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기님이 만드는 파멸엔딩 (114)화 (115/149)

114화

덜덜덜.

드한은 떨리는 다리를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어찌나 다리를 떠는지 그가 앉아 있는 의자와 테이블 위의 찻잔까지 덜덜덜 떨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의 곁에 앉아 있는 세키나와, 교황으로 둔갑해 있는 루치페르는 태연자약했다.

그들은 마치 덧그린 듯한 미소를 지은 채 서로를 주시하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마치 불꽃이 튀는 것처럼 보였다.

왜 저러는 거야?

드한은 눈치를 살피며 애꿎은 땅바닥만 응시했다.

그런 드한을 뒤로하고 교황, 아니 루치페르는 제법 즐거워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는 교황의 껍데기를 둘러쓰고 있는 것도 잊은 채, 다시 말해 저가 인간인 척 변장하고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두지 않은 채로 세키나를 보고 있었다.

‘이건 분명…….’

마기가 느껴진다.

이 쪼끄마한 어린아이에게서 마기가 느껴진다. 그렇기에 루치페르는 단 하나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세키나 다이몬.’

율리안을 통해 죽이려 했던, 그 호문쿨루스.

루치페르는 눈을 가늘게 떴다.

세키나를 죽이려 했던 이유는 별것 없었다. 그냥 가장 어린 호문쿨루스이고, 능력치가 남들보다 덜하니 손쓰기 쉬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흑마법을 이용해 ‘세키나처럼 보이는 것’을 가져다 놓으면 남들도 의심하지 못할 거라 판단했고.

‘하지만 아니었지.’

일단 첫 번째 실패는 이 호문쿨루스가 죽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멘탈이 너덜너덜해진 율리안으로서는 당연히 세키나를 죽일 거라 판단했건만…… 대체 어떤 수를 썼기에 살아남은 것인가?

거기다 더해 율리안을 마왕성에 눌러앉게 만들다니!

그렇기에 그와 아카데미에서 친했던 인간들을 죽이는 게 별 의미가 없어져 버렸고, 결국 루치페르는 어쩔 수 없이 율리안을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보다 본체의 몸을 빼앗겨 고문을 당했기에 놓아준 것이기도 하지만…… 어찌 됐든 말이다.

‘계획대로였다면 지금쯤 마왕 놈의 약점을 잡았을 텐데.’

‘세키나처럼 보이는 것’을 가져다 두고 마왕성의 동태를 살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계획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못했다. 모두 다 이 호문쿨루스 때문이었다.

‘그래 놓고 제 발로 찾아오다니.’

루치페르의 입술이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그래, 다이몬 백작가의 영애라고 하였나?”

세키나의 눈이 반짝였다.

“웅, 성하. 이러케 만나게 대서 넘 반가어. 꼭, 진짜 꼭 보고 시퍼써.”

그 대답이 루치페르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다는 말인즉슨 이 아이가 직접 자신을 찾아왔다는 뜻이니까.

“그래?”

그렇다면 왜?

왜 호문쿨루스가 자신을 찾아온 것인가?

나의 정체를 눈치챈 것으로도 모자라 혹시 확신하고 있는 것인가?

루치페르의 눈동자에 자그마한 초조함이 묻었다.

“다이몬 백작가의 아이가 왜 나를 보고 싶어 했는지 모르겠구나. 이유를 말해 주련?”

“우리 보…… 아뉘, 압빠가 성하를 보고 시퍼해꺼든.”

세키나는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성하도 우리 압빠 보고 십쪄?”

“…….”

역시, 내가 천족인 것을 확신하고 있구나.

루치페르는 허탈하게 웃으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러고는 슬쩍 눈을 돌려 드한을 쳐다보았다. 드한의 눈치를 보건대 그는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아니, 이 호문쿨루스의 정체도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엮이게 된 것인가? 북부에 있으면서 또 다른 접점이 생겼던 것인가? 루치페르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드한과는 어떻게 아는 사이니? 둘이 왜 같이 왔는지 모르겠구나. 그것도 나의 허락 없이 말이야.”

“아, 그건…….”

드한이 입을 열려고 할 때, 세키나가 끼어들었다.

“얘 주그려는 거 내가 구해 줘꺼든. 근데 나두 교황청 보구 시퍼서 가고 싶따고 땡깡 부려써. 안 데따주면 안 구해 주겠따고 했꼬.”

