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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님이 만드는 파멸엔딩 (91)화 (92/149)

91화

세키나는 온실에 나와 있었다.

사실 루치페르를 고문하는 데에 같이 있고 싶었다. 하지만 다른 마족들이 강경하게 반대를 해 어쩔 수 없이 쫓겨났다.

대신 한의 편지를 쥐고 있다. 황태자의 죽음에 대해 조사하라 보낸 한에게서 온 편지 말이다.

<야야. 나 진짜 죽을 뻔. 이거 보상금 줘야 하는 거 아니냐?>

자신이 어떻게 죽을 뻔했는지 나열하는 내용을 읽지도 않고 건너뛴 세키나는 맨 아래에 적혀 있는 본론을 발견했다.

<황실 자체가 이상해. 분명 내가 전에 봤던 귀족인데 날 기억하지 못하고, 이전에 있었던 수도의 큰 사건도 기억을 못해. 아무래도 네 추측이 맞는 거 같아.>

세키나의 추측.

황제는 정말 죽은 것이 맞으며, 황태자가 황제인 척을 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그렇게 가장하고 있는 이들이 황제만 있는 게 아닐 거라는 것.

다시 말해, 지금 살아있는 귀족들 중 대부분은 뒤바뀐 놈들일 거라는 추측…… 이었는데.

‘맞나 보네.’

세키나는 쓰읍 숨을 들이켜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확실히 세키나가 알고 있는 게임 시나리오와는 다르다. 아예 예측 자체가 불가하다. 그나마 확신할 수 있는 건 던전이나, 유물의 위치 같은 것뿐.

‘그래도 그걸 다 클리어하고 획득하는 게 중요해.’

세키나는 기억을 더듬으며 던전의 위치를 떠올리려 했다.

그나마 지금 공략하기 쉬운 던전은…….

‘수도.’

수도 광장에 있는 지하실.

세키나는 편지 끄트머리에 휘갈긴 추신을 발견하고 씨익 웃었다.

“구래. 가 보쟈. 간만에 수도 나들이네.”

쌍둥이에게도 말을 전달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한 세키나가 편지에 두었던 시선을 들어 올리는 때.

“아아악! 깜짝이야!”

바로 눈앞에 있는 얼굴을 보고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아니, 왜 그케 가깝게 이써! 와쓰면 말을 하등가!”

세키나는 벌렁벌렁 뛰는 가슴을 손으로 누르며 인상을 찌푸렸다.

“말하려 했는데 네가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아서.”

세키나를 놀라게 한 장본인. 니샤가 어깨를 으쓱 올리며 대꾸했다.

“오랜만이네?”

니샤는 아무렇지 않게 세키나의 맞은편에 앉았다.

“재미있는 일을 벌이고 다니던데.”

진보라색 눈동자가 세키나에게 향했다. 순간 세키나는 살짝 쫄았지만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머? 나 암것도 안 했눈데?”

니샤는 픽 실소를 뱉었다.

“마왕님 앞에서 소환술을 보여 주고, 마계 연결 통로를 보여 주고, 그걸로도 모자라서 빙벽에서 시체를 빼 왔는데 아무것도 안 했다고?”

“…….”

세키나는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니샤가 하지 말라고 했던 짓을 다 하고 있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빨리 죽고 싶은 거라면 지금 죽여 줄게. 그게 낫겠네.”

“아니, 아니! 구게 아니라!”

세키나는 서둘러 두 손을 저으며 소리쳤다.

“너 말대루 내 능력을 숨기면은 더 오래 살 쑤 있게찌. 하디만 그러다가 마족들이 다 주그면 어떠케?”

소중한 것을 잃고 싶지 않다는 욕심.

이 때문에 세키나는 직접 나선 것이다. 더 이상 힘을 숨기고 모른 척하는 게 아니고.

“살리고 시퍼. 모두 다.”

이게 세키나의 진심이었다.

니샤는 그런 세키나의 올곧은 눈동자를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이내 한숨을 뱉으며 한쪽 눈을 찡그렸다.

“장로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줄 알아?”

그러고 보니 그간 장로들이 조용하긴 했지. 세키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널 죽이려 해.”

뭐라고?

“왜? 아니, 미친 거 아니야? 내가 지굼 모두를 돕꼬 있눈데 날 주긴다고?”

너무 놀라고 어이가 없어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장로라 하면 오랜 세월을 살아 온 마족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마계에 빨리 돌아가고 싶어 할 줄 알았다. 그래서 세키나는 장로들을 신경 쓰지 않고 있던 것도 있었다. 그들은 자신을 지지할 거라 생각했으므로.

“나보고 널 죽이래.”

“니샤!”

“니샤 아니고 언니.”

“지굼 그게 중요해?!”

세키나는 벌떡 몸을 일으키고 씨익 씨익 숨을 가쁘게 내뱉었다.

니샤에게까지 그런 명령을 내릴 정도라니.

정말로 그들은 날 죽이려 하는 건가?

왜?

내가 뭘 잘못했다고?

세키나의 두 눈동자가 흔들렸다.

“날, 날 왜 주기려 해?”

순간 세키나의 머릿속에 불안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혹씨, 그 장로들…… 흑마법에 넘어간 고 아니야?”

니샤는 고작 그런 말을 하려 했냐는 표정을 지으며 픽 웃었다.

