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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님이 만드는 파멸엔딩 (87)화 (88/149)

87화

고양이는 이질적인 존재다.

태초 고대 동물의 파편이라 불리는 환수의 찌꺼기에, 마계라는 하나의 세계를 지배하는 마왕의 힘이 합쳐져 만들어진 존재였으니까.

마왕의 힘이 부여됨과 동시에 태초의 기억이 살아났다. 태초부터 이제껏 이어져 온 환수들의 기억들이 밀려왔다.

그 기억들은 그를 구성했고, 그렇기에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위대한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그에게도 결함이 있었다.

바로 외로움이었다.

차마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오랜 시간에서 비롯된 기억들.

하지만 그 기억들은 어디까지나 그가 아닌 다른 존재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

따라서 그는 스스로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세상만사 모든 것을 알고 있으나 정작 자기 자신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외로웠다.

이런 외로움을 채워 주고자 곁에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이기적이라는 종족이라는 마족이었다.

다만 그 마족은 그의 정체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나마 그가 ‘위대한 존재’임을 알고 있는 건 인간 주제에 마족 틈에서 살고 있는 세키나였다.

하지만 그 세키나는 자신에게 관심이 없었다. 저가 만들어 놓고 모르는 체하며 내버려 두다니.

고양이는 서운했고, 분노했으며, 그렇기에 세키나의 사역마가 되어 달라는 요청을 무시했다. 자신을 이용하려 드는 것 같았으니까.

어차피 챙겨 주지 못할 것 같아 데면데면했다는 말은 핑계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쪼심해!

-갠차나? 안 다쳐찌?

세키나는 몸을 던져 자신을 구했다.

핑계가 아니었나?

변명이 아니었나?

고양이는 혼란스러워졌다.

“고양아. 정신 차료 바. 지금은 멍때리고 이쓸 때가 아니거등?”

그때, 세키나가 고양이를 툭툭 치며 말했다.

“넌 저쪽으로 가. 율리안을 불러와. 나눈 저넘들 상대하고 이쓸게.”

마물은 한 마리가 아니었다. 다섯, 여섯…… 여덟 마리.

인간계에서 보이는 것치고는 크기가 크다. 저 정도면 중형 마물 정도의 급이리라.

갑자기 마물들이 어디서 튀어나오고 왜 달려드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바로 고양이를 지켜야 한다는 것.

이번에야말로 좋아하는 상대를 지킬 수 있게 되었는데 어떻게 도망치겠는가?

세키나는 손을 활짝 펼쳤다.

“잘 대찌, 모. 밖에서 소환술을 써 보고 싶끼도 해쓰니까.”

사실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해내야 한다. 고양이를 지키기 위해서, 당당해지기 위해서.

“빤니 가! 빤니!”

그래서 세키나는 소환술을 발동하며 소리쳤다.

그때였다.

-애송아. 비키거라.

폴짝 뛰어오른 고양이가 세키나의 정수리 위에 올라왔다.

-꿰에에엑!

그리고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고 있는 마물들을 향해 앞발을 뻗었다.

-절대 너를 위해서가 아니다. 위대한 이 몸을 해치려 한 것들을 가만둘 수 없는 것뿐이다.

“엥? 그게 먼 말…… 와우.”

촤악!

마물들의 몸이 절반으로 갈라졌다.

고양이의 발톱에서 뽑혀 나온 마기가 그들의 몸을 그대로 잘라 버린 것이다.

고양이는 귀를 쫑긋 올리며 앞발로 얼굴을 쓸었다.

-마왕의 힘을 거저 얻은 것이 아니지.

“…….”

세키나는 순식간에 도륙된 마물들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저 정도 크기의 저 정도 급인 마물은 쉽게 당해낼 수 없는데.

마물 한 마리만 나타나도 인간 군대 기준 소대 하나가 나서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고작 손짓 한 번에 여덟 마리가 죽었다.

세키나는 고양이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려 주며 말했다.

“너 개짱이다, 지짜.”

-흥. 이 몸이 대단한 걸 이제 알았느냐?

세키나의 정수리에 있던 고양이는 폴짝 뛰어내려 눈밭에 발을 디디며 꼬리를 세웠다.

그러고는 세키나의 발등을 툭툭 쳤다.

-그러니, 빨리 정해라.

“웅? 멀?”

-……눈치 없는 놈.

고양이는 팍! 하고 세키나의 발등을 세게 때린 뒤 앞서 걸어갔다. 딱 한 마디를 남기며.

-이 몸의 이름을 정하란 뜻이다.

세키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름을 정하라는 건 곧 사역마가 되어 주겠다는 뜻.

고양이가 왜 심경의 변화를 느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온 기회이기 때문에 놓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세라!”

세키나는 전부터 생각해 왔던 이름을 외쳤다.

“세라로 할래! 내 이름이랑 겹치게!”

고양이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슬쩍 세키나를 돌아보았다.

-흥…… 그저 그렇구나.

그런 것치고는 꼬리가 빳빳하게 서 있는데요.

웃음이 나왔지만 겨우 참았다. 고양이, 아니 세라의 면을 세워 줘야 했으니까.

“웅. 너는 이제 세라야. 내 옆에 이써 줄 세라.”

-평생은 아니다. 네가 마음에 안 들면 나는 언제든 떠날 것이니.

“아라써. 세라 네가 체고야.”

-흥.

세라는 퉁명스럽게 대꾸했지만 그건 태도일 뿐이었다.

왜 이렇게 확신하냐고?

그야,

서브 퀘스트 <주인님의 인정을 받자!> 성공!

와아, 그래도 머리가 돌아가기는 하네요. 퀘스트를 성공시켜서 저를 부를 생각을 하니 말이에요. 덕분에 이렇게 나오게 됐답니다.

세계의 이질적인 존재인 그는 ‘세라’라는 이름이 되어 세계의 일원이 되었답니다. 축하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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