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수도로 오는 내내 쌍둥이는 세키나를 정말 귀찮게 했다.
‘경호! 경호!’라고 외치며 세키나의 곁을 조금도 떨어지려 하지 않고, 아주 화장실 갈 때도 쫓아오려 해서 세키나가 결국 화를 냈었다.
그들이 대체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이유를 몰랐기에 더 귀찮았고, 더 열 받았다.
“구냥 놓고 올 껄 그래써. 먼 부귀영화를 누리자구 데꼬 와 가지곤.”
세키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쌍둥이를 지나쳤다.
그리고 고개를 높게 치켜들었다.
북부와는 다른, 청명한 하늘과 따뜻한 햇살이 비추고 있는 수도의 하늘을 올려다본다.
세키나는 전생에서 수도는 몇 번이고 와 봤다. 정확히 말하면 수도에서 산 적도 있고, 수도에서 머문 적이 있다고 하는 게 맞다.
그래서 별로 수도의 풍경이 새롭지 않았다. 기억 속에 있는 것들이었으니까.
하지만 다른 이들은 아닌 모양이다.
“……오.”
“형아! 저기 봐 봐! 엄청 신기한 조각상이 있어!”
“저쪽은 도서관인가……?”
쌍둥이뿐 아니라 드한까지도 관광 온 것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세키나는 재차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아써. 쟤네 통솔 좀 해 주…….”
“신기하군요!”
그나마 아서를 믿고 있었는데,
“이야, 이렇게 날이 잘 든 칼이 있다고요? 신기하네요! 한 번 써 봐도 되겠습니까?”
“저, 저, 아서 님. 쓰시려면 구, 구매를…….”
“아! 그렇군요! 결제하겠습니다!”
야야. 그냥 노점상에서 칼을 구매하는 건데 그렇게 많은 돈을 주면 어떡해.
“나 도서관 가 볼래!”
“나는 분수대 구경하러!”
너네 단체 행동이라는 걸 모르니?
“저, 저, 교황청을……!”
“그건 이따가!”
“나 저게 더 궁금해!”
응. 주객이 전도됐구나.
뒤지려고.
세키나는 아찔해지려는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았다.
“다들 찝합.”
짝짝. 손뼉을 치고 일행을 모은다. 험악하게 올라간 눈꼬리가 모두를 긴장토록 만든다.
“장난하냐? 우리가 요기 온 거 이유 잊어써?”
“…….”
들떠있던 그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거렸다.
“쌍둥이. 너네 둘은 그러타 쳐. 군데 드한 너는? 넌 왜 들떠서 그러고 이찌?”
움찔, 드한의 어깨가 흔들렸다. 그 옆에서 기세등등한 표정을 짓고 있는 쌍둥이는 그런 드한을 툭툭 쳤다.
“야. 그러니까 평소에 개판으로 살아야지 이럴 때 안 혼나는 거야. 알겠어?”
“맞아. 아무 기대도 안 받아야지 이럴 때 넘어갈 수 있는 거지.”
자랑이십니까?
드한은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말을 겨우 삼키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구리고 아써는? 아써가 우릴 통솔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서 역시 꿀꺽 침을 삼키며 시선을 피했다.
“한 번만 더 구래 바. 삼쫀이랑 말틴한테 이를 거니까.”
“그것만큼은!”
“글구 유리엘.”
아서의 외침을 무시한 세키나가 유리엘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 저는 왜요……? 유리엘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한 채로 세키나를 쳐다보았다.
“너눈 쫌 더 세게 말할 필요가 이써.”
그게 제 마음처럼 되는 게 아닌데 말입니다.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더 혼날 것 같아서 유리엘은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세키나를 힐끗힐끗 쳐다보았는데, 어디까지나 경외를 담은 시선이었다.
수도로 오는 내내, 솔직히 말하자면 일행은 개판이었다.
어린아이들을 통솔해야 하는 아서는 제멋대로 굴고 제멋대로 행동하기 일쑤였고, 쌍둥이는…… 말을 말자. 저런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는 백작가 일원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그런 와중 세키나는 이들을 정말 잘 통솔했다. 쌍둥이의 개판을 정리했고, 아서의 나태함을 지적했다. 그런 와중에 자신과 드한까지도 챙겼다.
고작 3살짜리 어린아이로 보이지 않는 모습.
유리엘은 그런 세키나에게 은근한 존경을 보냈다.
“일딴 한을 찾으러 가 보쟈. 한이 있따는 숙소를 찾으면 대 꺼야.”
한.
황태자의 죽음에 대해 알아낸 암살 길드의 부길드장.
유리엘과 드한은 그를 몰랐지만, 쌍둥이와 아서는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아는 것 같았다.
“머해? 다들 안 움직이구?”
“네, 네!”
“넵!”
그래서 유리엘은 엉겁결에 드한과 함께 그들을 따라나서게 되었다.
한데 이상한 일이다.
왜 이렇게 마음이 편하지?
