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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님이 만드는 파멸엔딩 (117)화 (118/149)

117화

무너진 건물, 날뛰고 있는 마물, 어디선가 들려오는 비명 소리…….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세키나는 보이지 않았다.

당장 뛰쳐나가도 모자란 일이건만, 아서는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 서서 파들파들 떨고 있을 뿐.

머리로는 알고 있다. 당장 뛰쳐나가 세키나를 찾아와야 한다는 걸. 도움을 청하고 있을지도 모를 세키나를 어떻게 해서든 찾아내야 한다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움직일 힘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저 깊숙이 묻어 두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범람한 마물의 떼에 휩쓸려 바스러지던 아이들이, 그 아이들이 울부짖으며 자신을 부르던 그 마지막 모습이.

“으…… 아…… 아아…….”

후들거리던 그의 다리가 휘청거리며 꺾였다. 그는 숨조차 제대로 내쉬지 못한 채 입을 뻐끔거렸다.

“부단장!”

르카이츠가 아서의 어깨를 끌어당기며 소리쳤다. 하지만 아서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고, 그런 그를 일깨우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또한 그가 왜 이렇게까지 패닉이 왔는지 알고 있었기에…… 르카이츠는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무너진 잔해 한가운데를 쳐다보았다.

“꿰에에엑!”

“막아! 막으라고! 시가지로 못 내려가게 해!”

마물들은 날뛰고 있었고, 인간들은 그런 마물을 가로막고자 고군분투를 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 세키나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분명 저 잔해 속에 갇혀 있는 것이리라.

‘…….’

르카이츠는 잠시 고민했다.

이곳은 중앙선 신전이다. 루치페르가 상주해 있는 곳. 그뿐 아니라 그의 수하들도 잔뜩 잠복해 있을 것이다.

더불어 마물을 상대하려면 마기를 방출해야 하는데, 그랬다간 자신의 정체를 단번에 들키게 될 것이고 들킨 후에 어떻게 될지는 안 봐도 그려지는 형국이었다.

그렇기에 르카이츠는 선택해야 했다. 세키나를 구할 것이냐, 아니면 일단은 몸을 피할 것이냐.

-세키나 님은 모두의 사랑을 받고 계세요. 마왕님도 곧 그렇게 되실 겁니다.

아니.

그 말은 틀렸다.

지금의 르카이츠는 고작 한 명의 호문쿨루스의 목숨을 저울 위에 올려 두지 않았다. 그에게는 지켜야 할 것이 더 많았으니까.

르카이츠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그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아서를 향해 말했다.

“일단 돌아간…….”

“세키나 님!”

하지만 그의 말은 끝마쳐지지 못했다. 주저앉아있던 아서가 내지른 소리 때문이었다.

불행일까, 다행일까. 르카이츠는 멀지 않은 곳에서 비틀비틀 걸어오고 있는 세키나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세키나 님! 괘, 괜찮으신 겁니까? 어디 안 다치셨…… 으아! 다쳤네! 엄청 다쳤어!”

뛰어간 아서는 호들갑을 떨며 세키나에게 손을 뻗었다. 하지만 세키나는 기대는 대신 저가 질질 끌고 있던 무언가를 내밀었다.

“나보다 얘가 더 다쳐써. 얘 좀 어케 해 바.”

“네?”

아서의 미간이 좁혀졌다.

“이거…… 드한? 드한입니까? 살아 있기는 한 겁니까?”

이 정도면 그냥 죽은 거 아닌지.

아서는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드한의 몸을 받아들며 흠칫거렸다. 세키나가 고개를 저었다.

“엉. 살아 이써.”

물론 중간에 한 번 숨이 끊길 뻔하긴 했지만…… 세키나는 쯧 혀를 찼다. 자꾸만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드한의 절박한 얼굴을 지웠다. 지우려 했다.

“나 지킨다구 꼴값 떨다가 다친 그니까 제대로 치료해야 대. 아라찌?”

“……네! 알겠습니다!”

세키나의 말로 대강의 상황을 파악한 아서는 서둘러 눈물을 훔치고는 드한을 둘러업었다. 세키나는 흙범벅이 된 몸을 툴툴 털며 한숨을 푹푹 내뱉었다.

드한이 막아 준 덕분에 자신은 크게 다치지 않았다. 다만 잠깐 정신을 잃었을 뿐.

다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기뻐해야 하건만, 세키나는 편하게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아니, 자신이 다친 것보다 더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이 묘한 감정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세키나는 답답함을 감추지 못했다.

“……엥?”

그때, 세키나의 눈이 동그래졌다.

“보쓰도 와 이썼네여?”

르카이츠가 시야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소란을 알고 아서가 혼자 온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르카이츠까지 같이 있다니. 설마 둘이 날 걱정해서 온 건…….

