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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님이 만드는 파멸엔딩 (60)화 (61/149)

60화

아서가 왜 이러지?

세키나는 다소 당황했다.

아서는 아이를 좋아한다. 자신뿐 아니라 쌍둥이나 니샤를 대하는 것만 봐도 아이를 좋아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더군다나 두 아이의 아빠라고 자랑스레 말하기도 했었으니까!

그런데,

-신의 기적을 믿어볼까요?

-정말 신의 가호를 받고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저 아이를 살리려고 뭔가의 일이 생기겠죠.

이렇게 책임감 없는 소리를 한다고?

세키나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아서를 쳐다보았지만, 아서는 말을 철회하지 않았다.

“한 번 기도해 보세요. 그럼 그 잘난 신이 도와줄 수도 있잖아요?”

유리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와락 구겨진 표정을 한 채 아서를 노려보았다.

“말씀이…… 심하십니다…….”

아서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쪽 목숨도 살려 줘, 애는 우리 애기가 구해 줬어. 그랬는데도 말이 심하다고 화를 내는 건가요? 이게 신관이 보일 태도인가?”

세키나는 뭔가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마족이 신관을 싫어한다지만 아서가 이렇게 나올 리가 없었으니까. 뭔가의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세키나는 아서의 옷깃을 꼬옥 붙잡았다.

“저, 저는…….”

유리엘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는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듯 입을 뻐끔거리다가, 이내 눈을 질끈 내리감고는 품 안에 드한을 끼워 넣은 채 두 손을 모았다. 기도를 올리는 것이다.

세키나는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로 저들이 믿는 신이 응답해 줄까?

혹은 드한을 살리고자 하는 시스템이 뭔가의 상황을 만들까?

기적이 일어난다면 저들은 신을 더욱더 숭배하며 매달릴 테다.

하지만 만약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 쪽으로 좋은 건가?’

이런 상황을 아서는 예상하고 말을 한 걸까? 세키나의 시선이 아서를 향했다.

그때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부터 눈보라가 일기 시작했다.

자연적으로 생성된 눈보라가 아니었다. 뭔가 엄청난 것이 달리면서 생기는 눈보라였다. 세키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초점을 맞춰보려고 노력했고, 곧 거대한 썰매를 끌고 있는 누군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아서! 너 이 새끼 나 기절시켜 놓고 가 버리면 어떡하냐!”

그는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달려오고 있었다. 귓가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말이다.

“캘빈입니다. 4군단 군단장이요.”

아서는 세키나의 귓가에 캘빈의 인적 사항을 속삭여주었다.

“어엉…… 근데 쟤가 왜 여기써?”

“제가 신관과 싸울 거라고 말한 다음에 저놈을 기절시켰거든요. 정신 차리고 저를 따라온 거죠. 제가 신관을 죽이길 원치 않으니까.”

“…….”

아서가 낯설다.

햇살캐가 계략캐로 변한 느낌이랄까.

나쁘진 않지만, 어쩐지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 한번 아서에게 개기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보이시나요?”

아서는 넋을 놓고 앉아있는 유리엘을 향해 말했다.

“다이몬 백작가의 사람입니다. 우리를 데리러 온 거고요.”

“……아!”

유리엘은 그제야 상황 파악이 끝난 모양인지 드한을 안은 채로 몸을 벌떡 일으켰다. 어느새 다가온 캘빈은 고삐를 쥔 손을 탈탈 털며 아서를 노려보았다.

“야. 넌 내가 이 더러운 썰매를 끌고 여기까지 왔는데 수고했다 말 한 마디 없냐?”

“자, 신관님? 애 데리고 썰매에 타세요. 영지로 데려다 드릴 겁니다.”

“싸가지 없는 새끼.”

캘빈은 꿍얼거리며 다시 고삐를 쥐었고, 엉거주춤 서 있던 유리엘은 이내 드한을 더 꽉 껴안으며 썰매에 앉았다.

“신관님. 기억하세요.”

아서는 썰매의 가장자리를 손바닥으로 꾹 누르며 유리엘과 시선을 맞댔다.

“신의 응답은 없습니다.”

“그, 그건…….”

“당신들의 목숨을 구해 준 건 저예요.”

유리엘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지만, 아서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캘빈에게 우리는 따로 가겠다는 말을 하고서 그들을 먼저 보냈다.

“쟤네 성으로 오는 건 아니디?”

“그건 캘빈이 정하겠지요.”

“후움.”

뭐, 저들이 온다 해도 본관일 테고 별관은 아닐 테니 상관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보다 세키나는 아서가 이런 상황을 계획하고 만들어 냈다는 게 다소 충격적이고 신기했다.

“왜 이러케 판을 깐 거야?”

