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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님이 만드는 파멸엔딩 (120)화 (121/149)

120화

“굳이 저를 구했어야 했나여?”

이 말은, 자신을 불쌍하게 여겨 달라거나 하는 유의 동정을 유발하기 위한 말이 아니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한 말이다.

애초에 세키나는, 그러니까 이 게임에 빙의하기 전부터 지금까지 모든 시간들을 다 합쳐 보아도 누군가에게 이렇다 할 도움이라는 걸 받아본 적이 없었다.

자신을 가장 아끼고 사랑해 주는, 보호해 주어야 하는 부모의 손조차 잡아 본 적이 없었으니 무엇에 기대를 하겠는가?

그나마 드한이 제게 애정을 비치긴 하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시나리오에 의거한 것.

그래서 세키나는 르카이츠가 이렇게 사과를 하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자신을 구하려고 힘을 썼다면 그들의 정체를 들켰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도 큰 피해가 갔을 터.

‘나를 버리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세키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머, 그 자리에서 제가 죽어써도 어쩔 쑤 업떤 일이라고 생각해여. 거기 가기로 했떤 건 제가 선택했떤 일이구, 그거에 대해서 보쓰가 책임져 줄 일은 아니니까여.”

르카이츠의 미간이 좁혀졌다.

사실상 세키나가 한 말은 그가 세키나를 두고 돌아가고자 하는 결론을 내렸을 때 했던 생각이다.

그때에는 르카이츠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 세키나의 입에서 같은 말을 듣게 되니…….

‘불쾌하군.’

르카이츠는 한숨을 뱉으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세키나의 말은 정말 비인도적인 내용이었다. 아무리 선택에 대한 결과를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한들, 이토록 어린아이에게 그것을 강요할 수 있는가?

아이는 그릇된 선택을 내릴 수 있다.

그에 대한 책임은 어른이 져 주어야 하는 것이 맞다.

그 아이가 인간이건, 마족이건, 호문쿨루스이건…… 무엇이건 간에.

르카이츠는 세키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너는 아직 어리다.”

……저 살아온 세월만 해도 90년이 넘는데.

하지만 여기서 말할 건 아니었으므로 세키나는 꼴깍 마른침만 삼켰다.

“어린아이에게는 책임이라는 게 없어.”

“…….”

“책임지지 않아도 될 일을 구태여 떠맡지 말거라.”

세키나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어린아이에게는 책임이라는 게 없다라.

이 말을 진즉 들었다면 어땠을까? 일전의 생에서 ‘아이는 그럴 수 있다’라는 말을 들었다면 뭔가가 달라졌을까?

잘 모르겠다.

달라지는 건 크게 없었을 것 같아.

“무쓴 말인지는 잘 모르겠는데여.”

그래서 세키나는 일부러 말을 돌렸다.

“일딴 제가 준 유물에 대한 감상을 들려주시면 조케써여.”

“…….”

이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한다고?

이렇게 감동적인 대화에서?

르카이츠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교육을 다시 시켜야…….”

마왕성으로 돌아가면 할 일이 생겼다.

***

드한은 아직 눈을 뜨지 못하고 있다.

세키나보다 크게 다쳤기 때문이냐, 한다면 그것도 맞는 말이긴 했으나 더 중요한 건 그의 정신이었다.

의원은 그가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에 놓여 있었으며 까닭으로 정신 회복을 위한 잠에 빠져 있다고 했다.

그래서 드한의 곁을 지키고 있던 유리엘은 결국 울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훌쩍…….”

침대가에 앉아 있던 유리엘은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코를 킁 삼켰다.

드한은 어린아이다.

하지만 어린아이인 것치고는 너무도 어른스러웠다.

그래서 유리엘을 종종 드한의 나이를 잊었다. 그가 5살짜리 어린애라는 걸 새까맣게 잊은 채 그를 대하기도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같이 갈걸.’

아무리 교황이 드한만 불렀다고 해도, 그 근처까지는 같이 갈걸 그랬다. 보호자 역할이라고 우기며 어떻게 해서든 따라붙을 걸 그랬다. 그랬다면 이 정도까지의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대체 왜 지하에 있었던 걸까?’

교황이 아이들을 지하로 데리고 간 걸까? 아니, 그러진 않을 거다. 지하는 유리엘조차 가 보지 못한 미지의 공간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뭔가 이유가 있다는 건데…… 아니, 아니.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다. 일단 드한이 정신을 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유리엘은 두 손을 얌전히 모으고 기도를 올렸다.

부디 이 어린양을 구해 주소서, 아이의 앞날에 축복을 내려주소서, 아이에게 더 이상 가시밭길을 안겨 주지 마소서…… 그리 한참 기도를 올리던 유리엘은 문득 입술을 짓씹었다.

신은 응답해 주지 않는다.

신은 자신들을 보호해 주지 않는다.

신은…… 과연 우리를 지켜 주는 존재인가?

유리엘은 지난날 자신들에게 손을 뻗어 주었던 존재가 신이 아닌 다이몬 백작가라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렸고, 동시에 신에 대한 불신, 그리고 분노를 함께 머금게 되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져 버린 마음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유리엘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성하를 만나 뵈어야겠어.’

유리엘은 두 손을 꽉 맞잡으며 읊조렸다.

***

늦은 밤.

이제야 아서와 쌍둥이, 그리고 르카이츠의 호들갑에서 벗어난 세키나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대체 왜 그런 거야? 왜 지하까지 내려간 건데?

-유물 때문에? 유물? 고작 유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고?

-대체 언제까지 그러실 겁니까!

아우, 아직도 그들의 외침이 귓가에 생생하다. 어찌나 호들갑을 떠는지, 세키나는 자신의 목을 졸라 꽥 기절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후 독단적인 행동은 허락하지 않겠다.

르카이츠의 묘하게 변한 태도도 뭔가 이상했지만…… 이런 변화는 나중에 생각해 보기로 했다. 일단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끼이익,

세키나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침대 위에 죽은 듯 누워있는 이를 쳐다보았다. 드한이었다.

-세키나 님!

-숨 참고 계십시오. 금방 끝날 테니까요.

마지막 순간에 자신을 껴안으며 건물의 잔해를 모조리 얻어맞던 그.

세키나는 그런 드한을 보며 과거의 기억을 꺼냈다. 정확히 말하면 의도치 않은 상태에서 기억해 내게 되었다.

‘예전에도 나를 구해 줬었지.’

흑마법사 놈에게 붙잡혀 갇혀 있을 때, 드한이 자신을 구해 주었다. 무너지는 탑에서 자신을 끌고 나와 새로운 삶을 살게 해 주었다. 그래. 드한은 예나 지금이나 언제나 자신을 구해 준…… 유일한 사람이다.

과거에는 단지 그가 ‘시나리오’ 때문에 자신에게 손을 뻗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미 시나리오는 틀어졌잖아.’

띠링!

[SYSTEM]

‘드한 아가토’의 연인은 당신이 아닙니다.

당신은 히든 캐릭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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