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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님이 만드는 파멸엔딩 (54)화 (55/149)

54화

메르데스가 지칭한 인간들.

남자 둘에 여자 하나.

그들은 본래 동부 출신이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북부까지 도망쳐 온 이들이었다. 하지만 북부에 자리를 잡은 지도 어언 2년. 어엿한 경비대원이 되어 치안을 책임지고 있는 자들이기도 했다.

그래서 먼젓번 메르데스가 혼자 있었을 때 혹 미아인가 싶어 말을 건넸던 것이었고, 환수가 폭주를 했을 때에도 먼저 검을 빼 들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모두 다 없어진 기억이다.

세키나가 약을 써 그들의 기억을 지워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메르데스가 누군지 몰랐고, 그가 자신들에게 달려오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야, 네 아들이냐?”

“……그런가? 보니까 닮은 거 같기도 하고?”

“미친놈들.”

남자들의 시답잖은 농담에 질린 표정을 지은 여자는 달려온 메르데스에게 무릎을 조금 굽히며 눈을 마주쳤다.

“안녕, 아가야? 무슨 일이니?”

“오. 착한 척. 아, 아파. 때리지 마.”

남자는 팔꿈치로 제 옆구리를 찌르는 여자를 슬쩍 밀쳤다.

메르데스는 그런 그들을 올려다보았다.

“너희들. 날 기억하지 못하는 거냐?”

“야. 진짜 너 아들인가 봐.”

“아씨, 기다려 봐. 날짜 계산 좀 해 보게.”

주거니 받거니 말하는 그들을 멍하니 보던 메르데스는 아차 하며 고개를 저었다.

‘세키나가 약을 썼었지.’

30분간 기억을 지워주는 약이었으니 이들이 날 기억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인 터. 메르데스는 살짝 머쓱해졌다.

“아. 하긴. 기억하지 못하겠군. 미안하다. 어쨌든, 난 너희 인간들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왔다.”

티격태격거리던 인간들은 메르데스에게 집중했다. 잠시 숨을 고르던 메르데스의 입이 열렸다.

“너희는…… 어린아이를 납치하나?”

“…….”

인간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눈을 마주쳤다. 그러다 푸하하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우리가 그래도 명색이 경비대원인데 납치는 너무하지 않을까?”

“얘가 아무리 이렇게 생겼다고 해도 나쁜 짓은 안 하고 살았어.”

“그럼. 내가 얼마나 깨끗한데.”

그들의 얼굴에는 거짓이 없어 보였다. 메르데스는 흐음 비음을 내며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럼 너희는…….”

메르데스는 손가락을 오므리다가, 이내 쭉 손바닥을 펴며 물었다.

“어려움에 처한 아이가 있으면 구할 것이냐?”

그러자마자 인간들의 눈이 커졌다.

“지금 네가 어려움에 처했다고 말하는 거니?”

“구해 줄까? 저 무서운 사람한테서?”

그들이 가리키는 이는 저만치 서서 메르데스를 지켜보고 있는 마르틴이었다. 메르데스는 빽 소리를 질렀다.

“저분은 내 삼촌이다! 에잇, 그런 거 말고! 빨리 대답해라! 너희는 아이를 구할 것이냐?”

“삼촌이라 치기엔 안 닮았는데…….”

뒷머리를 긁적거리던 남자는 이내 어깨를 으쓱 올리며 대답했다.

“애는 당연히 구해야지? 당연한 거 아니야?”

“그렇지. 애가 힘들어하면 도와야지.”

메르데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러다가 너희가 죽을 수 있다고 해도?”

“오. 본격적인 질문이네.”

인간들은 팔짱을 끼고 잠시 고민했다.

“만약에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이면 알아서 하라고 할 거 같은데, 애는 조금 다르지.”

“응. 애는 당연히 지켜야 하니까.”

그래. 메르데스는 이 ‘당연히’라는 게 이해가 안 됐다. 세키나도 ‘그냥’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었나.

“왜? 애는 왜 당연히 지켜야 하는 건가?”

메르데스는 답답함을 그대로 표현했다. 그러자 인간들은 이 아이가 무엇을 묻고 있는지 눈치챘다. 그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빙그레 웃은 후 다시 메르데스를 내려다보았다.

“우리 모두 어느 날 갑자기 성인이 된 게 아니잖아. 아기였을 때가 있고, 애였을 때가 있지. 그때의 우리가 다치거나 죽지 않고 지금까지 자란 건 우리를 지켜 준 어른들이 있기 때문이었어.”

“그러니까 어른이 된 지금, 우리가 애들을 지켜줘야지.”

“아이니까 지킴을 받는 거야. 너도 크면 이해하게 될 거란다.”

메르데스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반쯤 벌렸다.

마왕성에는 마족들이 많다.

그들은 모두 다 어른이었다. 수백 년을 산 어른들.

하지만 그들은 나를 지켜 준 적이 없었다.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폐기당했고, 약하면 폐기당했다. 그래서 메르데스는 파르데스와 함께 이곳에서 살아남는 것을 목표로 했다. 아무도 날 지켜 주지 못하니까.

그런데 인간들은 아이를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지키겠다고 말한다.

이 차이가 어쩐지 이상했다.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졌다.

