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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님이 만드는 파멸엔딩 (84)화 (85/149)

84화

율리안은 자리를 뱅글뱅글 돌면서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가 있는 곳은 세키나의 방문 앞.

노크를 할까, 하다가 하지 못하고.

다시 노크를 해 볼까, 하다가 하지 못하고.

그러기를 한 시간째였다.

자신이 세키나의 얼굴을 보아도 되나 의문이 들었다. 어쨌거나 자신은 세키나를 죽이려고 한 이. 만약 그때 디디에가 오지 않았다면 자신은 틀림없이 세키나를 죽였을 거다.

세키나가 흑마법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면, 흑마법을 모르고 있었다면, 또한 그는 틀림없이 세키나를 죽였을 거다.

이미 모든 일이 끝난 지금에서야 하는 가정은 쓸모없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러해도 율리안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고 또한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세키나를 만나는 게 겁이 났다.

미안한 마음을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는 부담스러워할 수 있었으니까. 사과를 받지 않으려 할 수도 있었으니까.

“하아아…….”

율리안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때였다.

“야아옹.”

세키나의 옆방에서 고양이가 걸어 나왔다.

율리안은 그 고양이를 보자마자 쓰읍 숨을 들이켰다.

자신이 세키나를 죽이려 할 때 이 고양이가 세키나를 보호했었다. 물론 그러면서 율리안에게 얻어터져 날아갔지.

율리안은 따끔따끔 아픈 양심을 느끼며 슬그머니 고양이를 향해 다가갔다.

“어…… 음. 안녕?”

고양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율리안을 바라보았다.

“어제는 내가 미안했어. 혹시 다치진 않았어?”

고양이가 말을 알아듣지 못할 거라는 건 알지만, 이렇게 사과를 하는 게 율리안에게 있어 최소한의 속죄였다.

“미안해. 너한테도, 세키나한테도.”

고양이의 동공이 가늘어졌다.

뭘까.

내 말을 알아들은 걸까?

율리안은 자신도 모르게 살짝 기대했다.

“아이고, 고양이 님! 멋대로 나가시면 어떡합니까!”

이때, 문을 열고 달려 나오는 이가 있었다.

“……캘빈?”

4군단 군단장. 캘빈이었다.

“어, 율리안 님이시군요. 오랜만입니다. 잠시만요. 전 지금 고양이 님을 잡아야 해서.”

“니야아악!”

캘빈은 도망치는 고양이를 억지로 붙잡으려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율리안은 그런 캘빈을 보며, 혹시 자신이 지금 잘못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도 그럴 게 캘빈은 캘빈이지 않은가. 그의 결벽증과 혐오증은 아주 유명했다. 그래서 율리안도 캘빈의 곁에는 가지 않았다. 옆에 가기만 해도 기겁을 하며 더럽다고 소리를 쳤었으니까.

“안 돼요! 오늘은 꼭, 정말 꼭 씻으셔야 합니다. 지금 몸에서 아주 이상한 냄새가 나고 있어요!”

“니야아아오!”

하지만 지금의 캘빈은…… 뭐랄까…….

“한 번만! 한 번만요!”

다른 존재가 된 것 같았다. 결벽증이고 뭐고 그냥 아예 사라진, 완전히 달라진 존재.

율리안은 멍하니 캘빈을 바라보았고, 간신히 고양이를 잡은 캘빈은 멋쩍게 웃으며 율리안을 쳐다보았다.

“허허허……. 저희 고양이 님이 조금 예민하셔가지고요.”

율리안은 캘빈의 얼굴과 팔에 쭉쭉 그어져 있는 상처를 보았다. 방금 전 고양이가 마구잡이로 할퀸 것이리라.

“그, 캘빈. 안 아파?”

“아픕니다. 하지만 이건 다 사랑의 매가 아닙니까.”

“아닌 거 같은데.”

“맞습니다. 저희 고양이 님은 사랑하지 않으면 때리지 않아요.”

“…….”

어쩌면 이건 캘빈이 아니라 캘빈의 껍데기를 쓰고 있는 뭔가가 아닐까. 율리안은 자신이 마왕성에 없는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궁금해졌다.

이때였다.

“야아아옹!”

“고양이 님!”

캘빈에게 잡혀있던 고양이가 발광을 하며 바닥으로 내려왔고, 율리안에게 폴짝 뛰어와 안겼다. 졸지에 고양이를 안게 된 율리안은 어안이 벙벙한 채로 자신도 모르게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왜, 왜……. 왜 율리안 님을……?”

캘빈은 마치 나라 잃은 장군과 같은 표정을 하며 중얼거렸다.

“제게는 한 번도 안겨 준 적 없으시면서……? 거기다 그루밍까지……?”

“그, 캘빈. 난 원래 동물들이 나를 따라. 그냥 내가 특이체질인…….”

