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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님이 만드는 파멸엔딩 (97)화 (98/149)

97화

북부성 신전은 중앙과 한참 먼 곳에 위치해 있다.

중앙 집권 체제가 발달돼 있는 제국이라면 모를까, 아무리 대신전이라고 해도 지방에 있는 신전까지 속속들이 살펴볼 수는 없는 노릇.

중앙의 지배가 서서히 약해지면서, 북부성 신전은 점차적으로 독자적인 체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독자적인 체계란 북부 자체적으로 선교를 한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신전을 뒤에 업고 사람들을 상대한다는 뜻이다.

그런 까닭으로 북부성 신전의 창고는 척박한 북부 영지와 달리 가득 채워져 있었으며, 신관들은 깡마른 북부 주민들과 달리 포동포동하게 살이 쪄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중앙과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길 바랐다.

중앙에서 자신들을 간섭하게 된다면 지금껏 누려 왔던 특권을 모두 다 빼앗기게 될 테니까.

“……이렇게 되, 된 겁니다.”

차분히 설명하는 것과는 달리 깍지껴 잡은 유리엘의 두 손은 파르르 떨리고 있다. 아직 어린 드한이 듣기에는 너무나도 천박한 일이었으니까. 더불어 다이몬 백작가에게도…….

수치스럽다. 유리엘은 고개를 푹 숙였다.

“아뉘, 구니까. 북부 애들이 썩은 건 알겠눈데 걔네가 널 왜 주기려 했냐구.”

“중앙에서 직접 이들을 부른 거니까요. 중앙에 가서 무슨 말을 할지 모르니 죽이려 든 겁니다.”

세키나의 질문에 아서가 대신 대답해 주었다.

“부, 부끄럽지만…… 네…….”

유리엘은 우물쭈물거리며 말을 이었다.

“지, 지금까지 부, 북부에서 나간 시, 신관은 없습니다…….”

“모두 주거서?”

“……네에.”

“오. 쓰레긴데.”

세키나는 헛웃음을 뱉었다.

게임 시나리오상, 정확히 말하면 세키나가 죽는 15살 때까지는 북부가 그다지 큰 의미가 있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세키나는 아예 이쪽을 보지도 않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까놓고 보니 정말 개판이다.

밀려오는 마물과 돌아있는 마족들, 그리고 부패한 신전까지.

‘이대로 망하면 아주 딱이겠네.’

세키나는 쯧쯧 혀를 찼다.

“저, 저희는 괘, 괜찮을 줄 아, 알았거든요……. 교, 교황 성하가 지, 직접 부른 거고, 제, 제가 아닌 드, 드한이라…….”

교황이 드한을 부른 이유.

아직은 그의 목적을 모른다.

하지만 알게 될 것이다. 곧.

세키나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그래. 머. 우리두 수도 가구 있눈 중이라, 가티 가쟈. 데려다주께.”

“네?!”

유리엘이 화들짝 놀랐다.

자신들을 살려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살려준 것으로도 모자라 숙소까지 안내해 주고, 의원까지 불러 주지 않았나. 그래서 유리엘은 이 이상을 기대하지 않고자 했다. 이 이상을 바라면 과욕이었으니까.

어떻게 해서든 마차를 다시 구한 뒤에 수도로 가는 수밖에 없노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수도까지 함께 가 준다니.

제집이라 생각했던 신전은 자신을 죽이려 했다.

반면 적이라 생각하고 경계했던 다이몬 백작가는 자신을 두 번이나 구해 주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선인가? 누가 악인가?

유리엘은 울컥 감정이 치미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 감사합니다…… 이, 이렇게 여러모로 은혜를…….”

그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있었으므로, 세키나는 더욱더 잘됐다는 생각을 하며 씨익 웃었다.

“구치? 고맙지?”

세키나는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려 오도도 유리엘에게 뛰어갔다.

“구럼 나 부탁이 있눈데.”

“네, 네! 마, 말씀하십시오!”

“교황청 들갈 때 나두 데꼬 가 조.”

교황청은 신관이 아닌 자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기에 유리엘과 드한이 잠시 멈칫거렸지만 세키나는 굴하지 않았다.

“꼬옥. 꼭 가 보고 시퍼. 궁금해꺼든.”

당연히 하나도 안 궁금하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그곳을 가려고 하는 이유가 있다.

‘던전.’

교황청 지하에 던전이 있기 때문이다.

‘탈탈 털어 오자.’

얼굴에 번져 있는 무해한 웃음과는 달리 세키나의 속내는 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

“후우.”

르카이츠는 쥐고 있던 대검을 땅에 꽂아 넣은 후 짧은 한숨을 뱉었다.

그의 몸에는 마물의 피가 덕지덕지 묻어있다. 동이 틀 때부터 해가 지는 지금까지 끝없이 마물을 상대해 왔기 때문이다.

“끝이 없군.”

그는 중얼거리며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마자 하얀빛이 그의 몸을 뒤덮었고, 찐득하게 묻어 있던 마물의 피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옷깃을 탈탈 털은 후, 르카이츠는 산 너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나, 마물을 다룰 수 이써여.

-글구 마계에도 갈 쑤 이써여.