“그…… 그렇구나.”

메르데스는 고개를 반쯤 숙이며 두 손을 꼭 맞잡았다.

“응. 그러니까 아가, 너 지금 위험한 상황이니? 저 무서운 사람한테 협박당하고 있는 거 아니고?”

“삼촌이라니까!”

다시 마르틴을 가지고 뭐라고 하는 그들을 향해 빽 소리친 메르데스는 뒷목을 긁적거리며 인간들을 올려다보았다.

“너희의 이름은 뭐냐?”

“난 조셉. 이쪽은 한. 얘는 유리.”

그들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조셉, 한, 유리.

이 이름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고, 메르데스는 생각했다.

“으음…… 그래.”

사실 이들을 또 만나고 싶었다. 오늘처럼 마르틴과 함께 나와서 보는 게 아니라, 이들과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더 대화를 하고 싶었다. 다만 그렇게 말하는 건 조금 자존심이 상했다.

나는 위대한 호문쿨루스인데! 이들은 하찮은 인간이고!

하지만 이들과 또 놀고 싶기도 하고…….

메르데스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갔다.

그때, 유리의 잇새에서 피식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우리는 경비대에 있을 거야. 언제든 와도 돼.”

“어, 어어. 우리가 경비대에 없으면 순찰 중인 거니까. 기다리면 또 만날 수 있어. 알았지?”

혹시 인간들은 독심술 같은 걸 할 줄 아나?

자신의 생각을 들켜 버린 메르데스는 살짝 얼굴을 붉혔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나는 메르데스라고 한다.”

마왕성의 마족들 말고 제 이름을 알려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상하게 부끄러웠다.

“나, 난 간다! 내 이름을 꼭 기억해라! 내 이름은 고귀한 것이니까!”

그래서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귀여운 애네.”

“너 아들은 아닌 듯. 너 닮았으면 저렇게 안 귀여울 테니까.”

“은근히 돌려 까네.”

피식피식 웃는 인간들의 대화를 흘려보내며, 메르데스는 환하게 웃었다.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

세키나와 르카이츠는 마왕성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도 역시나 텔레포트를 이용했다.

던전을 통과하면서 마력을 꽤 소비했을 텐데도 텔레포트에 무리가 없다니.

세키나는 르카이츠의 한계가 궁금했다. 그리고 르카이츠의 봉인이 풀린 후에는 어떨까도 궁금해졌다.

‘그 전에 튀어야 할 테지만.’

궁금증은 궁금증으로 넣어두어야 했다. 다 알아내려 하면 귀찮은 일만 생기니까.

“보쓰. 오늘 잼써써여. 저 이만 가께여.”

그래서 세키나는 르카이츠에게 꾸벅 인사하고는 나가려 했다. 그런 세키나의 발을 붙잡은 건 르카이츠의 말이었다.

“너.”

르카이츠는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물었다.

“치료는 안 해도 되나?”

치료?

세키나는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자신의 다리를 뜻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배시시 웃었다.

“갠차나여. 이런 건 침 바르면 나아여.”

“…….”

침 바르면 낫는다는 건 어느 괴담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저건 침 발라서 낫는 수준이 절대 아니다.

르카이츠는 살짝 두통이 이는 이마를 짚으며 세키나를 내려다보았다.

이상한 호문쿨루스.

건방진 호문쿨루스.

하지만…….

르카이츠는 한숨을 길게 뱉었다.

“네 주변에 환수의 찌꺼기가 돌아다니는 건 알고 있나?”

세키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환수의 찌꺼기.

며칠 전 영지에서 환수가 폭주를 일으켰을 때 그들을 쫓아내긴 했지만, 아직도 자신에게 붙어있는 놈들이 있었다.

“아. 넹. 근데 귀찮아서 냅두고 있어써여.”

제대로 된 환수가 아니기 때문에 힘도 약하고, 할 수 있는 게 얼마 없는 상태니 그냥 내버려 두려고 했었다. 내버려 두면 알아서 사라질 테니까.

그런데 이걸 갑자기 왜? 세키나는 갸웃했다.

“환수는 정령이기에 간단한 치유술을 쓸 수 있지.”

“넹?”

“그러니까.”

르카이츠는 재차 한숨을 뱉다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그러자마자 새까만 연기가 마치 회오리처럼 솟구치더니 세키나의 주변을 덮었다.

눈 깜짝할 새였다. 세키나의 곁에 있던 환수의 찌꺼기들이 하나로 뭉쳐진 것이. 그리고 르카이츠가 만들어낸 새까만 연기처럼 까만 구체가 된 것이.

“데리고 다녀라.”

“어…… 어어?”

“오늘의 수고비다.”

세키나는 제 어깨에 딱 달라붙은 까만 구체를 보다가, 르카이츠를 보다가, 다시 구체를 보다가, 르카이츠를 보다가를 반복하다가 환히 웃었다.

“아싸. 감사해여, 보쓰!”

환수를 종속시키면 할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해진다. 세키나는 어깨춤을 추며 실실 웃었다.

르카이츠는 그런 세키나를 바라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 징그럽지는 않은 건가.”

잘 모르겠다.

르카이츠는 묘한 답답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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