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쿠궁!
르카이츠는 사방에서 날아드는 석창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동굴 속에 또 다른 공간이 있는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이런 정교한 함정이라니.
그는 제게 날아오는 석창을 가볍게 손끝으로 쳐 궤도를 수정시키며 고개를 까딱였다.
‘누가 만든 거지?’
이 정도의 함정은 인간들이 만들지 못한다. 그나마 이런 장치를 만들 수 있으리라 짐작되는 건 드워프 정도인데…… 그놈들이 굳이? 제게 이득도 안 되는 걸 만들지는 않았을 텐데?
‘신기하군.’
쿵!
르카이츠는 마지막으로 날아온 석창을 한 손으로 부순 뒤 그 너머를 바라보았다.
다음 구역은 바닥부터 벽, 천장까지 모조리 덩굴로 뒤덮여 있는 공간이었다. 꿈틀꿈틀 움직이고 있는 게, 딱 봐도 발을 내디디면 저를 옭아맬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법을 써 불태우는 건 위험부담이 있었다. 좁은 공간이라 연기가 빠져나갈 틈이 없었으니까.
르카이츠는 다른 방법을 고민하며 잠시 멈추어 섰다.
그리고 세키나는,
‘……미친놈 아니야?’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게임 내에서, 서부 던전은 용사도 꽤 고전을 한 곳이다. 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사방에서 날아드는 석창은 웬만한 마법으로 파괴가 불가한 것이었으니까. 피하기에는 공간이 좁아 쉽지 않았기에 검을 이용해 힘으로 파괴하며 나아가야 했다. 그래서 세키나가 게임을 플레이했을 때 이 던전에서 꽤 많이 실패했었다.
‘근데 저렇게 아무 타격이 없다고?’
그냥 손만 댄 것 같은데, 석창은 휘어서 날아갔고 또 부서졌다. 르카이츠에게 조금의 타격도 주지 못한 것이다.
고생하라고 먼저 보낸 건데 고생은커녕 르카이츠의 대단함만 더 알게 됐다.
“보쓰. 진짜 대단해여.”
그래서 일부러 르카이츠를 떠받드는 말을 하며 손바닥을 비볐다.
“아, 요건 제가 하께여. 제가 방법을 알거든여.”
덩굴로 가득 찬 이 방은 아무리 르카이츠라 해도 쉽지 않을 거다. 이 덩굴은 석창처럼 마법이 통하지 않고 덩굴의 바닥이 없기 때문에 잘못 발을 내디디면 그대로 붙잡혀 끌려 내려가니까.
“조기, 가시 없는 덩굴 보이져? 저거 붙짭고 넘어가면 대여.”
그래서 타잔처럼 줄을 잡고 넘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세키나는 ‘나 도움 되죠?’라는 표정을 하며 르카이츠를 쳐다보았다.
“그것도 유물이 알려주는 것인가?”
“……넹!”
“대답이 늦는데.”
르카이츠는 헛웃음을 뱉었다.
언제까지 숨길 것인가, 거짓말을 할 것인가, 르카이츠는 궁금했지만 더 묻지 않기로 했다.
한 번 거짓말을 한 상대는 캐내려 한다 한들 진실을 말하지 않으니까.
알아보면 되는 것이다. 이 가증스러운 호문쿨루스가 어떤 생각을 하고 이 웃기는 짓거리를 하고 있는지.
“보쓰?”
르카이츠는 저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호문쿨루스를 뒤로 하고 덩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세키나는 그의 손끝에 맺히는 마력과, 마력의 흐름을 보자마자 그가 어떤 마법을 쓰고자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미친…….’
네츄럴 익스틴션.
해당하는 모든 것들을 자연 소멸시켜 버리는 최상위 마법.
쏴아아아-
눈 깜빡할 새에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던 덩굴이 모두 사라졌다. 가루조차 남지 않았다. 그저 소멸된 것이다.
‘…….’
게임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더 강하다. 아니, 강하다는 수준을 넘어섰다.
‘개기지 말자.’
세키나는 굳게 다짐하며 르카이츠의 뒤를 졸졸 쫓았다.
“이곳인가?”
문 앞에 당도한 르카이츠는 고개를 까딱였다. 세키나는 격하게 끄덕였다.
“넹. 근데 이거는 진짜 진짜 마법 안 통하거든여. 구니까 가만히 계세여.”
하지만 르카이츠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마법을 썼다. 물론 통하지 않았다.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문을 보며 르카이츠는 미간을 좁혔다.
“지짜 남말 안 믿눈다.”
세키나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은 후 문 옆쪽으로 다가갔다.
르카이츠의 미심쩍어하는 시선이 세키나의 뒤를 따른다. 하지만 세키나는 개의치 않았다. 당연히 짐작하고 있었다. 이렇게 던전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걸 드러내면 르카이츠가 의심하리란 걸.
하지만, 뭐. 그래서 어쩌라고?
‘얘가 사실은 게임에 빙의한 건데 이 게임의 내용을 다 알고 있어서 던전을 공략할 수 있는 거다, 라고 상상이라도 하겠냐?’
아무리 의심하고 캐내려 해도 진실에 조금도 다가가지 못할 거다.
그러니 그냥 유능함을 뽐내는 게 나았다. 유능함을 입증할수록 르카이츠는 더 자신을 죽이지 못하게 될 테니까.
