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중앙선 신전이 무너졌다고?”
황후, 다이애나의 쩌렁쩌렁한 음성이 방을 가득 채웠다.
그에 시중을 들던 시녀들이 흠칫거리며 놀랐지만, 다이애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페르다의 팔을 잡아당기며 눈을 부릅떴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왜? 어쩌다 그런 일이 생긴 것입니까?”
진정하지 못하는 다이애나를 보며 난감해하던 페르다는 이내 주변에 있던 시녀들을 모두 다 물렸다. 그러고 나서 다이애나에게 잡힌 손을 천천히 빼냈다.
“폐하. 자중하세요.”
페르다의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다이애나는 서둘러 팔을 되돌리고 자세를 정돈했다.
“아직 확실한 공표는 되지 않았습니다만, 주변에 있던 이들이 공통적으로 한 말은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마물입니다.”
다이애나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눈을 휘둥그레 뜨다가, 이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마물, 마물이요?”
“예. 마물이요.”
“말도 안……. 아니, 아니. 북부에만 나타난다는 그 마물이 왜 수도 한복판에 나타났다는 말입니까?”
“그건 저도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끼리 하는 이야기가 있지요.”
페르다는 몸을 낮추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신전 지하에서 몰래 마물을 소환하고 있다는 말이요.”
“설마요!”
다이애나가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알고 있다.
중앙선 신전이 여러모로 감추는 것이 많다는 것을.
대륙 제일가는 권력을 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공표된 것은 많이 없다는 것을.
하지만 마물이라니! 더럽고 치졸한, 악의 근원지라 불리는 마계의 괴물을 몰래 소환을 하고 있었다니! 말도 안 된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아무리 교황이 사사건건 우리를 방해하고 앞길을 막고 있다 한들, 그런 무도한 짓까지는 하지 않을 겁니다. 아니, 그러지 않았어야 합니다!”
“예.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잔뜩 발광하는 다이애나와 달리 페르다는 의외로 차분했다. 소식을 전해 듣고 한바탕 놀란 이후이기 때문도 있지만, 그가 머릿속에서 그리는 미래가 다이애나보다 훨씬 더 명확했기 때문도 있었다.
페르다의 입술이 비죽 올라갔다.
“하지만 백성들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
다이애나의 커다란 눈동자가 도로록 굴러갔다.
그녀 역시 마냥 온실 속 장미가 아니다. 아니, 어쩌면 온실 속 장미였던 때가 있었을지도 모르나 지금은 결코 아니다. 황제가 변한 이후에도 꿋꿋하게 목숨을 유지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상황 파악과 정리를 마친 다이애나는 까득 입술을 깨물었다.
“이 기회를 이용할 수 있다는 말이로군요.”
페르다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것이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사실처럼 믿게끔 만들면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된다면 지금보다 신전의 영향력을 줄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신전의 영향력이 줄어들면 황제 폐하 역시도 눈치를 볼 터.”
다이애나와 페르다는 동시에 서로를 쳐다보았다.
“백성들의 시선을 돌리고자 다른 방도를 고안할 겁니다.”
다이애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짜릿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야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다. 이제야 길이 보이는 느낌이다.
이 얼마나 천운이던가. 베니타의 세력이 점점 약해지고 있는 지금, 신전이 거한 사고를 쳐 주다니!
다이애나는 깔깔거리며 웃었고, 페르다 역시 그녀와 비슷한 웃음을 내뱉었다.
그러다 아차, 하며 말을 덧붙였다.
“더불어서,”
그는 또다시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중앙선 신전에 출입한 아이가 있다고 하더군요.”
“아이요?”
“예. 그리고 그중 하나가…….”
페르다는 손을 까딱였고, 다이애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익숙한 몸짓이었다.
“다이몬 백작가의 영애라 합니다.”
“맙소사!”
다이애나는 소리를 치며 입을 틀어막았다.
다이몬 백작가의 영애가 중앙선 신전에 출입했다고? 왜?
“신전과 다이몬 백작가는 사이가…….”
“나쁘지요. 매우 나쁩니다. 그런데 왜 백작가에서 아이를 신전에 보낸 걸까요?”
