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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님이 만드는 파멸엔딩 (96)화 (97/149)

96화

빙벽에서 돌아온 1군단의 마족들은 또다시 훈련장에서 훈련을 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왜일까?

전보다 사기가 떨어진 듯한 모습이다. 구호 소리도 전과 같지 않다.

“으…….”

어깨를 한껏 떨어뜨린 마족들은 꿍얼거리며 벤치에 몸을 앉혔다.

“왜 이렇게 기운이 안 나지. 부단장님이 없어서 그런가?”

“부단장님 얼굴 때문에 기운 나는 것도 이상하지 않냐?”

“그것도 그러네…….”

쓸데없는 말을 주고받으며 물통을 비우던 그들 중 한 명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세키나 님 보고 싶다…… 엥?”

그러자마자 뭔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아! 세키나 님이 없어서 기운이 안 나는 거구나!”

“응, 이제 알았죠?”

“와, 어이가 없네. 고작 호문쿨루스 하나 없다고 이렇게까지 기운이 없을 일이냐?”

“세키나 님은 고작 호문쿨루스가 아니니까. 세키나 님이 옆에 있으면 우리도 힘 나고 그랬잖아.”

“그건 그렇지. 같이 뛰는 것도 재밌고.”

이렇게 훈련을 하고 있으면 세키나가 와서 같이 뛰거나, 욕을 하거나, 혼을 내거나 했었다.

당시에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막상 세키나가 보이질 않으니 알게 됐다.

그들은 이렇게 세키나의 부재를 절실히 느끼며 수도로 떠난 세키나를 떠올렸다.

“애기일 때 진짜 귀여웠는데.”

“발발발 기어 다니고.”

“벌써 그렇게 크다니……!”

크흑!

이게 바로 아이를 출가시킨 아버지의 마음일까? 

가슴 한구석이 몽글몽글해졌다.

“야. 나 지금 가슴이 좀 울렁거리는 거 같아.”

“응, 부정맥이죠?”

“마족이 왜 부정맥이냐, 등신아. 정신 안 차릴래?”

티격태격하는 그들을 뒤로하고 처음 말했던 마족이 가슴을 부여잡았다.

“이런 게 바로 인간들이 말하는 그런 감정인가?”

“무슨 감정?”

“보고 싶다거나…… 아낀다거나…… 그런 거?”

그의 말에 다른 마족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건 진즉 세키나 님한테 느끼고 있지 않았냐?”

“응, 맞는 말이죠?”

하긴 그렇다.

지금도 세키나가 보고 싶다고 훈련도 안 하고 주저앉아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항상 세키나를 지켜 주고 싶었고, 기쁘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음. 정말 아이를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이다.

마족들은 새삼 가슴이 따뜻해지는 걸 느끼며 씨익 웃었다.

그때였다.

“음?”

넓은 시야에 뭔가 이질적인 것이 들어왔다.

“야. 저거 뭐냐?”

그들은 미간을 찌푸려 초점을 맞추며 한점을 응시했다.

“장로들?”

“뭐야. 왜 저렇게 모여있냐?”

그곳에는 2, 4, 5장로가 있었다.

본디 장로들은 어떻게든 위에 있는 놈을 끌어내리려고 갖은 수를 다 쓰는 족속들인데, 저렇게 모여 있다? 거기다가 세키나와 아서가 자리를 비우자마자 쪼르르 모여 있다고?

“뭔가…….”

“응, 냄새가 나죠?”

확실히 이상하다.

마족들의 눈이 가늘어졌다.

“쫓아?”

“쫓아.”

그들은 새삼스레 깨달은 세키나에 대한 마음을 다시 한번 새기며 바닥을 박차고 나갔다.

***

세키나 일행은 수도로 가는 길목에 있는 북부의 외진 마을에 잠시 머물렀다.

원래라면 북부를 벗어난 후 휴식을 취할 계획이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유리엘의 열이 내리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간 유리엘의 목숨까지도 위험해질 것 같아,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이 마을에 잠깐 머무르게 되었다.

눈보라 한가운데에 있는 마을이었으므로 상태는 별로 좋지 않았다. 마을 주민이라 해 봤자 몇십여 명이 고작이었고, 숙소라 해 봤자 주택의 2층을 내어 주는 정도였다.

그래서 쌍둥이는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나섰다.

-얘네 다 불쌍해! 내가 지켜 줄 게 없는지 보고 올게!

-난 감독.

인간을 지키는 데에 재미 붙인 메르데스가 흐뭇하기도 하면서 조금 멍청해 보이기도 하는…… 양가적인 감정을 가진 세키나는 일단 그들을 보내 주었다.

눈발을 헤치고 뛰쳐나가는 그들은 영락없는 어린아이들이었으니까.

‘제대로 컸으면 쟤네도 멀쩡했겠지.’

