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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님이 만드는 파멸엔딩 (66)화 (67/149)

66화

유리엘이 교황에게로 연결한 영상구는 몇 번 깜빡이더니, 이내 푸른빛을 띠었다.

상대측에서 영상을 승낙한 것이다.

“서, 성하. 인사드립니다. 북부성 신전의 펴, 평신관 유리엘입니다…….”

유리엘은 영상구에 교황의 실루엣이 보이자마자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허락 어, 없이 연락드려서 죄, 죄송합니다. 다만…….”

[괜찮다.]

인자한 표정의 화면 속 교황은 걱정한다는 어투로 말했다.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구나. 안색이 좋지 않아.]

“……성하.”

유리엘에게 있어 교황은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자신을 알아주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교황이었으니까. 자신의 쓸모를 알아봐 준 것도, 자신을 돌봐 준 것도 모두 다 교황이었다. 유리엘은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애써 참으며 입을 열었다.

“저는…… 다이몬 백작령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씩 말하기 시작했다.

신전 부지를 살피고자 북부에 온 일, 그러다 마물을 만나 길을 잃은 일, 드한을 잃어버린 일, 백작가의 사람에게 공격당한 일, 죽을 뻔하다 그의 아량으로 살아난 일, 세키나라는 백작가 막내가 드한을 구해준 일까지. 하나하나 빠짐없이 말을 했다. 그러자 조금 가슴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교황은 여전히 유리엘을 걱정하는 얼굴을 한 채 말했다.

[다치진 않았느냐?]

“네, 네……. 다행히도…….”

[그래. 그러면 되었다.]

유리엘은 교황의 따뜻한 말에 감동하며, 방금 전까지 불경한 마음을 품고 있던 스스로를 책망했다.

[너를 공격한 이가 백작가의 일원이라는 건 확실한 것이냐?]

“그…… 그렇습니다……. 드한을 구해준 아이의 시종…… 같았습니다만 시, 시종이라기엔 너, 너무 강해서…….”

[그래…… 그렇군.]

유리엘은 교황이 당장 백작가에 항의를 하겠다고 말할 줄 알았다.

그리고 자신을 구해 주겠다 말해 줄 줄 알았다.

하지만,

[아쉽게 되었구나. 네가 그곳에서 백작가의 영애에게 창을 들이밀지만 않았어도 항의를 했을 텐데.]

“……네?”

들려온 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말이었다. 유리엘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하, 하지만 그들은 저를 주, 죽이려 했고 이, 이건 신전을 모욕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유리엘.]

그는 목청을 틔웠으나, 영상구 속에 담겨있는 교황은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아직 시기가 아니다.]

왜일까?

왜 이렇게 교황이 멀게만 느껴질까?

[적어도 북부의 민심을 우리가 가져왔을 때 그들을 공격할 수 있을 것이야. 경거망동하지 말거라.]

유리엘은 허벅지 위에 올려 둔 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 그, 그럼…… 적어도 서, 성기사를 보내 주셨으면 합니다…… 아, 아무래도 불안해서…….”

[죽는 게 두려우냐?]

교황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신의 곁으로 가는 것이 겁나느냐?]

당연히 두렵다. 겁이 난다. 어느 누가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고 나아가겠는가?

내가 만약 신앙심이 더 깊었다면, 신을 더욱더 숭배했다면, 그랬더라면 죽음까지 불사했을까?

유리엘은 교황의 이러한 책망이 모두 다 자신의 잘못 같았다. 그는 고작 15살일 뿐인 어린아이였으니까.

“죄송…… 죄송합니다.”

그래서 유리엘은 고개를 푹 숙이며 거듭 사과했다. 화면 속 교황의 입술이 비스듬하게 올라갔으나 그건 찰나였다.

[그들의 만행은 내가 기억하고 있겠다. 하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모든 것은 신의 뜻이리니.]

“……네. 아, 알겠습니다.”

[언제나 너를 믿는다.]

그리고 뚝, 하고 끊긴 영상.

유리엘은 새까맣게 변한 영상구를 멍하니 응시했다.

덜컹덜컹, 또다시 창문이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저 창문이 깨진다면 내일 아침 누군가가 수리를 할 것이다. 하면 원래대로 돌아가겠지.

하지만, 나는?

내 떨리는 어깨를 누가 잡아줄 수 있을까?