문 옆에 다다른 세키나는 이끼가 가득한 벽면을 손바닥으로 훑었다. 얼기설기 붙어있는 이끼 같았지만, 이건 퍼즐이다. 이미 완성된 퍼즐 모양을 알고 있는 세키나는 얼마 가지 않아 퍼즐 조각을 다 맞췄다.
쿠구구궁, 소리가 나며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세키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던 르카이츠는 시선을 거두고 열린 문 너머를 쳐다보았다.
티아라가 놓여있던 동굴의 방과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은 공간이었다. 다만 제단 위에 놓여있는 게 티아라가 아니라 르카이츠에게 아주 익숙한 물건이었다는 게 다르지만.
‘창이로군.’
이백 년 전, 천마 전쟁을 치렀을 때 분실한 것이다. 한데 이게 왜 여기 있단 말인가.
르카이츠는 이마를 짚었다.
자신의 힘을 봉인한 존재가 누구인지, 어떻게 봉인을 한 것인지, 르카이츠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도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자신의 보구, 창을 보자니…… 불길한 생각이 엄습했다.
‘알아봐야겠군.’
르카이츠는 자신의 것이었던 창을 쥐고 아공간 속에 넣은 후 걸어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갔다.
한시라도 빨리 성으로 돌아가 이에 대해 알아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르카이츠는 바삐 걸음을 옮겼고, 까닭으로 세키나라는 호문쿨루스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 버렸다.
“으악!”
그러다 동굴을 반쯤 나왔을 때 비명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제야 세키나를 떠올린 르카이츠는 한숨을 뱉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바닥에 넘어져 있는 호문쿨루스가 보였다.
“으. 아푸네.”
황새 쫓아가다 뱁새 가랑이 찢어진다고. 르카이츠를 졸졸 쫓아 뛰다가 넘어진 탓에 세키나는 꽤 크게 다쳤다. 무릎부터 정강이까지 쫙 찢어져 살점이 떨어졌으니까.
“읏챠.”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상처를 보던 세키나는 코트 안에 겹쳐 입었던 카디건을 벗어 다리에 묶었다. 제대로 된 치료는 아니지만 지혈 정도는 할 수 있으리라. 세키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잉?”
세키나는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르카이츠를 발견했다.
“머 해여? 안 가구?”
르카이츠는 살짝 눈썹을 찡그렸다.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다리를 질질 끌면서 걸어오는 호문쿨루스의 모습이 퍽 괴기했기 때문이다.
“피가 꽤 많이 나는데.”
“넹. 그러게여.”
“……안 아픈가?”
이런.
자신도 모르게 이상한 질문을 해 버렸다.
이깟 호문쿨루스가 아프건 말건 상관할 바가 아닌데도 말이다. 혹시나 자신이 걱정한다거나, 마음을 쓴다거나 하는 착각은 하지 않아 주었으면 하는데. 르카이츠는 세키나를 슬쩍 내려다보았다.
“아녀, 머. 이 정도 아픈 건 익쑥해서여. 참다가 이따 치료하면 대니까여.”
세키나는 으쓱 어깨를 올리며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이런 상처에 울면 상여자가 아니져.”
그러고는 앞서 걸어간다.
“…….”
르카이츠는 작디작은 호문쿨루스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피가 뚝뚝 흐르는 다리를 질질 끌면서 걸어가는 모습을.
아픈 것이 익숙하다는 게 무슨 뜻일까.
르카이츠는 문득 궁금해졌다.
***
마르틴과 함께 성 밖으로 나온 메르데스는 별로 신나있지 않았다.
세키나가 계속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내가 아까 세키나한테 말을 잘못한 걸까?”
메르데스는 어깨를 추욱 떨어뜨린 채로 말했다.
“그냥, 우리는 다 똑같은 호문쿨루스고…… 그래서 가족이라고 치면 좋을 거 같다고 생각한 건데. 내가 너무 과했나?”
마르틴은 그런 메르데스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사실, 자신도 세키나가 왜 그렇게 짜증을 냈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 건 메르데스의 말 때문에 화가 난 건 아니라는 거였다. 자신이 생각했을 때 메르데스의 말은 문제가 될만한 게 없었으니까.
아마 세키나의 기분이 안 좋아서 그런 게 아닐까. 마르틴은 메르데스의 정수리에 손을 얹고 그를 쓰다듬어주며 고개를 저었다.
“아기 잘못 아니다.”
“하지만…….”
“나중에 아기 만나면 물어봐라. 지금 고민해 봤자 소용없다.
“음…… 그건 그렇지.”
투박한 위로였지만 메르데스는 나름대로 납득을 했다.
“선물 사가라. 그럼 풀릴 것이다.”
“아! 그럴까?”
선물을 주면 세키나도 기분이 풀리지 않을까? 메르데스는 환히 웃었다.
“같이 골라줄래?”
마르틴은 좋다고 대답했고, 금세 기분이 좋아진 메르데스는 가벼운 걸음으로 상업지구를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오아! 이거 봐! 인형이 있어! 여기는 기차가 있고!”
마르틴은 그런 메르데스를 지켜보며 미세하게 웃었다. 지금의 상황이 퍽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 그리고 나 오늘 나온 거. 만나보고 싶은 인간들이 있어서 그렇거든. 걔네도 찾아봐야 하는…… 어, 어어?”
이때, 메르데스의 눈이 커졌다.
식당으로 보이는 가게에서 나오고 있는 인간들이 그의 눈에 아주 익숙한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저기요! 거기 인간들!”
메르데스는 그들에게 곧장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