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17. 이 몸이 등장했다!
리아트는 뛰듯이 걸으며 복도를 가로질렀다.
그간 연구실에 처박혀 있느라 바깥 상황을 잘 모르고 있던 그였다. 원래 한번 연구에 몰두하면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고 그저 눈앞의 것에만 집중하게 되니까.
그런 그가 연구실에서 나오게 된 건, 바로 엄청난 마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마기는 인간계에 존재하면 안 되는 것이다. 마물이 등장한 것인가, 싶었지만 생각해 보면 고작 마물 몇 마리로 이만큼의 압박감은 줄 수 없었다. 그럼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마왕님!”
리아트는 마왕의 집무실 문을 벌컥 열며 뛰어 들어갔다.
방 안에는 바깥에서 느낄 수 있었던 마기의 배는 되는 짙은 농도의 마기가 가득 차 있었다.
두근, 두근. 리아트의 가슴이 마구잡이로 뛰었다. 혹시 마왕님께서 힘을 되찾은 것일까? 그래서 이 정도의 마기를 방출할 수 있는 것인가?
리아트는 뒤돌아 앉아 있는 마왕에게로 뛰어갔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창문 너머를 바라보고 있던 르카이츠는 그제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평소와 다름없이 싸늘한 표정이지만, 리아트는 미묘한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기뻐하고 있는 건가?’
리아트의 눈이 다소 커졌다.
그는 르카이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마물이 나온 겁니까? 아니면 힘을 되찾…….”
“그 작은 호문쿨루스가 한 일이다.”
“……네? 세키나요?”
르카이츠는 당황해하고 있는 리아트에게 대강의 일을 설명해 주었다. 세키나가 마물을 온전히 소환하고 조종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마계와의 연결 통로를 만들 수 있다는 것.
소환술에 대해 말할 때에 리아트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는 반응이었지만, 마계 연결 통로는 달랐다. 리아트는 놀라 입을 뻐끔거렸다.
“마, 마계요? 그 마계? 진짜로?”
리아트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허탈하게 웃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하지만 이제야 희망이 보이는 것 같다.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 다시 원래의 삶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
리아트는 외알 안경을 끼고 있는 눈을 반짝였다.
“그럼 우리, 돌아갈 수 있는 겁니까?”
르카이츠는 고개를 저었다.
“전보다 마물의 수가 늘었더군.”
“아…….”
“아직은 힘들다.”
리아트는 눈에 띄게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르카이츠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그에게는 아직 희망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 호문쿨루스가 말하더군. 나의 힘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겠노라고.”
“마…… 마왕님의 힘이요?”
“말하는 것으로 보아 내 힘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고 있는 것 같아.”
리아트의 눈이 커졌다.
“그, 그럼 지금 당장 가 보는 것이!”
“루치페르가 나타났다.”
“…….”
이번에야말로 정말 잘못 들은 게 아닐까. 리아트는 애써 현실을 부정해 보았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리아트는 격한 한숨을 토해내며 이마를 짚었다.
“잠깐만요. 제가 지금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어버려서 잘 감이 잡히지 않는데요. 그러니까, 그 루치페르요? 그 또라이 새끼? 그 미친놈? 걔 분명 죽지 않았습니까? 죽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떻게?”
르카이츠는 피식 웃었다.
“흑마법을 쓴다더군. 율리안이 그에 이용당한 모양이야.”
흑마법.
위험성이 너무나도 커 오래전 사라진 마법.
그게 왜, 어떻게?
리아트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루치페르가 살아난 이유, 그놈이 벌이고 있는 짓. 이 모든 것이 흑마법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리아트의 얼굴에 싸늘하게 굳었다.
“명령만 내려 주십시오. 제가 죽여 버리겠습니다.”
“안 된다.”
“……예?”
제가 이렇게 멋있는 척을 하면서 말했는데 단칼에 거절하신다고요? 리아트는 살짝 섭섭해지려 했다.
하지만 르카이츠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니까 나 대신 그 새끼 주겨 조요.
그 호문쿨루스와 약속을 했으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이야.”
반드시 이 손으로 그놈을 죽여 주겠노라고.
르카이츠는 피식 입꼬리를 올리며 몸을 일으켰다.
“일단 힘을 모은다. 그놈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니.”
“하지만…… 인간계에서 할 수 있는 건 많이 없습니다.”
마족인 것을 들키면 안 된다. 그래서 마기를 최대한 숨기고 마법을 써야 한다. 그러다 보니 마법 위력은 약해진다. 더군다나 마기를 접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가 오래 지속되고 있다. 모두가 다 마기에 굶주려 하고 있다. 이 상태로 천족과 싸운다면, 혹은 흑마법을 맞닥뜨린다면 위험 부담이 커지리라.
그런 리아트의 생각을 알아챈 걸까?
르카이츠는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아직 위험해 마계에는 갈 수 없지만, 그곳의 것을 가져올 수는 있지.”
리아트의 눈이 희번득하게 떠졌다.
“마기, 마기요? 마기를 가져올 수 있게?”
그게 가능해진다면, 마족들에게 마기를 먹일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승산이 있다. 해볼 만했다.
“마기를 담을 수 있는 것을 만들어야 하겠군요.”
씨익 웃는 리아트를 보며 르카이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희망이 보인다.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
그리고 복수할 수 있다는 희망.
르카이츠는 그간 자신이 너무나도 무력했던 존재였음을 깨달았다. 힘을 봉인 당했다는 핑계로 현실을 외면하고 도망치려고만 했었으니까.
이제는 아니다.
도망치지 않고, 그놈들과 싸워 힘을 되찾으리라.
르카이츠의 눈이 번뜩였다.
“그런데…… 아쉽네요.”
뭐가?
마왕인 내가 이렇게 새로운 다짐을 하며 멋있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르카이츠는 리아트의 얼굴에 번져 있는 실망감을 보며 살짝 미간을 좁혔다.
“우리 세키나가 그렇게 멋있는 모습을 보여 주었는데 제가 곁에 없었던 것이요. 왜 저는 연구실에 있었을까요. 눈물이 나네, 진짜.”
“…….”
아.
그거.
르카이츠는 고개를 저었다.
또라이는 멀리 있지 않았다. 곁에 있었다.
***
이른 아침.
세키나는 팔짱을 끼고 소파에 앉은 채 허공을 노려보고 있었다.
‘시스템.’
하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아오, 진짜 안 나오냐?’
그럼에도 변함이 없다.
세키나는 쯔읏 혀를 차며 머리를 헝클었다.
[SYSTEM]
제가 당분간 안 나와도 찾지 마세요. 욕도 하지 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