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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님이 만드는 파멸엔딩 (102)화 (103/149)

102화

장로들이 자신을 노리는 거?

그쯤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니샤가 경고해 주지 않았는가. 거기다 더해 오는 길에 설치된 마법 함정을 꽤 많이 보았다. 물론 그런 걸로 아서가 쉽게 당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해서 내버려 두었다.

그런데 르카이츠는 왜 이런 말을 하는가?

세키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써가 이쓰니까 굳이 신경 쓰지 안았는데여. 왜 머 문제 이써여?”

르카이츠의 눈이 가늘어졌다.

뭐가 문제냐고?

죽을 위기에 처했는데 뭐가 문제가 되냐고 말하는 건가? 르카이츠는 도통 이 호문쿨루스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 널 죽이려 드는 일인데, 아무렇지도 않단 말이냐?”

“넹.”

세키나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런 일 어디 한두 번 겪나여. 인생사 다 그런 거져.”

사실 그렇다.

지금에야 정신이 없어 옛날 일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해도, 세키나의 머릿속에는 90년간의 기억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더불어 그 기억의 끝은 언제나 죽음이었다. 자의에 의한 죽음이 아닌, 타인에 의한 죽음.

누군가가 널 죽이려 하는 게 아무렇지도 않냐고?

아무렇지 않다.

그런 일은 너무나도 숱하게 겪어 왔으니까.

시스템에 의한 죽음만 말하는 게 아니다. 가족이 날 죽이려 한 적도 있었고, 친구가 죽이려 한 적도 있었다.

누군가의 악의를 받는 건 익숙하다. 원래부터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이해가 안 되는군.”

하지만 르카이츠는 그런 세키나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아무리 강한 마족이라 해도, 아무리 대단한 존재라 해도 언젠가는 죽는다. 죽어 없어진다. 르카이츠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는 죽음을 두려워했다.

자신의 죽음을 바라는 이들을 해치웠다. 제 생애를 가로막으려는 이들을 저편으로 보내 버렸다. 그렇게 살았다.

한데, 태어난 지 고작 3년밖에 되지 않았을 이 어린 호문쿨루스는 살해 위협을 ‘당연한 일’인 것처럼 말한다. 르카이츠는 다시 한번 이해할 수 없다고 중얼거리며 세키나를 내려다보았다.

“목숨은 귀중한 것이다.”

그러고는 짧게 한숨을 뱉으며 말을 이었다.

“네 목숨을 해치려는 자가 있으면 똑같이 돌려주도록.”

세키나는 커다란 눈을 여러 번 깜빡였다.

내 목숨을 해치려는 자.

너무 많아서 셀 수 없다.

일단 이번 생에서는 시스템 놈이 그렇고, 루치페르 놈이 그렇지. 신관들은 또 어떤가?

거기다가 더해…….

‘마족들이 마계로 돌아가게 되면 호문쿨루스는 다 죽게 될 거야.’

설사 지금 그들이 자신에게 호의적이라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저를 호문쿨루스로 알고 있기 때문.

인간이라는 게 알려졌을 때에도 과연 세키나는 무사할 수 있을까?

‘절대 아니.’

분명 죽일 거다.

인간 주제에 마족을 농락했다고 할 테니까.

세키나는 쓰게 웃었다.

“구게 만약 보쓰라면여?”

“뭐?”

“보쓰가 날 주기려 하면여?”

르카이츠의 인상이 더더욱 구겨졌다.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라는 표정이다.

“내가 널 해칠 거라 생각하느냐?”

“넹.”

“왜?”

“보쓰니까여.”

“…….”

르카이츠는 긴 한숨을 뱉었다.

“그런 일은…….”

그러다 순간 멈칫했다.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말해도 되는 건가?

정말 단언할 수 있는가?

르카이츠는 자신도 모르게 침음을 흘렸다.

“시간이 늦었다. 들어가서 잠에 들도록. 며칠 뒤면 수도에 당도할 테니 그때까지 체력을 잘 비축해 두어야 한다.”

그런 르카이츠의 생각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한 세키나가 피식 웃었다.

“저는여.”

세키나는 두 손을 꼼지락거렸다. 살아 움직이고 있는 두 손을.

“제 멋때로만 살 쑤 이쓰면 죽는 건 두렵찌가 안아여.”

지난 시간 동안, 억울한 죽음을 여러 번 겪었다.

내 잘못이 아닌 죽음.

내가 택한 것이 아닌 죽음.

그럴 때마다 세키나는 한없이 무력해졌고 억울해졌다.

그 까닭으로 지금의 세키나는 제대로 살 수만 있다면, 다시 말해 내 삶을 선택하고 죽음의 순간을 고를 수 있다면 죽는 것도 두렵지 않았다.

