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뭐…… 뭐라 하였느냐?”
루치페르는 참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버추스를 보며 반문했다.
기실 그가 버추스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게 아니다. 그저 그가 한 말이 믿기지 않아 재차 물어본 것이다.
“그…… 들으신 그대로입니다. 세키나 다이몬은 북부로 돌아갔고, 수도의 인간들은…….”
버추스는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자신이 수도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말했다.
“신전에 반기를 들고 있는 상태입니다. 단순히 중앙성 신전 주변의 인간들 뿐만이 아닙니다. 수도의 모두가, 아니 어쩌면 제국의 전부가 들끓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기이할 정도로 인간들이 신전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다. 단순히 마물 때문이 아닌 듯한데…… 그 이상까지 알아내지 못한 버추스는 이렇다 할 수확 없이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를 내려다보던 루치페르의 입술이 픽 비틀렸다.
“그래, 그래. 아주 대단한 정보를 알아 왔구나. 이렇게도 기특한 너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는 분노가 머리끝까지 올라오면 뜨거워지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새로이 느끼며 빠득 이를 갈았다.
“꼬챙이에 살을 꿰어 버릴까? 네가 흘리는 피를 네 입으로 받아먹게 해 놓을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니? 응?”
“주, 주인님…… 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신다면…….”
“죽이시지요.”
버추스가 읍소하고 있을 때, 뒤편에서 가브리엘이 등장했다.
그는 언제나 버추스를 바라보던 눈빛 그대로, 다시 말해 상대를 하등하게 내려다보는, 존재 가치 자체를 지워 버리는 듯한 눈빛이다.
“저런 멍청한 자식은 품고 갈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는 쯧 혀를 차며 버추스에게 두었던 시선을 거두었다. 으드득, 버추스가 이를 가는 소리가 들린다.
“가브리엘!”
루치페르는 가브리엘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환히 웃었다. 루치페르의 총애를 받고 있느라 확신하고 있는 가브리엘은 그 어느 때보다 충성스러운 신하의 얼굴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네, 명하신 것을 모두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래, 잘하였다.”
루치페르는 여전히 웃음을 지으며 손가락 끝으로 가브리엘의 턱을 들어 올렸다.
“한데 말이야.”
그의 붉은 입술이 차갑게 비틀렸다.
“꽤나 대단한 일을 한 모양이구나. 안 본 사이에 이렇게도 건방져지다니 말이야.”
“……!”
가브리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삽시간에 굳은 공기와 싸늘해진 기운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흠칫거렸다.
“너희들의 생사를 결정하는 건 나란다. 오직 나. 나뿐이야. 너희가 감히 내게 무언가를 명령할 수 없지.”
“……예.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 파악을 못했습니다.”
가브리엘은 저를 빗겨 보며 비웃는 버추스를 못 본 체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제 말해 보렴. 네 성과에 대해서.”
그의 수치심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루치페르는 의자에 몸을 앉히며 다리를 꼬았다.
“황태자…… 아니, 황제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쪽에서도 저희를 돕겠다 하였습니다.”
“……돕는다고?”
하지만 곧장 일어났다. 그는 이마를 짚으며 허리가 뒤로 넘어갈 정도로 크게 몸을 젖혔다.
“하하, 하하하!”
그의 날카로운 손톱이 두피를 파고들었다. 까드득, 까드드득, 괴이한 소리가 퍼졌다.
“돕기는 무엇을 도와! 그 건방진 인간 자식이 감히! 무릎 꿇고 엉엉 울던 것을 받아 준 것을 잊고는……!”
본래부터 인간을 좋아하지 않던 그였으나 이로써 더욱더 인간을 싫어할 이유가 생겼다.
은혜도 모르는 것.
아비를 죽인 것을 감춰 주고 그토록 원하던 황관을 안겨 주었는데 이런 식으로 발을 빼다니!
어차피 죽일 놈이었지만, 그 시기를 더 앞당겨야겠다. 제 주제도 모르는 인간은 살 가치가 없으니 말이다.
후우, 숨을 몰아쉰 루치페르는 다시금 의자에 몸을 앉히며 턱을 들어 올렸다.
“아니, 아니지. 지금은 화를 낼 때가 아니지. 응, 알고 있단다. 그래, 그러면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해야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까?”
그는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버추스와 가브리엘을 쳐다보았다. 버추스가 입을 열기 직전, 가브리엘이 먼저 몸을 일으켰다.
“제 의견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루치페르는 가브리엘을 향해 눈을 까딱였다.
