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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님이 만드는 파멸엔딩 (101)화 (102/149)

101화

드한은 바싹 긴장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 다이몬 백작가의 일원들이 마족이라는 걸 알게 됐는데, 그걸 유리엘에게 상의하기도 전에 아서에게 붙잡혀 끌려왔으니까.

원래부터 아서는 무섭고 가까이하기 힘든 존재였는데, 마족이라는 걸 알게 되니 더욱더 무서웠다. 드한은 눈치를 살피며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잡아먹을 생각 없으니까 긴장 풀어요. 전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이렇게 무서워해?”

아서는 부러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으나, 드한은 여전히 긴장을 풀지 못했다. 그는 두 손을 꽉 맞잡은 채 슬그머니 시선을 들어 올렸다.

“저를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무서워하고 있는 것 치고는 또박또박 말 잘하네요.”

“…….”

“말했잖아요. 우리 얘기 좀 하자고. 대화하려고 데리고 온 거예요. 어떻게 할 생각도 없고요.”

드한은 아서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길을 걷다 마주쳐도 지나칠 법하게 희미한 인상을 지닌 그였지만 표현할 수 없는 날카로움이 있다. 이 역시 마족이기 때문일까. 드한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무슨…… 얘기를 하고 싶으신 건데요?”

아서는 이제야 대화의 판이 열렸다는 듯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다리를 꼬았다.

“우리가 마족인 걸 알아챘나 봐요.”

“……네.”

“뭐…… 기억을 지우는 게 제일 간편하겠지만, 아쉽게도 제겐 그런 능력이 없네요. 저는 살상 쪽에 특화된 부류라.”

흠칫.

드한은 어깨를 말았다.

살상 쪽에 특화되어 있다면 지금 자신을 죽이는 건 식은 수프 먹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일 테니 말이다.

그런 드한을 쳐다보며 아서는 또한 웃음을 내뱉었다.

“그렇게 겁내지 말아요. 저는 어린아이들을 좋아하니까요. 아이를 죽일 생각은 없답니다.”

거짓말.

마족은 인간을 싫어한다고 들었다.

인간이라면은 아주 혐오하고 증오한다고.

아이를 좋아한다는 말이 사실이래도 그건 마족 간의 이야기겠지.

“하지만 당신이 비밀을 발설하면 어쩔 수 없게 되겠지요.”

그러니 이런 무시무시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 아니겠는가. 드한은 으득 어금니를 깨물었다.

“저를 죽이겠다는 말씀이신가요?”

이렇게 말을 뱉고 나니 더더욱 분노가 치밀었다.

사람의 목숨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듯한 마족들에게 화가 났고, 그리고 그런 마족들에게 당한 마을 사람들이 너무나도 보고 싶어졌다.

“마족들에게는…… 인간의 목숨이 아무것도 아닌 건가요? 죽여도 되고, 죽어도 되고. 그렇게 무가치한 것으로만 생각하나요?”

그래서, 드한은 이를 부득부득 갈며 말했다.

두려움이 사라진 건 결코 아니다. 다만 그 두려움 대신 분노가 더 크게 자리 잡았을 뿐.

드한은 눈을 부라렸다.

“저를 죽여도 됩니다. 하지만 모든 걸 감출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마세요.”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주어 말하는 드한을 보며, 아서는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신전 소속인 놈들은 언제나 이렇게 마족에게 날을 세운다.

정작 자신들과 겨뤄본 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일단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아 그것부터 설명하자면.”

아서는 한숨을 푹 쉬고는 꼬았던 다리를 풀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마족뿐 아니라 인간들도 서로의 생명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답니다. 제가 마족이 아니라 인간이라 하더라도, 가문의 비밀을 알게 된 외부인을 살려두면 위험 부담이 크다는 판단하에 당신을 죽일 수 있다는 거예요.”

아서는 지금 자신이 마족이기 때문에 협박하는 것이 아니라, 설령 인간일지라도 이러한 협박이 당연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를 알아챈 드한의 푸른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서의 말에는 마족에 대한 편견으로 자신들을 멋대로 판단하지 말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었으므로.

“드한.”

아서는 그런 드한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제가 당신에게 해를 끼친 적 있나요?”

“…….”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당신에게 해를 끼친 적 있나요?”

물론 아서가 유리엘에게 해를 끼쳤지만 그건 논외로 하기로 하자. 드한은 모를 테니 말이다.

그런 전후 사정을 아예 모르는 드한은 다시금 시선을 떨어뜨리며 입 안쪽 살을 깨물었다.

“……아뇨. 저희를 구해 주셨죠.”

이는 불변하는 사실이다.

죽을 뻔한 자신들을 2번이나 구해 주었으니까…….

드한의 미간이 좁혀졌다.

자신의 생각대로 정말 마족이 인간의 멸망을 바라고 인간의 목숨을 취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면, 이들은 왜 자신과 유리엘을 구했는가? 무슨 이유로? 혼란스러웠다.

“그래도 우리가 무섭나요? 마족이라는 이유로?”

