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기님이 만드는 파멸엔딩 (129)화 (130/149)

129화

[꿰에에엑!]

마물의 손에 붙잡혀 대롱대롱 매달린 채 허공을 누비고 있는 뮐러는 생각했다.

내가 전에 쟤를 왜 건드렸지……?

기억하기로는 그 프라이라는 호문쿨루스를 비호하겠답시고 건드렸던 것 같다.

내가 왜 그랬지……?

[꿰에엑!]

이런 힘이 있는 걸 알았다면 진즉 구석에 처박혔을 텐데.

[꿱! 꿱!]

난 뭐 한다고 나댔을까…….

뮐러는 감이 좋은 이였기 때문에, 여기서 이 마물에게 덤벼봤자 백의 확률로 패배한다는 걸 직감하고 있었다.

뮐러를 잡고 있는 이 마물이, 그가 마계에서 보았던 그 어떤 마물보다 더 강한 마기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덤비면 죽는다. 이 말을 다시금 되뇌며 뮐러는 그대로 쑥쑥 허공을 누볐다.

“머야. 재미업께.”

팔짱을 낀 채 뮐러를 보고 있던 세키나는 흥 콧방귀를 뀌었다.

“뮐러라고 해써찌?”

“그, 그렇다만?”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뮐러는 눈을 반짝이며 세키나를 쳐다보았다. 여기서 대답을 잘해야 자신을 지상에 내려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세키나는 그런 뮐러를 지그시 응시하며 물었다.

“장로들이 나를 견제하는 거, 내기 때문만은 아닌 거 같던디. 맞지?”

사실 그렇다.

단순히 자신들이 점찍은 호문쿨루스가 성장하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이라면 호문쿨루스에게 투자를 하거나 혹은 얼추 비슷한 호문쿨루스를 끌어내리면 된다.

그래서 세키나는 일전에 프라이가 나대고, 뮐러가 묵인했던 일을 그런 과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넘기기에는 조금 과했지.’

세키나가 수도로 갈 때에 죽이려고 든 것부터 시작해서 오늘의 일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 수상하다.

‘분명 뭔가가 있다니까.’

세키나는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을 덧그리며 턱을 들어 올렸다.

“너가 지굼 여기서 말 안 해두 내가 다 알아내는 수가 이써. 근데 그럼 너는 저 설산으로 던져지게찌. 글고 산을 내려오려는 족족 마물이 나설 꺼야.”

“……어?”

뮐러의 눈동자가 빠르게 굴러갔다. 그는 이곳이 힘을 제대로 낼 수 없는 인간계라는 사실과, 눈앞의 마물이 굉장히 강하다는 사실, 그래서 정말 저 말대로 된다면 기약 없이 설산에 내내 처박혀 있어야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빠르게 머릿속으로 굴리며 결론을 내렸다.

“말하겠다!”

그래. 살고 봐야 하니 말이다.

추운 거 싫엉.

***

“세키나가 왔다고? 그것도 마왕님과 함께?”

연구실에 처박혀 있던 리아트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소리쳤다.

그에 마르틴이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이제 도착했다.”

“그런 일이 있었으면 까마귀를 보냈어야지! 이 멍청한 자식 같으니라고!”

리아트는 끼고 있던 안경을 내던지고는 서둘러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총총 걷는 걸음 소리와 쿵, 쿵, 하며 마르틴이 뒤따라 걷고 있는 소리가 좁은 복도 내에 울려 퍼진다.

서둘러 움직인 리아트는 문에 다다르자마자 문짝을 부숴 버리겠다는 듯이 손잡이를 꽉 움켜잡았다. 그러자마자 광활한 하늘이 보였다.

어……?

하늘이…… 왜 보이지?

이거 보이면 안 되는 건데……?

리아트는 순간 자신이 텔레포트를 했나 착각을 했다. 그러다 그건 단순한 착각일 뿐이고, 눈앞에 보이는 건 정말 건물 외벽이 사라지고 천장이 뚫린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분명 몇 시간 전에 연구실로 들어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은 멀쩡했다. 아니, 당장 리아트가 자신을 찾아온 것만 해도 멀쩡했던 공간이 아니었겠는가.

그런데 왜 갑자기 이렇게 되어 버린 거지?

마왕님이 분노라도 하셨나?

리아트는 떨리는 눈동자로 주변을 훑어보았다.

그때였다.

“느껴진다.”

뒤에서 놀람을 잠자코 있던 마르틴이 말했다.

“뭐, 뭐가? 뭐가 느껴진다는 말이냐?”

“마기의 흐름.”

마르틴은 험악한 얼굴을 더욱더 일그러뜨리며 주변을 관찰했다. 마기가 느껴졌기 때문에 화가 난 게 아니고, 이 흐름에 혹여나 세키나가 휘말렸을까 걱정이 돼 화가 난 것이었다.

리아트 역시 마르틴과 같은 생각이었기에, 그는 발을 동동 굴렀다.

“일단 세키나를 찾…….”

“저기!”

“뭐가? 어디?”

“저기! 저기를 봐라!”

마르틴은 리아트의 뒷목을 잡고 그대로 시선을 옮겨 주며 소리쳤다.