왜 이렇게 마음이 놓이지?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유리엘의 발걸음은 계속 움직였다.
***
한은 초조하게 방 안을 배회했다.
백작가에 서신을 보낸 지도 벌써 시간이 꽤 지났다.
그래서 그쪽에서도 바로 자신이 있는 곳까지 와 주기로 했다. 제가 알아낸 걸 공유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그것뿐만이 아니다.
그 이후에 한이 알아낸 걸 그들이 알게 되면 어떻게 반응할지, 그는 너무나도 걱정이 됐다. 그는 한숨을 뱉으며 의자에 몸을 내던지듯이 앉았다.
‘뭐…… 화난다고 다 때려 부수진 않겠지.’
한은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아닌가. 그쪽 성질로는 그러고도 남으려나.’
거구의 용병들을 때려눕히던 쌍둥이와 아무렇지 않게 송곳을 꺼내던 어린아이.
그들만 떠올려도 한은 등골에 땀이 흐를 지경이었다.
‘대체 정체가 뭐지?’
한은, 그러니까 한 길드의 부길드장직을 맡으며 온갖 궂은일을 다 하고 세상만사를 겪은 한은, 백작가 일원들이 정체를 숨기고 있는 것이라 확신했다.
어린아이들에게서도 느껴지는 은은한 힘, 너나 할 것 없이 강한 기운.
백작가에 들어가자마자 기함했던 자신이 아닌가.
그때에는 기백에 눌린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 보니 단순히 기백만이 아닌 것 같았다.
‘사람……은 맞겠지?’
한은 북부의 이곳저곳에 퍼져 있던 괴상스러운 물건들을 떠올렸다.
북부까지 온 놈들이 제정신일 리는 없으니 그놈들이 만드는 것도 나사가 빠져 있는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아닐 수도 있을 것 같고…….’
아니, 아니.
한은 고개를 저었다.
그들의 정체가 뭐든 간에 상관없다.
설사 마족이라 해도, 그게 뭐 알 바인가?
자신은 진실을 밝혀내고 싶었다. 길드장님의 죽음에 관한 진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복수까지도…….
‘그러니 잠자코 충성해야 한다.’
충성 안 하면 내가 죽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한 한은 재차 다짐을 씹어 삼키며 몸을 일으켰다.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오셨습니까!”
제가 먼저 문을 활짝 열어젖힌 한은 부러 환히 웃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아니, 맞이하려 했다.
“……음?”
한은 머뭇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복도에 서 있는 이들.
아서, 쌍둥이, 세키나까지는 알고 있다. 하지만 신관복을 입은 신관과 새하얀 옷을 입고 있는 아이는 초면이었다.
뭐, 백작가의 이들이 초면인 신관을 데리고 온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없다.
그가 이렇게 놀란 이유는,
“다, 다들 얼굴이 왜 그러신…….”
모두의 꼴이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뭐, 어디 얻어맞으셨습니까?
아니면 뭐, 굴렀나? 왜 저래?
한의 눈동자가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구런 건 안 중요해.”
세키나가 귀를 후비적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 세키나에게 들리지 않을 법하게 쌍둥이가 한에게 대답했다.
“엄청 맞았어.”
“한눈판다고.”
“딴 데 볼 수도 있지. 진짜 세게 맞았어.”
“형아보다 내가 더 세게 맞았어.”
“세키나 무서워.”
아하.
저 어린아이가 애들을 때린 거구나.
거구의 용병을 한 번에 쓰러뜨리는 쌍둥이를, 3살짜리 세키나가.
하하하.
한은 애써 식은땀을 감추며 아서를 향해 눈을 돌렸다.
그래도 아서는 어른이니까, 성인이니까 멀쩡하겠지 싶어서.
“하, 하하……. 아서 님은 괜찮…… 음. 안 괜찮으시군요.”
하지만 아니었다.
아서 역시 어디 진흙탕에서 굴러온 듯한 모양새였다. 한은 목뒤로 흐르는 식은땀을 더듬었다.
“뭐, 제 업보죠. 그래도 우리 세키나 님이 이렇게 아프게 때릴 수 있을 만큼 성장하셨다니 저는 정말 기쁩니다.”
애한테 맞았다는데 기쁘다고 말하는 그쪽 정신도 이상합니다만, 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한은 참았다.
“그리고 그쪽들은…….”
“아! 저, 저는 북부성 신전의 시, 신관입니다. 유, 유리엘이라 불러 주세요.”
“종자, 드한입니다.”
“아!”
신관들에게까지 인사를 받은 한은 재차 고개를 꾸벅인 후 그들을 안내했다.
뭔가 조금 이상한 대면이긴 했지만…… 일단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 모르는 척해야지.
한은 크흠! 잔기침을 뱉은 후 모두의 착석을 확인했다.
“제가 알아낸 걸 말씀드려야겠죠?”
세키나가 대답 대신 그를 올려다보았다.
“바로 어제.”
한이 입을 열었다.
“황태자 전하의 시신을 확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