유리엘은 뜨거워지는 코끝을 느끼며 눈을 질끈 내리감았다.

***

“후우.”

꺼진 영상구를 보며 짧게 한숨을 뱉은 교황은 뻐근한 목을 돌리며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손바닥을 펼쳐 자신의 뺨에 가져다 댔다.

“인간 놈들이란.”

그러자마자 교황의 얼굴이 변하기 시작했다.

사람 좋은 미소가 은은하게 배어있던 인자한 노인의 얼굴이 아닌, 피처럼 새빨간 눈동자를 희번득하게 뜨고 있는 어떤 얼굴로.

그는 의자에 몸을 푹 기대고 고개를 뒤로 젖혀 천장을 바라보았다.

“하나같이 나약하고, 나약해서 남을 믿고, 남을 믿어서 좌절하고, 좌절해서 죽고.”

천장에는 기다란 줄이 수십 개가 내려와 있다. 그 줄에는 인간이 매달려있다. 교황, 추기경, 대신관, 평신관…… 모든 이들이 말이다.

“네, 네놈……!”

아직 숨이 붙어있는 신관 한 명이 소리쳤다.

“이러고도 네가 용서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신께서 너를 가만히 둘 것이라고 생각해? 이 나쁜……!”

신관은 금방이라도 숨이 꺼질 것처럼 가물가물했으나 외침만큼은 힘이 있었다. 교황인 척하고 있던 이는 천장에 두었던 시선을 거두고 소리친 신관을 가만히 응시했다.

“하하. 그래. 신은 벌을 내리고 모두를 심판하는 존재니까.”

“네놈!”

“그런데 이거 어떡하지?”

그는 씨익 웃으며 송곳니를 드러냈다.

“내가 신인데.”

콰직!

신관의 머리가 그대로 날아갔다.

“아우, 여기 놈들은 재미가 없다니까.”

신이라 지칭한 그는 심드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하품을 길게 했다.

이때였다.

“루치페르 님.”

줄에 매달려 있는 인간들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수십 명이 그의 앞으로 와 무릎을 꿇었다.

“저희는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오. 좋네.”

교황의 행세를 했던 이.

신관을 무자비하게 죽인 이.

루치페르 아가토.

그는 그 어느 때보다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손바닥을 활짝 펼쳤다.

“이번에야말로 성공하자고.”

***

아, 졸려.

세키나는 하품을 길게 하며 복도를 걸어갔다.

며칠 동안 피곤했기 때문에 조금 더 자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교육’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침 댓바람부터 일어난 세키나는 아직 잠이 덜 깬 상태였다.

-인간아. 그런데 교육이라는 게 무엇이냐?

세키나를 졸졸 쫓아오고 있는 고양이가 물었다.

‘너 왜 여깄어, 캘빈한테 안 가 있고?’

고양이의 말은 사념전달이었으니, 세키나 역시 사념으로 그에게 대답했다.

고양이와 대화를 나눈다는 걸 다른 이들에게 들키면 꽤나 귀찮아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마족은 시끄럽다. 하루 두 시간이면 충분해.

‘밥 얻어먹고 간식 얻어먹을 때만?’

-털 빗을 때도.

‘캘빈 울겠네.’

세키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교육은 뭐, 인간 세상에 대해 알아보는 거야. 호문쿨루스들은 크면 인간 세상으로 나가야 되니까.’

-넌 안 배워도 되지 않느냐?

‘내가 저 인간이니까 안 배울게요 할 수 있겠냐? 인간인 걸 숨기고 있는데.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세키나가 구박을 하자 고양이는 야옹 소리를 낸 뒤 앞서 걸어갔다.

-무엇을 배울지 기대되는군. 나 역시 인간에게 관심이 있어서 말이다.

‘……별로 기대 안 하는 게 좋을걸.’

-왜?

왜겠냐…….

세키나는 교육을 하는 강의실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칠판에 쓰여 있는 문제를 봤다.

[다음 대화에서 적절한 반응으로 올바른 것은?

A : 여보. 오늘 외식하는 건 어때요?

B : __________________

(1) 내가 왜 너랑 밥을 먹어야 하는데?

(2) 아, 귀찮게.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얘기해.

(3) 나 아까 남자 후배랑 같이 먹었어. 너도 나가서 다른 사람이랑 먹고 와.

(4) 넌 밥도 안 먹고 다니냐?]

-정답은 3번?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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