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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님이 만드는 파멸엔딩 (90)화 (91/149)

90화

반짝이는 대리석 바닥에 백발을 아무렇게나 풀어 헤친 채 누워있는 루치페르의 시선은 천장에 닿아있었다.

천장에는 성전에 나오는 신화 속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하얀 날개를 활짝 펼친 존재가 상단에, 검은 피를 흘리고 있는 존재가 하단에, 서로를 향해 창과 검과 활을 겨누며 싸우고 있는 장면.

루치페르는 저 전쟁의 승리자를 알고 있다.

마계의 주인, 혼돈의 지배자, 어둠을 장악하는 자, 마왕.

마왕의 창에 꿰뚫릴 때 루치페르는 생각했다.

신께서 우리의 손을 잡아 주었다면? 우리 쪽에 시선을 주었다면? 우리를 정말 당신의 자손으로 받아 주었다면?

그래. 이 모든 건 신 때문이다. 나를 사랑해 주지 않는 그 때문에 내가 죽고 천족이 패배한다. 저깟 마왕 놈에게 한 세계를 안겨 주고 힘을 준 신 때문에, 내가 경애해 마지않던 신 때문에 내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다!

흑마법이란 본디 ‘사라진 마법’을 뜻한다. 사라진 마법이란 그 위험이 너무나도 커 ‘신이 금지한 마법’이다.

스스로를 신의 사자라 칭하던 루치페르는 그만큼 신에게 가까웠고, 신이 금지한 마법에 대해 조금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숨이 끊어지기 직전 그것에 손을 대었다.

죽어 버린 육신을 버리고, 정신체로 세상을 떠돌며 끊임없이 마법을 욱여넣고, 욱여넣고……. 아무와도 만날 수 없고 아무와도 대화를 할 수 없고 오로지 혼자인 세월을 몇백 년이나 거치면서 그렇게 힘을 모은 루치페르는 끝내 새로이 태어났다.

그리고 신을 몰아냈다.

세계의 탄생부터 함께했던 신은 사라졌고, 루치페르는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그러자마자 그가 한 일은 바로 마계를 척살하는 것이었다.

마왕의 힘을 빼앗고, 마계를 뒤엎어 마족들을 고립시켰다.

마왕의 힘이 사라진 상태의 마족은 자신과 생사를 걸며 싸우던 위대한 존재가 아니었다. 루치페르는 그들을 몰살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미 신을 몰아낸 것만으로도 ‘세계의 인과’를 충분히 어긴 것이었기에.

여기서 마족까지 제 손으로 직접 죽여 버리게 된다면 그는 ‘세계의 인과’에 맞지 않는 부적합 개체가 되어 갈가리 찢겨 버리리라.

그래서, 루치페르는 자신의 힘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존재를 만들어내기로 했다.

드한 아가토.

그에게 시련을 주자.

시련을 통해 성장토록 하자.

성장하면서 나의 힘을 배울 수 있게 하자.

힘을 배운 후 마족을 모두 소탕하게 만들자.

그렇게 된다면 인과를 어기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아닌 일개 인간이 마족을 상대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루치페르는 드한을 고난에 빠뜨렸고, 고난으로 인해 성장하게끔 하려 했다. 그 첫 번째 고난이 바로 ‘사랑하는 연인의 죽음’이었다.

그런데…….

[<환생 회귀> 능력이 발동됩니다!]

사라진 줄 알았던 신이 그때 나타났다. 그리고 드한의 ‘사랑하는 연인’의 시간을 되돌리며 새로이 태어나게 만들었다.

아직도 시간을 되돌릴 힘이 남아 있는가? 이렇게 한다 해서 세계를 되찾을 수 있을 줄 아는가? 멍청한 것 같으니라고!

그때부터 루치페르와 신의 숨바꼭질이 시작됐다.

번번이 루치페르의 승리였다.

드한은 언제나 사랑하는 연인을 잃었고, 그 역할에 들어간 영혼은 갈수록 지쳐갔다.

이제 끝이다.

루치페르는 백 년에 가까운 숨바꼭질을 끝내고자 했다.

하지만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드한이 죽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가 진영 변경에 의한 ‘히든 캐릭터’로 환생하였습니다!]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간악하고 교활한 놈. 이 상황을 만들고자 이제껏 버텼던 것이로구나……! 그때에 느꼈던 얼얼함을 평생 잊지 못하리라.

하지만 괜찮다.

드한의 고난은 새로이 만들어 주면 되는 것이고, 환생한 것은 소멸시켜 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의 계획에 문제가 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문제라면 마왕 놈이지.”

루치페르는 마치 끈에 이끌려 움직이는 인형처럼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커다란 창문에서 쏘아 들어오는 햇빛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가브리엘. 거기 있니?”

멀지 않은 기둥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위 신관임을 드러내는 신관복을 입은 자였다.

“네, 성하. 여기 있습니다.”