그래서 세키나는 아서에게 물었다. 아서는 특유의 눈웃음을 실실 흘리며 대답했다.

“재미있잖아요.”

그는 양 뺨을 살짝 붉혔다.

“신을 믿는 자들이 신에게 버림받고, 마족에게 구원받은 것이. 나중에 저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떨까요? 신을 원망할까요? 우리를 찬양할까요?”

“……머가 댔든 오늘 일로 유리엘의 믿음에는 금이 갔겠네.”

“맞아요. 그래서 더 재미있는 거죠.”

키득키득 웃는 아서의 머리를 툭툭 친 세키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두 성격 진짜 나뿌다.”

“세키나 님에게는 안 그래요.”

뭐, 그러면 된 건가.

세키나는 더 이상 생각하는 걸 포기하기로 했다.

***

아서의 마법으로 마왕성 자신의 방에 도착한 세키나는 그대로 방을 빠져나왔다.

아서 역시 르카이츠에게 이 일을 보고하기 위해 자리를 떠났으니 세키나에게는 별문제 될 게 없었다.

그러고 세키나가 찾은 곳은, 당연히도 니샤의 방.

이번에는 복도를 배회하지 않고 당당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 와따!”

책상에 앉아있던 니샤는 세키나를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넌 노크라는 걸 모르니? 예의는 갖다 버렸어?”

“잉, 언니. 동쌩한테 넘 만은 걸 바란다.”

“……또라이 새끼.”

니샤는 읽고 있던 책을 탁 덮은 후 세키나를 흘겨보았다.

환수 어쩌고 말을 한 게 고작 네 시간 전.

자신의 마음에 드는 걸 가져오겠다며 호기롭게 외치고 나간 것치고는 되돌아온 시간이 짧다. 그래서 니샤는 당연히 세키나가 포기하고 온 줄 알았다.

“그래서, 포기한 거야? 도저히 내 눈에 들만한 걸 못 찾겠어서?”

세키나는 허, 헛웃음을 뱉었다.

“너 나를 몰로 보는 거야? 벌써 찾아와찌. 보고 울지나 마라. 이거 지짜 지짜 대단한 거니까.”

“…….”

얘는 뭐가 문제일까.

애기 때는 안 이랬…… 아니, 말은 못 알아들었지만 어쩐지 지금과 비슷했던 거 같다. 더 입이 걸었던 거 같기도 하고.

니샤는 에휴 한숨을 쉬며 눈짓했다. 어디 한번 보여주라는 뜻이었다.

“짠!”

세키나는 품에서 꺼낸 유물을 떡하니 책상에 올려놓았다.

검은 바탕에 오로라 무늬가 그려져 있는 나비 모양 머리핀이다.

니샤는 그 머리핀을 쳐다보다가, 다시 세키나를 쳐다보았다.

“……엥.”

니샤는 이게 뭔데, X덕아. 라는 표정이었다.

세키나는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

“이거, 유물이야. 내가 쩌기 북부 협곡까지 가서 찾아와써. 나 얼어 디지는 줄.”

물론 마르틴이 걸어준 발열 마법과 세바스찬의 스크롤 덕분에 이중 발열 마법이 걸려있긴 했지만, 이런 생색은 내줘야 상대가 더 알아주지 않겠는가.

세키나는 방긋방긋 웃으며 머리핀을 니샤에게 쭉 밀었다. 하지만 니샤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너 멍청이냐?”

니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혀를 찼다.

“유물은 우리가 못 쓰는 거 몰라? 너야 귀속시키는 능력이 있어서 가능하겠지만 나는 안 돼. 그것도 모르고 이걸 찾아 온 거야? 아니면 알고 찾아 온 건가, 날 놀리려고?”

“꽈배기냐. 왜케 꼬여써?”

세키나는 꿍얼거리다가 이내 쭉 어깨를 펴며 말을 이었다.

“그런 건 다 계산하고 가져온 거야. 내가 함 귀속시켰다가 푼 거라서 너두 착용할 쑤 이써.”

“……진짜?”

“웅. 진짜.”

니샤는 어쩐지 못 미덥다는 표정을 지었다.

“안 될 거 같은데.”

“넌 애가 왜케 부정적이냐? 속는 셈 치고 함 해 바. 깜짝 놀랄 꺼야.”

“…….”

머뭇거리던 니샤는 세키나의 재촉에 머리핀을 꽉 움켜쥐었다.

그래. 속는 셈 치고 한 번 넘어가 준다.

하지만 착용 후에도 변화가 없다면 혼쭐을 내주리라.

그리 생각한 니샤가 머리핀을 머리에 꽂고, 그곳에 마력을 집중했을 때.

“……미친.”

상상도 못했던 능력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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