“일단은 수도 상황부터 정리하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그래야 주인님의 몸도 새로이 구할 수 있을 테고요.”
몸.
그놈의 몸!
아무리 흑마법을 쓰고 있다 한들 죽은 몸뚱이에 영혼을 넣어 버티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나마 교황의 몸뚱이가 신성력이 높아 천족인 자신과 합이 맞았던 것인데, 이것도 이제 얼마 지나면 쓰지 못할 쓰레기가 될 것이다.
하여 그 전에 걸맞은 몸을 찾아야 했다.
“그래……. 하면 그렇게 하자꾸나.”
복수보다 우선시해야 하는 것은 목숨이다. 그러므로 루치페르는 성급하게 굴지 않기로 다짐했다.
“버추스.”
“네, 네!”
시무룩해 있던 버추스가 벌떡 고개를 들었다.
“신전에 반기를 든다는 것은 곧 신을 배반한다는 뜻인 터.”
“……예!”
“불신론자가 이곳에서 살아갈 이유가 있니?”
말인즉슨, 신전을 규탄하는 인간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라는 뜻.
분노한 신이 철퇴를 내린 것처럼 보여주면 될 일이다.
이런 것은 버추스의 전문이었기에, 그는 자신감 어린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말씀하신 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수도에 한바탕 피바다가 불 예정이었다.
***
툭, 툭, 투욱.
르카이츠는 손가락 끝으로 책상을 치며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그는 며칠 내내 이런 상태였다. 다소 넋이 나가 있는 것 같기도 한…… 좋게 말하면 그런 것이고 대놓고 말하면 정신머리가 빠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는 세키나가 축객령을 내린 이후부터 지속됐다.
-같이 이쓰면 체할 거 같은디.
체할 것 같다고?
내 존재가 그렇게도 거북하단 말인가?
믿기지 않는 사실이다.
내가 뭘 잘못…… 했나? 했었나?
르카이츠는 곰곰이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얼마 거슬러 올라가지도 않았는데 제가 했던 심한 말들이 툭툭 튀어나왔다. 믿지 않는다, 죽이겠다, 지켜보겠다, 조심해라…….
잘못하긴 했네. 많이.
하지만 르카이츠는 다소 억울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거늘.’
합리적인 말이었고, 합당한 선택이었다. 의심 가는 대상을 그대로 두고 있다가 마족 전체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쩐단 말인가.
그래서 정말 어쩔 수 없었다. 이를 세키나도 이해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직은 어린아이라는 것인가.’
세키나가 그간 어른스러운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만 잊고 있었다. 그 아이는 이 세상에 태어난 지 3년밖에 되지 않은 작은 아기라는 사실을.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밥이라도 같이 먹을 수 있을까.
어째 자신이 관계의 패자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조금 이상했지만, 뭐 이건 나쁘지 않은 감각이었다. 성 내의 다른 마족들처럼 세키나를 대하게 되는 것이니까.
‘장로들을 제외하고는.’
그들이 문제다.
단순히 호문쿨루스를 두고 한 내기 때문에 나선다고 하기에는 무리수가 있는 행동을 많이 했던 그들.
무엇이 목적일까?
그리고 그 목적의 이유는 무엇일까?
르카이츠는 다시금 생각의 흐름을 바꾸며 그들에 대해 깊게 고민했다. 아니, 고민하려 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말이다.
“저, 마왕님. 안에 계신가요?”
문밖에서 들린 목소리는 놀랍게도 율리안이었다. 자신의 방으로는 찾아온 적이 없던 율리안.
르카이츠는 의아함을 느끼며 들어오라 말했다. 그러자마자 문이 벌컥 열렸고, 율리안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만 있는 게 아니었다.
율리안의 뒤에는 니샤가, 디디에가, 쌍둥이가 있었다.
세키나와 프라이를 뺀 호문쿨루스가 모두 다 모인 것이다.
이들이 한꺼번에 모인 것으로 보아 심상찮은 일이라 생각이 들어, 르카이츠는 눈을 가늘게 떴다.
“무슨 일인가?”
다른 마족을 거치지 않고 자신에게 온 것만으로도 큰일이라는 걸 방증하는 터.
르카이츠는 들려올 어떤 말에도 놀라지 않게 하고자 마음을 가다듬고 허리를 곧추세웠다.
“저…….”
우물쭈물하며 서 있던 율리안은 뒤를 돌아 다른 아이들을 쳐다보다가, 이내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외쳤다.
“세키나를 그만 괴롭혀 주세요!”
……뭐라고?