“성하는 무슨. 편히 부르렴. 우리끼리 있는 것을.”

가브리엘은 인간이 아니었다.

천마 전쟁에서 마족에 의해 죽었던 천족. 죽음 뒤의 영원한 안식이 있노라 믿었던 이. 하지만 루치페르의 수족이었다는 이유로 안식에서 불려 나왔다.

그렇다고 해서 불만이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루치페르는 자신의 주인이자, 세계의 주인이자, 또한 오직 하나뿐인 왕이었으니까.

“네, 왕이시여.”

가브리엘의 대답에 루치페르는 기분 좋은 미소를 입가에 걸며 눈을 깜빡였다.

“다이몬 가는 언제쯤 함락시킬 수 있을까?”

다이몬 가.

인간계에 내려온 마족들이 만들어 낸 가문이라 추측하는 곳.

물론 루치페르는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그 벌레 같은 마족 새끼들을 언제쯤 몰살할 수 있냐는 뜻이야. 응? 너도 알잖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응?”

가브리엘은 고개를 푹 숙였다.

“더 노력하겠습니다.”

“아니야. 그런 대답을 원한 게 아니야. 너는 언제까지 이렇게 나를 잘 몰라줄 거야?”

루치페르는 숨을 크게 들이켜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드한을 불러올래?”

북부에 있는 드한을 눈앞에 그리며 말했다.

“그놈을 빨리 성장시키자. 응? 그놈이 모든 걸 해내게 만드는 거야. 마왕도, 마족도, 마계도 모두 다 그놈이 없애게 만드는 거야. 그리고 모든 인간들을 다 죽여 버리면 돼. 그렇지?”

가브리엘은 격양돼 있는 루치페르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응, 응. 은혜도 모르고 헛짓거리나 하고 있는 인간들은 살려 줄 필요가 없지. 응.”

루치페르의 입꼬리가 찢어진다. 곧 일어난 세계의 멸망을 그리기라도 하는 듯 그의 얼굴이 황홀감에 젖어 든다.

그때였다.

“……어?”

루치페르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며 움찔, 다리를 뒤틀었다. 가브리엘 역시 그의 이상함을 느꼈다.

“왕이시여!”

“어, 억……!”

루치페르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며 가랑이를 붙잡았다.

“이, 이……! 미친 새끼들이!”

***

“아, 이번 건 먹혔을 겁니다.”

루치페르의 시체 가랑이를 뭉개버린 아서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환히 웃는 얼굴 뒤에 엉망진창이 된 시체가 있는 건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어쨌거나 그가 행복하면 됐다. 그거면 된 거다.

“팔 하나를 잘라 볼까요?”

아서는 시체를 살피고 있는 마왕, 르카이츠를 향해 말했다.

르카이츠는 눈을 느리게 감았다 올려 뜨며 침음을 흘렸다.

“아니. 잘라 버리면 고통을 겪는 부위가 그만큼 없어지는 것 아니냐. 아무것도 자르지 마라.”

“역시 마왕님이십니다.”

아서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환히 웃었다. 그런 그들 뒤에는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는 리아트가 있다.

“역시는 무슨……. 보는 것만으로도 역해 죽겠는데…….”

리아트는 손수건으로 입을 막으며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아서가 그를 향해 말했다.

“리아트 경. 토하셨습니까?”

“시끄럽다.”

“애들은 그렇게 잘도 폐기시키고 해부하시면서 이런 거에 약하시다니. 좀 웃기네요.”

“너, 너……!”

아서는 픽 웃으며 리아트에게 두었던 시선을 거뒀다. 호문쿨루스는 연구를 해야 한답시고 실험대에 올리고 그렇게 괴롭혀 놓고서는 고작 이런 꼴에 징그러워하는 게 퍽 마음에 안 들었다. 아서는 들고 있던 망치를 더 세게 움켜쥐었다.

“저기, 발톱이 하나 남아 있다.”

“역시 군단장님!”

그리고 마르틴의 말에 따라 발톱 한 개를 더 부쉈다.

“조금만 더 괴롭히고 힘이 빠질 때쯤 기억을 읽어 보겠습니다.”

사실 지금 기억을 읽어 보아도 되지만, 그 전에 일단 실컷 괴롭히고 싶었다.

아서는 상쾌한 얼굴로 망치를 방방 돌렸고, 마왕인 르카이츠는 그의 옆에서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고문을 지시하고 있다.

정말 두 눈에 담고 싶지 않은 광경이다.

“이런 꼴을 세키나가 안 봐서 다행이지…….”

리아트는 다시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아기, 어디 있나?”

그런 리아트의 등을 퍽퍽 쳐 주며 마르틴이 말했다.

“아오! 아파! 그만 때려!”

리아트는 신경질 내며 마르틴의 손을 뿌리치고, 세키나의 행방에 대해 잠깐 고민했다.

“세키나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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