.”

세키나는 메르데스와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래서 메르데스는 다소 당황한 상태였다. 세키나가 이렇게 날 선 말을 하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그리고 저렇게 굳은 표정은 처음이었으니까.

자신이 사고를 치고 데굴데굴 구를 때에도 저러지는 않았었는데. 뭐가 문제지? 메르데스는 세키나의 눈치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너…… 으음. 화났어?”

“어.”

“왜, 왜?”

메르데스는 희게 질린 얼굴로 두 손을 맞잡았다. 세키나는 그런 그를 올려다보다가, 이내 에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너 잘못 아니야. 그냥 내가 짜증이 나서 그러는 그야.”

“내 말 때문에 화난 거면 내 잘못 같은데…….”

“아니라니까.”

재차 부정한 세키나는 마르틴의 허벅지를 툭툭 치며 말했다.

“메르데스 잘 데따주고 와. 나눈 쉬고 이쓸게.”

세키나가 왜 이러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메르데스보다 오래 산 마르틴은 분위기를 파악하는 능력이 있었고, 여기서 더 세키나를 붙잡아 봤자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는 걸 파악했다.

“알았다. 아기는 방에 있어라. 금방 다녀오겠다.”

“금방 안가따 와도 대.”

세키나는 다시 메르데스를 올려다보았다.

“야. 나 너한테 화난 거 아니니까 편하게 놀다 와. 아라찌?”

“어…… 으응…….”

“대답이 작따.”

“응! 알았어!”

메르데스는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세키나는 재차 그들에게 인사를 한 뒤 자리를 떠났다.

아직 성문을 나가기 전이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세키나는 여전히 뒤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메르데스와 마르틴을 알고 있으면서도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 행동은 정말 어리석었다는 거, 스스로도 알고 있다. 괜히 화풀이를 한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가족이라고?’

세키나는 헛웃음을 뱉었다.

‘나라면 잘 알고 있을 거라고?’

바르쥔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내가 그딴 걸 어떻게 알아.’

마르틴과 메르데스가 아예 보이지 않는 정도까지 왔을 때, 세키나는 그만 무너지듯이 주저앉고 말았다.

“지짜 짜증 나네.”

역시 기억의 봉인을 푸는 게 아니었다. 세키나는 밀려오는 기억의 홍수에 파묻힌 채로 눈을 질끈 감았다.

***

게임에 빙의하기 전.

그러니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었을 때.

나는 참 우습게도 그럭저럭 괜찮은 가정에서 자랐다. 남들이 나를 봤을 때 ‘어디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잘 큰 모범생’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말이다.

내 교복은 언제나 단정했고, 내 성적은 언제나 상위권이었으며 내 부모는 빠질 것 없는 직업을 가진 훌륭한 이들이었다.

하지만 내 단정한 교복 속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얻어맞아 피멍이 든 살갗이 있었고, 상위권인 성적 속에는 이마저도 못하면 가치가 없다는 정신적인 학대가 남아있었고, 훌륭한 부모는 오빠에게만 해당될 뿐 내게는 아니었다.

오빠는 삼대독자로 모든 친인척들에게 예쁨을 받는 사람이었다. 그런 오빠를 낳은 엄마도 모두에게 칭찬을 받았고, 아빠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내가 태어났다.

배 속에서 내 성별을 알게 됐을 때 아빠는 나를 지우라고 말했지만 엄마는 그래도 내 아이니 버릴 수 없다고 주장했고, 아빠는 임산부인 엄마를 때리며 나를 지워버리고자 했다. 하지만 나는 결국 태어났다. 그때부터 나와 엄마의 지옥이 시작되었다.

삼대독자를 낳았다는 이유로 모두에게 예쁨을 받았던 엄마는 나를 낳자마자 버림을 받았다.

배 속에 내가 있었을 때에는 호르몬으로 조작된 모성애로 나를 보호하고자 했으나, 막상 내가 태어난 이후에는 부여된 모성애보다 주변의 시선이, 주변의 구박이, 주변의 평가가 더 중요해졌다.

엄마는 나를 낳은 것을 후회했다. 내가 없었다면 자신은 여전히 삼대독자의 엄마로 잘 살았을 테니까.

기실 말도 안 되는 남아선호사상에 절여 있는 친인척들이 비정상적인 이들이었지만, 분노는 그들에게 표현해야 했었지만, 그들은 ‘강자’였기 때문에 엄마는 상대적 ‘약자’인 내게 분노를 표했다.

첫 기억이 생겼을 때부터 나는 맞고 있었다. 엄마에게, 아빠에게, 그리고 오빠에게.

복싱을 하던 오빠는 나를 샌드백 대신으로 썼고, 어느 날은 너무 맞아서 안면 뼈가 무너진 적도 있었으나 엄마와 아빠는 오빠의 실력이 늘었다며 칭찬했고 내가 쓸데없이 약하다며 구박했다.

내가 성적이 낮으면 성적이 낮다고 때렸고, 성적이 좋으면 여자가 무슨 공부를 하냐며 때렸다. 밥을 먹으면 식충이라고 때렸고, 밥을 안 먹으면 시위를 하는 거냐며 때렸다. 외출을 하면 밖에 나가 헛짓거리를 한다며 때렸고, 집에 있으면 거슬린다는 이유로 때렸다. 그래. 나는 언제나 폭력에 노출돼 있었다.

그래서 내게 있어 가족은 나를 미워하는 집단일 뿐이었고, 맞기 싫어서 도망치다 차에 치여 죽었을 때에는 기쁨에 겨워 울었다. 드디어 이 지옥 같은 삶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난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전생과 다름없는 가족들.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고, 배척하고, 때리던 가족들.

전생을 포함해 7번의 삶 모두 내게 ‘가족’이라는 건 ‘나를 혐오하는 집단’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세키나. 가족이 정확히 뭐야? 뭘 해야 하는 거야?

이런 말에 대답해 줄 수 없었다.

-그냥 나는 세키나가 부러워서…….

부럽다는 말에 혐오감이 들었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면서.

내가 얼마나 괴로웠는지, 조금도 알지 못하면서.

부럽다고?

알고 있다.

메르데스는 어리고, 그의 입장에서 내가 좋아 보인다는 것을.

하지만 난 단 한 번도 이 지옥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가족이 뭔지, 모른다.

가족이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번 삶이 끝날 때까지도 알지 못하겠지.

‘그냥 지금 죽어 버릴까…….’

아등바등 발버둥을 치는 것도 이제는 지겹다. 게임이고 나발이고 죽어 버리면 끝나는 게 아닐까. 난 꾹 감았던 눈을 천천히 올려 떴다. 그러자마자 보이는 흐리고 어두운 하늘이 꼭 내 인생 같다.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때였다.

“시체인 줄 알았다.”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황급히 몸을 일으켜 목소리의 주인을 쳐다보았다.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냐.”

“……보쓰?”

마왕, 르카이츠였다.

그는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난 온몸에 소름이 돋은 것을 느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재송해여. 그냥 누어 있었던 건데…….”

우물쭈물거리며 눈치를 보고 있는 내 얼굴에 뭔가가 픽 던져졌다.

손수건이었다.

그제야 나는 내가 울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따라와라.”

뒤돌아 가는 마왕의 뒷모습과 이상하리만큼 부드러운 손수건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난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가티, 가티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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