“제 죽음은 제가 선택할 꺼예여.”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세키나의 쓴웃음 뒤로 잔뜩 굳은 얼굴의 르카이츠가 서 있었다.

***

“……쟤 뭐라는 거야?”

2층 창가에 앉아 르카이츠와 세키나를 지켜보고 있던 파르데스가 말했다.

드한과 한바탕 눈싸움을 벌였던 쌍둥이는 몸을 녹이고자 숙소로 들어온 후 목욕을 하고 나온 참이었다. 그러다 세키나가 사라진 걸 발견하고 어디 있나 찾다가 르카이츠와 대화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둘은 나름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파르데스는 일전에 만들어 두었던 아티팩트를 이용해 대화를 엿들었다.

그런데 들려온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이곳까지 오는 길에 군데군데 함정이 있더군. 자칫하다간 죽을 수도 있을 법한 함정 말이다. 

함정이라니?

죽을 수도 있었다고?

파르데스는 섬찟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세키나는 알고 있었다니?

-그런 일 어디 한두 번 겪나여. 인생사 다 그런 거져.

거기다 더해 이런 말까지 엿듣게 되니…….

“짜증 나네, 진짜.”

파르데스는 으득 이를 깨물며 앞머리를 헝클었다.

세키나는 어리다.

자신보다 더.

그런데 왜 저렇게 의연하단 말인가?

죽는다고 해도, 누군가가 죽이려 한다 해도 왜 저렇게 아무렇지 않아 하냔 말이다.

-저는여, 제 멋때로만 살 쑤 이쓰면 죽는 건 두렵찌가 안아여.

“그게 뭔 개소리야.”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아직 3살짜리 어린 아이가 왜 죽음에 의연한 거지? 무슨 이유 때문에?

가슴이 답답하다. 한구석이 아파 온다. 지끈거린다.

솔직히 말하면, 호문쿨루스들은 단일 개체이다. 저가 메르데스와 쌍둥이라 해도, 겉모습만 같을 뿐 그 안의 구성성분은 완전히 다르다. 그러니 이렇게 성격도 다르고 능력도 다른 게 아니겠는가.

그래서 그들은 바깥에서는 서로를 형제라고 칭했지만, 속내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형제라니.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그저 인조인간일 뿐인데.

그래서 세키나라는 막냇동생이 생겼어도 귀엽다, 하는 마음 그뿐이었다. 귀엽고 흥미로운 어린아이. 그렇게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세키나가 점점 더 마음에 들어왔다. 걱정이 됐고, 지켜 주고 싶어졌으며, 나날이 더 예뻐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파르데스는 세키나가 말한 ‘죽음’이라는 게 너무나도 무서웠다.

“형아. 뭐해?”

이때, 씻고 나온 메르데스가 다가왔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파르데스의 어깨에 얼굴을 얹었다.

“세키나? 세키나가 왜 저기 있어? 마왕님은 또 왜?”

궁금해하는 그를 향해 파르데스가 입을 열었다.

“야.”

“응?”

“넌 내가 죽으면 어떨 거 같냐?”

“형아가 죽으면?”

메르데스는 입을 오므리며 으음, 하고 고민했다.

이게 고민할 사항인가, 싶지만 파르데스 역시 메르데스가 죽는다는 가정에서 오는 감정을 잘 알지 못하기에 잠자코 기다렸다.

“모르겠는데. 그때 가 봐야 알 거 같아.”

“역시 그렇지?”

파르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진짜 묻고 싶었던 질문을 했다.

“그럼 세키나는?”

“세키나는 안 되지! 걔가 왜 죽어! 안 돼!”

메르데스는 파르데스의 예상대로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파르데스의 입매가 둥그렇게 올라갔다.

“그래. 역시. 내가 비정상이 아니었네.”

“왜? 왜? 세키나한테 뭔 일 있어? 생겨? 마왕님이 세키나한테 뭐라고 하는 중이야?”

“시끄러워. 이제 꺼져.”

“아, 형아!”

달려드는 메르데스의 얼굴을 밀어낸 파르데스는 두 눈에 세키나를 담았다.

어쩐지 기운이 없어 보이는 세키나를 말이다.

“세키나 잘 지켜봐. 무슨 일 안 생기게.”

감정이 확실해진 지금,

그들이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

그리고 이틀 뒤, 그들은 함께 수도에 도착했다.

“경호 끝!”

“끝! 하지만 끝이 끝이 아니다!”

“보호를 계속해라!”

하는 보람찬 외침과,

“그냥 다 뒤져쓰면…….”

기가 빨리다 못해 없어진 세키나의 질린 목소리와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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