“저건……!”

그러자마자 리아트의 입이 쩍 벌어졌다.

왜 발견하지 못했나 싶을 정도의 거대한 마물 때문이 아니다.

마물의 어깨 위에 앉아 있는…….

“세키나?”

세키나와,

“……장로?”

그런 세키나 옆에 거꾸로 둥둥 떠 있는 5장로, 뮐러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서어어억!”

리아트는 아직 수도에 있을 아서를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세키나한테 뭘 가르친 거야아악!”

***

“세키나.”

“넴.”

리아트는 터져 나오려는 격한 숨을 애써 참으며 무릎 꿇고 두 손을 들고 있는 세키나를 내려다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세키나는 정말로 귀여웠다. 물론 세키나의 살짝 야윈 두 뺨이 보이자마자 아서가 돌아오면 일단 때리고 시작해야겠다고 판단했지만, 그깟 야윈 뺨은 세키나의 귀여움에 조금도 영향을 주지 못했다.

초롱초롱한 두 눈과, 개구진 곡선을 그린 입매. 그새 자란 듯 조금은 통통해진 손과 길어진 다리까지.

리아트는 꼬박 보름 만에 만나는 세키나의 모습을 더 눈에 담고 예뻐해 주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세키나가 오자마자 큰 사고를 쳐 버렸다.

그래서 리아트는 애써 참고 있는 거였다. 격한 숨은 화가 났기 때문이 아니라 세키나를 예뻐해 주지 못하는 지금 자기 자신에 대한 억울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래서.”

크흠!

리아트는 잔기침을 내뱉은 후, 부러 눈을 크게 올려 떴다.

“오자마자 이런 거한 사고를 쳤다?”

“헤헹.”

“건물을 무너뜨리고, 마물을 소환하고, 장로를 협박하고?”

“헤헤헹.”

세키나는 뭐라 할 말이 없어 멋쩍게 웃기만 했다. 뭐, 다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아기. 안 다쳤다. 그럼 된 거다.”

“되겠냐?”

장로를 공격해 놓고 멀쩡히 살아남을 수 있노라 믿는 게 더 이상하다. 제아무리 우리가 세키나를 보호한다 해도…… 장로들은 영악하기 짝이 없었으므로.

그냥 죽여서 증거를 없애 버릴까. 리아트는 세키나 뒤쪽에 주저앉아 발목을 어루만지고 있는 뮐러를 힐끗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지금 죽이면 티가 날 거야.’

나중에 죽이자.

리아트는 후우 다시 한번 숨을 내뱉은 후 입을 열었다.

“세키나. 네가 아무리 화가 났었다고 해도 이러면 안 되는 것이다. 저자는 장로야.”

세키나는 입술을 꾹 다문 채 고개를 숙였다.

혼날 줄은 알았지만 리아트가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리아트가 단단히 화난 것 같…….

“아무리 저 새끼가 약해 빠져 보인 놈처럼 보인다고 해도, 때려도 별문제가 없어 보인다고 해도, 저따위로 약한 놈이 어떻게 장로 자리를 차지한 건지 의문이 들 정도로 울화통이 터진다고 해도!”

……지 않고.

본심을 말하는 거 같은데?

“……그래도 장로니까, 대우를 해 줘야 한다는 말이다. 알겠느냐?”

세키나는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리고는 커다란 눈을 여러 번 끔뻑였다.

그러다 피식 웃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잘몬해써여.”

“우리에게 사과를 한다고?”

“아녀.”

뒤를 돈 세키나는 뮐러를 향해 꾸벅 허리를 굽혔다.

“재송함다.”

하지만 고개는 숙이지 않는다. 세키나의 두 눈은 뮐러를 향해있다. 야, 딴말하지 마라. 뒤진다.

“하, 하하…….”

뮐러는 뒷목에 난 식은땀을 닦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 아니. 뭘. 죄송하기까지야. 그냥 논 것뿐인데. 하하하.”

그는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장로들은 너를 어떻게 해서든 죽일 것이다.

-이유야 간단하지. 영향력을 잃고 싶지 않아서다. 지금은 마왕님께서 직접 나섰기 때문에 잠잠할 수 있겠지만…… 미봉책이다. 곧 너를 죽이려 들 거야.

아까 전에 세키나에게 모든 걸 털어놓았던 그로서, 세키나에게 공격당하고 수세에 몰렸다는 걸 만천하에 공개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공개되면 안 됐다. 그랬다간 장로들이 집요하게 추궁을 할 테니까.

“그치? 우리는 함께 논 것뿐이지? 그렇지?”

이런 뮐러의 생각을 알아챈 세키나는 생긋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넹. 마자여. 쪼꼼 신나게 논 것뿐이에여.”

세키나는 의아해하고 있는 리아트와 마르틴을 향해 환한 웃음을 보여 주었다.

“구니까 아무 걱정 안 해도 대여!”

그래.

너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장로들은 인간계에 더 있고 싶어 한다.

-어떻게 해서든 붙어 있으려고 해.

지금은 개 같은 수작을 부리고 있는 그쪽 놈들이 더 걱정을 해야 할 상황이니 말이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