신전에서 다이몬 백작가를 사사건건 잡아 뜯고 비난하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그래서 다이몬 백작가는 북부를 수호하는 변경백임에도 크나큰 환대를 받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신전의 저열한 수 때문에 백작가가 곤욕을 치른 게 한두 번이 아니라 백작가에서 신전을 멀리한다는 소문이 파다한데.
그 가문의 아이가 신전에 갔다? 그리고 마물이 나타났다?
“분명 뭔가가 있겠군요.”
“예. 반드시요.”
없어도 만들 수 있을 법한 시나리오다.
다이애나의 입술이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그 아이를 불러오세요.”
그녀는 활짝 부채를 펼치며 턱을 들어 올렸다.
“제가 직접 보아야겠습니다.”
***
“아까 전에, 세키나 님을 두고 돌아가려 하셨죠?”
아서의 차가운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그에 매달려 있던 쌍둥이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르카이츠를 돌아보았고, 르카이츠는 쯧 혀를 차며 고개를 비스듬하게 내렸다. 부드득, 아서의 이가 갈린다.
“왜 그러셨습니까?”
르카이츠는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아서는, 그러니까 마물의 폭주로 지극히 아끼던 아이들을 잃은 아서는, 이 상황에서 냉정할 수 없었다. 이를 알고 있는 르카이츠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며 대답했다.
“정체를 드러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나?”
하지만 왜일까.
대꾸를 하는 와중에 르카이츠도 짜증이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자신이 해선 안 될 일을 저지른 무도한 존재라고 낙인찍힌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고작 호문쿨루스 하나 구하자고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을 저지르란 말인가?”
고작? 아서의 입술이 비틀렸다.
“그렇다면 호문쿨루스가 아닌 저였다면 어떻게 하셨을 겁니까? 아니, 하다못해 성을 지키고 있는 약한 마족 한 놈이었다면 어떻게 하셨을 겁니까? 그래도 돌아가려 했을 겁니까?”
“…….”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다.
르카이츠 역시, 세키나와 드한을 데리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내내 생각해 보았다.
만약 세키나가 아닌 다른 마족이었다면? 아서였다면, 마르틴이었다면, 리아트였다면, 그랬다면 아까와 같은 결정을 내리고자 했을까?
“호문쿨루스는 마계의 일원이 아니다, 라는 말씀 아주 잘 들었습니다.”
그 역시 호문쿨루스를 이용만 하고 내다 버릴 것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 아니었을까?
르카이츠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마족은 약해졌다. 이 이상 위험한 일을 벌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지 않나!”
그래. 자신은 정당하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을 내렸던 것뿐이다.
다수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소수를 희생하는 건 당연한 법.
위험을 무릅쓰고 세키나를 구해야 할 이유는 조금도…… 조금도 없다. 없었다.
-마왕님 힘, 제가 찾아 주께여.
르카이츠는 자꾸만 떠오르는 세키나의 말을 애써 무시했다. 무시하고자 노력했다.
그때였다.
툭, 하고 르카이츠의 발치에 뭔가가 떨어졌다.
“이게 뭔지 아시지요?”
르카이츠의 시야에 익숙한 것이 담겼다.
“세키나 님이 저 꼴이 돼가면서까지 구해 온 유물입니다.”
으득, 르카이츠는 저도 모르게 이를 꽉 깨물었다.
-유물이랑 무구예여. 교황청 지하에 이써써여.
-보쓰 줄라고 가져온 거예여.
그리 말을 하던 세키나의 몸뚱이는 어땠는가?
피를 철철 흘리고, 다리를 절고, 엉망이 된 꼴이 아니었던가?
그러면서도 저를 보며 헤실헤실 웃는 꼴이…….
“이걸 보고 느끼는 바가 없으십니까?”
르카이츠는 문득, 자신이 세키나에게 흘러가듯 했던 말을 떠올렸다.
-네 죽음은 내가 막아 주겠다.
아.
그의 눈이 질끈 감겼다.
“약해진 건 마족이 아니라 마왕님이십니다.”
그가 지킨 것은 알량한 자존심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