드한은 두 손을 꽉 움켜쥐었다.

“저희 마을 사람들을 다 죽였잖아요!”

그래.

마족들은 자신의 가족을 죽였다. 친구를 죽였다. 모두를 죽였다.

지금 저와 유리엘을 구해 준 건 필시 뭔가의 ‘이유’가 있는 것일 뿐. 이들의 본성이 사악하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서부에 있는 마을! 기억 못 하는 건가요? 너무 많은 인간을 죽여서 기억이 안 나는 건가? 하지만 당신들이 한 짓이잖아요! 모두 다 죽여 버리고서는……!”

그렇게 드한은 자기 자신을 변호하고자, 자신의 생각을 합리화시키고자 소리쳤다. 아서의 입술이 피식 올라간다.

“인간들은 불행한 일이 벌어지면 그것을 마족 탓으로 돌리죠.”

“……뭐라고요?”

“자신들의 과오라 생각하지 않아요.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족속들이지.”

중얼거리던 아서는 드한에게 조금 더 몸을 기울였다.

“당신이 살고 있던 그곳, 서부 사막에서 평지로 가는 데에 유일한 쉼터나 다름없는 곳이었죠. 그래서 다른 유목민들보다 훨씬 더 풍요롭게 살았고요.”

“…….”

“하지만 그에 반해 경비는 형편없었죠. 그럴 수밖에요. 교역으로 겨우 얻는 물품들을 세금이랍시고 다 빼앗기고 있었으니 경비에 돈을 쓸 수가 없었지. 그렇다고 해서 나라에서 방비를 해 주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드한이 마을에 살았던 것은 고작 3살 때까지의 일이다.

3살의 아이는 마을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어떤 어려움이 있고 얼마만큼 힘든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 와 돌이켜 본다면 어른들의 노고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마을을 지켜주기는커녕 찾아올 때마다 약탈을 해 가던 경비원들, 그런 경비원들에게 어쩔 수 없이 맞춰주던 어른들. 그리고 아무리 비상종을 울려도 오지 않던 경비원들…….

“도적 떼에게 습격당한 건 필연적인 일이 아니었을까요?”

아니, 아니다.

도적 떼가 아니라 마족이다. 마족이라고 말해 주었다. 신관님이 분명히…….

‘믿을 수 있나?’

흡!

드한은 자신도 모르게 가진 불신에 입을 틀어막았다.

이러면 안 된다. 자신은 신의 종자가 아닌가. 신의 곁에서 모든 걸 감내하고 배우고 그를 지키는 종자.

그런데 이런 불순한 생각을 하다니……!

“신께서 인간을 보호한다고요?”

아서는 드한의 혼란스러움을 그대로 목도하며 말을 이었다.

“이것만 기억하세요.”

드한은 천천히 눈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눈앞에 서 있는 아서, 마족의 얼굴을 응시했다.

“신은 우리 마족들도 만들어 냈다는 걸.”

나를 구해 준 마족,

나의 가족들을 죽인…… 인간?

드한은 혼란스러웠다. 이 혼돈을 차마 혼자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았다.

***

“아우, 디지게 춥네.”

세키나는 크흥! 코를 들이마시며 장갑 낀 손을 조몰락거렸다.

르카이츠는 그런 세키나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다. 어쩐지 뭔가를 신기해하는 듯한 표정이다.

“왜 그러케 바여?”

르카이츠는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입력이 안 된 호문쿨루스는 원래 이렇게 입이 험한 것인가?”

전에도 울면서 쌍욕을 하고 있지 않았나. 그래서 참 신기한 호문쿨루스라고 하기도 했었고.

“아녀. 그냥 제가 입이 험한 걸 걸여.”

“왜?”

그야 인생이 X 같으니까……. 라고 말하면 정말 어린애로 안 보겠지. 세키나는 고개를 저었다.

“살다 보니 이러케 댔네여.”

“하?”

르카이츠는 헛웃음을 뱉었다.

고작 3살짜리 어린 애가 살아봤자 얼마나 살았다고.

그는 세키나가 참 이상하고 재미있는 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그러다 아차 하며 말을 이었다.

“이곳까지 오는 길에 군데군데 함정이 있더군. 자칫하다간 죽을 수도 있을 법한 함정 말이다.”

그는 제가 느꼈던 마력을 떠올렸다. 그 마력들, 마력과 함께 있던 마기는 르카이츠도 익히 알고 있는 기운이었다.

‘장로들.’

르카이츠의 눈이 가늘어졌다.

감히 자신의 명령에 따라 수도로 나아가고 있는 이 일행을 노리고 있는 것에 화가 났다.

그래서 함정을 모두 다 파훼해 주었다.

하지만 이 이상의 길은 자신이 함께 가 줄 수 없다. 어떤 함정이, 마법이 있을지는 모르는 노릇.

그래서 경고하고자 한 말이었다.

목숨은 한 개뿐이니 말이다.

그런데…….

“알고 이써여.”

세키나는 의연히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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