파르르 떨면서도 또박또박 한 글자씩 말하던 작은 호문쿨루스의 말이 떠오른다.

소환술을 쓸 수 있고, 마계의 연결통로까지 사용할 수 있다는 아이.

그런데도 말을 하지 않은 이유는,

-볼짱 다 보면 쫓겨날 거 같아꺼든.

자신의 안식처인 마왕성에서 내쫓길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르카이츠도 알고 있다. 지금 만들어진 호문쿨루스들은 어차피 자신들이 마계에 돌아갈 때 버리고 갈 것이라는 걸.

그들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일 뿐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마족도 아닌 존재. 그렇다고 해서 인간도 아니다.

제3의 존재라 할 수 있는 그들이 자신들이 떠난 이후 어떻게 살아갈지 르카이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이나마 고민을 하게 된다.

그들은 과연 잘 살 수 있을까?

마족들이 떠나고 난 뒤에,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아갈까?

인간들 틈에 섞여 살 수 있을까?

‘모르겠군.’

르카이츠는 눈을 찡그리며 앞머리를 헝클었다.

이러한 고민은 모든 일이 다 끝난 후 생각해 보아도 되는 것이다.

고민은 뒤로.

지금의 자신은 해야 할 일에 집중해야만 한다.

잃어버린 나의 힘을 찾아야 했으니까.

-마왕님 힘, 제가 찾아 주께여.

문득 떠오른 그 호문쿨루스의 말에는…… 귀 기울이지 않기로 했다.

르카이츠는 다시 대검을 뽑아 들었다.

***

대화가 끝난 후 유리엘은 까무룩 기절해 버렸고, 아서는 식사를 준비하겠다며 나갔으며 세키나는 세안을 해야겠다며 욕탕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래서 졸지에 혼자 남게 된 드한은 멋쩍어하며 방 안을 배회했다.

다이몬 백작가가 자신들에게 크나큰 호의를 베풀어 준 건 알겠다.

그래서 고맙고, 또 수치스러웠다.

자신들은 신의 아이다. 신의 선택을 받은 존재다. 그런데 같은 처지의 신관들이 자신들을 내치고…… 죽이려 드는 것까지 들켜 버리다니.

‘뭐가 옳은 건지 모르겠어.’

드한은 제 마을을 습격했던 도적 떼를 소탕하겠다는 결심만 가지고 있는 어리숙한 아이였는데, 그렇기에 더더욱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악인지 판별이 불가했다.

유리엘만 해도 얼마 전까지 다이몬 백작가를 의심하고 몰아갔지만 지금은 그들을 은인처럼 여기고 있지 않은가.

‘아무 생각도 말아야 하는 걸까.’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눈앞에 닥친 일만 해결하면서 그렇게 나아가면 되는 걸까.

드한은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팍!

잘 뭉쳐진 눈덩이가 창문을 쳤다. 깜짝 놀란 드한이 창문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1층에서 눈을 가지고 놀고 있는 쌍둥이가 보였다.

“야! 내려와!”

메르데스가 외쳤다. 드한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럼 너 말고 거기 누가 있냐? 빨리 내려와!”

왜 내려오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드한은 그들이 시키는 대로 잠자코 1층으로 내려갔다. 그러자마자 눈덩이를 여러 개 뭉쳐 서로 던지며 놀고 있는 쌍둥이가 보였다.

“야! 너도 껴! 빨리 눈 뭉치고!”

“……예?”

“놀자고!”

엉겁결에 그들과 합류하게 된 드한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뭉쳤고, 던지기 시작했다. 몇 대를 맞고 몇 개를 던지다 보니 이제 좀 감이 온다. 드한은 손에 힘을 바짝 주고 눈덩이를 던졌다.

“악!”

그에 얻어맞은 메르데스가 털퍼덕 쓰러졌다. 그는 머리에서 후드득 떨어지는 눈을 슥슥 문지르며 헛웃음을 뱉었다.

“뭐야. 인간 주제에 왜 이렇게 힘이 세?”

드한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아무리 같이 놀자고 했어도 이건 너무 심했나? 내가 너무 세게 던졌나? 드한은 초조해졌다.

“어, 어…… 죄, 죄송합니다.”

그래서 고개를 푹 숙이며 사과했는데, 쌍둥이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뱉었다.

“뭐래. 노는 건데 맞은 놈이 잘못이지.”

“그건 그래.”

그들은 다시 흩어졌고, 또 눈을 뭉치기 시작했다.

“…….”

이렇게 놀아도 되는 건가?

화를 내지 않는 거야?

마을을 떠난 이후 이렇다 할 또래 친구가 없었던 드한이다. 그의 곁에는 유리엘이 있었고, 그 외의 신관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혼자나 다름없었다. 혼자서 이겨내고, 혼자서 나아가는……. 하지만 그는 고작 5살짜리 어린아이일 뿐이다. 혼자서 아무것도 해낼 수 없는 어린아이.

드한의 뺨이 붉어지고,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격양된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야야. 나 아까 형한테 디지게 맞았거든? 우리 둘이 편 먹고 형 노리자.”

“……네!”

드한은 메르데스와 함께 파르데스에게로 뛰어갔고, 어느새 그의 얼굴에는 어떤 때보다 더 밝은 웃음이 걸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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