구해 주었다고? 루치페르는 기댔던 몸을 떼어냈다.

“무슨 일이 있었니?”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드한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북부에서 출발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가 전복되었던 일, 마부가 도망가고 혹한의 상황에 놓였던 일, 그때 다이몬 백작가 일원들이 지나가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죽었을 거라는 일까지. 모두 다 말이다.

“그래……. 북부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말이구나…….”

루치페르의 입술이 비틀렸다. 하지만 웃는 건 절대 아니었다. 그는 분노하고 있었다.

드한은 체스 말이다. 그것도 루치페르의 계획에 있어 가장 필요한.

한데 이런 아이가 죽을 뻔했다니? 인간들이 쓰잘머리 없는 욕심과 빌어먹을 오만 때문에?

안 되겠다. 모두 다 죽여 버리자. 응, 죽여 버리는 것이 세계를 위하는 일일 것이다.

루치페르의 눈동자에 얼핏 살기가 스쳤다.

“당분간은 중앙에서 쉬는 것이 좋겠구나. 너와 유리엘 모두 다 말이다.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을 테니.”

“……그건.”

드한은 잠시 세키나의 눈치를 보다가,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다이몬 백작가 분들께 은혜를 갚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힘겨운 목소리로 한 글자 한 글자 말을 이었다.

“그래서 세키나 님 곁에서 세키나 님을 지키고 싶습니다.”

과거였다면, 다시 말해 신전에 종속돼 있고 신에게 복종하는 상태였다면 이런 말은 절대 하지 않았을 거다.

애초에 교황을 만나러 오는 이 자리에 세키나와 함께 오지 않았을 것이고.

하지만…….

이미 의심이라는 씨앗이 싹을 틔운 이상, 전과 같은 선택을 내릴 수 없었다. 그는 세키나의 곁에 있고 싶었다. 그리고 자꾸만 꿈에 나오는 이름 모를 환영의 실체를 알고 싶었다.

“……네가? 다이몬 곁에 있겠다고?”

“네.”

“그러니까, 그 다이몬?”

“네.”

드한은 즉답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마음속 불편함은 어느 정도 있었다.

다이몬 백작가라 하면 일전부터 교황청의 의심을 받고 있던 곳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의심은…… 맞았고.

‘마족인 건 맞으니까, 괜한 의심은 아니었던 거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나쁜 존재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나쁘다 좋다를 평가할 만큼 드한은 그들을 잘 알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더더욱 곁에 있고 싶었다.

“허락해 주십시오, 성하.”

조금의 물러섬도 없겠다는 듯 단호한 드한의 말에, 루치페르는 눈을 천천히 내리감으며 숨을 크게 들이켰다.

지금의 상황을 정리해 본다.

첫째, 자신이 루치페르이며 교황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걸 마족에게 들켰다.

둘째, 드한을 이용해 세계의 전복을 꾀하고 있다는 걸 의심당하고 있다.

셋째, 그래서 이 빌어먹을 마족들이 드한을 빼내려 하고 있다.

‘하?’

참으로 가소롭다.

힘을 봉인당하고, 언제나 굶주려있는 마족들 주제에 뭘 할 수 있다고!

루치페르는 으득 이를 깨물며 눈을 부릅떴다.

“세키나, 라고 했니?”

“웅.”

“넌 알고 있지?”

“멀?”

“모든 것을.”

힘을 주며 부라리는 루치페르의 두 눈을 똑바로 응시하던 세키나는 돌연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야, 주인.

자신이 루치페르의 시선을 빼앗는 틈을 타 몰래 들여보낸 세라가 말을 건네고 있었으니까.

-찾았다. 이거 어떻게 하면 되냐?

깔깔거리며 웃던 세키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나는 당연히 모든 걸 알고 이찌!”

세키나는 호기롭게 팔짱을 낀 채 턱을 들어 올렸다.

“구리고 너가 모르는 것도 알고 이써. 궁금하디?”

“뭐…….”

당황한 루치페르가 말을 이으려고 할 때, 세키나가 서둘러 끼어들었다.

“날 주기면 넌 아무것또 모르게 대는 거야. 그러케 알고 시퍼 하던 것들을 모두 다 잃게 대는 거야. 먼 말인지 알게써?”

세키나는 루치페르에게만 들릴 만하게 속삭였다.

“구러니까 날 주길 생각 하디 마.”

으득.

루치페르의 이가 부서질 듯이 세게 부딪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