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19. 세계고 나발이고 어쩌라고
음?
루치페르는 묘한 기운을 느끼며 한쪽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이 이상하리만큼 찝찝하고 짜증이 나는 기운은 대체 무엇일까. 어쩐지 익숙한 것 같기도 한데.
“성하?”
곁에 있던 신관 한 명이 고개를 갸웃하며 그를 불렀다.
“무슨 일이십니까? 얼굴에 수심이 담겼습니다.”
신관의 말을 무시한 루치페르는 천천히 시선을 올려 자신의 주변에 있는 이들을 쳐다보았다.
티끌 하나 묻지 않은 새하얀 신관복을 입고 있는 자들.
그들은 커다란 원탁에 앉아 루치페르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교황의 얼굴을 하고 있는 루치페르는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모인 서른 명 중 인간이 아닌 것들이 총 스물둘이구나.”
“……네?”
느닷없는 말에 처음 루치페르의 안위를 걱정했던 신관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인간이 아닌 것이 스물둘이라고?
마족이라는 말인가?
그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뒤로 빼며 원탁에서 멀어지고자 했다.
하지만,
-촤악!
그의 곁에 있던 이가 검을 빼 드는 것이 더 빨랐다.
“이, 이게 무슨……!”
“아아악!”
그 뒤로 아수라장이었다.
스물둘의 천족과, 여덟의 인간.
어느 쪽이 승기를 잡는지는 명백했으니까.
순백의 회의장은 어느새 피범벅이 되었지만, 루치페르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손바닥으로 뺨을 툭 건드리자마자 늙은 교황의 얼굴이 사라지고 본래 그의 얼굴이 되었다. 그는 긴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고개를 까딱였다.
“목은 자르지 말라고 했잖니. 다시 이어 붙일 때 힘들다고.”
“……죄송합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뭘 바라겠니.”
루치페르는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쭉 내밀었다. 쓰러져 있는 시체들을 보며 눈을 반짝인다.
이 인간들은 죽었다.
하지만 다시 살려낼 생각이다.
정확히 말하면, 천마 전쟁에서 죽어 나갔던 천족들을 이 인간들의 몸으로 불러와 살려낼 생각이다.
다만 천족의 그릇이 될 만한 인간들이 많지 않다는 게 단점이었다. 열을 죽여도 하나를 겨우 건질까 말까 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나머지 아홉의 시체를 내버려 두느냐 하면 그건 또 안 되는 일이었다. 인간을 몰살시키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많은 인간들이 죽는다면 다른 많은 인간들이 의심을 할 테고, 많은 의심이 쌓이다 보면 그의 계획에 지장이 갈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루치페르는 나머지 아홉의 시체를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이놈 빼고 다른 놈들은 원래 하던 것처럼 해 놓으렴.”
“마물을 불러오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마계의 마물을 집어넣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건 꽤나 괜찮은 방법이었다.
설사 정말 만에 하나 이 짓거리가 들통이 난다 해도 천족의 잘못이 아닌 마족의 짓으로 몰아가 책임을 회피할 수 있으니 말이다.
더불어 마물을 집어넣어 되살리면 그 힘이 엄청났는데 이것이 곧 루치페르의 병력이 되는 것이므로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루치페르는 빙그레 웃으며 콧잔등을 찌푸렸다.
“아직 속도가 느리구나.”
“…….”
“아직도 중앙성 신전의 모든 인간들을 처리하지 못했다니.”
“죄송합니다.”
“아니, 아니. 네가 죄송할 게 아니지. 말을 들어 처먹지 않는 인간들이 잘못한 것이지.”
그는 시체의 손을 짓밟으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
“모두를 다 죽여 버릴 수 있을까? 응?”
곁에 있는 이는 대답하지 않는다. 루치페르 역시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이 아니었는 듯 거듭 중얼거렸다.
“꼴같잖은 마족 놈들도 처리해야 하고, 멍청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도 처리해야 하고, 세계의 순리대로 흘러갈 수 있도록 만들기도 해야 하고…… 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겠구나.”
하지만 그리 불평을 하는 것치곤 그의 얼굴은 해사하기 짝이 없었다.
그 어떤 때보다 더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마치 이것을 위해 살아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할 일이 많은 게 기쁜 것 아니겠니? 죽은 채 갇혀 있던 것보다야 지금이 훨씬 더 살맛 나는구나.”
죽었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 빌어먹을 마왕 놈의 창에 꿰뚫리던 순간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건 과거일 뿐이다.
미래는 바뀐다. 자신의 선택으로 말이다.
“이제 우리의 앞길을 막는 건 없을 것이다.”
그렇게 확신을 가진 루치페르는 크게 웃으며 회의실을 가로질렀다.
마족은 힘을 잃었고, 세계를 주관하는 신은 쫓겨났다.
자신은 흑마법을 익혔고, 세계를 주관하는 신의 대행이 되었다.
이보다 더 완벽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저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고, 존재할 수가 없을 거라고 그는 확신했다.
그래. 그래야만 했다.
“……으음?”
그런데 왜 자꾸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인가.
찝찝하고 짜증 나는 기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불길함이 느껴지는…… 아니, 아니다.
‘기우겠지.’
루치페르는 애써 현실을 외면했다.
자신의 선택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
[SYSTEM]
짜잔! 보다 강해진 시스템 등장했습니다!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