세키나는 묘한 씁쓸함을 느끼며 창밖에 두었던 시선을 거뒀다. 아서가 방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날씨가 추워요. 창문 가까이에 있으면 감기 걸립니다. 오세요, 담요로 안아드릴게요.”

“웅. 고마어. 군데 나는 세라가 이써서 별로 춥찌는 안아.”

세키나는 제 품에서 잠들어 있는 세라를 꼭 안고는 아서를 쳐다보았다.

“유리엘은 어때? 쫌 나아써?”

“종자가 옆에서 간호 중이기는 합니다만, 쉽게 열이 내릴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군요.”

“훔. 그럼 어카지.”

세키나의 얼굴에 담긴 고민을 보며 아서가 대답했다.

“버리고 가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만.”

“안대.”

하지만 세키나는 단호히 대꾸했다.

“이용해 머거야지. 이 조은 기회를 어케 내버려도? 나눈 놓아줄 생각이 업써요.”

아서의 잇새에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그는 알고 있다. 이 신관과 종자에게 이용할 가치가 없더라도 세키나는 그들을 구했을 거라는 사실을.

세키나는 호문쿨루스답지 않게 마음이 여리고, 정이 많은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이용’하겠다고 말하는 건 다른 이들의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겠지.

이 사실이 못내 마음이 아팠다.

세키나가 제대로 된, 다시 말해 마왕성이 아닌 다정한 인간들 틈에서 살았다면 이런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됐을 거라 생각이 드니까…….

아서는 쓰게 웃었다.

“그래요. 그럼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겠군요.”

“웅. 그러쟈.”

세키나는 끄덕이곤 코코아를 홀짝거리며 먹었다. 아서는 그런 세키나의 뺨에 묻은 초코를 닦아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세키나 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만.”

“몬데?”

“아까 전에 종자가 했던 말이 무슨 뜻입니까?”

뜨끔.

세키나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굴렸다.

-저를 알고 계시죠?

이 말을 뜻하는 것이리라.

아오, 미친넘. 왜 그딴 말을 해 가지고!

세키나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가장하며 고개를 저었다.

“나두 모르겠눈데.”

“……그래요?”

아서의 눈이 가늘어졌지만, 그건 순간이었다.

“세키나 님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요. 하지만 만약 그 종자가 세키나 님 곁에서 알짱거린다면…….”

아서의 눈이 번뜩였다. 그 날카로운 눈빛에 살기가 담겨 있는 건 당연한 일. 세키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런 거 업써. 그럴 일두 업꾸. 안 만들 꺼야.”

“그럼 다행이고요.”

아서는 다시 원래대로의 표정을 지으며 세키나를 쓰다듬어주었다.

아우, 무서운 새끼.

세키나는 절대 들키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하며 코코아를 홀짝였다.

그때였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드한이 뛰어 들어왔다.

“저, 저! 유리엘 님이 일어나셨습니다!”

“오?”

아서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생각보다 일찍 눈을 떴군요. 일단 쉬고 있으라고 하는 게 좋겠습니다. 제대로 된 의원이 올 때까지요.”

“아…… 그게…….”

드한은 우물쭈물하며 문가를 서성였다.

왜 안 가고 있지? 의아하던 중, 그의 뒤에서 낯익은 인영이 튀어나왔다.

“쿨럭!”

유리엘이었다.

그는 비틀거리는 몸을 간신히 가누며 문턱을 밟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아, 아니요…… 그, 그 전에 먼저 이,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요…….”

아서는 세키나를 쳐다보았다. 허락을 구하는 듯한 태도라서, 세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확인한 유리엘이 그들의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신관님!”

“가, 감사합니다…… 두 번씩이나……. 여, 여러분들이 없었다, 다면 저희는…… 저, 정말 죽었을 거예요…….”

세키나는 제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유리엘을 무심한 얼굴로 내려다보았지만, 속은 말이 아니었다.

‘얘 왜 이래.’

용사의 친구잖아.

그럼 이딴 일로 무릎 꿇고 하면 안 되는 거 아냐?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세키나는 식은땀이 흐르는 걸 간신히 감추고는 고개를 휙 돌렸다.

“우웅. 감사는 아까 들어쓰니까 대꼬. 이러나.”

“하, 하지만……!”

“아래에 이쓰면 내가 목이 아포. 구니까 이러나.”

“……아, 알겠습니다.”

엉거주춤 일어나 의자에 앉는 유리엘을 보고 세키나는 다시 한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코코아를 쓰윽 밀었다. 일단 한잔 마시고 얘기하자는 태도로.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세키나는 다소 안정된 분위기를 느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보다, 너네 왜 그케 댔던 건데?”

“네, 네?”

“북부성 신전에서 너히를 주기려 한 이유가 이쓸 거 아냐.”

유리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들이 우리를 죽이려 한 이유.

끝없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이걸 말해도 될까? 다이몬 백작가에 사실을 말해도 될까?

유리엘의 눈동자가 흔들렸지만, 그건 아주 찰나였다.

“그, 그건…….”

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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