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뭐?]
[아기, 다쳤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제대로 좀 말해 봐라!]
영상구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은 아서의 귀를 귀찮게 파고들었다. 아, 괜히 연락했어. 아서는 쩝 입맛을 다시며 어깨를 으쓱였다.
“의원이 진찰하고 갔는데, 그렇게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합니다. 어디 부러지거나 그런 곳도 없고요.”
아서는 일부러 태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태연한 태도라고 해도 그의 속이 멀쩡한 건 아니었다.
“다만 정신적인 충격이 큰 것 같다는데…….”
중얼거리던 그는 까득 이를 깨물었다.
“세키나 님이 그간 해 오신 것들이 있다 보니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 막말로 세키나 님이 수도까지 올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아무리 마물을 소환할 수 있다고 해도! 흑마법이고 나발이고 이런 걸 세키나 님이 직접 알아낸 거라고 해도! 그래도 세키나 님이 나설 건 아니었는데!”
열변을 토하는 그를 보며 영상구 속 리아트와 마르틴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우리가 너무 세키나에게만 많은 걸 맡긴 것 같다.]
[아기, 지켜야 한다. 이렇게는 안 된다.]
그들의 대답에 아서는 조금 누그러진 듯 에휴 한숨을 내뱉었다.
“일단 여기 있는 동안에 회복에 힘쓰고, 돌아가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게끔 만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영상구 속 리아트의 눈이 가늘어졌다.
[백작령을 정리하라는 말이냐?]
“예. 뭐…….”
아서의 입술 끝이 씨익 올라간다.
“장로들도. 겸사겸사. 무슨 말인지 아시죠?”
[…….]
리아트와 마르틴의 두 눈이 반짝였다.
그렇지 않아도 장로 놈들이 이상한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것 같아 감시하고 있던 참이었다. 1군단 마족들이 보고한 것도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그래도 ‘장로’였기 때문에 증거를 잡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으려 했는데.
세키나가 이렇게 된 이상…….
[내가 한다.]
마르틴은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아기, 귀찮게 만들면 안 된다.]
그럼, 그럼.
리아트는 거의 처음으로 마르틴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주며 그를 칭찬했다.
그리고 다시 영상구 너머 아서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나저나 마왕님은? 마왕님은 어떠시냐?]
그러자마자 아서의 얼굴이 와르르 구겨졌다. 그는 마치 못 들을 걸 들은 것처럼 짜증을 내며 입매를 비죽였다.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데요.”
[……뭐?]
“저 그분 싫습니다, 이제. 상종 안 할 거예요.”
[…….]
아서의 폭탄 발언에 리아트는 물론이고 마르틴도 말을 잃었다.
[뭐라는 거야, 마족 새끼가…….]
그들의 뒤편에서 멀찍이 영상구를 내다보고 있던 캘빈만 중얼거릴 뿐.
[마족이 마왕님을 상종 안 한다는 게 말이 되냐?]
“말 되게 할 건데요? 저 진짜 결심했는데?”
흥! 아서는 고개를 휙 돌리며 팔짱을 끼었다.
“뭐……. 조금 반성하면 제 마음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그는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 마왕님이 반성이라도 하시겠어요?”
***
반성, 하고 있다.
르카이츠는 세키나의 방문 앞에서 오랜 시간 서성였다.
세키나가 정신을 차린 지는 꽤 되었다고 하니 이제 들어가 봐도 되건만, 르카이츠의 발걸음은 쉬이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이는 아까 전 아서와 나눈 대화 때문이리라.
-호문쿨루스가 아닌 저였다면 어떻게 하셨을 겁니까? 아니, 하다못해 성을 지키고 있는 약한 마족 한 놈이었다면 어떻게 하셨을 겁니까? 그래도 돌아가려 했을 겁니까?
그 말에 르카이츠는 올바른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질문 자체가 올바르지 않았으므로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는 말이 맞으리라.
르카이츠는 호문쿨루스 역시 마족의 일원이라 판단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런 생각이야말로 오만이었음을.
정작 위급한 상황이 되자 호문쿨루스를 버리겠다 판단을 내린 건…… 그들을 마계의 일원이라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는 방증이었다.