-너는 결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음. 아닐 거다.

내가 뭘 하는지 궁금하고 또 뭘 할지 의심돼서 온 거겠지.

세키나는 킁 코를 마셨다.

“요거.”

세키나는 아까 전 세라에게서 건네받은 꾸러미를 르카이츠에게 쭉 내밀었다.

“유물이랑 무구예여. 교황청 지하에 이써써여.”

르카이츠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지만, 세키나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보쓰 줄라고 가져온 거예여. 사고 친 건 미안하지만…… 머, 결과적으로는 조은 거 아니게써여?”

세키나는 부러 환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르카이츠의 미간이 좁혀졌다.

할 말이 많다. 하지만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르카이츠는 답답한 마음을 느끼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너…….”

“이제 다 끝나쓰니까 전 쫌 잘게여. 진짜 디질 거 가타.”

하지만 세키나는 그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세키나!”

르카이츠는 끈 떨어진 인형처럼 쓰러지는 세키나를 자신도 모르게 안았다.

쌕, 쌔액, 고른 숨이 흘러나오는 걸 보니 잠이 든 모양이다. 르카이츠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입매를 어그러뜨렸다.

“……나를 주려고 가져왔다라.”

그는 떨어진 꾸러미와, 또한 쓰러진 세키나를 내려다보며 읊조렸다.

“나도 제대로 돼먹지 못한 놈이군.”

마음이 편치 못했다.

***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아서는 의원을 불렀고, 황급히 달려온 의원은 세키나와 드한을 진찰하고자 방에 들어갔다.

아서 역시 함께 들어가고 싶었지만,

-환자 주변은 조용해야 합니다.

명백한 축객령을 받고 깨깽한 채 방문 앞을 지키게 되었다. 그의 호들갑이 의원을 질리게 한 모양이다.

“후우…….”

아서는 한숨을 길게 뱉으며 이마를 짚었다.

별문제가 없으면 좋으련만.

아니, 이미 이렇게 된 것만으로도 문제가 생긴 것인가.

아서는 입술을 자근자근 깨물었다. 그때였다.

“음? 아서?”

파르데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서 뭐 해요? 세키나 방이잖아?”

“세키나는요? 무슨 일 있는 거예요?”

곧이어 따라온 메르데스가 덧붙였다. 아서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재차 한숨을 토하며 대답했다.

“세키나 님이 조금 다치셨습니다. 그래서 의원을 불러 진찰을 받고 있고요.”

“……뭐?”

“세키나가 다쳤다고?!”

쌍둥이가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그들은 당장에라도 아서를 밀치고 방으로 뛰쳐들어갈 것처럼 발을 굴렀다. 아서가 서둘러 그들을 막았다.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저도 지금 밖에 있는 거 안 보이십니까.”

“아니, 그래도!”

“뭐야. 크게 다친 거야? 문제가 있는 거야? 아픈 거야?”

“그러니까 그걸 몰라서 의원을 불렀다니까요.”

“아니, 그걸 왜 몰라! 비켜! 안 비켜?!”

“아악! 안 된다고요!”

아서는 열심히 쌍둥이를 막았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그들은 물러서는 대신 발광하는 것을 선택했다.

“드한 이 미친 새끼! 같이 있었으면서 왜 세키나를 다치게 해!”

“드한도 다쳤습니다만.”

“걔는 다치건 말건 알 바 아니고! 차라리 죽더라도 세키나는 조금도 안 다치게 만들어야지!”

그거 유리엘이 들으면 참 기뻐할 말이겠네요.

아서는 최대한 쌍둥이를 막으며 어떻게든 문 앞을 사수하고자 노력했다.

이때였다.

“죽지는 않았다.”

복도 저편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서와 쌍둥이는 모두 다 음성이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전과 다름없이 무표정한 마왕, 르카이츠가 서 있었다.

“어디 하나 망가진 곳도 없어 보였고. 호들갑 떨 일 아니니 다들 돌아가거라.”

“어, 음…… 하지만. 그래도요.”

“걱정이 되는데.”

“돌아가라 하지 않았나?”

“…….”

쌍둥이는 눈치를 살피다가, 이내 아서를 툭 쳤다. 뭐라도 말해 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어째 아서의 표정이 좀 이상했다.

뭔가 엄청나게 화가 나 있는 듯한 느낌?

쌍둥이는 서로를 마주 보며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아서의 기운이 심상찮았기 때문이다.

“마왕님.”

쌍둥이를 떼어낸 아서는 르카이츠를 향해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아까 전에.”

그의 눈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세키나 님을 두고 돌아가려 하셨죠?”

“…….”

복도가 침묵으로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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