“장로를 얕보지 마. 그건 아니야.”

“구럼 대체 날 왜 주기려 하는 건데!”

“진짜 이유를 알려줘?”

니샤도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씩씩거리는 세키나의 어깨를 쭉 누르며 세키나를 내려다보았다.

“호문쿨루스 주제에 으스대는 게 꼴 보기 싫으니까.”

“…….”

“호문쿨루스 주제에 마계의 일원이 된 것처럼 나대는 게 짜증 나니까.”

“…….”

세키나는 자신이 제대로 들었나 싶어 귀를 한 번 후볐다. 하지만 니샤의 굳은 얼굴을 보고 있자니 저가 제대로 들은 게 맞는 듯했다.

“구게…… 끝이야?”

세키나는 입을 뻐끔거렸다.

“단지 그 이유 때문에 보쓰 봉인을 풀 쑤 있꼬, 마계에 갈 쑤 있는 기회를 저버린다구?”

“어.”

“말도 안 대!”

“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

니샤는 쯧쯧 혀를 찼다.

“네 주변에는 그나마 상태 좋은 마족들만 있어서 잘 모르나 본데, 마족 새끼들은 원래 그래.”

세키나의 주변에는 세키나를 희한하게 아껴 주는 마족들이 있었다.

하지만 니샤는 알고 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마족들은 극히 소수이고, 자신의 그릇된 욕망과 허무한 성취를 위해 이기적이게 구는 마족들이 대부분이라고.

그래서, 니샤는 세키나가 ‘모두를 살리고 싶다’는 등의 말을 하는 게 꼴 보기 싫었다.

겪어 본 적도 없으면서.

마족들이 얼마나 쓰레기 같은 놈들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니샤는 숨을 크게 들이켜며 격양된 마음을 애써 가라앉혔다.

“굳이 다 살릴 필요는 없어.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꿔봐.”

“너, 너어……!”

세키나는 자리를 떠나려는 니샤의 손목을 붙잡았다.

“나, 주길 거야? 지짜로?”

니샤는 고개를 돌려 세키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사실, 세키나가 소환술을 쓰기 전에 목을 베어 버리면 되는 일이다. 마물을 부르기 전에 죽여 버리면 끝이니까.

세키나의 목숨은 모두의 손바닥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니샤는 입 안쪽 살을 살짝 깨물었다.

“1장로한테 거래 조건으로 말했던 거 있지?”

세키나의 눈이 동그래졌다.

거래 조건, 블랙 스피넬.

마기를 담아낼 수 있는 유일한 원석.

-구거, 바다에 이써. 그것또 인어족 사는 곳에.

-공간이동 마법진만 만들어 조. 그럼 인어족 몰래 광산 가지구 오깨.

분명 그렇게 말을 했었다.

“그걸로 거래를 해 봐. 그럼 조금이라도 더 살 수 있을 거야.”

니샤가 이걸 어떻게 알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으므로 세키나는 니샤를 잡았던 손에 힘을 서서히 풀었다.

“나한테 왜 잘해 주는 거야?”

그리고 니샤의 뒤통수를 향해 물었다.

“넌 이게 잘해 주는 걸로 보이냐?”

살짝 고개를 돌린 니샤는 세키나를 보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가 죽으면 귀찮아질 것 같아서 이러는 거야. 그러니까.”

니샤는 다시 앞으로 걸어가며 단 한 마디만을 내뱉었다.

“살아.”

“…….”

세키나는 걸어가는 니샤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저게 바로 츤데레인가……?

***

“드, 드한! 드한, 어디, 어디 있어?”

유리엘의 외침이 북부성 신전을 채운다.

그는 여러 신관들을 붙잡고 드한의 행방을 물었지만, 고작 종자인 드한을 눈여겨보는 이들은 없었으므로 유리엘은 계속 헤맬 수밖에 없었다.

“빠, 빨리 얘기해야 하는데……!”

넓은 신전을 샅샅이 뒤지던 유리엘은 꼬박 한 시간 만에 후원에서 빗자루질을 하고 있는 드한을 발견했다.

“허억, 헉…… 드한! 왜 여기 있는 거야……! 오, 오늘 너는 기도실에 있어야 하는데……!”

그의 외침에 빗자루를 들고 있던 드한이 고개를 퍼뜩 들었다.

“유리엘 님?”

드한은 커다란 눈을 여러 번 깜빡였다.

“동기들이 오늘 일이 있다고 부탁을 해서요. 그건 그렇고…… 많이 힘들어 보이시는데, 괜찮으십니까?”

유리엘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동기들의 부탁으로 이 추운 날 외투 한 벌 없이 밖에 나와 청소를 하고 있다고? 거짓말이다. 그놈들이 드한을 은근하게 괴롭힌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니까.

유리엘은 화가 났다.

저렇게 입술이 파랗게 질릴 정도로 밖에 있어 놓고서는 ‘그건 그렇고’라고 저를 돌보지 않는 드한에게, 자신의 안위보다 남을 걱정하는 드한에게, 그리고 그런 드한을 괴롭히고 방치하는 신전에.

유리엘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드, 드한. 우, 우리 나가자.”

“……네?”

“중, 중앙성 신전에서 우리를 불, 불렀어. 그러니까 여, 여기서 나가자.”

유리엘은 드한의 양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너, 넌 더 대단해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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