아서의 말처럼 세키나가 아닌 다른 마족이었다면 르카이츠는 주저하지 않고 구했을 게 분명하므로.
-마족은 약해졌다.
라는 말은 변명일 뿐이다.
-보쓰 줄라고 가져온 거예여.
자신을 위하여,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 주기 위하여, 힘을 되찾아 주기 위하여 목숨을 건 아이를 외면한 것만이 사실이다.
아서의 말처럼,
-약해진 건 마족이 아니라 마왕님이십니다.
그는 나약해졌다. 나약하다.
위험해지고 싶지 않다, 또다시 누군가를 잃고 싶지 않다, 마왕으로서 마족을 지켜야 한다…… 이 마음이 지금의 르카이츠를 만든 것이고, 또한 이 마음이 지금의 르카이츠를 약하게 만든 것이다.
‘이를 어떻게…….’
르카이츠는 두 눈을 내리감으며 한숨을 길게 뱉었다. 당장에 마음가짐을 바꾼다 할지라도 도통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왔기 때문이었다.
‘일단은 대화를 해 보는 것이 좋겠지.’
후우. 재차 한숨을 쉰 르카이츠는 문고리를 잡았다.
그때였다.
달칵, 하고 문이 열리더니,
“……보쓰?”
세키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느닷없는 등장에 르카이츠는 다소 놀랐다.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고 맞닥뜨린 것이기 때문이다. 르카이츠는 자신도 모르게 두 걸음 뒤로 물러서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허리를 곧추세웠다.
“몸은 어떠냐?”
세키나는 갸우뚱거리던 고개를 바로 하고 대답했다.
“쪼아여. 전보다 더 나아진 듯?”
“……그럴 리는 없을 텐데.”
르카이츠는 태연한 태도의 세키나를 내려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녜여. 의원이 실력이 좋네. 전 만족해여.”
세키나는 어깨를 으쓱 올렸다.
말대로 세키나는 상태가 꽤 괜찮았다. 실제로 드한 덕분에 크게 다치지 않았기도 했거니와 세라가 나름대로 보호를 해 주었었으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다들 걱정을 못해 안달인 건지.
이전 생에서 단 한 번도 이러한 호의와 관심을 받아 본 적 없던 세키나로서 당연히 이해가 안 가는 반응들이었다.
그래서 세키나는 말을 돌렸다.
“그건 그렇구, 제가 드린 건 보셔써여?”
르카이츠는 여전히 인상을 찌푸린 채 고개를 저었다.
“아직 보지 않았다.”
“왜여?”
세키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제 선물이 마음이 안 드신 거예여? 와, 싸람 그렇게 안 봤는데 너무하네.”
사람 아니고 마족인데…… 싶었지만 르카이츠는 입을 다물었다.
“그게 아니라.”
후우. 르카이츠는 재차 한숨을 뱉은 후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세키나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함이었다.
“네게 우선 사과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온 것이다.”
“……사과여?”
“그래.”
르카이츠는 숨을 골랐다.
몇백 년을 살면서, 사과다운 사과를 단 한 번도 해 본 적 없던 그였다.
그는 마계를 지배하는 자. 그의 결정은 틀리지 않았고, 그의 의견은 언제나 옳았으니까. 그렇기에 누군가에게 잘못을 고하며 고개 숙일 일 자체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번에 그가 내렸던 선택은 어디까지나 틀렸던 것.
호문쿨루스와 마족의 무게를 달리 판단하고,
아이의 호의를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그 모든 것이 르카이츠의 과오였다.
“널 두고 돌아가려 했다.”
그래서 그는 천천히, 하지만 또렷하게 말을 이었다.
“너를 구하지 않으려 했음을 사과하겠다. 미안하구나.”
세키나는 잠시 멍하니 넋을 놓았다.
르카이츠의 말을 잘 이해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날 두고 돌아가려 했다는 건 신전터에서의 일을 말하는 거겠지? 그러지 않았다면 힘을 써서 나를 찾아냈을 테고?
“……어, 음.”
세키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굳이?”
그러고는 굳어 있는 르카이츠를 향해 말했다.
“굳이 저를 구했어야 했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