“위로하지 마십시오! 저는 안 슬픕니다!”

“…….”

아닌데. 누가 봐도 울고 있는데.

율리안은 캘빈의 눈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눈물방울을 보며 눈치를 살폈다.

“일단 고양이 님을 데리고 가겠습니다. 오늘은 진짜 씻으셔야 하거든요. 정말로.”

“으아야냐옹!”

“안 됩니다! 그렇게 귀엽게 울면서 율리안 님께 매달리면 제가 체념할 거 같습니까?”

“으야니아옹!”

“아니, 그냥 나는 빼고 너희끼리 싸우면 안 될까?”

틈에 껴 졸지에 고양이의 방패가 된 율리안은 난처해하며 그들을 말리려고 했지만, 아무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고양이 님!”

“야아아옹!”

“…….”

난 여기 왜 왔지.

그냥 돌아갈까.

율리안의 어깨에서 축 힘이 빠졌다.

이때, 굳게 닫혀있던 세키나의 방문이 벌컥 열렸다.

“아오!”

그리고 세키나가 튀어나왔다.

“머 하는 거야, 시끄럽게. 너네 진짜 디질래?”

그 순간, 고양이는 갑자기 조용해졌고 캘빈은 차렷 자세를 하며 정상적인 모습으로 돌아왔다. 언제 지랄발광을 했냐는 듯이 말이다.

“셋 셀 테니까 둘 다 꺼져. 하나, 둘…….”

“야아앙!”

“갑니다!”

그리고 곧바로 사라진다.

율리안은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 캘빈과 고양이를 보며 반쯤 입을 벌렸다.

그러며 생각했다.

세키나구나.

이 마왕성을 이상한 공간으로 만든 게.

***

“왜 와써?”

율리안을 안으로 들인 세키나가 물었다.

방금 전까지 이상한 광경을 보며 살짝 넋이 빠졌던 율리안은 서둘러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 음. 그냥…….”

그는 두 손을 맞잡고 꼬물거리며 말했다.

“미안하다고 하고 싶어서.”

서둘러 덧붙인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궁금하기도 하고.”

세키나는 그런 율리안을 빤히 쳐다보았다.

하루 사이에 수척해져 있는 게, 밤 동안 마음고생 좀깨나 한 듯싶다.

세키나는 으쓱 어깨를 올렸다.

“머, 날 주기려고 한 건 미안해하긴 해야디.”

“으응…….”

“하디만 결과적으로 난 안 주겄고, 너가 그런 이유는 그 미친 새끼 때문이니까 그넘한테 화낼래.”

“어, 어……?”

“갠찬타고. 구니까 이제 그런 말 하디 마.”

율리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화를 낼 줄 알았다. 날 죽이려 들었으면서 이제 와 사과하는 게 우습다고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용서한다 말하는 세키나의 얼굴은 진심이었으니까.

“너는…….”

율리안은 쓰게 웃었다.

“어른스럽구나. 난 아직도 이렇게 어린데.”

“…….”

그건 내가 백 년 가까이 살아서 그런 건데.

이 정도 나이가 됐는데 어른스럽지 못하면 그냥 접싯물에 코 박아야 하는 수준 아닐까?

세키나는 코를 킁 들이마시며 입맛을 다셨다.

“글구 일딴 흑마법에 대해서 알아볼 꺼야. 보쓰가 알아서 한다구 하긴 해찌만 믿을 쑤가 이써야지.”

“방법이 있어?”

율리안의 눈이 커졌다.

흑마법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것에 놀랐는데, 그걸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에도 놀라웠다.

세키나는 대체 어떻게 이런 걸 알고 있는 걸까?

율리안은 놀란 마음으로 세키나를 보았다.

세키나는 그런 율리안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마족들에게는 흑마법에 대해 알리지 않았다. 아무리 그놈들이 나를 좋아하고 있다지만, 나를 어느 정도 아껴준다지만. 그래도 그들의 입장에서 나는 다른 종족의 존재다.

그래서 그들에게 모든 패를 다 까지 않은 거였다.

하지만…….

같은 호문쿨루스라면?

그리고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호구라면?

‘이용할 만하지 않나?’

세키나의 눈이 반짝였다.

“너, 치유 마법 잘 쓰지?”

“아마도?”

“내가 다치면 바로 치료해 줄 쑤 있나?”

“그건 당연하지! 할 수 있어!”

세키나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그럼 가티 가쟈.”

“어디를?”

“마물 사체 뒤지러.”

“……뭐?”

세키나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상황 파악을 못하고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율리안을 향해 말했다.

“가댜, 율리안.”

그 순간.

쿠구구궁!

“끼야아아악! 뭐야! 왜 또 너가 율리안 님이랑 같이 있어!”

디디에가 나타났다.

아…….

얘를 까먹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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